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지 않지만 빌리는 책



  나중에 돌려주려고 얻을 적에 ‘빌리다’라는 낱말을 씁니다. 도서관이나 대여점에서 책을 빌려서 읽어요. 이는 물건을 빌리는 얼거리인데, 책이라는 물건을 빌려서 읽을 적에는 우리 몸에 물건을 더 가지려 하지 않되, 우리 마음에 이웃님이 펼친 아름답거나 즐겁거나 훌륭한 생각을 슬기롭게 나누어 받으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건으로 내가 가지려고 할 적에 ‘사다’라는 낱말을 씁니다. 책방에 마실을 가서 돈을 치르고 우리 손에 쥐거나 가방에 넣으면 책을 사는 얼거리예요. 이때에는 책이라는 물건에 깃든 슬기로운 마음을 우리 것으로 삼으려는 뜻뿐 아니라, 우리한테 슬기로운 마음을 베풀거나 나누어 준 이웃님한테 살그마니 살림으로 보탬이 되려는 뜻이 어우러집니다.


  누구나 책을 빌리면서 빌리지 않습니다. 책에 깃든 마음을 얻고서 우리 스스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서 즐겁게 살아가려는 기운을 지을 적에, 지은이한테 즐거운 마음을 가만히 돌려준다고 할 만합니다. 아직 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아직 지은이 마음을 빌리지 않은 셈이요, 책을 펼쳐서 한 줄 두 줄 마음으로 아로새길 적에는 지은이 마음을 빌린 셈입니다.


  도서관이나 대여점에서 얼마든지 빌릴 수 있는 책을 애써 값을 치러서 사들이려 할 적에는 여러 뜻이 있다고 느껴요. 지은이하고 펴낸이하고 이웃이 되려는 뜻이 있고, 스스로 마음을 가꾸는 길동무가 되는 책을 늘 곁에 두려는 뜻이 있어요. 그리고 책으로 다시 태어나 준 나무나 숲을 우리 보금자리에 두고 싶은 뜻이 있습니다. 2017.10.19.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