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의 소리 5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11

 


새하얀 소리가 울려나오는 곳
― 순백의 소리 5
 마리모 라가와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13.12.25.

 


  바람이 불면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가볍게 부는 바람은 가볍게 지나가는 소리를 냅니다. 드세게 부는 바람은 드세게 휘몰아치는 소리를 냅니다. 봄이 부는 바람은 봄노래를 일으키고, 겨울에 부는 바람은 겨울노래를 일으킵니다.


  아침에는 아침바람이 불어 아침노래를 들려줍니다. 저녁에는 저녁바람이 불면서 저녁노래를 들려줍니다. 언제나 노래가 되는 바람입니다. 아마, 바람이 없다면 어떠한 노래도 없겠지요.


  바람은 새들 노래를 실어 나릅니다. 바람은 풀벌레 노래를 실어 나릅니다. 바람은 개구리와 맹꽁이가 들려주는 노래를 실어 나릅니다. 바람은 사람이 부르는 노래도 가만히 실어 나릅니다. 언제나 바람과 함께 노래가 골골샅샅 퍼져요.


- “빵이나 묵고 때우면 된다. 신경쓰지 마라.” “신경쓰는 게 아니라 하고 싶어서 그래요. 오늘은 토요일이라서 응원 못 가지만 내일 개인전은 응원하러 갈 거니까!” (8쪽)

 

 

 
  바람에는 빛깔이 있을까요. 바람에는 무늬가 있을까요. 바람에는 냄새가 있을까요.


  바람에는 바람빛이 있습니다. 바람에는 아무 빛깔이 없다고도 말하지만, 바람에는 바람에 실리는 노래마다 빛깔을 입혀 줍니다. 숲에서는 숲빛이 바람이 실리고, 들에서는 들빛이 바람에 실립니다. 바다에서는 바다빛이 바람에 실리고, 하늘에서는 하늘빛이 바람에 실립니다.


  바람에는 바람무늬가 있습니다. 바람에 깃든 무늬를 읽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지만, 봄꽃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봄바람무늬가 있습니다. 여름꽃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여름바람무늬가 있어요. 가을에는 가을무늬를 살포시 담고, 겨울에는 겨울무늬를 찬찬히 담습니다.


  바람에는 바람냄새가 있습니다. 동백나무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는 동백바람냄새가 있습니다. 모과나무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에는 모과바람냄새가 있어요. 소나무를 스치고 지나가면 솔바람냄새가 있고, 감나무를 스치고 지나가면 감바람냄새가 있어요.


- “‘건성’이니 ‘아예 관심 밖’이니, 니 맘대로 사람 판단하지 마라! 나는, 우승하고 싶다 말이다!” (55쪽)
- “그늘로서 내 목표는 실수 없는 연주야! 우승을 노릴 수 있겠다고 한 건, 사와무라가 있기 때문이고!” “나 하나 들어왔다 캐사, 우승을 노리네 뭐네 하지 마라.” (102∼103쪽)

 


  마리모 라가와 님 만화책 《순백의 소리》(학산문화사,2013) 다섯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만화책 《순백의 소리》는 ‘샤미센’이라는 악기를 켜는 아이들 삶을 그립니다. 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샤미센을 켜는 아이가 있고,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샤미센을 켜는 아이가 있습니다. 할머니한테 샤미센을 들려주고 싶어서 익숙하지 않은 손을 놀리는 아이가 있고, 샤미센이라는 악기가 들려주는 소리에 가슴이 젖어들어 어느새 함께 샤미센을 배우는 아이가 있습니다.


- ‘사와무라는 어떤 심정으로 듣고 있을까? 설마 감상하는 모드야? 사와무라는, 남의 연주를 듣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구나.’ (159쪽)
- “다른 아이들이 세츠한테 맞춰 낼라나 모르겄다.” “아니. 세츠가 모두에게 맞출 기라.” “세츠가? 수준을 떨궈준다는 말이가?” “그기 아이라, 그노마는 본인이 모른다뿐이지, 드센 놈이다.” (172쪽)

 


  새하얀 소리는 어디에서 울려나올까요. 눈처럼 하얀 시골에서 새하얀 소리가 울려나올까요. 눈이 새하얗게 쌓일 수 있는 두멧자락이나 숲속에서 울려나올까요. 복닥복닥한 도시에서 울려나올까요. 너른 들이 있는 곳에서 울려나올까요.


  마음이 새하얗다면 새하얀 빛이 묻어나는 노래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생각이 새하얗다면 새하얀 무늬가 깃드는 노래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사랑이 새하얗다면 새하얀 냄새가 감도는 노래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샤미센 연주는 혼자서 하기도 하고, 둘이서 하거나 여럿이서 하기도 합니다. 샤미센 연주는 꼭 누가 들어 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연주가 이와 같겠지요. 듣는 사람을 생각하며 연주를 할 때가 있고,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으나 숲속이나 멧골이나 바닷가에서 연주를 할 때가 있습니다.


  숲속에서 연주를 하면 듣는 사람은 없으나, 풀과 꽃과 나무가 노래를 듣습니다. 멧골에서 연주를 하면 이때에도 듣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새와 벌레와 멧짐승이 노래를 듣습니다. 바람은 살랑살랑 노래를 실어 나릅니다. 바람은 천천히 노래를 옮깁니다. 바람은 늘 보드랍게, 언제나 시원스레, 이러면서도 거칠거나 투박하게 노래를 일으킵니다.


  우리 마음이 보드라울 적에는 보드랍게 부는 바람입니다. 우리 마음이 시원스러울 적에는 시원스레 부는 바람입니다. 우리 마음이 거칠면 거칠게 부는 바람입니다. 우리 마음이 추우면 춥게 부는 바람이겠지요.


  악기를 켤 적에는 솜씨가 아닌 마음에 따라 노래가 태어납니다. 악기를 켜는 사람은 손가락 놀림이 아닌 마음결로 노래를 빚습니다. 악기를 켜는 사람은 악보에 따라 노래를 들려주지 않습니다. 악기를 켜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흐르는 바람을 헤아리면서 노래를 들려줍니다. 4347.2.4.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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