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골동양과자점 1 - 애장판
요시나가 후미 지음, 장수연 옮김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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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62



‘사랑’은 ‘살섞기’가 아니지요

― 서양골동양과자점 1

 요시나가 후미 글·그림

 장수연 옮김

 서울문화사 펴냄, 2001.12.5.



  언제부터인가 ‘어머니 손맛’이나 ‘할머니 손맛’을 이야기하지만, 손맛은 어머니와 할머니한테만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 손맛’이 있고, ‘할아버지 손맛’이 있습니다.


  왜 손맛인가 하면, 밥은 손으로 짓기 때문입니다. 손으로 흙을 일군 뒤, 흙에 손으로 씨앗을 뿌리고, 흙으로 풀을 뜯어서 먹을 뿐 아니라, 흙으로 열매를 거두어 먹어요. 낟알은 손에 쥔 낫으로 볏포기를 벤 뒤에 훑어서 얻고, 손으로 절구질을 하고 키를 놀립니다. 손으로 솥에 쌀알을 담은 뒤, 손으로 장작을 때서 밥을 지어요. 다 지은 밥은 주걱을 손에 쥐어서 풉니다. 그런 뒤, 마지막으로 밥을 입에 넣을 적에도 손으로 수저를 쥐지요.


  손으로 짓는 맛을 손으로 누립니다.



- ‘중학교란 동네는 왜 이렇게 눈치만 보며 살아야 할까.’ (10쪽)

- “선더 그 자식. 케이크가 뭔 소용이 있냐고?” (110쪽)





  요시나가 후미 님이 빚은 만화책 《서양골동양과자점》(서울문화사,2001)은 네 권짜리 짤막한 이야기입니다. 책이름 그대로 ‘서양골동양과자점’에서 일어나는 여러 모습과 삶을 만화로 담아서 들려줍니다. ‘서양골동양과자점’에서 일하는 사람은 모두 사내입니다. 그래요. 사내들만 일하지요. 요시나가 후미 님은 몸매가 잘 빠진 사내들이 나오는 만화를 즐겨 그립니다. 나는 이런 만화는 그리 즐기지 않아서, 그렇다고 몸매가 잘 빠진 가시내들이 나오는 만화도 그리 즐기지 않아서, 그동안 이 작품을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구태여 그런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야 하는지 아리송하고, 왜 그런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야 하는지 알쏭달쏭하다고 느껴요. 만화이든 글이든 사진이든,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아끼는 이야기를 담을 때에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럽다고 느껴요.



- “이거 전부 앤티크 식기 아닌가요? 냉수 담은 이 셰리 글라스만 해도 5만 엔은 나가겠는걸. 나 같으면 절대로 손님한테 안 내놔요.” “네. 저희 가게에선 내놓습니다.” (50쪽)

- “당신, 사실은 매일매일 아주 즐거워 못 견디겠죠? 왜 일부러 시시한 척하고 살아요?” “내 인생이, 말인가?” “그러믄요. 22년 동안 한직에서만 돌다가 마지막엔 그보다 더 한가한 사단법인 관리직에 앉았잖아요. 그 대신 당신은 남아도는 시간에 좋아하는 양과자들로 이름높은 제과점, 아직 알려지지 않은 가게의 온갖 종료의 케이크를 먹으러 돌아다니셨죠?” “다 알고 있었나?” (86∼87쪽)



  아는 사람은 알 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텐데, ‘사랑’은 ‘사랑’이지, ‘살섞기’가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살을 섞는 일은 ‘살섞기’일 뿐입니다. 한국말로는 ‘어우르다’라고도 합니다. 영어로는 ‘sex’라고도 적습니다.


  겉으로 스치듯이 훑자면, 《서양골동양과자점》은 ‘사내들끼리 살을 섞는 줄거리’가 언뜻선뜻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대목은 스치는 ‘곁 줄거리’입니다. ‘속 줄거리’는 맛있는 밥(케익·양과자)을 즐기는 사람들이 짓는 웃음과 이야기입니다. 맛있는 밥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꿈꾸는 삶과 노래입니다.


  이 만화책에서 흐르는 웃음과 이야기와 삶과 노래는 바로 ‘사랑’입니다. 살섞기가 아닌 ‘사랑’입니다.





- “복싱도 계속 할 거야! 다니던 체육관엔 더 이상 못 있지만, 그래도 계속 할 거야! 너한테 호스티스도 계속 시키겠지! 나도 아르바이트 더 늘릴게! 네가 없는 동안에 애기는 내가 보고! 그렇게밖에 결론을 못 내렸어.” “날 위해 복싱을 그만두진 않을 거구나?” “미안해, 나미코!” “난 토오루가 그렇게 말하기를 줄곧 기다려 왔어.” (125쪽)

- “아니. 그건 상관없어. 그런 소릴 안 들었으면 지금 이렇게 자유로운 인생을 살진 못했을 테니까. 진짜로 이젠 괜찮아. 그 증거로, 난 널 기억도 못했잖아. 앞으로 잘 부탁해, 타치바나. 함께 좋은 가게를 만들자.” (154∼155쪽)



  사랑을 담아서 지은 밥이기에 맛있습니다. 손꼽히는 요리사가 지은 밥이라서 맛있지 않습니다. 사랑을 실어서 나누는 밥이기에 즐겁습니다. 이름난 요리사가 차린 밥이라서 즐겁지 않습니다. 사랑스레 바라보고 마주하는 사람이 밥상에 둘러앉아서 한 끼니를 누리니 아름답지요. 어떤 비싼 밥집으로 찾아가서 비싼값을 치러서 무엇을 먹어야 아름답지 않습니다.


  밥 한 그릇은 사랑입니다. 쌀 한 톨은 사랑입니다. 풀 한 포기도, 나물 한 점도 사랑입니다. 두부 한 모도 사랑이요, 콩 한 알도 사랑입니다. 우리가 먹는 모든 밥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입는 옷도 사랑이요, 우리가 나누는 말도 사랑입니다.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길에 사랑스레 웃습니다. 삶을 즐겁게 어깨동무하는 오늘 하루 서로 웃고 노래하면서 사랑을 속삭입니다.


  판이 끊어져서 아쉽지만, 만화책 《서양골동양과자점》은 머잖아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나와서 사랑받을 수 있겠지요. 눈을 감고 속을 들여다본다면, 눈을 감으면서 마음을 읽는다면, 우리 삶에 사랑이 있기에 따사로운 기운이 흐를 수 있는 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4347.9.1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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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이 이야기
박건웅 글.그림, 이승민 원작 / 새만화책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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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81



평화롭던 마을에 찾아온 살인기계

― 홍이 이야기

 이승민 글

 박건웅 그림

 새만화책 펴냄, 2008.4.3.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즐겁게 놀았습니다. 학교라는 이름도 없었고, 사회라는 이름이나 정치와 경제나 문화라는 이름도 없었습니다. 대통령이라든지 국회의원 같은 이름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임금님 이름을 몰라도 아름답게 살았습니다. 한자를 몰라도 모두 마을을 이루어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했습니다. 중국을 섬기지 않아도 우리 마을과 이웃 여러 마을은 사랑스레 손을 맞잡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임금님이라는 사람과 신하라는 사람은 나라를 세우려 합니다. 이를테면 고구려라든지 백제라든지 신라라든지 가야라든지 부여와 같은. 그리고, 임금님이나 신하라는 사람은 시골에서 흙을 일구던 사람을 그러모아서 칼과 창을 손에 들려 ‘사람 죽이는 짓’을 가르칩니다. 그동안 고개 너머 이웃이나 냇물 너머 이웃이던 사람을 칼이나 창으로 죽여야 합니다. 오순도순 사이좋게 지내던 마을이었지만, 정치가 서고 경제를 말하며 문화를 읊는 사회가 나타나면서, 그만 마을과 마을 사이에 금이 쩍쩍 갈라집니다.



- 마을 사람들은 밭을 갈다가도, 김을 매다가도, 부엌에서 일을 하다가도, 넋이 나간 사람들처럼 오름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대나무 막대기가 내려져 있거나 긴 나팔 소리가 들리면, 하던 일을 팽개치고 황급히 어디론가 깊숙한 곳으로 달아나 숨곤 했다. 그러면 노랑개나 검은개 들이 텅 빈 마을로 들어와서는 미처 도망가지 못한 노인들을 끌어내서 화풀이를 하고, 이 집 저 집을 들쑤시고 다니다가, 숨어 있던 사람들을 찾으면 그 중 몇몇을 트럭에 실어, 읍내 쪽으로 돌아가곤 했다. (11∼12쪽)





  대통령은 왜 있어야 할까요? 임금님은 왜 있어야 하나요? 정치는 왜 있어야 할까요? 경제와 문화와 교육은 왜 있어야 하나요?


  병원이 없어도 사람들은 스스로 몸을 다스렸습니다. 청소부가 없어도 사람들은 스스로 집과 마을을 정갈하게 돌보았습니다. 판사나 변호사가 없어도 사람들은 슬기롭게 일을 맺고 풀었습니다. 교사나 교수가 없어도 사람들은 아이들을 똑똑하게 가르쳤습니다. 지식인이나 작가나 기자가 없어도 집집마다 알콩달콩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이웃과 동무가 어찌 지내는가를 잘 알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대통령이 있고, 정치꾼이나 행정 관료나 공무원이 있습니다. 군대와 경찰이 있습니다. 지식인과 전문가가 있습니다. 교사와 교수가 많습니다.


  그러면 물어 볼게요. 대통령이 있어서 나라가 바로서나요? 공무원이나 관료가 있어서 사회가 바르거나 아름다운가요? 군대와 경찰이 있어서 나라가 평화롭나요? 지식인과 전문가가 있어서 슬기롭거나 착하거나 참다운 이야기가 널리 퍼지는가요? 교사와 교수가 있어 저마다 즐겁게 가르치거나 배우는가요?



- 군인들은 움직이는 것엔 총을 쏘고, 움직이지 않는 것에는 불을 붙였다. (26쪽)





  이승민 님이 글을 쓰고 박건웅 님이 그림을 그린 《홍이 이야기》(새만화책,2008)를 읽습니다. 1940년대 끝무렵에 제주섬에서 일어난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단출하면서 굵은 빛깔로 찬찬히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무렵 군대와 경찰은 무슨 짓을 했을까요? 오늘날 군대와 경찰은 어떤 일을 하는가요? 제주섬에 짓는다는 해군기지는 무엇일까요? 평화를 지키려는 군대인가요? 평화를 지키겠다는 군대, 그러니까 군부대는 평화롭게 터를 닦거나 짓는가요?


  평화롭던 마을에 찾아온 살인기계인 군대와 경찰이리라 느낍니다. 아름답던 마을을 짓밟는 살인노예인 군대와 경찰이로구나 싶습니다.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마을을 까부수는 살인병기인 군대와 경찰이라고 느낍니다.



- 금빛 나팔에 끈적한 피가 묻어 있었다. 홍이는 나팔을 불어 보려고 했지만,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가슴에 구멍이 생겨, 자꾸만 바람이, 새어나갔기 때문이다. (32쪽)





  민주란 무엇이고 평화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정치란 무엇이고 평등이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지을 때에 삶입니다. 스스로 삶을 지을 때에 삶이면서 사랑이고 평화입니다. 스스로 삶을 짓지 못하게 가로막는 제도권이 춤을 추면, 사람들은 삶을 잃고 생각을 잃으며 사랑을 잃습니다.


  오늘날 사회를 보셔요. 사랑도 생각도 삶도 모두 어지러이 흩어집니다. 오늘날 정치나 경제나 문화를 보셔요. 얼마나 끔찍하게 서로를 따돌리거나 짓밟는가요. 어깨동무를 하는 정치나 경제나 문화가 있는가요? 저마다 1등을 하겠다면서 아귀다툼입니다.


  홍이는 동생과 함께 총에 맞아서 죽습니다. 죽은 홍이는 슬픈 넋이 되어 바람처럼 골골샅샅 떠돕니다. 부디 이 땅에 아름다운 사랑이 드리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바람처럼 흐릅니다. 아무쪼록 이 나라에 아름다운 꿈이 숨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바람처럼 노래합니다. 4347.9.1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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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난자몬자 5
이토 시즈카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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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80



내 앞날을 스스로 그린다

― 수수께끼 난자몬자 5

 이토 시즈카 글·그림

 이지혜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4.8.21.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삶을 짓습니다. 기쁜 삶이든 슬픈 삶이든 스스로 지으면서 하루를 누립니다. 그러니 아침마다 내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내 삶을 제대로 짓지 못한다면, 내 하루는 그저 남들한테 휘둘리거나 휩쓸리기만 해요. 나 스스로 오늘 하루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제대로 그리지 않는다면, 내가 바라는 것이 없는 만큼 언제나 똑같은 일만 되풀이하면서 온몸이 고단하게 처집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셔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침마다 ‘오늘도 지겨운 하루로구나’ 하고 여깁니다. 똑같은 출퇴근길을 따분하게 여기고, 아침저녁으로 고단하게 집과 일터 사이를 오가야 하는 일을 끔찍하게 여깁니다. 늘 이런 생각을 되풀이하고, 늘 이런 삶을 되풀이합니다.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합니다. 다르게 생각할 줄 모릅니다. 새로운 생각을 품지 못합니다. 새롭게 생각할 줄 모릅니다. 쳇바퀴 같은 하루에서 벗어나는 길은 스스로 열어야 하는데, 스스로 쳇바퀴에 갇힌 채 빠져나올 생각이 없어요.



- “그날 여행으로 이 섬에 온 사람들, 그 대부분이 가족이랑 헤어져서 절망하여 무기력하게 변했어.” (36쪽)

- ‘넌 진짜 강한 녀석이야. 네가 늘 당연하게 씩씩하게 혼자서 사니까 전혀 몰랐어. 가족이 없다는 게 이렇게 외롭고 쓸쓸한 거라니.’ (51쪽)





  쳇바퀴에서 누군가 건져내어 준다고 해서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쳇바퀴에 갇혀서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버릇에 길들었기 때문에, 다른 삶이 있는 줄 몰라요. 스스로 다른 삶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쳇바퀴에 갇힌 사람은, 쳇바퀴 바깥에서도 새로운 쳇바퀴를 찾을 뿐입니다.


  종살이에서 풀려난 사람은 더는 종으로 지내지 않을까요? 한국 정부는 일제강점기 종살이에서 벗어난 뒤에 스스로 씩씩하게 일어섰을까요? 군사독재에서 벗어난 한국 사회는 바야흐로 군사독재뿐 아니라 전쟁무기 굴레를 떨치고 홀가분하게 일어섰는가요?


  새로운 길을 배우지 않으면 새로운 길로 가지 못합니다. 새로운 길을 배울 때에는, 누가 이리로 가라고 해서 이 길을 가지 않습니다. 스스로 새로운 길을 살펴보고 찾아보며 바라볼 수 있는 눈매와 마음을 길러야 합니다. 누구나 스스로 밥술을 떠서 밥을 먹듯이, 누구나 스스로 내 삶을 찾아야 합니다.



- “왠지 좋다. 좀 부러워. 난 한 번도 아빠랑 싸워 본 적이 없거든. 난 날 때부터 부모가 없었잖아.” (73쪽)

- “운명이란 건 그런 거니까. 생각대로 되는 일 같은 건 거의 없잖아. 그러니까 더더욱 소원이 이뤄지면 무척 기쁜 법이잖아.”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난 소원이 이뤄졌어. 뭐든 다 내 뜻대로 안 됐지만, 이제야 우리 아들이랑 겨우 함께 살게 됐잖아.” (134∼135쪽)





  이토 시즈카 님 만화책 《수수께끼 난자몬자》(삼양출판사,2014) 다섯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다섯째 권은 이야기가 살짝 느슨하게 퍼졌습니다. 막바지에 이르러 비로소 ‘생각줄기’ 한 가지가 흐릅니다. 기운을 잃고 풀까지 죽은 아이한테, 동무가 씩씩하게 한 마디를 해요. “우리 미래를 우리가 제대로 상상해야 하잖아!” 하고 외쳐요.



- “그게 무슨 약한 소리야! 포가 그렇게 목숨 걸고 우릴 지켜 줬잖아. ‘못 찾았습니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어!”

- “있지, 타로. 이런 얘기 알아? 사람의 미래는 의외로 그 사람이 상상하기 쉬운 결과 쪽으로 움직인대. 그러면 우리가 제대로 상상해야 하잖아! 우리 미래를 말이지!” (183쪽)




  살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새로운 꿈을 그리느냐 하고 물을 수 있습니다. 네, 그래요. 살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릴까요? 그러나, 살아 본 적이 없으니까 그립니다. 살고 싶은 모습을 그립니다. 살고 싶으며 사랑하고 싶은 모습을 꿈으로 그립니다.


  그려야지요.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그려야지요. 종살이를 그대로 할 생각이라면 내 앞날을 안 그려도 되지만, 스스로 씩씩하게 일어서서 아름답게 살고 싶다면,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그릴 노릇입니다. 즐거운 삶을 그리고 기쁜 웃음을 그릴 노릇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그리는 대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스스로 지겹거나 고단한 말만 되풀이하면, 참말 지겹거나 고단한 일만 되풀이하듯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스스로 맑게 웃고 환하게 노래하는 몸가짐으로 새 하루를 맞이한다면, 언제나 우리 스스로 삶을 새롭게 고쳐짓는 길을 열 수 있습니다.


  저 먼 나라에서 누가 돈보따리를 던져 주어야 우리 살림이 펴지 않습니다. 얼마만큼 살림을 펴고 싶은가를 마음속에 그려서, 그 살림으로 나아가도록 하루를 가꾸면 됩니다. 대단한 교육부 장관이 나타나야 입시지옥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입시지옥하고 안 얽히는 삶을 짓고, 아이들과 하루를 아름답게 누리면, 입시지옥은 어느새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대통령이 바꾸는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바꾸는 나라입니다. 대통령은 허울이 좋은 꼭둑각시입니다. 우리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는 꼭둑각시인 대통령입니다. 4347.9.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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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난자몬자 4
이토 시즈카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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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79



서로 그리는 사람

― 수수께끼 난자몬자 4

 이토 시즈카 글·그림

 이지혜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4.3.24.



  손전화나 삐삐가 없던 예전에는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으면 몇 시간쯤 기다리곤 했습니다. 오래 기다려야겠다 싶으면 ‘기다리는 동안 읽을 책’을 챙기기도 합니다. 아예 책방에서 만나거나 기다리기로 한 뒤, 책방에 서서 책을 읽기도 하고, 책방에서 이런 책 저런 책을 살피면서 ‘곧 만나기로 한 사람한테 선물할 책’까지 고르기도 합니다.


  삐삐를 지나 손전화를 두루 쓰는 오늘날에는 누군가를 몇 시간쯤 기다리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누군가 찾아오기까지 여러 날 기다리는 일도 없지 싶어요. 왜냐하면, 기다릴 까닭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걸거나 쪽글을 보내면 돼요. 오늘날은 서로서로 곧바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곧바로 만나고 다시 곧바로 헤어지는 오늘날에는 서로 어떻게 만난다고 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기다릴 일이 없는 만큼, 만날 때뿐 아니라 헤어질 적에도 아쉬움이란 하나도 없겠지요. 아무리 멀리 떨어졌어도 손전화를 켜거나 인터넷을 열면 바로바로 닿을 수 있어요. 오늘날 이 지구별에서 만남과 헤어짐이란 무엇일까요.



- “아아아, 빌어먹을! 왜 일이 이렇게 된 거야! 그저 무사히 전쟁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사지 멀쩡하게 가족 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아이들을 이 손으로 안아 준다, 그것만을 바랐을 뿐인데.” (21쪽)

- “타로라면 어쩌겠나? 갑자기 사라진 사람을, 몇 십 년이나 변함없이 기다릴 수 있겠어?” “물론이죠! 소중한 사람이면 몇 십 년이건 기다릴 수 있어요!” (57쪽)





  이토 시즈카 님 만화책 《수수께끼 난자몬자》(삼양출판사,2014) 넷째 권을 읽습니다. 세 해 만에 넷째 권이 한국말로 나옵니다. 《수수께끼 난자몬자》 넷째 권에서는 작은 섬마을에 모여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삶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넌지시 짚습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몸이 아주 작게 줄어들어 어디로도 못 가고 거의 숨다시피 지내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몸이 아주 작게 줄어들다 보니, 몸이 줄어들지 않은 사람은 이들대로 그동안 늘 마주하던 사람이 사라졌으니, ‘다시 만나지 못하는 사람’을 그리거나 가슴에 아픔을 품은 채 지냅니다. 두 사람은, 그러니까 몸이 줄어든 사람하고 몸이 그대로인 사람은 어떤 삶이 될까요. 몸이 줄어든 사람은 먼발치에서 몸이 그대로인 사람을 지켜봅니다. 몸이 그대로인 사람은 몸이 줄어든 사람을 볼 길이 없고 알 길도 없습니다. 두 사람은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마흔 해 쉰 해 따로 떨어져서 저마다 살아가는데, 어떤 마음이 될까요.



- “허나 현실 세계에선, 그렇게 아름다운 일은 생기지 않아. 떠난 사람은 시간과 함께 잊혀지지. 나한테는, 이제 돌아갈 장소 따위 없다. 그래서 나 자신이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죽었다고 하면 마음도 없지. 이 땅의 흙이나 돌과 매한가지인 것, 그저 비바람을 맞으며 그저 맥박이 잠잠해지는 날을 기다리면 돼.” (58∼59쪽)




  사랑은 국경을 따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별이나 졸업장이나 돈을 따지지 않습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만 바라봅니다. 사랑바라기를 하기에 이루어지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다른 것을 볼 테지요. 이를테면 몸매를 본다든지 얼굴을 본다든지 돈을 본다든지 이름값을 본다든지 다른 것을 보겠지요.


  다른 것을 보는 사람한테는 사랑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것을 보거든요. 사랑을 이루고 싶다면 참말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다른 것은 내려놓고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오로지 사랑을 보아야 사랑을 이루는데, 다른 것을 죄 움켜쥐고는 사랑이 안 이루어진다고 말해 본들 아주 부질없습니다.



- “아줌마, 얼굴은 예쁜데 무지하게 나쁜 악당이었구나!” (121쪽)

- “어쩜 이렇게 심한 짓을 할 수 있어? 이 목걸이엔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걸려 있어! 이게 없으면 다들 소인이 돼 버린다구!” (134쪽)

- ‘엄마는 외로운 사람이야.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사람 마음까진 살 수 없는데!’ (139쪽)





  만화책 《수수께끼 난자몬자》에 나오는 이야기를 문득 되돌아봅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을 무렵, 군대에 끌려간 사람이나 군대에 휘말리지 않으려던 사람이 작고 외진 섬에 조용히 깃들었습니다. 전쟁이 얼른 끝나기를 기다렸어요. 불구덩이 전쟁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는데, 외려 몸뚱이가 작아지고 말았어요.


  몸이 안 작아진 사람은 아마 ‘전쟁통에 죽었겠거니’ 하고 여길 수 있습니다. 전쟁이란 참 모질고 끔찍하다고 느낄 만합니다. 참으로 그렇지요. 몸이 작아지지 않더라도 전쟁 불길에 휩쓸리면 그만 죽어요. 내가 일으킨 전쟁이 아니건만, 내가 깃든 나라에서 일으킨 전쟁은 나와 이웃 모두를 죽음 소용돌이에 몰아넣습니다.


  왜 정부는 전쟁을 일으켰을까요. 왜 정부는 군대를 키워서 전쟁을 벌이려 할까요. 왜 정부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다시 군대를 키워 전쟁무기를 잔뜩 갖출까요. 왜 평화로 나아가려는 정부는 없을까요. 왜 전쟁무기와 군대 모두를 버리거나 내려놓는 정부는 없을까요. 평화하고 동떨어진 군대와 전쟁무기를 잔뜩 갖추기 때문에 평화가 안 찾아오는 줄 깨닫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요.



- “이렇게 작아질 운명이라면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지도 몰라. 무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우리한텐 작은 친구들이 잔뜩 생겼잖아!” (180쪽)




  손전화와 삐삐가 없던 지난날을 가만히 그립니다. 집전화만 있던 지난날, 동무네 집에 전화를 걸며 숨소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어디에서 놀자고 말을 하면 어디로 달려갑니다. 몇 시 몇 분에 만나자는 말이 없이 그냥 ‘어느 곳’을 말하는데, ‘어느 곳’조차 ‘거기’라고 할 뿐, 딱히 어느 곳이라고 짚지 않습니다. ‘이따 놀자’고 하면 ‘이따’가 언제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이따’가 되도록 혼자 놀거나 다른 동무하고 놉니다. ‘낮에 보자’라든지 ‘아침에 보자’고 하면 몇 시인지 모르지만, 그냥 서로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조용히 기다립니다.


  기다리면서 책을 읽기도 하지만, 기다리면서 사람을 구경하기도 합니다. 골목집을 구경하거나 하늘을 구경합니다. 바람내음을 맡고, 골목 어디에선가 흐르는 꽃내음을 맡습니다. 가만히 생각에 잠깁니다. 함께 놀면 얼마나 즐거울까를 생각하고, 무엇을 하며 놀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리는 마음이 있으니 그립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 사랑스럽습니다. 마음밭에 꿈을 담고, 마음자리에 이야기를 심습니다. 서로서로 마음으로 따사롭게 그리기에 즐겁게 만납니다. 서로서로 마음으로 따뜻하게 그리기에 즐겁게 만난 뒤 아쉬움을 듬뿍 안고 헤어지면서도 두근두근 북돋우는 가슴에 끝없이 샘솟는 예쁜 이야기가 있습니다. 4347.9.1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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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 별 아래
타니카와 후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78



나도 여기 있는데

― 풀밭 위 별 아래

 타니카와 후미코 글·그림

 서수진 옮김

 대원씨아이, 2014.8.15.



  가을볕이 내리쬐는 구월 아침에 마당을 빗자루로 씁니다. 두 아이는 아침밥을 먹고 나서 마당에 놓은 동그란 고무대야에 물을 받아서 놉니다. 처음에는 물총놀이를 하고, 이윽고 물쏟기 놀이를 하다가, 어느새 옷에 물을 부어 적시는 놀이를 합니다.


  마당에 아이들이 놀면서 드나들라고 놓은 천막 바닥에까지 물이 고입니다. 부랴부랴 천막을 치웁니다. 깔개와 천막을 말리다가, 이 물로 마당을 쓸자고 생각합니다. 아침에는 마른비질을 했고, 낮에는 물비질을 합니다.


  마당에 꽤 오랫동안 풀포기를 쌓은 채 지냈습니다. 커다란 고무통도 마당에 그대로 놓았지요. 평상 밑에는 풀잎과 나뭇잎이 삭으면서 흙으로 바뀌었고, 웃밭에서 흘러내린 흙까지 고여서 꽤 두꺼운 ‘새 흙땅’이 되었어요.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흙을 긁습니다. 흙을 긁을 때마다 지렁이가 꼬물꼬물 나옵니다. 지렁이는 마당 가장자리 꽃밭으로 던집니다. 1센티미터나 2센티미터쯤 될까 싶은 흙땅에서 새끼를 낳으면서 지내는 지렁이는 그곳이 좋았을까요. 깊은 흙이 아니더라도 지렁이한테는 포근한 보금자리였을까요.



-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좋잖아? 난 요시하루가 좋아. 좋아하는 사람과 이렇게 만나고,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고. 그걸로 충분하잖아. 즐겁고 충실하고, 나 정말 만족스러워.” (12쪽)

- “엄마랑 아빠는 걱정하면서도 언니랑 같이 있는 게 엄청 좋은가 봐. 옛날부터 우리 집은 언니 중심이었거든.” “헤에.” “아침에도 갑자기 언니를 위해서라며 밥이랑 된장국을.” “뭐 어때. 맛있겠네.” “그런 게 아니라.” (27쪽)




  아이들이 놀면서 흘린 물로 마당을 쓸다가, 물을 더 받고 뿌려서 마당을 신나게 씁니다. 흙물을 꽃밭으로 던지면서 쓸고 보니 등허리가 결립니다. 아이들은 몇 시간째 물놀이를 했으니 슬슬 춥다는 말이 나옵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 늘 이렇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덥다’거나 ‘춥다’고 느낄 때까지 놉니다. 어른이 느끼기에 덥거나 추워도 아이들 스스로 아직 안 덥거나 안 추우면 더 놀아야 할 때입니다. 그러니, 이럴 때에는 물끄러미 지켜볼밖에 없습니다.


  다만, 집이 아닌 바깥에서 놀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요. 집에서는 곧바로 씻겨서 옷을 갈이입힐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놀다가 지치면 땀을 씻고 옷을 갈아입힌 뒤 샛밥을 주고는 자리에 눕힐 수 있어요. 바깥에서는 이렇게 하기 힘들기에, 아이들이 한창 잘 논다 싶을 무렵에 놀이를 끊어야 합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그래, 아버지도 마당을 치우느라 허리가 아팠어. 너희들이 그만 논다고 하니 아버지도 고맙구나. 이제 들어가서 쉬자.



- ‘언니는 어릴 적 몸이 약해서 엄마도 아빠도 늘 언니에게 붙어 있었다. 하얗고 작은 꽃 같아서, 누구나 언니를 지켜 주고 싶어 했다. 언니가 울지 않기를, 언니가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 나도 여기 있는데.’ (28쪽)

- “네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건 나는! 나는 아사코를 계속 좋아했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나한텐 오직 너뿐이야. 소중해서 견딜 수 없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나한테 사과해. 내 사랑에 사과해!” (50쪽)




  아이들이 샛밥을 먹는 사이에 빨래를 합니다. 물놀이를 하면서 적신 옷이지만, 물놀이도 하고 마당을 한창 뒹굴었으니 비누를 묻혀서 복복 비빕니다. 마지막으로 헹군 뒤 물기를 쪽쪽 짜고 탁탁 털면서 허리를 폅니다. 아이고 고되라, 그렇지만 개운해라.


  마당을 쓸면서 매미 주검을 보았습니다. 매미 주검은 머리와 몸통이 없이 몸 껍데기랑 날개만 있었습니다. 개미가 모두 파먹었나 봐요. 개미는 주검을 무척 알뜰히 먹는데, 왜 몸 껍데기랑 날개를 남겼을까요. 아니, 먼저 가장 맛난 데를 갉아서 먹은 뒤, 몸 껍데기랑 날개는 맨 마지막에 먹을 생각이었을는지 모릅니다.


  잠자리가 날면서 맥문동 잎사귀에 앉습니다. 풀개구리 한 마리가 후박나무 잎사귀에 달라붙어서 쉽니다. 저 아이는 언제 저기까지 올라갔을까요. 풀개구리가 풀숲뿐 아니라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먹이를 찾고 쉬기도 하는 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까요. 개구리라면 으레 논가나 못가에서만 볼 수 있다고 여기리라 느낍니다.


  부전나비가 한 마리 부추꽃에 앉습니다. 범나비가 팔랑거리면서 부추꽃밭에서 춤을 춥니다. 한창 비질을 하다가 하염없이 범나비를 바라봅니다. 범나비는 언제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범나비가 팔랑거리며 지나가면 으레 그쪽으로 고개를 돌립니다. 범나비가 내 눈에서 벗어날 때까지 한참 쳐다봅니다.



- ‘하느님. 언니가 행복해지기를. 슬픈 일도 괴로운 일도 언니의 꿈에 나타나지 않기를, 언니의 소중한 사람이 언니를 웃게 해 줄 수 있기를.’ (64∼65쪽)

- “미안해요. 지금껏 요모기다 씨가 살아온 인생까지 전부, 전부 합쳐서 당신을 사랑해요. 그러니까 함께 있어 줘요.” (106∼197쪽)




  타니카와 후미코 님이 빚은 만화책 《풀밭 위 별 아래》(대원씨아이,2014)는 몹시 포근하면서 보드랍습니다. 가시내와 사내 사이에서 벌어지는 애틋한 사랑이 흐르는 만화인데, 말마디 하나와 그림 하나가 모두 살갑습니다. 무엇보다 ‘사랑만화’에서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얽매이거나 붙잡는 사랑이 아닌, 누군가한테 사로잡히거나 끄달리는 사랑이 아닌, 스스로 내 삶을 사랑하면서 내 곁에서 함께 웃고 노래할 님을 찾는 사랑을 반갑게 읽을 수 있습니다.



- ‘정말로 나 같은 건 수많은 학생들 중 한 명이구나. 그치만 난 ‘거기’가 아니야.’ (120쪽)

-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좋아해 주는 건 굉장한 일이에요. 기적 같은 거죠. 함께 산다는 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전부 포함해서 함께 헤쳐 나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잖아요? 정말 굉장한 일인데, 그렇게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처럼 말하지 말아요.” (142쪽)



  나도 여기 있습니다. 아니, 나는 여기 있습니다. 언니와 나를 견줄 일이란 없습니다. 동생과 나를 견줄 까닭이란 없습니다. 동무나 이웃하고 나를 견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한몸에 사랑받는다고 느끼나요? 그러면, 내가 뭇사람한테서 사랑받고 내 동생이나 언니는 눈길 한 번 못 받는다면 어떠할까요? 


  나는 오직 나일 뿐입니다. 내가 가장 사랑할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나는 나보다 남을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저 티없이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예 가없이 내 삶을 사랑할 뿐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에, 누군가 나를 그리면서 따사로운 마음을 보냅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에, 나처럼 누군가 이녁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봅니다. 서로서로 마음이 맞는 까닭은 서로서로 스스로를 참다이 아낄 줄 알고, 스스로를 참다이 아낄 줄 알기에, 서로를 슬기롭게 어루만지면서 착하게 보살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나같이 아무것도 볼 것 없는 시시한 아이는, 이걸 돌려주면 선생님과 연결점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어요. 지켜보기만 해도 좋았어요. 수업 시간에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지만 졸업하면 그것조차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3년 동안 첫 수업 시간부터 계속 지켜봤어요.” (148∼149쪽)



  시시한 아이란 없습니다. 멋진 아이란 없습니다. 보잘것없는 어른이란 없습니다. 훌륭한 어른이란 없습니다. 모두 그대로입니다. 모두 사랑입니다. 모두 따사로운 숨결이고, 모두 싱그러운 바람입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만화책에 붙인 이름이 “풀밭 위 별 아래”라니, 참으로 잘 어울립니다. 풀밭과 별 사이에 사랑이 있습니다. 풀밭과 별 사이에 사람이 있습니다. 풀밭과 별 사이에 삶이 있습니다. 4347.9.11.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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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4-09-1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추석인사가 늦었습니다.^^;;

이 만화 재밌어 보입니다.^^

숲노래 2014-09-11 17:07   좋아요 0 | URL
이분이 그린 다른 만화도 여러모로 재미있습니다.
오랫동안 활동한 작가라서
절판된 숨은 진주도 많지요~

요즈음 이분 작품이 여러 권 번역되어
무척 반갑게 모두 장만해서 읽었어요~

한가위 지난 구월빛 즐겁게 누리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