책이란?



  누가 묻습니다. “삶이란 무엇인가요?” 그래서 “삶이란, 새롭게 숨쉬며 사랑으로 서로 속삭이며 씩씩하고 살뜰히 샘솟는 살림을 씨앗으로 심는 손길이 살가운 숨결, 이렇게 ㅅ으로 엮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너무 긴데요?” 하고 되묻습니다. 그래서 “삶이란, 숲이에요.” 하고 짧게 끊습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누가 “책이란 무엇인가요?” 하고 묻는다면, 짧고 굵게 “책이란, 숲이에요.” 하고 말할 만하구나 싶어요. 2017.11.14.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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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지 않지만 빌리는 책



  나중에 돌려주려고 얻을 적에 ‘빌리다’라는 낱말을 씁니다. 도서관이나 대여점에서 책을 빌려서 읽어요. 이는 물건을 빌리는 얼거리인데, 책이라는 물건을 빌려서 읽을 적에는 우리 몸에 물건을 더 가지려 하지 않되, 우리 마음에 이웃님이 펼친 아름답거나 즐겁거나 훌륭한 생각을 슬기롭게 나누어 받으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건으로 내가 가지려고 할 적에 ‘사다’라는 낱말을 씁니다. 책방에 마실을 가서 돈을 치르고 우리 손에 쥐거나 가방에 넣으면 책을 사는 얼거리예요. 이때에는 책이라는 물건에 깃든 슬기로운 마음을 우리 것으로 삼으려는 뜻뿐 아니라, 우리한테 슬기로운 마음을 베풀거나 나누어 준 이웃님한테 살그마니 살림으로 보탬이 되려는 뜻이 어우러집니다.


  누구나 책을 빌리면서 빌리지 않습니다. 책에 깃든 마음을 얻고서 우리 스스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서 즐겁게 살아가려는 기운을 지을 적에, 지은이한테 즐거운 마음을 가만히 돌려준다고 할 만합니다. 아직 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아직 지은이 마음을 빌리지 않은 셈이요, 책을 펼쳐서 한 줄 두 줄 마음으로 아로새길 적에는 지은이 마음을 빌린 셈입니다.


  도서관이나 대여점에서 얼마든지 빌릴 수 있는 책을 애써 값을 치러서 사들이려 할 적에는 여러 뜻이 있다고 느껴요. 지은이하고 펴낸이하고 이웃이 되려는 뜻이 있고, 스스로 마음을 가꾸는 길동무가 되는 책을 늘 곁에 두려는 뜻이 있어요. 그리고 책으로 다시 태어나 준 나무나 숲을 우리 보금자리에 두고 싶은 뜻이 있습니다. 2017.10.1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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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마음



  나이를 한 살 더 먹기에 더 슬기롭지 않습니다. 돈을 더 많이 벌기에 더 너그럽지 않습니다. 글을 더 많이 썼기에 더 빼어나지 않습니다. 말을 더 잘 하기에 더 착하지 않습니다. 책을 더 많이 읽었기에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땅을 더 거느리기에 더 넉넉하지 않습니다. 밥을 더 많이 먹었기에 더 배부르지 않습니다.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늘 달라지는 살림입니다. 읽는다는 마음이란, 우리 스스로 아직 모자라거나 어리숙한 줄 깨닫고 이를 채우거나 가다듬을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 즐겁게 새로 지을 길을 갈고닦거나 가꾸려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한테는 책 하나조차 없어도 됩니다. 참답고 고우며 착하게 읽으려는 마음이 있을 적에는 우리 스스로 책이 되고 우리 스스로 책을 지으며 우리 이웃이 빚는 숱한 삶책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2017.10.4.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넋/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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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쐬는 책



  사람은 바람을 마시면서 목숨을 잇습니다. 물이며 밥을 먹어야 몸뚱이가 산다면, 바람을 마시면서 마음이 살아서 하루를 짓는 길을 걸어간다고 느껴요. 아무리 깊은 곳으로 들어가도 바람이 흐르면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높은 곳으로 올라가도 바람이 흐르면 살 만합니다. 바람이 흐르지 않는 곳은 사람한테 무척 끔찍해서 죽음터가 됩니다. 흐르는 바람을 마시면서 흐르는 생각이 되고, 흐르는 생각이 흐르는 사랑으로 피어나니, 흐르는 이야기가 되도록 살림을 가다듬습니다. 사람이 지은 책은 사람 손길을 타기에 바람을 쐬면서 한결 싱그럽습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책이 오래오래 살고, 바람을 곁에 두면서 책마다 속살이 짙푸릅니다. 2017.9.18.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넋/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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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이 버린 책이 얼마나 많은데 ……



  저는 이른바 ‘문화재급’ 옛책을 헌책방에서 산 적은 없습니다. 값이 대단히 비싸니까요. 그러나 문화재급에 들지 않는 옛책은 헌책방에서 제법 장만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책들 가운데 ‘대학 도서관 도장’이나 ‘신문사 도장’이나 ‘문교부 도장’이 찍힌 책이 꽤 많아요.


  헌책방에서 이런 책을 살 적마다 여쭈어 보지요. 그러면 헌책방지기뿐 아니라 ‘대학 도서관·신문사 도서관·공공기관 도서관’에서 나온 책을 사는 단골 할아버지들이 곁에서 한 마디 하셔요. “도서관이 좁아서 버려. 요즘 사서들이 한문을 아나? 게다가 오래된 책은 큼큼한 냄새에 곰팡이도 있으니, 더 먼저 버리지.”


  도서관에서 값진 책을 짐차로 몇 덩이씩 내다 버리면, 이를 헌책방지기가 폐지처리장이나 고물상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캐내어 하나하나 손질하는데, 책을 좋아하는 분들은 이런 책을 주머니를 탈탈 털어서 장만하려고 합니다. 비록 도서관이 자리가 좁아서 버린다고 하지만, 이녁 집에 모시고 싶거든요. 이녁 집도 좁기는 매한가지일 텐데, 그래도 이 책이 버려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쌈지돈을 터시더군요.


  대학 도서관이든 신문사나 공공기관 도서관이든 책을 버릴 수밖에 없는 우리 모습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뜻있고 값있는 옛책은 어느새 모조리 사라질 수 있습니다. 도서관은 책을 버릴 적에 헌책방을 안 불러요. 그냥 수거업자를 불러서 폐지처리장이나 고물상으로 곧바로 내보냅니다.


  저는 지난달에 어느 헌책방에서 ‘2017년 3월에 문을 닫은 어느 시골 초등학교 도서관에 있던 책’을 한 권 장만했습니다. 폐교가 되고 만 시골 작은 초등학교 도서관 도장이 찍힌 그 책은 제가 그리 안 좋아하는 책이지만, 전라도 어느 시골 작은 초등학교를 기리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장만해 놓았습니다. 멀쩡한 ㅅ대학교 도서관이나 ㄷ신문사 도서관에서도 그곳 책들을 때 되면 몇 차씩 버리곤 하는데, 시골에서 학생이 줄어서 끝내 문을 닫아야 하는 작은 학교에서도 이곳 도서관에 있던 책은 모조리 폐휴지로 바뀝니다. 그나마 한국에는 헌책방이 있기에 헌책방지기가 이를 거두어 주면 겨우 살아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도서관에서 책을 다루거나 건사하는 행정·정책이 달라져야 하리라 생각해요. 제발 도서관 건물도 늘리고 사서도 늘려서, 아무 책이나 함부로 버리지 않기를, 그리고 버려야 한다면 곧장 폐지처리장으로 보내지 말고, 헌책방지기를 불러서 ‘다른 사람이 건사하면서 살릴 수 있는 책은 살리’도록 해야지 싶습니다. 2017.9.6.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3&oid=020&aid=000309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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