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 세계사 속의 어린이
피터 N. 스턴스 지음, 김한종 옮김 / 삼천리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 삶읽기 323


아이들은 성노예도 소년병도 바라지 않았다
―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피터 N.스턴스 글/김한종 옮김
 삼천리, 2017.8.4. 19000원


농업이 가져온 가장 명백한 변화는 일을 할 때 어린이가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었다. 수공예품 생산이나 가내 제조 활동을 포함하는 대부분의 농업 사회는 수렵채집 사회보다 훨씬 더 명백히 어린이의 핵심적인 속성을 유용하다고 규정했다. (47쪽)


  사람들은 예부터 아이를 어떻게 다루었을까요? ‘다루다’라는 낱말이 걸립니다만, 어른은 아이를 때로는 ‘다룹’니다. 때로는 ‘보살피’고 때로는 ‘가르치’며 때로는 ‘이끌’어요. 때로는 ‘사랑’하고 때로는 ‘굴리’기도 할 텐데, 이러면서 아이하고 함께 살림을 ‘꾸리’거나 ‘지으’려는 몸짓이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서양의 가난한 가정에서는 종종 아이를 내다버렸다는 사실이다. 교회의 문 앞에 갖다놓는 것이 즐겨 쓰는 방식이었다. (131쪽)

근대적 모델은 대체로 아동기와 성인기 사이를 농업 사회에서 나타났던 것보다 더 크게 분리했다. 어린이는 더 이상 부모 곁에서 일하지 않았다. 산업화와 함께 부모는 일하러 집 밖에 나가야 했고, 어린이는 학교에 다녔다. (158쪽)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삼천리, 2017)를 읽습니다. 유럽을 바탕으로 이 지구라는 별에서 ‘어른’이 아이를 마주한 몸짓이나 눈길을 여러 자료를 살피면서 이야기를 엮습니다. 지나온 발자국이라면 책이나 벽그림에 나온 대목을 작은 실마리로 삼아서 돌아볼 만합니다. 따로 책이나 벽그림이 없더라도 입에서 입으로 이어온 노래하고 이야기에서 어른이 아이를 가르친 몸짓이나 살림을 엿볼 수 있어요.

  서양에서는 ‘아기 버리기’가 제법 흔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사랑스러운 아기라 하더라도 입에 풀을 바르기가 너무 벅찼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지난날 아기를 그토록 흔히 버리던 서양은 오늘날 온누리 여러 나라 아이들을 널리 받아들이곤 합니다. 이른바 ‘입양을 많이 하는 나라’가 지난날에는 ‘아기를 쉽게 흔히 버리던 나라’였어요.

  우리는 옛날에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 나라 이 겨레도 지난날에는 먹고살기 벅찰 적에 아기를 버릴 수 있었을까요? 아무래도 우리는 서양하고 달라서 ‘아기를 버릴 만한 예배당’이 그리 흔하지는 않았겠지요. 다만 이 나라에 절집이 생긴 뒤로는 절집 앞에 아기를 놓고 간 일이 더러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그리고 오늘날 한국은 아직도 유럽이나 미국에 아기를 많이 내보내는 손꼽히는 나라입니다.


1980년대에 이르면 점점 더 많은 미국 어린이들이 17살 이전에 방과후 파트타임이나 방학 기간에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 그러나 일과 다른 활동 때문에 학업과 집안일에서 멀어지고 청소년들이 피곤해서 공부에 열중하지 못함으로써 실제로 갈등이 자주 일어났다 … 학교가 끝난 다음 일을 하는 것은 가족이 아니라 주로 자기 자신, 예컨대 자동차 같은 소비 상품을 사거나, 미국에서는 특히 마련하기 힘들었던 대학 공부에 들어가는 비용에 보태려는 목적이었다. 또한 대체로 어른이 되어 가질 직업을 준비할 수 있게 해 주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낮은 수준의 서비스 업무에 종사했다. (248쪽)


  살림에 보태려고 일하는 어린이나 푸름이는 어디에나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살림에 보태는 ‘어린이·푸름이 노동’보다는 ‘자동차 소비’ 같은 데에 쓰려고 일하는 푸름이가 많았다고 합니닫. 오늘날 한국에서 푸름이 노동은 어떤 모습일까요? 편의점을 비롯한 여러 시설이나 가게에서 일하는 푸름이는 어떤 뜻으로 학교 밖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할까요? 그리고 학교 밖이나 집 밖에서 일하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무엇을 배울 만할까요? 앞으로 전문 자리를 얻을 만한 일을 해 보면서 일솜씨를 갈고닦을까요, 아니면 적은 일삯으로 오래도록 고단한 하루일까요?


20세기와 21세기의 어떤 단일 사건도 홀로코스트처럼 많은 어린이들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폭력의 패턴은 제2차 세계대전과 그에 이은 수십 년 동안 점점 더 심해진 것 같다. (276쪽)

1930년대와 1940년대 초 일본 군대는 조선의 어린 소녀들을 붙잡아 강제로 성노예로 삼는 폭력을 저질렀다. (278쪽)


  지구라는 테두리에서 어린이를 바라볼 적에 ‘성노예’하고 ‘소년병’이 불거진다고 합니다. 사회나 정치에 평화 아닌 전쟁을 끌어들이는 어른은 아이들이 평화롭고 사랑스레 자라는 길이 아니라, 두 성별에 따라 벼랑으로 떨어지는 길로 내몬다고 하지요.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라는 책에서 다루기도 합니다만, 왜 어른은 전쟁무기하고 군대를 단단히 붙잡으려고 할까요? 전쟁무기로 평화를 지키겠다는 말은 참으로 얼마나 올바르다고 할 만할까요?

  어른으로서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로서 이 대목을 자꾸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무기를 새로 뽑아내고 군대를 자꾸 키우는 이는 바로 어른입니다. 아이들은 소년병으로 끌려가기는 하지만, 아이들 스스로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는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자라서 군인이 되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첨단무기나 미사일이나 원자폭탄 따위를 뽑아내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를 거느릴 돈으로 민주와 평등을 이룰 사회 터전을 닦을 노릇이 아닐까 궁금합니다. 군대를 키울 돈으로 평화와 사랑과 복지를 나누는 정치 얼개를 바로세울 노릇이 아닌지 궁금합니다.


많은 소년병들은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몹시 잔혹해질 수 있었다. 그들은 총이 발휘하는 파괴력에 환호해서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것 이상의 다른 아무런 이유 없이 종종 사람을 죽이고 불구로 만들고 성폭행을 저질렀다. 이런 활동을 한 소년들은 강제로 전쟁에 참여했다고 하더라도 집에 돌아가기가 힘들었다. 집에서는 고분고분해야 했으며, 부모들이 없는 경우도 많았고 지역사회는 당연히 적대적이었다. (285쪽)


  몸뿐 아니라 마음이 다친 아이들이 보금자리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합니다. 몸뿐 아니라 마음이 다치도록 아이들을 내모는 어른들은 언제쯤 이 쳇바퀴를 멈출 만할까요. 남녘에서는 사드라는 미사일이, 북녘에서는 핵무기 실험이, 그야말로 남북녘 모두 전쟁무기 소용돌이에 휩쓸리기만 합니다.

  미사일 하나를 만들지 않으면 그만큼 평화하고 멀어질까요? 오히려 미사일 하나를 만들지 않을 적에 그만큼 평화하고 가까울 수 있지 않을까요? 군대를 더 늘리지 않으면 평화를 못 지킬까요? 도리어 군대를 더 늘리거나 군사비를 자꾸 늘리기 때문에 평화를 잊거나 잃지는 않을까요?

  2000년대로 접어드는 지구별 아이들 살림살이를 돌아보는 《인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인데, 앞으로 2050년쯤 이르면 이 나라를 비롯한 온누리 아이들은 어떤 살림을 누리고 어떤 사랑을 나눌 수 있는지 헤아려 봅니다. 앞으로 이 나라 아이들하고 온누리 아이들은 전쟁 아닌 평화로 나아갈 만한지, 민주와 평등이 어우러지는 정치로 거듭날 만한지, 이러면서 마을마다 서로 아끼는 따사로운 꿈을 이룰 만한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2017.9.30.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부름 가는 길 큰곰자리 32
이승호 지음, 김고은 그림 / 책읽는곰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읽기 삶읽기 321


심부름이 사라지면서 이야기도 사라지네
― 심부름 가는 길
 이승호 글
 김고은 그림
 책읽는곰 펴냄, 2017.7.21. 1만 원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일”이 ‘심부름’입니다. 심부름꾼은 남이 시키는 대로 일을 하는 사람이지요. 이와 달리 ‘일’은 남이 시킬 적에도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서 하곤 합니다. ‘일꾼’은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아이들은 때때로 스스로 생각해서 일을 하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옛날하고 퍽 다릅니다만, 옛날에는 아이들이 굳이 어른이 안 시켜도 스스로 낫으로 풀을 벤다든지 소한테 여물을 챙긴다든지, 닭우리에 짚을 깐다든지 했어요. 이때에는 아이들이 심부름 아닌 일을 하는 셈입니다. 씩씩하고 다부지게 작은 몫을 맡은 일꾼이에요.

“근디, 동순아! 너 아부지 심부름 한번 해 볼 텨? 오빠는 못 하겠다니께 대신 늬가 해야겄다.” 아버지는 동이한테 눈길도 주지 않고 동순이에게 말을 시킵니다. ‘얼러리? 동순이한테? 오빠가 버젓이 있는디? 저 아부지 도대체 왜 저런댜?’ (23쪽)

  어른으로서 하기에 벅차거나 틈이 안 날 적에 아이를 불러서 일을 맡깁니다. 바로 심부름입니다. 아이는 어른한테서 받는 심부름이 반가울 수 있습니다. 아이 스스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는 보람을 누릴 만하고, 어버이가 아이를 믿고서 어떤 일을 맡긴다는 즐거움을 누릴 만해요.

  이와 달리 심부름이 번거롭거나 귀찮을 수 있어요. 살짝 짜증이 나거나 성이 날 때도 있겠지요. 툭하면 불러서 이것저것 시킬 적에는 싫은 마음이 날 만합니다.

셋은 다시 걷습니다. 동이는 무릎을 다쳐 걷기가 힘듭니다. 절뚝거리며 걷습니다. “어이, 쩔뚝이!” 그걸 본 누렁이가 동이를 놀립니다. “개가 사람을 놀려?” “개는 사람 아녀?” “넌 개여.” “그런가? 하여간에 쩔뚝이 소리 들으니께 기분이 안 좋은 건 사실이지?” 동이는 할 말이 없습니다. 누렁이에게 미안해집니다. “앞으로는 안 놀리께.” 동이가 약속합니다. (68∼69쪽)

  이승호 님이 이녁 어릴 적에 겪은 일을 바탕으로 그려낸 어린이문학 《심부름 가는 길》(책읽는곰,2017)은 마지못해서 심부름을 하는 아이 마음을 보여줍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어떻게 살살 꼬여서 심부름을 맡기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심부름길에 나선 아이가 방아깨비하고 말을 섞는다든지, 냇물에서 ‘미꾸용’을 만난다든지, 같이 길을 나서던 누렁이(개)가 사람하고 말을 나눈다든지, 여러 일을 겪는다고 해요.

서랍 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거 아저씨가 돈 꺼내는 소리여. 빚 갚을라고.” 동순이가 실실 웃으며 아는 체합니다. 아저씨가 방에서 나옵니다. 과연 손에 흰 봉투가 하나 들려 있습니다. “자, 이거 아부지 갖다 드려라이. 이제 빚 갚응겨? 안에 편지도 있다이.” (95쪽)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어떤 심부름을 맡기고 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면, 참말 아이들은 사람 아닌 여러 이웃이나 동무하고 말을 섞곤 합니다. 개미하고도, 나무하고도, 나비하고도, 새하고도, 구름하고도, 더구나 바람하고도 말을 섞어요.

  어쩌면 누구나 모든 이웃하고 말을 섞을는지 몰라요. 오늘은 어른이라는 몸을 입으며 살아가는 분들도 이녁이 어릴 적에 어버이 심부름을 하려고 제법 먼 길을 혼자서 걸어서 오가는 동안 들풀이나 들꽃이나 풀벌레하고 말을 섞었을 수 있습니다. 구름이나 바람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크고작은 수많은 숲짐승하고도 말을 섞었을 테지요. 때로는 도깨비를 만나기도 했을 테고요.

  요새는 아이들이 심부름을 다니는 일이 드뭅니다. 게다가 요새는 전화 한 통이면 가게에서 손쉽게 실어다 날라 줍니다. 어른들도 아이한테 심부름을 맡겨서 글월을 주고받기볻다는 손전화를 눌러서 이야기를 나눌 테고요. 심부름이 차츰 사라지면서 이야기도 웃음도 재미도 차츰 스러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2017.9.7.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절로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안성진 지음 / 타래 / 2017년 8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배움책 45


배우기에 비로소 ‘아버지·어버이·어른’ 된다
― 저절로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안성진 글
 타래 펴냄, 2017.8.20. 14000원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그립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이불을 갭니다. 마당에 서서 하늘바라기를 하고 나무한테 눈짓을 합니다. 바람맛을 느끼고, 평상을 덮은 천을 걷으며, 오늘 새롭게 하거나 누릴 일을 헤아립니다. 물병을 햇볕이 드는 곳에 내놓고 아침을 차릴 생각을 합니다. 새벽에 미리 불린 쌀을 살피고, 밥상이나 개수대를 행주로 한 번 더 훔쳐 주고는, 빨랫거리를 이엠발효액하고 중성세제를 살짝 섞은 물에 담가 놓습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움직이는 어버이를 물끄러미 지켜보기도 하고, 함께 일손을 거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손낯을 씻고 나서 아이들 나름대로 어제 하다 못한 놀이를 잇기도 합니다. 어제 그리다가 만 그림을 더 그린다든지, 공책을 펼쳐서 글씨를 쓰거나 이야기를 짓기도 해요.


아직도 대부분의 직장인 아빠는 육아에 관심조차 갖기 어렵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있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경우가 많다 … (2015년 OECD 통계로) 한국인 아빠들이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고작 하루 6분에 불과하다. OECD 평균인 47분에 턱없이 못 미친다. 이를 한 달로 계산하면 3시간이고 1년이면 36시간에 불과하다. (16쪽)


  집안일을 도맡고 바깥일도 하는 몸이란 만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집안일이든 바깥일이든 누가 덜어 주면 좋겠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한 가지 일만 할 적에는 한쪽으로만 눈이며 마음이며 몸이 트이지 싶어요. 아주 잘 하거나 훌륭히 해내지 못하더라도, 한집을 이루는 사람들이 저마다 모든 일과 살림을 고루 맡거나 거들거나 나눌 때에 튼튼하면서 즐거이 하루를 누리지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사내라는 자리에 서며 집안일을 도맡다 보니, 바깥일만 하며 살 적에는 도무지 못 느끼거나 못 배울 여러 가지를 즐겁게 배워요. 밥살림 옷살림 집살림을 어떻게 건사할 적에 즐겁거나 아름다운가를 배웁니다. 이러한 살림을 짓는 손길을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가르치는 길을 배웁니다. 무엇이든 차근차근 느긋하게 건사할 적에 스스로 넉넉할 수 있다고 배웁니다.

  더 많이 갖출 까닭이 없이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갖출 줄 알아야 한다는 대목을 배워요. 아이한테 이것저것 더 많이 가르칠 노릇이 아니라, 아이가 어느 한 가지이든 사랑으로 배워서 활짝 웃는 춤짓으로 받아들일 때에 따사로운 바람이 부는구나 하고 배웁니다.


육아를 위해 배워야 할 것이 참 많다. 배우면 배울수록 더 많이 배워야 함을 느낀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64쪽)


  바깥일을 하는 아버지로 살아가되, 바깥일에만 온힘을 쏟지 말자는 생각으로 두 아이를 마주하려는 수수한 아버지 한 사람이 쓴 《저절로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니다》(타래,2017)를 읽습니다. 이 책을 쓴 아버지이자 사내이자 어른인 안성진 님은 수많은 ‘여느 한국 사내’처럼 아침저녁으로 회사를 오가면서 일을 합니다.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회사를 오가면서 일하여 버는 돈으로 집살림을 꾸리고요.

  그렇지만 안성진 님은 이름뿐인 아버지 자리에 있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이름으로만 아버지가 아닌 ‘아이들이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 만한 사람’으로 하루를 짓고 싶은 뜻이 있습니다. 회사원 몸이기에 비록 하루를 오롯이 아이들하고 지내기는 어렵습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라 하더라도 하루를 온통 아이들하고 어울리기도 만만하지 않아요. 지난 닷새에 걸쳐 회사를 다니며 고단한 몸을 쉬고픈 마음잉 가득하거든요.


아이들 말이나 행동에 문제가 있을 때 아이를 탓하기 전에 부모가 점검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부모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73쪽)

우리 아이들의 놀라운 잠재력을 오로지 공부하는 능력으로만 길들이고 있는 셈이다.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만 6세 미만의 아이에게 문자 교육조차 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83쪽)


  수수한 회사원인 안성진 님은 어떻게 아이들을 마주하려 할까요? 수수한 회사원이자 아버지이자 사내인 안성진 님은 어떻게 《저절로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책을 쓸 수 있을까요?

  이 책을 읽어 보면 안성진 님은 아직 ‘훌륭한 아버지’는 아닙니다. 글쓴이 스스로 밝힙니다. 그러나 안성진 님은 ‘아직 훌륭한 아버지가 아닌’ 터라 ‘앞으로 훌륭한 아버지 자리로 다가서려고 애쓴다’고 합니다.

  스스로 무엇을 아이들하고 잘 하는가를 살피고, 스스로 무엇을 아이들하고 못 하는가를 헤아린다고 해요. 차분하게 이 두 가지를 살펴서, 누구보다 안성진 님 스스로 아버지이자 어버이요 어른인 사람으로서 거듭나려고 합니다. 아이를 낳아서 돌보는 어버이가 되려면 ‘학교를 따로 안 다니더’라도 ‘늘 새롭게 배울’ 줄 알아야 한다고 느꼈다고 해요. 지식을 넘어서 삶을 가르쳐야 하고, 정보를 넘어서 살림을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대목을 배워야 하는구나 하고 느낀답니다.

  《저절로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니다》는 아이들한테 조금 더 상냥하면서 따스하고 넉넉하게 다가서는 아버지가 되려는 길에 무엇을 배우고 깨달았는가 하는 이야기를 적은 책이라고 할 만해요. 책 첫머리에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 한 가지를 옮기는데,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가 아이하고 마주하는 시간은 고작 하루에 6분이요, 한 해로 치면 36시간, 그러니까 한 해에 기껏 하루가 조금 넘을 뿐이라고 합니다.


현실에서 변화를 경험하기 어려운 이유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어떤 부모인지를 점검해 보지 않기 때문이다. 육아에 있어서는 부모가 가진 양육 태도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181쪽)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가 한 해에 고작 하루만 아이하고 마주한다는 통계가 무엇을 말할까요? 이는 통계이니까 조금 더 길게 아이랑 마주하는 아버지가 있을 테지만, 한 해에 하루조차도 아이하고 마주하지 못하는 아버지도 있다는 소리입니다. 한 달이 가더라도 아이하고 말 한 마디 섞지 못하거나 않는 아버지도 있을 테고요.

  우리는 저절로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저절로 어머니가 될 수 없기도 합니다. 아기를 낳아 젖을 물리거나 우유를 먹이기에 어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이를 먹여살리는 일만 하기에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배우기에 비로소 ‘아버지·어버이·어른’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제부터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려 하기에 비로소 아버지나 어버이나 어른이 될 만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육아는 아이에 대한 관심이며 사랑이다. 부모가 어떻게 대해야 그것을 잘 표현하는 것인지를 배우게 되면 사실 복잡하고 어려울 게 없다.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면 된다. (199쪽)

아이가 아이로 머무는 시간은 길지 않다. 이는 아빠로서 아이 곁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의미도 된다. (161쪽)


  어른이 좋아하는 대로 아이한테 밥을 차려서 먹일 수 없습니다. 어른이 입는 옷차림대로 아이한테 옷을 입힐 수 없습니다. 어른 걸음걸이를 아이가 따라갈 수 없습니다. 어른이 읽는 책을 아이한테 함부로 읽힐 수 없습니다. 영화에 등급제가 있듯이 책이나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어버이나 어른 스스로 등급을 살펴서 알맞게 가릴 수 있어야 합니다. 길거리에 넘치는 광고판이나 가게를 놓고서도 아이한테 아무것이나 보여주지 않을 수 있어야 할 테고요.

  아이를 학교에만 보낸대서 가르치기를 다 한다고 할 수 없어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교과서로만 배울 수 없어요. 아이들은 집이며 마을이며 학교이며 사회 어느 곳에서나 두루 배워요. 책으로도 영화로도 인터넷으로도 모두 배워요. 여느 살림살이를 지켜보면서도 배우고, 이웃하고 동무한테서도 배워요.

  배울 줄 알면서 새롭게 가르치는 아버지가 늘어날 적에 나라도 마을도 집안도 평화로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아이뿐 아니라 어버이로서 늘 모두 새롭게 배우려 하는 몸짓이 된다면, 참말로 기쁨하고 보람이 피어날 만하지 싶어요.

  이름이나 허울이나 껍데기로 그치는 아버지나 어버이나 어른이 아닌, 사랑스러운 아버지에 슬기로운 어버이에 아름다운 어른으로 거듭나는 길을 함께 배우면 좋겠어요. 저절로 되는 아버지가 아니라, 배워서 되는 아버지입니다. 배울 적에 바야흐로 사람입니다. 2017.8.30.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배움책 읽기/살림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국대전을 펼쳐라! - 조선의 뼈대를 세운 법전 조선 시대 깊이 알기
손주현 지음, 오승민 그림, 강문식 감수 / 책과함께어린이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이책 읽는 삶 176


뇌물죄를 볼기 100대로 다스린 경국대전
― 경국대전을 펼쳐라!
 손주현 글
 오승민 그림
 책과함께어린이 펴냄, 2017.8.7. 12000원


  조선 무렵 법 이야기를 다룬 《경국대전을 펼쳐라!》(책과함께어린이,2017)는 돋보이는 몇 가지를 잘 보여줍니다. 아무리 신분이나 계급이 있던 조선 무렵이라지만, 노비도 아기를 낳으면 말미를 얻도록 법에서 지켜 주었다고 해요. 아기 아버지가 되는 노비한테도 아기가 태어난 뒤 보름 동안 아기하고 곁님을 돌보도록 말미를 누리도록 법으로 지켜 주었다 하고요.

  오늘날 한국에서는 아기를 낳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얼마나 느긋하게 말미를 얻거나 누릴 수 있을까요? 아기를 낳는 어머니하고 아버지를 헤아리는 이야기는 법에 어떻게 나오고, 이러한 법을 일터에서는 얼마나 살필까요? 정규직 아닌 비정규직은 이른바 출산휴가를 얼마나 누릴 만할까요?


“옛날부터 법은 있었어. 특히나 조선 바로 전의 고려에도 엄격하게 정해진 법전이 있었다고 해. 그런데 법이 있다고는 해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늘 해 오던 관습이나 왕의 명령에 따르기 일쑤였어.” (17쪽)

치국이와 해박이는 팔을 높이 들어 서로의 손바닥을 부딪쳤다. “이거야! 아무리 노비라지만 아기를 낳기 전후로 80일 정도는 쉴 수 있어. 남편도 15일은 쉴 수 있고.” (35쪽)


  경국대전을 살펴보면, 조선 무렵에 돈을 써서 꿍꿍이셈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을 볼기 100대를 맞도록 하고, 3000리가 넘는 외딴 곳으로 유배를 보냈다고 합니다. 유배야 유배라고 하더라도, 볼기 100대를 때렸다는 대목이 돋보입니다. 삶자리에서 쫓겨나듯이 머나먼 곳으로 떠나야 하는 일이 고달프기도 하겠지만, 볼기 100대를 때린다니, 참으로 훌륭하지 싶어요.

  사람이 맞아 보아야 번쩍 눈을 뜨면서 잘못을 뉘우칠 만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분이나 계급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뇌물죄 볼기 100대’라고 한다면, 스스로 높다는 신분이나 계급에 선 이들이 섣불리 뒷돈을 주고받지는 못하리라 느껴요.

  그냥 감옥에 넣기보다는, 또 돈을 써서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제도보다는, 이처럼 사람들이 어떤 몹쓸 짓을 했는가를 볼기질 100대로 다스리는 벌을 한 번 받는다면, 아무래도 그런 바보짓을 할 엄두를 못 내겠지요.


“그나저나 높은 분을 찾아가 뇌물을 주다 걸리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장형 100대에 처하고 최대 3000리 밖으로 유배를 갈 수 있다고 했잖아. 이 정도면 거의 사형 아래 단계라고 할 수 있지.” (65∼66쪽)

“맞아. 특히 수령은 임기를 채우고 다시 옮겨 가지만 아전들은 평생 한 관아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백성들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 그러다 보니 조정과 백성들 둘 다 속이는 일도 가능해.” (93쪽)


  《경국대전을 펼쳐라!》는 모두 열한 갈래로 나누어 경국대전에 깃든 법 이야기를 돌아봅니다. 비록 조선 무렵 법이기에 오늘날 법하고는 다르다 하지만, 옛 살림을 돌아보면서 배울 곳을 배우자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가난해서 시집을 가지 못하는 아가씨한테 나라에서 돈을 보태 주어 시집을 갈 살림을 이루도록 했다고 합니다. 가을걷이가 적으면 세금을 덜 내거나 안 내도록 했다고 하지요. 조선 무렵에도 재판에서 3심 제도가 있었다고 해요. 벼슬을 얻는 시험에서 시골사람이 따돌림을 받지 않도록 헤아리기도 했답니다.


“이에 기록상 명명백백히 이 생원의 주장이 옳은 바, 노파 개덕은 양인이라 할 수밖에 없노라.” 어쩔 수 없었다. 치국이는 개덕 노파가 우는 소리에 따라 울었다. “거봐라. 이제 개덕이 자식들은 다 내 재산이다. 내가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하고 내가 맘대로 팔아 치워도 아무 말 못해. 그게 법이야!” (122쪽)


  법이 없어도 착하게 사는 사람이 있어요. 법이 있으나 나쁘게 사는 사람이 있고요. 법을 몰라도 슬기로우면서 아름답게 사는 사람이 있어요. 법을 아는데 그악스럽거나 어처구니없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꼭 법이 있어야 사회가 올바로 선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법이 없더라도 사람들 스스로 곧고 착하며 고운 마음을 가꿀 줄 안다면 사회가 올바로 설 만하지 싶습니다. 그리고 법을 아름답게 세워서 즐겁게 펼칠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우리 삶터는 매우 아름답게 거듭나리라 생각해요.

  오늘 우리는 조선 무렵 경국대전을 돌아보면서 우리 사회 법을 되짚는다면, 앞으로 오백 해 뒤에는 ‘오늘 우리 사회 법’으로 우리 먼 뒷사람들이 ‘그때에 참 아름다운 법이 있었다지?’ 하는 이야기가 흐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7.8.28.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화유산을 지키는 사람들 - 오늘 만나는 우리 역사 생각을 더하면 12
이정화 지음, 송진욱 그림, 심준용 감수 / 책속물고기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이책 읽는 삶 174


손수 짓는 살림이 바로 문화유산
― 문화유산을 지키는 사람들
 이정화 글
 송진욱 그림
 책속물고기 펴냄, 2017.6.5. 11000원


  다음 사람들한테 물려줄 만한 살림살이를 놓고 ‘문화유산’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다음 사람들이란 바로 어린이입니다. 이 땅에 새롭게 태어나서 자라는 어린이가 앞으로 어른이 될 무렵 넉넉히 누리거나 즐겁게 맞이할 만하도록 고이 간수하자고 하는 살림살이가 바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서울에 있는 남대문이나 수원에 있는 수원성이 문화유산입니다. 훈민정음이나 경주 첨성대나 팔만재장경이 문화유산입니다. 그리고 기와로 얹은 오래된 집이나 짚으로 지붕을 이은 시골집도 문화유산이지요. 오래된 도자기를 비롯해서 짚으로 엮은 숱한 세간도 문화유산입니다.


은성이 아빠는 유물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고고학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성이는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출장을 자주 가는 아빠가 집에 없는 날이 더 많은 게 그저 불만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은성이는 고고학자가 되어 아빠와 유물 발굴 현장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8쪽)


  어린이책 《문화유산을 지키는 사람들》(책속물고기,2017)은 우리 곁에서 크고작은 문화유산을 가꾸거나 지키거나 돌보거나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언뜻 보자면 요즘 사회에서 그리 대수로워 보이지 않는 문화유산일 수 있다고 할 텐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아요. 슬기롭게 가꾼 살림살이가 있기에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살림살이를 지을 수 있어요. 오랜 살림살이가 있기에 이를 발판으로 삼아서 새로운 꿈을 키우는 길을 갑니다.

  예부터 종이를 얻거나 나무를 돌본 슬기를 오랜 ‘나무 살림살이’에 비추어서 오늘날 새로운 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부터 흙이나 돌이나 나무나 짚만으로 튼튼하며 멋진 집을 지은 슬기를 비추어 보면서 오늘날 정갈하며 아름다운 집살림을 이루는 길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언제 찾아가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문화유산들은 그냥 지켜진 것이 아니에요. 오래도록 물려받은 문화유산을 그대로 다시 물려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42쪽)

“평생 모은 문화유산을 그냥 준다고요? 공짜로요? 그럼 할머니가 손해 보는 거 아니에요?” 또다시 시작된 태민이의 질문 공세에 할머니가 웃었다. “녀석, 숨도 안 찬 모양이네. 그동안 그림이며 도자기를 수집하느라 돈을 많이 썼으니 손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박물관에 기증하면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 연구에도 보탬이 되니 더 좋은 일이지.” (68쪽)


  한쪽에서는 오랜 문화유산을 건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오랜 문화유산에 깃든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말로 들려줍니다. 한쪽에서는 오랜 문화유산을 돌본다면, 다른 한쪽에서는 앞으로 새롭게 문화유산이 될 새로운 살림을 짓습니다.

  왜 그렇잖아요, 공장에서 수천만 개씩 똑같이 찍어낸 물건을 가리켜 문화유산이라 하지 않아요. 그러나 사람들이 저마다 품을 들이고 오랫동안 아끼면서 손수 지어낸 살림은 문화유산이라고 합니다.

  투박한 수저 한 벌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손수 나무를 하고 깎고 다듬어서 지었다면, 얼마든지 문화유산이 되어요. 부채도 연도 베개도 문화유산이 될 수 있어요. 우리가 손수 지어서 즐겁게 누리는 살림을 적에는 ‘손때가 타는 문화유산’이 됩니다. 배냇저고리가 문화유산이 되지요. 색동저고리가 문화유산이 되어요. 누비옷이나 누비이불이 문화유산이 됩니다. 으리으리하게 올려세우지 않더라도, 우리가 날마다 만지고 쓰다듬는 자그마한 살림살이는 싱그러이 살아서 숨쉬는 따사로운 문화유산이 되지요.


“난 오늘 소원 하나를 이루는 거란 말이야.” “소원이 겨우 궁궐 지킴이였다고? 박물관장이 아니고?” “진짜 내 소원은 ‘문화유산 지킴이’로 살아가는 거야. 난 유물이나 유적이 정말 좋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보고 있으면 그냥 막 가슴이 설레거든.” (84쪽)


  어린이책 《문화유산을 지키는 사람들》은 어린이한테 돋보이거나 놀랍다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잔잔하면서 차분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유리 진열장에 꽁꽁 가두어 놓는 문화유산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늘 고이 흐르는 문화유산을 들려주려고 해요. 즐겁게 아끼고 기쁘게 나누던 작은 살림에서 피어난 문화유산을 들려주려고 합니다.

  달포에 걸쳐 장갑이나 모자나 조끼를 떠 봐요. 온누리에 오직 하나만 있는 멋진 살림을 지어 봐요. 돈 몇 푼을 내면 곧장 사들일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닌, 어버이로서 넉넉히 사랑을 들여서 여러 날에 걸쳐 손수 깎은 놀잇감을 아이들한테 선물해 봐요.

  생각을 새롭게 북돋우는 발판이 되기에 문화유산입니다. 삶을 새롭게 사랑하는 길을 열기에 문화유산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이웃하고 나누도록 이끌기에 문화유산입니다. 2017.8.2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