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책



  한자말 ‘차선책’을 좋아하지도 않으나, 이런 말을 안 쓰기도 합니다. 한자말이라서 안 쓴다기보다 ‘다음으로 좋은 길’은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거든요. 언제나 스스로 ‘가장 좋은 길’을 가려고 합니다. 해 보다가 안 되니 다른 길이라든지 다음 길을 찾는다고도 하는데, 저는 버금자리를 굳이 살피고 싶지 않습니다. 둘째로 좋거나 셋째로 좋은 길이 아닌, 언제나 첫째로 좋은 길을 가려고 해요. 그런데 둘레에서 으레 묻지요. 그대가 아무리 첫째로 좋은 길을 가려고 하더라도 바로 그 첫쨋길이 막히면 어찌하겠느냐고, 어쩔 수 없이 둘쨋길이나 셋쨋길을 가야 하지 않느냐고 말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둘쨋길로도 셋쨋길로도 가지 않습니다. 첫쨋길을 곧이곧대로 갑니다. 그리고 그 첫쨋길이 사라지거나 막혔으면 ‘그 다음으로 좋은 길’이 아닌, 제 앞에 놓인 길 가운데 ‘가장 좋을 만한 길’을 헤아립니다. ‘첫째가 없으니 다음으로 좋은’ 길이 아닌 ‘언제나 저 스스로 가장 좋을’ 길을 헤아리지요. 그리고 이런 길이 둘째도 셋째도 아니면, 그저 우거진 풀밭길을 새롭게 헤치려고 합니다. 새로 길을 내고 싶습니다. 제가 골라서 손에 쥐는 책은 늘 ‘제 마음에 가장 드는 책’이어야 합니다. 이럭저럭 좋다 싶은 책은 굳이 손에 쥘 마음이 없어요. 저는 시간 죽이기나 시간 때우기를 하려고 책을 읽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하루를 새롭게 맞이하는 기쁨을 누리려고 손에 책을 쥐고, 이 책으로 기꺼이 넉넉히 아름답게 삶을 배워서 사랑을 알고 싶습니다. ‘버금책’이 아닌 ‘으뜸책’을 읽습니다. 2018.6.15.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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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에서 시집을 읽다가



  금요일에 경기 수원에서 이야기꽃을 폅니다. 아침에 하는 이야기꽃이라 하루 먼저 서울로 와서 책마을 이웃님을 뵙고 새로운 책을 어떻게 엮으면 좋을는지 생각을 나누기로 합니다. 시외버스에서 내린 뒤 전철을 갈아탈 적에 시집을 꺼내어 읽습니다. 먼 마실길에 시집은 가벼우면서 좋은 벗님입니다. 그런데 이 시집 끝에 붙은 비평이 대단히 깁니다. 시집 한 권에 시는 얼마 안 싣고 비평만 아주 길게 붙여서 …… ‘아, 뭥미?’ 하는 말이 저절로 터져나옵니다. 시도 좀 따분해서 굳이 이런 시를 쓰며 문학이라고 해야 하는가 싶었는데, 자질구레하게 치켜세우는 비평이 너무 길어서, 빈말잔치라고 느낍니다. 2018.6.14.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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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값



  신 한 켤레 값은 얼마이면 알맞춤할까요? 우리는 어떤 신을 발에 꿰면서 신값을 얼마나 치를까요? 지난날에는 발에 신을 꿰고 다닌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으레 맨발로 살았습니다. 논일이나 밭일을 할 적이든, 마당이나 고샅을 거닐 적이든 굳이 짚신을 꿰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맨발이기에 홀가분하고, 맨발로 다니며 거리끼지 않습니다. 풀밭이나 흙바닥은 딱딱하지 않으니 맨발을 반기고, 우리 몸은 맨발로 온누리를 누비면서 튼튼했어요. 오늘날 서울은 맨발로 다니기에 매우 나쁩니다. 길바닥이 지저분하기도 하지만, 너무 매끌거리거나 딱딱합니다. 풀 한 포기나 흙 한 줌이 없는 곳이라면 맨발로 다닐 만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쓰레기도 많이 뒹굴어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시골도 맨발로 다니기에 참 나쁩니다. 어디이고 농약을 뿌려대고 비료를 퍼부으니, 이런 데에서는 맨발로 다니다가는 큰일이 납니다. 발이고 손이고 얼굴이고 꽁꽁 싸매야 합니다. 더 헤아리면 서울에서는 자동차 배기가스나 갖은 화학물질 때문에 살을 다 가리고 살아야겠지요. 이러면서 발에 어떤 신을 꿸까요? 몸을 가꾸거나 북돋우는 신을 꿸까요, 아니면 석유에서 뽑은 플라스틱 섬유로 공장에서 척척 찍은 신을 꿸까요? 이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값싸게 플라스틱 섬유 신을 꿴다고 하는 일이 참말로 값쌀까요? 더구나 요즈음 플라스틱 섬유 신은 값이 참말로 싸기나 할까요? 풀에서 얻은 실로 삼은 신이나 나무를 깎은 신이야말로 값싸지 않을가요? 플라스틱 섬유로 찍은 신이 다 낡거나 해지면 어디로 가나요? 썩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삶터를 망가뜨리는 쓰레기를 값비싸게 장만하는데 정작 값비싼 줄도 모르는 채 발을 괴롭히다가, 이 플라스틱 쓰레기덩이를 아무렇지 않게 버리는, 이러면서 돈도 줄줄이 흘리고 마는 삶은 아닌가요? 아이들한테는 어떤 신을 신기나요? 어른으로서 우리는 어떤 신삼기를 배우고 어떤 걸음을 걸어야 슬기로울까요? 2018.6.8.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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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려고 읽는다



  책은 배우려고 읽습니다. 그저 지식이나 정보를 머리에 담으려고 읽지 않습니다. 영화는 왜 볼까요? 따분한 한때를 죽이거나 때우고 싶어서 보나요? 뭐, 그래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나쁘지는 않되 즐겁거나 좋을 수는 없을 테지요. “나쁘지 않다 = 좋다”가 되지 않아요. “좋다 = 좋다”일 뿐입니다. 밥자리를 떠올려 봐요. “맛없지 않다 = 맛있다”가 될 수 있나요? 아닙니다. “맛있다 = 맛있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늘 쓰는 말부터 하나하나 다시 살피면서 생각해야 합니다. 왜 읽을까요? 오직 하나예요. 배우려고 읽습니다. 무엇을 배울까요? 삶을 배웁니다. 삶을 왜 어떻게 배울까요? 오늘 우리 나름대로 걸어갈 길을 즐겁게 짓고 싶어서 배우고, 즐겁게 짓는 손길을 갈고닦으려고 배웁니다. 한 번 읽고 덮을 만한 책이라면 처음부터 펴지 마요. 적어도 백벌쯤 읽을 만한 책을 가려서, 차근차근 되읽어요. 첫벌 읽기로 그치지 말고, 두벌 세벌 열벌 스무벌 꾸준히 읽어요. 별사탕을 빚듯이 두고두고 되새기면서 읽어요. 배울 수 있기에 즐거운 삶이고, 배울 수 있어서 반가운 책입니다. 2018.6.4.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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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이효리



  가네코 미스즈 님 시집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가 있습니다. 2006년에 한국말로 나온 이 시집을 애틋하게 읽었습니다. 다만 여러 해가 지나도록 아직 느낌글을 못 쓰는데, 불쑥 ‘이효리와 가네코 미스즈’가 나란히 이름이 올라서 놀랍니다. 이 시집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고, 기꺼이 알려주는 마음이 있네 싶어 반갑습니다. 그리고 2015년에 한국말로 더 나온 《별과 민들레》하고 《억새와 해님》이란 시집이 있는 줄 뒤늦게 알아차립니다.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를 처음 읽고서 이분 시가 더 한국말로 나오면 좋겠다고 여겼습니다만, 열 해 가까이 더 나오지 않았으니 잊고 살았어요. 부디 가네코 미스즈 님 시집 세 권이 고이 사랑받으면서 이 싯말에 깃든 따사로운 숨결이 두루 퍼지기를 바랍니다. 2018.5.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http://entertain.naver.com/read?oid=311&aid=0000849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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