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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을 지키는 사람들 - 오늘 만나는 우리 역사 ㅣ 생각을 더하면 12
이정화 지음, 송진욱 그림, 심준용 감수 / 책속물고기 / 2017년 6월
평점 :
어린이책 읽는 삶 174
손수 짓는 살림이 바로 문화유산
― 문화유산을 지키는 사람들
이정화 글
송진욱 그림
책속물고기 펴냄, 2017.6.5. 11000원
다음 사람들한테 물려줄 만한 살림살이를 놓고 ‘문화유산’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다음 사람들이란 바로 어린이입니다. 이 땅에 새롭게 태어나서 자라는 어린이가 앞으로 어른이 될 무렵 넉넉히 누리거나 즐겁게 맞이할 만하도록 고이 간수하자고 하는 살림살이가 바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서울에 있는 남대문이나 수원에 있는 수원성이 문화유산입니다. 훈민정음이나 경주 첨성대나 팔만재장경이 문화유산입니다. 그리고 기와로 얹은 오래된 집이나 짚으로 지붕을 이은 시골집도 문화유산이지요. 오래된 도자기를 비롯해서 짚으로 엮은 숱한 세간도 문화유산입니다.
은성이 아빠는 유물을 발굴하고 연구하는 고고학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성이는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출장을 자주 가는 아빠가 집에 없는 날이 더 많은 게 그저 불만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은성이는 고고학자가 되어 아빠와 유물 발굴 현장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8쪽)
어린이책 《문화유산을 지키는 사람들》(책속물고기,2017)은 우리 곁에서 크고작은 문화유산을 가꾸거나 지키거나 돌보거나 사랑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언뜻 보자면 요즘 사회에서 그리 대수로워 보이지 않는 문화유산일 수 있다고 할 텐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아요. 슬기롭게 가꾼 살림살이가 있기에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살림살이를 지을 수 있어요. 오랜 살림살이가 있기에 이를 발판으로 삼아서 새로운 꿈을 키우는 길을 갑니다.
예부터 종이를 얻거나 나무를 돌본 슬기를 오랜 ‘나무 살림살이’에 비추어서 오늘날 새로운 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부터 흙이나 돌이나 나무나 짚만으로 튼튼하며 멋진 집을 지은 슬기를 비추어 보면서 오늘날 정갈하며 아름다운 집살림을 이루는 길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언제 찾아가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문화유산들은 그냥 지켜진 것이 아니에요. 오래도록 물려받은 문화유산을 그대로 다시 물려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42쪽)
“평생 모은 문화유산을 그냥 준다고요? 공짜로요? 그럼 할머니가 손해 보는 거 아니에요?” 또다시 시작된 태민이의 질문 공세에 할머니가 웃었다. “녀석, 숨도 안 찬 모양이네. 그동안 그림이며 도자기를 수집하느라 돈을 많이 썼으니 손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박물관에 기증하면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 연구에도 보탬이 되니 더 좋은 일이지.” (68쪽)
한쪽에서는 오랜 문화유산을 건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오랜 문화유산에 깃든 이야기를 글로 쓰거나 말로 들려줍니다. 한쪽에서는 오랜 문화유산을 돌본다면, 다른 한쪽에서는 앞으로 새롭게 문화유산이 될 새로운 살림을 짓습니다.
왜 그렇잖아요, 공장에서 수천만 개씩 똑같이 찍어낸 물건을 가리켜 문화유산이라 하지 않아요. 그러나 사람들이 저마다 품을 들이고 오랫동안 아끼면서 손수 지어낸 살림은 문화유산이라고 합니다.
투박한 수저 한 벌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손수 나무를 하고 깎고 다듬어서 지었다면, 얼마든지 문화유산이 되어요. 부채도 연도 베개도 문화유산이 될 수 있어요. 우리가 손수 지어서 즐겁게 누리는 살림을 적에는 ‘손때가 타는 문화유산’이 됩니다. 배냇저고리가 문화유산이 되지요. 색동저고리가 문화유산이 되어요. 누비옷이나 누비이불이 문화유산이 됩니다. 으리으리하게 올려세우지 않더라도, 우리가 날마다 만지고 쓰다듬는 자그마한 살림살이는 싱그러이 살아서 숨쉬는 따사로운 문화유산이 되지요.
“난 오늘 소원 하나를 이루는 거란 말이야.” “소원이 겨우 궁궐 지킴이였다고? 박물관장이 아니고?” “진짜 내 소원은 ‘문화유산 지킴이’로 살아가는 거야. 난 유물이나 유적이 정말 좋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보고 있으면 그냥 막 가슴이 설레거든.” (84쪽)
어린이책 《문화유산을 지키는 사람들》은 어린이한테 돋보이거나 놀랍다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잔잔하면서 차분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유리 진열장에 꽁꽁 가두어 놓는 문화유산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늘 고이 흐르는 문화유산을 들려주려고 해요. 즐겁게 아끼고 기쁘게 나누던 작은 살림에서 피어난 문화유산을 들려주려고 합니다.
달포에 걸쳐 장갑이나 모자나 조끼를 떠 봐요. 온누리에 오직 하나만 있는 멋진 살림을 지어 봐요. 돈 몇 푼을 내면 곧장 사들일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닌, 어버이로서 넉넉히 사랑을 들여서 여러 날에 걸쳐 손수 깎은 놀잇감을 아이들한테 선물해 봐요.
생각을 새롭게 북돋우는 발판이 되기에 문화유산입니다. 삶을 새롭게 사랑하는 길을 열기에 문화유산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이웃하고 나누도록 이끌기에 문화유산입니다. 2017.8.2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책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