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다 3 - 완결
강경옥 지음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13

 


이녁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 두 사람이다 3
 강경옥 글·그림
 해든아침 펴냄, 2007.7.20.

 


  두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노래하는 사람 하나 있고, 아름다움도 꿈도 노래하지 못하는 사람 하나 있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노래하는 사람은 이웃한테 아름다운 꿈을 가만히 퍼뜨립니다. 아름다움도 꿈도 노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웃한테 아무것도 들려주지 못합니다.


  두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노래하면서 즐거운 사람 하나 있고, 아름다움도 꿈도 노래하지 못하면서 괴롭거나 외롭거나 슬픈 사람 하나 있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노래하는 사람은 언제나 웃음꽃을 피웁니다. 아름다움도 꿈도 노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런 꽃을 피우지 못합니다.


  두 사람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노래하며 웃음꽃을 피워 사랑을 깨우는 사람 하나 있고, 아름다움도 꿈도 노래하지 못하면서 꽃은커녕 어떠한 사랑도 속삭이지 못하는 사람 하나 있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우리 가슴속에 있기에, 아름다운 꿈을 노래할 적마다 새로운 사랑이 샘솟습니다. 사랑은 늘 우리 마음속에 있으니, 스스로 아름다움도 꿈도 노래하지 않으면 어떠한 사랑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 ‘알 수 없어. 모르겠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거지? 누구에게 물어 볼 수조차 없어! 생각해, 생각해야 해.’ (18쪽)
- “재석이 너, 나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나를 미워하는 거 아니니?” “무, 무슨 소리야? 그게.” “그러지 않고서야 오래 전부터 날 봐 왔다는 네가 날 좋아한다고 고백한 이 시점은, 혜리 일 세희 일 모두 포함해서 알게 되어서 오히려 상처뿐인 얘기들이잖아.” (28∼29쪽)

 


  두 사람입니다. 나는 이 사람이 될 수 있고, 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될 수 있고,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때리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어른이 될 수 있고, 어린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오롯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사람으로 살아가며 오직 한 가지 ‘사랑’을 노래할 수 있어요.


  어느 길로 가든 스스로 고릅니다. 어느 일을 하든 스스로 찾습니다. 내가 마음으로 바라기에 어느 한길을 갑니다. 내가 마음으로 부르기에 어느 일이 나한테 찾아옵니다.


  때리려는 사람은 왜 때리려 할까요. 맞은 사람이 어떤 마음인 줄 알고서 때릴까요. 맞은 사람이 나한테 달려들어 저도 때리려 하는 줄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때리기만 할까요.


  꽃은 누구한테나 꽃입니다. 꽃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다만, 마음이 어두운 사람 앞에서는 꽃이 흐드러지지 못합니다. 꽃은 햇볕과 바람과 물과 흙만 먹고 살아가지 않아요. 꽃도 사랑을 받아먹으며 살아갑니다. 사랑을 못 받으면 가까스로 몇 송이 피어날는지 모르나, 제대로 빛나지 못합니다.


- ‘불행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었어. 나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겨 주길 바랐어. 그 말대로 다가 아니었어. 미웠어도, 정말로 사랑했어. 그랬는데, 그랫는데, 나는 끔찍한 사랑의 기억일 뿐이야. 그게 슬퍼. 그게 슬퍼. 그래서 떠나지도 못해.’ (55쪽)
- “약해지지 마, 지나야. 넌 강한 아이야. 처음 볼 때부터 넌 순수하고 강한 애라고 느꼈었어. 명현이가 얘기하던 저주의 대상이 네가 된다 해도 너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까지 온 것도 대단한 거야. 그런, 너의 강함이 부러울 정도로, 나는 영능력이 있어도, 지난 사랑의 망령조차 쫓지 못하는걸. 도망만 칠 뿐.” (60쪽)

 


  저마다 아름답게 꾸리는 삶입니다. 저마다 스스로 살아가고픈 대로 꾸리는 하루입니다. 더 아름다운 모습은 없고 덜 아름다운 모습도 없습니다. 영화 한 편이 백만 관객이 들어야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천만 관객이 보아야 더 아름답지 않습니다. 구백만 관객이 보아도 아름답고, 구십만 관객이 보아도 아름답습니다. 구만 관객이나 구천 관객이 보아도 아름답지요.


  어느 책 하나를 백만 사람이 사서 읽으니 아름다운 책이지 않아요. 십만 사람이 사서 읽거나 만 사람, 때로는 천 사람이나 백 사람이 사서 읽어도 아름다운 책입니다. 아름다운 책은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왜냐하면, 들에 핀 꽃을 알아보는 사람이 다문 한 사람이라서 들꽃이 안 아름답지 않아요. 사람들 많이 오가는 서울 한복판에 심은 꽃을 백만 사람이 들여다본대서 이 꽃이 더 아름답지 않아요.


  사랑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없습니다. 사랑을 꺾는 힘은 없습니다. 드센 힘을 물리치는 사랑이 있고, 모진 힘을 견디거나 흘려보내는 사랑이 있습니다만, 어떤 힘도 어떤 사랑을 다치게 하지 못합니다.


- ‘한가한 듯한 일요일 오후, 향긋한 커피향. 세상에 아무 일도 일어난 것 같지 않은 오후. 절대 그런 일은 안 벌어질 것 같은.’ (128쪽)


  강경옥 님 만화책 《두 사람이다》(해든아침,2007) 셋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삶을 일구는가를 돌아봅니다. 나는 나대로 어떤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는가를 헤아립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속극 대본을 쓰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만화를 그리는 작가로 살아가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방송작가로 일하면 돈을 잘 벌 만할까요. 오늘날 웬만한 집마다 텔레비전 한 대쯤은 있을 뿐 아니라, 이제 손전화로 얼마든지 방송을 들여다보니, 방송작가로 일하면 돈을 잘 벌고 이름값도 높일 만할까요. 예나 이제나 한국에서는 만화가를 낮추어 보거나 얕잡아 보는 흐름이 사라지지 않았으니, 한국에서 만화를 그리는 사람은 밥벌이가 어려울까요. 만화가로 살아가는 나날은 고단하거나 힘들기만 할까요.

 


- “꿈속에서 뱀이 외치던 소리가 있었어. 왜 나냐고, 왜 나냐고. 왜 승천을 하루 앞둔 자기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냐는 거란 생각이 들어. 나도 그런 생각 했어. 왜 나냐고, 왜 내가 저주의 대상이냐고. 하지만 어째서 자기는 예외일 수 있는 걸까? 이 세상 불행에서 언제까지나 자신만이 예외일 수는 없는 거 아닐까. 하지만 결국 저주를 만든 것이 인간의 의지였다면, 행복 역시 인간의 의지라고 생각해. 난 행복해지겠다고 믿고 이겨낼 거야. 난 유진 오빠도 행복하기를 바라니까.” (198∼199쪽)


  마음속으로 아름다운 꿈을 그리는 사람은 언제나 아름답게 삶을 가꿉니다. 마음속으로 고운 사랑을 그리는 사람은 언제나 곱게 사랑을 빛냅니다. 마음속으로 착한 이야기를 그리는 사람은 언제나 착하게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아무것도 없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마음속에 궂은 생각이 또아리를 틀면, 이 궂은 생각대로 삶이 바뀌어요. 마음속에 못난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들면, 이 못난 생각대로 삶이 흔들립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어떤 사람이 될 때에 아름다울까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사랑스러울까요?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빙그레 웃음짓는가요?


  내 곁에 나를 사랑할 두 사람을 둘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애틋하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 둘레에 나를 아끼고 좋아할 두 사람을 둘 수 있습니다. 나 스스로 내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를 따사롭게 아끼고 좋아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4347.2.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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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핑거 1
마츠모토 코유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12

 


사랑을 가꾸는 ‘푸른 손가락’
― 그린 핑거 1
 마츠모토 코유메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8.5.25.

 


  어제 아침 전남 고흥에 아주 드문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한 해에 한 차례 올까 말까 한 손님입니다. 손님은 하늘에서 하얀 빛으로 찾아옵니다. 나풀나풀 춤을 추면서 찾아옵니다. 살랑살랑 바람을 타고는 가벼운 몸짓으로 빙그레 웃으면서 찾아옵니다.


  손님은 우리 집 지붕에 살포시 내려앉더니 마당을 빙 돌다가 후박나무와 동백나무 곁에서 노래합니다. 그러고는 뒤꼍과 이웃집으로 골고루 찾아가고, 우리 마을과 이웃 여러 마을에도 두루 나들이를 합니다.


  모처럼 찾아온 손님은 낮 열두 시를 지날 무렵부터 천천히 사라집니다.


-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펼쳐지는 광경.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고, 남동생이 까불고, 꽃은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초록과 빛에 둘러싸인, 우리 가족의 행복의 정원.’ (6쪽)
- “내일이면 필 테니 물 좀 달라고 하고 있는걸.” “꽃은 말 같은 거 하지 않아.” “엄마는 늘 지켜보기 때문에 들리는 거란다.” (14쪽)
- “흐음, 그럼 물과 비료를 주면 꽃은 자라는 거네. 간단하네.” “아니, 아니. 사실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응? 그게 뭔데” “후후후, 그건 말이지, 코바나, 사랑이야. 정원으로 나와서 바라봐 주고 사랑해 주면 식물의 목소리가 들린단다.” (16쪽)

 


  새봄을 기다리며 이제 막 돋은 풀이 모두 눈에 덮였습니다. 춥겠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눈은 이내 녹아 땅으로 촉촉히 스며듭니다. 더 기운을 내라고, 씩씩하게 힘을 내라면서, 겨울눈이 소복소복 쌓였나 하고 돌아봅니다. 아무리 겨울에도 포근한 고흥이라지만, 눈바람이 한 차례쯤 불면서 숲과 들을 간질여야 겨울이 지나가는 줄 알겠지요. 풀과 나무마다 눈이불을 한 번쯤 뒤집어써야, 아하 겨울이 지나가지, 하고 알아차리겠지요.


  눈이 그득그득 내렸다가 감쪽같이 녹은 들빛은 한결 보드랍습니다. 지난가을부터 시든 풀은 누르스름한 물이 쪼옥 빠져 희멀건 빛이 되고, 희멀겋게 마른 풀포기 사이로 앙증맞게 조그마한 싹이 조물조물 오릅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봄빛이지만, 해마다 새롭습니다. 해마다 느끼는 봄빛인데, 해마다 새삼스럽습니다. 들과 숲을 가만히 살펴보면, 사람이 애써 베거나 뽑지 않아도 누르스름하거나 희멀건 풀포기는 모두 사라집니다. 새로 오르는 풀줄기는 말라죽은 풀포기를 털어내어 흙으로 돌아가도록 합니다. 말라죽은 풀포기는 봄이 끝나고 여름이 열릴 무렵 참말 몽땅 사라져요.


  흙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흙땅에서는 어떤 일이 생기는가요. 흙땅에서는 어떤 삶과 죽음이 갈마드나요.


- “내가 여기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건 부들레야 때문일지 몰라. 여름 내내 끊임없이 꽃을 피워서, 그 주변에 나비가 날아다녔거든.” (43쪽)
- “아빠와 엄마가 만들었던 정원이 아니라, 내 행복의 정원을 만들 거야! 그게 아빠와 엄마의 바람이란 걸 알았어.” (56쪽)

 


  봄은 늘 풀빛으로 찾아옵니다. 봄빛은 풀빛입니다. 봄이 무르익으면서 풀빛 사이사이 꽃빛이 맑고, 꽃빛이 한창 흐드러지노라면 어느새 여름 문턱입니다. 여름은 풀이 우거지는 빛이라고들 여기지만, 여름이야말로 꽃빛이 해사한 철입니다.


  그러니까, 봄은 풀이요 여름은 꽃이며 가을은 열매입니다. 겨울은 무엇일까요? 겨울은 눈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있고, 잎과 꽃과 열매를 모두 떨군 가지마다 새로 맺는 눈이 있습니다. 겨우내 모든 나무들은 새눈을 틔우려고 힘씁니다. 새눈에 온힘을 쏟습니다. 지난 한 해 돌이키면서 새로운 한 해에 씩씩하게 돋을 눈에 모든 기운을 바칩니다.


- ‘나무, 풀, 꽃, 산, 숲, 새. 가끔 두더지, 가끔 산토끼, 가끔 너구리. 나는 이곳에서 매일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있고, 그런 속에서 일을 할 수 있다니.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73쪽)
-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버리는 것. 뿌리가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이 가든 시클라멘에게 리셋의 기회조차 주지 않다니. 난 그럴 수 없어. 걱정 마. 너희는 틀림없이 다시 살아날 거야. 내가 되살리고 말 거야!’ (79∼80쪽)


  마츠모토 코유메 님 만화책 《그린 핑거》(학산문화사,2008)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푸른 손가락’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남다른 주인공만 푸른 손가락일까요? 우리 모두 푸른 손가락인데, 우리 모두 스스로 손빛을 잊거나 잃지 않았을까요?


  어느 한 사람만 빼어난 푸른 손가락일 수 없습니다. 몇몇 사람만 푸른 손가락이라면, 몇몇 사람만 시골에서 흙을 일구어야 하겠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고작 쉰 해 앞서만 해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시골내기요 시골 흙일꾼이었습니다. 기껏 백 해 앞서를 살피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골내기이면서 시골 흙일꾼이었어요.


  인류 문명이니 문화이니 하고 말하기 앞서,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마련하면서 살았습니다. 사람이라면, 흙을 알고 풀을 아끼며 나무를 사랑하는 삶을 일구었습니다.

 


- “너도 마찬가지야. 자신의 힘으로 강하고 아름답게 성장하는 거야.” (17쪽)
- ‘그런 건, 식물들에겐 아무래도 좋을 일. 왜냐하면 식물은, 사람을 고르지 않으니까.’ (84쪽)
- “참 아름다워. 새싹이란 건.” (168쪽)


  ‘가꾸다’라는 낱말은 흙을 만지면서 풀과 꽃과 나무가 잘 자라도록 돌보는 일을 가리킵니다. 요새는 ‘옷이나 몸매나 얼굴을 가꾼다’고 하는 자리에 이 낱말을 더 자주 쓰는 듯하지만, ‘가꾸다’는 처음부터 “흙을 가꾸다”입니다. 흙을 가꾸고, 집살림을 가꿉니다. 마음을 가꿉니다. 사랑을 가꿉니다.


  흙에서 풀이 돋고 꽃이 피며 나무가 자라도록 가꾸는 손길이 바로, 살림과 마음과 사랑을 가꾸는 손빛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들 누구나 푸른 손가락입니다. 우리들 누구나 흙을 살리고 집살림을 가꿀 뿐 아니라 마음과 사랑을 가꿀 줄 아는 고운 빛입니다.


  사랑을 가꾸는 푸른 손가락인 줄 느끼기를 바랍니다. 몇몇 사람만 남달라서 사랑을 가꾸지 않습니다. 돈이 있거나 이름이 있거나 힘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지 않습니다. 돈과 이름과 힘은 아무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 가꿉니다. 꿈은 오직 꿈으로 가꾸어요.


  즐겁게 웃고 노래하는 푸른 손가락 되기를 빌어요. 새봄을 앞두고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서 푸른 노래와 푸른 이야기를 나누는 푸른 숨결로 꿈꿀 수 있기를 빌어요. 4347.2.8.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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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딸기 흰딸기
유니타 유미 글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33

 


서로를 왜 좋아하나요
― 붉은딸기 흰딸기
 우니타 유미 글·그림
 최미애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9.11.25

 


  풀잎을 따서 먹습니다. 풀잎에서는 풀내음이 나서 싱그럽습니다. 때때로 꽃잎을 따서 먹습니다. 꽃잎에서는 꽃내음이 나서 즐겁습니다. 두릅은 싹을 칼로 베어서 먹습니다. 찔레는 싹을 두 손으로 똑 꺾어서 먹습니다.


  풀을 먹는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물을 먹는다고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물’이란 ‘풀’인 줄 모르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무엇보다, 무치거나 볶거나 삶거나 데치거나 해야 나물인 줄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이리저리 손질해서 먹기도 하는 풀이지만, 생긴 모습 그대로 흙이 묻었어도 흙까지 함께 먹는 풀입니다.


  왜냐하면, 풀포기는 흙에 뿌리를 내려서 흙내음으로 자라나거든요. 풀을 먹든 흙을 함께 먹든 언제나 풀을 먹는 셈이기도 합니다.


- ‘서로 이름은 반대인 쪽이 어울릴 것 같지만, 아기 때는 완전 둘이 똑같았다. 훗날 이렇게 될 줄은 엄마도 몰랐을 것이다.’ (9쪽)
- “그러는 란도 말이지, 내가 좋다는 남자는 꼭 느끼하다고 그러잖아. 그건 너도 얼굴을 본다는 얘기 아니겠어?” “궤변론자!” “그럼 란은 어떤 사람이 좋은데?” “얘는 그런 얘기 잘 안 하더라구.” “그, 그냥 뭐. 생고기를 먹을 것 같은 느낌의.” “동물원 가라. 동물원. 어쩐지 네가 불쌍해지려고 한다.” “힘은 나보다 센 사람이 좋고.” “맹수 코너에나 가 봐!” (17쪽)

 


  따사로운 마음씨로 맑게 웃는 이웃을 좋아합니다. 얼굴이 이쁘장하기에 이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말을 잘 하거나 손재주가 뛰어나서 이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돈이 많거나 자가용을 굴리니까 이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따사로운 마음씨인 터라 이웃을 좋아합니다.


  가난한 이웃이기에 안 좋아하지 않습니다. 흔한 말로 ‘못생긴’ 얼굴이거나 키가 작대서 이웃을 안 좋아하지 않습니다. 얼굴이나 몸매가 무에 대수이겠습니까. 눈을 감고 가만히 헤아려요. 눈을 감고 이웃을 목소리로만 헤아려요. 귀도 닫고 이웃을 손을 뻗어 살며시 어루만지면서 헤아려요. 마치 내가 헬렌 켈러 같은 사람이라도 되는 듯이 몸을 그리면서 이웃을 마주해요.


  이웃한테서 무엇을 바라는지 생각해요. 이웃하고 무엇을 나누고 싶은지 생각해요. 이웃하고 어떻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살아가고 싶은가를 생각해요.


- “남자답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는 건 여자다운 녀석뿐이라고.” (29쪽)
- “그 녀석은 뇌까지 근육으로 돼 있지만, 마음은 마시멜로야. 멍청아!” ‘으이구. 우리 귀염둥이한테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저 애송이가.’ (32∼33쪽)

 


  우니타 유미 님 만화책 《붉은딸기 흰딸기》(학산문화사,2009)를 읽으며 생각에 잠깁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사랑하는 짝꿍은 어떤 사람일까요. 사랑하는 짝꿍과 어떤 살림을 꾸릴 적에 즐겁게 웃을 만한가요.


- ‘이유는 사소한 것이지만, 이 사람을 좋아할 수 있게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51쪽)
- ‘이건 입맛이 어떻고 저떻고의 차원이 아니야. 어떻게 된 거야? 녀석의 혀는. 하지만 내가 만드는 것보다 영양이라든가 그런 걸 제대로 생각해서 만드는 데다가, 무엇보다 기쁘니까 전부 먹는다.’ (89∼90쪽)


  밥은 영양성분으로 따져서 먹지 않습니다. 풀을 뜯어서 먹을 적에 풀잎 영양성분을 살피지 않습니다. 언제나 즐겁게 웃으면서 먹습니다. 밥 한 그릇을 비우면서 즐겁고, 밥 한 그릇을 차리면서 기쁩니다. 아이들이 밥그릇 삭삭 비비면서 “잘 먹었습니다!” 하고 외칠 적에 몹시 고맙습니다. 잘 먹고 잘 노는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랑은 영양성분이나 화학성분으로 따지지 않아요. 사랑을 분자배열이나 숫자로 따지지 않아요. 사랑을 수학식으로 분석하는 학자가 있을까요? 있다면, 이런 학자는 얼마나 따분할까요. 맑게 웃고 환하게 노래하면 사랑인데, 뭣하러 책상맡에서 펜대를 붙잡고 지겨운 일을 할까요.


  노랗게 피어나는 유채꽃을 똑 따서 입에 넣어요. 보들보들 넓적한 유채잎을 톡 끊어서 입에 넣어요. 유채줄기는 겉껍질을 벗겨 잘근잘근 씹어요. 속줄기만 먹다가 겉껍질을 안 벗기고 그냥 먹어 보기도 해요. 예전에는 워낙 배고파서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는데, 요새는 모두들 배가 부른 탓인지 유채밭을 보고 ‘예쁘네, 사진 찍어야지.’ 하고 말하는 사람들만 있어요. 유채밭을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는 이웃을 만나기 무척 어려워요.


- “카오리 씨가 아까 했던 말 잊지 마.” “네?” “시공주의 고객까지도 배려하는 마음. 사실은 당연한 거지만, 일을 계속하다 보면 잊어버릴 때가 있으니까. 늘 기억하면 좋을 거야.” “네.” (98∼99쪽)
- ‘나도 불경기를 숱하게 겪어 봤다구! 꽤 멧집이 좋거든? 우습게 보지 말라구, 이 회사!’ (106쪽)


  만화책 《붉은딸기 흰딸기》는 서로를 왜 좋아하는가 하는 실타래를 살며시 풀어서 보여줍니다. ‘딸기가 희다고?’ 하면서 ‘거짓말 하지 마!’ 하고 따질 분이 있을는지 모르겠는데, 딸기꽃은 하얗습니다. 딸기알은 붉습니다. 그러니까, 붉은딸기는 ‘열매’입니다. 흰딸기는 ‘꽃’입니다.


  푸른딸기도 있겠지요? 푸른딸기라면 ‘잎사귀’입니다. 붉은 마음과 하얀 마음과 푸른 마음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우리들 살아가는 이 지구별에서 사랑은 어떤 빛깔일까요? 우리는 스스로 어떤 빛깔로 사랑을 속삭이는가요? 4347.2.7.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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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소리 5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11

 


새하얀 소리가 울려나오는 곳
― 순백의 소리 5
 마리모 라가와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13.12.25.

 


  바람이 불면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가볍게 부는 바람은 가볍게 지나가는 소리를 냅니다. 드세게 부는 바람은 드세게 휘몰아치는 소리를 냅니다. 봄이 부는 바람은 봄노래를 일으키고, 겨울에 부는 바람은 겨울노래를 일으킵니다.


  아침에는 아침바람이 불어 아침노래를 들려줍니다. 저녁에는 저녁바람이 불면서 저녁노래를 들려줍니다. 언제나 노래가 되는 바람입니다. 아마, 바람이 없다면 어떠한 노래도 없겠지요.


  바람은 새들 노래를 실어 나릅니다. 바람은 풀벌레 노래를 실어 나릅니다. 바람은 개구리와 맹꽁이가 들려주는 노래를 실어 나릅니다. 바람은 사람이 부르는 노래도 가만히 실어 나릅니다. 언제나 바람과 함께 노래가 골골샅샅 퍼져요.


- “빵이나 묵고 때우면 된다. 신경쓰지 마라.” “신경쓰는 게 아니라 하고 싶어서 그래요.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응원 못 가지만 내일 개인전은 응원하러 갈 거니까!” (8쪽)

 

 

 
  바람에는 빛깔이 있을까요. 바람에는 무늬가 있을까요. 바람에는 냄새가 있을까요.


  바람에는 바람빛이 있습니다. 바람에는 아무 빛깔이 없다고도 말하지만, 바람에는 바람에 실리는 노래마다 빛깔을 입혀 줍니다. 숲에서는 숲빛이 바람이 실리고, 들에서는 들빛이 바람에 실립니다. 바다에서는 바다빛이 바람에 실리고, 하늘에서는 하늘빛이 바람에 실립니다.


  바람에는 바람무늬가 있습니다. 바람에 깃든 무늬를 읽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지만, 봄꽃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봄바람무늬가 있습니다. 여름꽃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여름바람무늬가 있어요. 가을에는 가을무늬를 살포시 담고, 겨울에는 겨울무늬를 찬찬히 담습니다.


  바람에는 바람냄새가 있습니다. 동백나무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는 동백바람냄새가 있습니다. 모과나무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는 모과바람냄새가 있어요. 소나무를 스치고 지나가면 솔바람냄새가 있고, 감나무를 스치고 지나가면 감바람냄새가 있어요.


- “‘건성’이니 ‘아예 관심 밖’이니, 니 맘대로 사람 판단하지 마라! 나는, 우승하고 싶다 말이다!” (55쪽)
- “그늘로서 내 목표는 실수 없는 연주야! 우승을 노릴 수 있겠다고 한 건, 사와무라가 있기 때문이고!” “나 하나 들어왔다 캐사, 우승을 노리네 뭐네 하지 마라.” (102∼103쪽)

 


  마리모 라가와 님 만화책 《순백의 소리》(학산문화사,2013) 다섯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책 《순백의 소리》는 ‘샤미센’이라는 악기를 켜는 아이들 삶을 그립니다. 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샤미센을 켜는 아이가 있고,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샤미센을 켜는 아이가 있습니다. 할머니한테 샤미센을 들려주고 싶어서 익숙하지 않은 손을 놀리는 아이가 있고, 샤미센이라는 악기가 들려주는 소리에 가슴이 젖어들어 어느새 함께 샤미센을 배우는 아이가 있습니다.


- ‘사와무라는 어떤 심정으로 듣고 있을까? 설마 감상하는 모드야? 사와무라는, 남의 연주를 듣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구나.’ (159쪽)
- “다른 아이들이 세츠한테 맞춰 낼라나 모르겄다.” “아니. 세츠가 모두에게 맞출 기라.” “세츠가? 수준을 떨궈준다는 말이가?” “그기 아이라, 그노마는 본인이 모른다뿐이지, 드센 놈이다.” (172쪽)

 


  새하얀 소리는 어디에서 울려나올까요. 눈처럼 하얀 시골에서 새하얀 소리가 울려나올까요. 눈이 새하얗게 쌓일 수 있는 두멧자락이나 숲속에서 울려나올까요. 복닥복닥한 도시에서 울려나올까요. 너른 들이 있는 곳에서 울려나올까요.


  마음이 새하얗다면 새하얀 빛이 묻어나는 노래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생각이 새하얗다면 새하얀 무늬가 깃드는 노래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사랑이 새하얗다면 새하얀 냄새가 감도는 노래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샤미센 연주는 혼자서 하기도 하고, 둘이서 하거나 여럿이서 하기도 합니다. 샤미센 연주는 꼭 누가 들어 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연주가 이와 같겠지요. 듣는 사람을 생각하며 연주를 할 때가 있고,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으나 숲속이나 멧골이나 바닷가에서 연주를 할 때가 있습니다.


  숲속에서 연주를 하면 듣는 사람은 없으나, 풀과 꽃과 나무가 노래를 듣습니다. 멧골에서 연주를 하면 이때에도 듣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새와 벌레와 멧짐승이 노래를 듣습니다. 바람은 살랑살랑 노래를 실어 나릅니다. 바람은 천천히 노래를 옮깁니다. 바람은 늘 보드랍게, 언제나 시원스레, 이러면서도 거칠거나 투박하게 노래를 일으킵니다.


  우리 마음이 보드라울 적에는 보드랍게 부는 바람입니다. 우리 마음이 시원스러울 적에는 시원스레 부는 바람입니다. 우리 마음이 거칠면 거칠게 부는 바람입니다. 우리 마음이 추우면 춥게 부는 바람이겠지요.


  악기를 켤 적에는 솜씨가 아닌 마음에 따라 노래가 태어납니다. 악기를 켜는 사람은 손가락 놀림이 아닌 마음결로 노래를 빚습니다. 악기를 켜는 사람은 악보에 따라 노래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악기를 켜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흐르는 바람을 헤아리면서 노래를 들려줍니다. 4347.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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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좀 안 될까요 1
아소우 미코토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09

 


‘표절·저작권 침해’를 생각한다
― 어떻게 좀 안 될까요 1
 아소우 미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시리얼 펴냄, 2010.11.25.

 


  일본 만화가 아소우 미코토 님 작품 《어떻게 좀 안 될까요》(시리얼,2010) 첫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만화책 《어떻게 좀 안 될까요》는 이제 막 변호사가 되었으나 막상 일할 만한 곳을 찾지 못해 빈손으로 지내다가, 어느 변호사 사무실에 엉겨붙어 ‘제발 일하도록 해 달라’고 떼를 쓰는 젊은 아가씨가 나옵니다. 갓 변호사가 된 젊은 아가씨는 ‘사람들 사이에 붙은 싸움’이 있어야 일거리를 얻습니다. 다툼이 있어야 돈을 버는 변호사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어야 누군가를 변론하면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더욱이, 피해를 받은 사람이 큰 피해를 입으면 입을수록 돈을 더 잘 벌 수 있습니다.


- “피눈물 나게 공부해서, 드디어 합격! 꿈이 이루어졌다 했는데, 선생님 소리 들어가며 돈도 왕창 벌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폼나는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더욱이! 아무 데서도 받아주지 않는 새파란 신참 따위 필요없어요. 게다가 개혁 때문에 취직이 안 된다? 그 덕분에 합격한 주제에 무슨 소리야!” (12∼13쪽)
- “다른 사람들의 재난이 우리의 먹잇감이야. 친지나 지인이라면 더욱 제일 먼저 일거리를 딸 수 있지. 그럴 각오가 없다면 아예 이 일을 그만둬. 하지만 그보다는, 그 재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입장을 기뻐하는 건 어때?” (20쪽)

 


  평화로운 나라에서는 일자리가 없을 변호사입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회에서는 일거리를 못 찾을 변호사입니다. 곧, 변호사가 많다고 한다면, 그만큼 그 나라는 평화롭지 않다는 뜻이요, 민주나 정의나 평등 또한 제대로 자리잡지 않는다는 뜻이 될 수 있습니다. 서로 아끼지 않기에 자꾸 재판이 생기고 소송이나 고발이 생깁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니 명예훼손이 생기고, 법정에서 한판 붙는 일이 일어납니다.


  믿음이 깨지기에 법원에 기대어 법에 따라 아픈 생채기를 보듬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도무지 말로는 이야기를 맺고 풀 수 없다고 여겨 법에 기대어 골이 아픈 일을 끝맺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참 딱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는 왜 자꾸 법에 기대야 할까요. 우리는 왜 자꾸 법을 살피고 법을 알아야 할까요. 법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가요. 법이 없으면 싸워야 하는가요. 법이 아니라면 서로를 믿지 않고 어깨동무를 안 하고 마는가요.


-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것도 있잖아?” (31쪽)
- “도와주세요. 내가 아닌 당신 자신을.” (73쪽)


  우리는 언제부터 ‘법 없이 즐겁고 아름다우며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못 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어느 때부터 ‘법 없이 참답고 사랑스러우며 너그럽게’ 살아가는 사람이 안 되는지 궁금합니다.


  법이 있기에 법을 지킨다기보다, 법이 없어도 착하게 웃고 참답게 어깨동무할 때에 아름다운 사람이리라 생각합니다. 법이 있기 때문에 법에 따른다기보다, 법이 있건 없건 서로 믿고 아끼면서 돌볼 줄 아는 사랑스러운 넋일 때에 즐거운 삶이리라 생각합니다.


  사랑에는 법이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거나 동무를 사랑하거나 짝꿍을 사랑할 적에 법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꽃을 심거나 나무를 돌볼 적에 법을 살피지 않습니다. 꽃사랑과 나무사랑은 법하고 얽히지 않습니다. 바다를 사랑하거나 숲을 사랑할 적에도 법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오직 바다를 생각하고 숲을 생각할 적에 바다와 숲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 “변호인. 보아하니 증인에게 지도 감독은 무리일 것 같은데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 임신 초기의 정서 불안에 의한.” “그렇다면 더욱 감독 능력이 없는 게 아닐까요.” “아이는 자랍니다! 자랍니다. 사람은!” (84∼85쪽)
- “됐어. 얼른 형기 마치고 빨리 나가고 싶어, 난.” “집행유예만 떨어지면 바로 나올 수 있었는데.” “집행유예는 3년 정도 되잖아? 모범수가 되어 얼른 나가면 돼. 죗값을 다 치른 깨끗한 손이어야 떳떳하게 내 아이를 안지.” (95쪽)


  만화 한길 걸어온 지 곧 서른 해가 되는 강경옥 님이 선보인 만화책 《설희》가 있습니다. 이 만화를 이루는 커다란 뼈대와 줄기를 누군가 훔쳐서 연속극을 만들었다며, 어느 연속극 작품을 고발한다고 밝혔습니다. 갑갑한 노릇입니다. 연속극을 쓴 방송작가는 왜 만화책 뼈대와 줄기를 훔쳐야 했는지 갑갑합니다. 즐겁게 보고 배우면서 고맙게 ‘저작권 사용료’를 치러 새로운 연속극을 쓸 수는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연속극 곳곳에 ‘각주’를 넣을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어느 작품에서 ‘도움을 받았’거나 ‘이야깃감을 가져다 썼는지’ 얼마든지 밝힐 수 있습니다. 즐겁게 배워서, 고맙게 쓰며, 아름답게 값을 치를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만화책 뼈대와 줄기에서 이야깃감을 얻었다 하더라도 만화책과 연속극은 똑같지 않습니다. 같은 작가가 만들었어도, 만화책 《피아노의 숲》과 만화영화 〈피아노의 숲〉은 얼거리와 흐름과 줄거리가 다릅니다. 동화책에서 이야깃감을 얻은 〈마녀배달부 키키〉는 동화책 《마녀배달부 키키》하고 아주 다릅니다. 뼈대와 줄기가 되는 작품이 있더라도, 영화를 만들건 만화영화를 만들건 연속극을 만들건, 다 다르게 태어날밖에 없습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이 손수 만든 만화책 《아톰》과 만화영화 〈아톰〉은 흐름과 얼거리뿐 아니라 주인공 설정까지 살짝 다르곤 합니다.


  만화책에서는 만화책으로 느끼고 즐기는 재미와 웃음과 눈물과 아름다움이 있어요. 만화영화는 만화영화대로 다른 대목에서 재미와 웃음과 눈물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연속극도 만화책이나 만화영화와는 사뭇 다른 대목에서 재미와 웃음과 눈물과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식으로 어느 작품을 바탕으로 삼아 연속극이나 영화를 만들더라도 ‘원작과 다르게’ 흐릅니다. ‘원작과 똑같이’ 흐르는 연속극이나 영화란 없다 할 수 있으며, 똑같이 하자면, 굳이 연속극이나 영화로 다시 만들 까닭이 없다고도 할 수 있어요.


  만화책 《설희》에서 커다란 이야깃감을 얻은 연속극은 왜 아무 말이 없이 슬그머니 넘어갈 생각을 할까 묻고 싶습니다. ‘이런 만화는 본 적이 없다’는 말 한 마디로 발뺌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표절을 하거나 저작권 침해를 했어도 ‘그런 만화는 본 적이 없으니 표절도 저작권 침해도 아니다’ 하고 말할 만한지 묻고 싶습니다.

 


- “학력 따위 없어도 훌륭하게 성공한 키자키 씨야말로 정말 능력 있는 믿음직한 남자가 아닐까요?” (127쪽)
- “흠집 하나 없는 당신 인생에 생채기를 내서 미안해. 하지만 슈운은, 흠집 하나 없는 인생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아. 좋아, 이혼하자. 하지만, 대신 슈운은 내게 줘. 당신 밑에서 자랐다간 그 아이 망가질 거야.” (130∼131쪽)


  표절과 저작권 침해 때문에 마음이 아픈 만화가는 ‘작가다운 마음과 넋’을 되살려, 방송작가가 스스로 뉘우치고 옳게 바로잡기를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방송작가는 스스로 뉘우치거나 옳게 바로잡지 않습니다. 만화가와 맞서 싸우겠다고 밝힙니다. ‘양심’을 묻는 자리에서 양심이 아닌 법정 소송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처음부터 스스로 뉘우칠 줄 안다면, 만화가한테 ‘이녁 작품을 쓰겠다’고 밝히고 제대로 ‘저작권 사용료’를 치렀겠지요. 법정으로 가도 무섭지 않다고 여기니 법정싸움을 하겠다고 밝힐 텐데, 이 땅에는 법보다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양심’을 팽개치는 이들이 돈과 이름과 힘을 얻는다 하더라도, 돈과 이름과 힘보다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연속극이 끝나고 새 연속극이 나오면 표절이든 저작권 침해이든 잊으면서, 새 연속극으로 빠져들리라 느낍니다. 법정싸움에 끝까지 눈길을 둘 사람은 그리 안 많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하늘에 대고 묻고 싶어요. 땅에 대고 묻고 싶습니다. 이 지구별에 있는 모든 넋이 지켜봅니다. 풀과 꽃과 나무가 지켜봅니다. 바람이 지켜보고, 구름과 해와 달과 별이 지켜봅니다. 참새와 참수리도 지켜보고, 개구리와 풀벌레도 지켜봅니다. 도깨비와 허깨비도 지켜봅니다.


  법정에서 변호사는 법 논리와 이론으로 따질 테지만,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이 지켜보고, 사람을 이루는 모든 숨결이 바라봅니다.


- “자꾸 그런 거 묻지 말아요! 아무리 구제불능이라도 엄마는 엄마라고요.” (138쪽)

 


  변호사가 법을 따지지 않으면, 아마 변호사로서 돈을 벌기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변호사는 늘 법을 따질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변호사도 사람입니다. 변호사도 아이입니다. 변호사도 어머니요 아버지입니다. 변호사이기 앞서 사람이요, 지구별을 이루는 수많은 목숨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화가와 방송작가도 만화가와 방송작기이기 앞서 사람이요, 지구별을 이루는 숱한 숨결 가운데 하나입니다. 서로 이웃이면서 동무입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며 목숨입니다. 범과 사자 같은 짐승은 작은 짐승을 잡아먹고 살아가는데, 범과 사자는 쉰 해나 백 해나 이백 해를 살지 않아요. 수십 해쯤 살다가 죽어 벌레한테 살점을 파먹히면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들 사람은 어떤 목숨일까요. 우리들 사람은 몇 해쯤 살다가 어떤 숨결로 몸이 바뀔까요.


  연속극을 쓰는 분들이 만화가 한 사람이 내놓은 땀방울을 함부로 건드리거나 몰래 가로채는 일이 이 나라에서 제발 사라질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서로 이웃입니다. 서로 한목숨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별입니다. 함께 사랑하는 숨결입니다. 4347.1.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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