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좀 안 될까요 1
아소우 미코토 지음 / 시리얼(학산문화사)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09

 


‘표절·저작권 침해’를 생각한다
― 어떻게 좀 안 될까요 1
 아소우 미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시리얼 펴냄, 2010.11.25.

 


  일본 만화가 아소우 미코토 님 작품 《어떻게 좀 안 될까요》(시리얼,2010) 첫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만화책 《어떻게 좀 안 될까요》는 이제 막 변호사가 되었으나 막상 일할 만한 곳을 찾지 못해 빈손으로 지내다가, 어느 변호사 사무실에 엉겨붙어 ‘제발 일하도록 해 달라’고 떼를 쓰는 젊은 아가씨가 나옵니다. 갓 변호사가 된 젊은 아가씨는 ‘사람들 사이에 붙은 싸움’이 있어야 일거리를 얻습니다. 다툼이 있어야 돈을 버는 변호사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어야 누군가를 변론하면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더욱이, 피해를 받은 사람이 큰 피해를 입으면 입을수록 돈을 더 잘 벌 수 있습니다.


- “피눈물 나게 공부해서, 드디어 합격! 꿈이 이루어졌다 했는데, 선생님 소리 들어가며 돈도 왕창 벌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폼나는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더욱이! 아무 데서도 받아주지 않는 새파란 신참 따위 필요없어요. 게다가 개혁 때문에 취직이 안 된다? 그 덕분에 합격한 주제에 무슨 소리야!” (12∼13쪽)
- “다른 사람들의 재난이 우리의 먹잇감이야. 친지나 지인이라면 더욱 제일 먼저 일거리를 딸 수 있지. 그럴 각오가 없다면 아예 이 일을 그만둬. 하지만 그보다는, 그 재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입장을 기뻐하는 건 어때?” (20쪽)

 


  평화로운 나라에서는 일자리가 없을 변호사입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회에서는 일거리를 못 찾을 변호사입니다. 곧, 변호사가 많다고 한다면, 그만큼 그 나라는 평화롭지 않다는 뜻이요, 민주나 정의나 평등 또한 제대로 자리잡지 않는다는 뜻이 될 수 있습니다. 서로 아끼지 않기에 자꾸 재판이 생기고 소송이나 고발이 생깁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니 명예훼손이 생기고, 법정에서 한판 붙는 일이 일어납니다.


  믿음이 깨지기에 법원에 기대어 법에 따라 아픈 생채기를 보듬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도무지 말로는 이야기를 맺고 풀 수 없다고 여겨 법에 기대어 골이 아픈 일을 끝맺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참 딱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우리는 왜 자꾸 법에 기대야 할까요. 우리는 왜 자꾸 법을 살피고 법을 알아야 할까요. 법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가요. 법이 없으면 싸워야 하는가요. 법이 아니라면 서로를 믿지 않고 어깨동무를 안 하고 마는가요.


-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것도 있잖아?” (31쪽)
- “도와주세요. 내가 아닌 당신 자신을.” (73쪽)


  우리는 언제부터 ‘법 없이 즐겁고 아름다우며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못 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어느 때부터 ‘법 없이 참답고 사랑스러우며 너그럽게’ 살아가는 사람이 안 되는지 궁금합니다.


  법이 있기에 법을 지킨다기보다, 법이 없어도 착하게 웃고 참답게 어깨동무할 때에 아름다운 사람이리라 생각합니다. 법이 있기 때문에 법에 따른다기보다, 법이 있건 없건 서로 믿고 아끼면서 돌볼 줄 아는 사랑스러운 넋일 때에 즐거운 삶이리라 생각합니다.


  사랑에는 법이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거나 동무를 사랑하거나 짝꿍을 사랑할 적에 법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꽃을 심거나 나무를 돌볼 적에 법을 살피지 않습니다. 꽃사랑과 나무사랑은 법하고 얽히지 않습니다. 바다를 사랑하거나 숲을 사랑할 적에도 법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오직 바다를 생각하고 숲을 생각할 적에 바다와 숲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 “변호인. 보아하니 증인에게 지도 감독은 무리일 것 같은데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 임신 초기의 정서 불안에 의한.” “그렇다면 더욱 감독 능력이 없는 게 아닐까요.” “아이는 자랍니다! 자랍니다. 사람은!” (84∼85쪽)
- “됐어. 얼른 형기 마치고 빨리 나가고 싶어, 난.” “집행유예만 떨어지면 바로 나올 수 있었는데.” “집행유예는 3년 정도 되잖아? 모범수가 되어 얼른 나가면 돼. 죗값을 다 치른 깨끗한 손이어야 떳떳하게 내 아이를 안지.” (95쪽)


  만화 한길 걸어온 지 곧 서른 해가 되는 강경옥 님이 선보인 만화책 《설희》가 있습니다. 이 만화를 이루는 커다란 뼈대와 줄기를 누군가 훔쳐서 연속극을 만들었다며, 어느 연속극 작품을 고발한다고 밝혔습니다. 갑갑한 노릇입니다. 연속극을 쓴 방송작가는 왜 만화책 뼈대와 줄기를 훔쳐야 했는지 갑갑합니다. 즐겁게 보고 배우면서 고맙게 ‘저작권 사용료’를 치러 새로운 연속극을 쓸 수는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연속극 곳곳에 ‘각주’를 넣을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어느 작품에서 ‘도움을 받았’거나 ‘이야깃감을 가져다 썼는지’ 얼마든지 밝힐 수 있습니다. 즐겁게 배워서, 고맙게 쓰며, 아름답게 값을 치를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만화책 뼈대와 줄기에서 이야깃감을 얻었다 하더라도 만화책과 연속극은 똑같지 않습니다. 같은 작가가 만들었어도, 만화책 《피아노의 숲》과 만화영화 〈피아노의 숲〉은 얼거리와 흐름과 줄거리가 다릅니다. 동화책에서 이야깃감을 얻은 〈마녀배달부 키키〉는 동화책 《마녀배달부 키키》하고 아주 다릅니다. 뼈대와 줄기가 되는 작품이 있더라도, 영화를 만들건 만화영화를 만들건 연속극을 만들건, 다 다르게 태어날밖에 없습니다. 데즈카 오사무 님이 손수 만든 만화책 《아톰》과 만화영화 〈아톰〉은 흐름과 얼거리뿐 아니라 주인공 설정까지 살짝 다르곤 합니다.


  만화책에서는 만화책으로 느끼고 즐기는 재미와 웃음과 눈물과 아름다움이 있어요. 만화영화는 만화영화대로 다른 대목에서 재미와 웃음과 눈물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연속극도 만화책이나 만화영화와는 사뭇 다른 대목에서 재미와 웃음과 눈물과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식으로 어느 작품을 바탕으로 삼아 연속극이나 영화를 만들더라도 ‘원작과 다르게’ 흐릅니다. ‘원작과 똑같이’ 흐르는 연속극이나 영화란 없다 할 수 있으며, 똑같이 하자면, 굳이 연속극이나 영화로 다시 만들 까닭이 없다고도 할 수 있어요.


  만화책 《설희》에서 커다란 이야깃감을 얻은 연속극은 왜 아무 말이 없이 슬그머니 넘어갈 생각을 할까 묻고 싶습니다. ‘이런 만화는 본 적이 없다’는 말 한 마디로 발뺌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표절을 하거나 저작권 침해를 했어도 ‘그런 만화는 본 적이 없으니 표절도 저작권 침해도 아니다’ 하고 말할 만한지 묻고 싶습니다.

 


- “학력 따위 없어도 훌륭하게 성공한 키자키 씨야말로 정말 능력 있는 믿음직한 남자가 아닐까요?” (127쪽)
- “흠집 하나 없는 당신 인생에 생채기를 내서 미안해. 하지만 슈운은, 흠집 하나 없는 인생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아. 좋아, 이혼하자. 하지만, 대신 슈운은 내게 줘. 당신 밑에서 자랐다간 그 아이 망가질 거야.” (130∼131쪽)


  표절과 저작권 침해 때문에 마음이 아픈 만화가는 ‘작가다운 마음과 넋’을 되살려, 방송작가가 스스로 뉘우치고 옳게 바로잡기를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방송작가는 스스로 뉘우치거나 옳게 바로잡지 않습니다. 만화가와 맞서 싸우겠다고 밝힙니다. ‘양심’을 묻는 자리에서 양심이 아닌 법정 소송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처음부터 스스로 뉘우칠 줄 안다면, 만화가한테 ‘이녁 작품을 쓰겠다’고 밝히고 제대로 ‘저작권 사용료’를 치렀겠지요. 법정으로 가도 무섭지 않다고 여기니 법정싸움을 하겠다고 밝힐 텐데, 이 땅에는 법보다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양심’을 팽개치는 이들이 돈과 이름과 힘을 얻는다 하더라도, 돈과 이름과 힘보다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연속극이 끝나고 새 연속극이 나오면 표절이든 저작권 침해이든 잊으면서, 새 연속극으로 빠져들리라 느낍니다. 법정싸움에 끝까지 눈길을 둘 사람은 그리 안 많으리라 느낍니다. 그러나, 하늘에 대고 묻고 싶어요. 땅에 대고 묻고 싶습니다. 이 지구별에 있는 모든 넋이 지켜봅니다. 풀과 꽃과 나무가 지켜봅니다. 바람이 지켜보고, 구름과 해와 달과 별이 지켜봅니다. 참새와 참수리도 지켜보고, 개구리와 풀벌레도 지켜봅니다. 도깨비와 허깨비도 지켜봅니다.


  법정에서 변호사는 법 논리와 이론으로 따질 테지만,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이 지켜보고, 사람을 이루는 모든 숨결이 바라봅니다.


- “자꾸 그런 거 묻지 말아요! 아무리 구제불능이라도 엄마는 엄마라고요.” (138쪽)

 


  변호사가 법을 따지지 않으면, 아마 변호사로서 돈을 벌기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변호사는 늘 법을 따질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변호사도 사람입니다. 변호사도 아이입니다. 변호사도 어머니요 아버지입니다. 변호사이기 앞서 사람이요, 지구별을 이루는 수많은 목숨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화가와 방송작가도 만화가와 방송작기이기 앞서 사람이요, 지구별을 이루는 숱한 숨결 가운데 하나입니다. 서로 이웃이면서 동무입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어야 비로소 사람이며 목숨입니다. 범과 사자 같은 짐승은 작은 짐승을 잡아먹고 살아가는데, 범과 사자는 쉰 해나 백 해나 이백 해를 살지 않아요. 수십 해쯤 살다가 죽어 벌레한테 살점을 파먹히면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들 사람은 어떤 목숨일까요. 우리들 사람은 몇 해쯤 살다가 어떤 숨결로 몸이 바뀔까요.


  연속극을 쓰는 분들이 만화가 한 사람이 내놓은 땀방울을 함부로 건드리거나 몰래 가로채는 일이 이 나라에서 제발 사라질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서로 이웃입니다. 서로 한목숨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별입니다. 함께 사랑하는 숨결입니다. 4347.1.3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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