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 이야기 2부
김은성 글.그림 / 새만화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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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40



우리 어머니는 어디에서 살았을까

― 내 어머니 이야기 2부

 김은성 글·그림

 새만화책 펴냄, 2014.3.20.



  며칠 앞서 읍내마실을 갔다가 찜통더위에 몹시 애먹었습니다. 고작 오월 십육일인데 이렇게 덥나 싶더군요. 군내버스를 타고 창문을 열며 바깥바람을 쐬다가 생각합니다. 시골마을로 돌아와 집으로 걸어가면서 생각합니다. 마을에 있는 시골집에서는 덥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아마 들에 있으면 덥다고 느낄 만할 테지만, 나무가 우거지고 풀이 수북한 곳에 있으면 더위를 못 느낍니다. 나무가 없거나 풀을 찾아보기 힘든 데에 있으면 끔찍하게 덥습니다.


  읍내나 면소재지에 가면, 이곳에서 나무를 보기란 어렵습니다. 읍내도 면소재지도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꼼꼼하게 길바닥을 메꿉니다. 논이나 밭 옆을 지나가지 않고서야 읍내에서도 흙을 구경하지 못합니다. 늘어나는 자동차 때문에 빈터와 숲을 밀어 주차장으로 삼습니다. 도시에서는 몇 억이나 수십 억이나 수백 억까지 들여 시내 한복판에 공원을 만들려고 애쓰지만, 정작 시골에서는 푸른 숲이나 우람한 나무를 함부로 베면서 자동차를 세우려고 용씁니다.



- “어디미 큰 집 한 채 부순 나무를 가지와서 집을 지었어. 그런 나무라야 나중이 뒤틀리지 않는다고. 물론 새 나무도 섞어서 쓸 데는 쓰고.” (12쪽)

- “학교 끝나기만 하면 집으로 달아오고. 어떤 때는 동네 사램들이 부러 귀경을 와. 나중이 집 옆이 심은 꽃낭구랑 자라이까 집이 더 멋있어. 봉이나무에 봉이가 열면 따 먹고.” (20쪽)




  선풍기나 에어컨을 튼대서 더위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집 한쪽이나 방 한켠에 차가운 바람이 불도록 한대서 더위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집 안팎이 두루 시원해야 안 덥습니다.


  집 안팎이 두루 시원하려면 어떠해야 할까요. 풀과 나무가 있어야 할 테지요. 나무만 있어서는 시원하지 않을 뿐더러, 나무만 있으면 나무도 몹시 힘듭니다. 나무는 뿌리를 마음껏 뻗을 만큼 너른 흙땅을 누려야 하고, 나무뿌리가 바깥에 툭 불거지지 않도록 온갖 풀이 알맞게 자라서 흙을 덮어야 합니다. 풀이 없는 흙은 빗물에 쉽게 쓸릴 뿐 아니라, 사람이 밟고 지나가면서 흙이 깎입니다. 풀이 있는 흙은 빗물에 좀처럼 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이 밟고 지나가도 풀만 누웠다가 일어납니다. 풀이 밟혀 못 일어나도 풀은 흙을 단단히 움켜쥐기에 나무뿌리가 흙땅에 튼튼히 뿌리내리도록 돕습니다.


  풀과 나무가 있어 흙을 알뜰히 돌보고, 풀과 나무가 햇볕을 듬뿍 받아들이면서 물기 머금은 바람을 내뿜을 때에 비로소 시원합니다. 그러니까, 시골 읍내라 하더라도, 또 시골 면소재지라 하더라도, 오늘날은 도시와 똑같이 죄다 아스팔트에다가 시멘트이고, 나무까지 없으니 무척 후덥지근합니다.



- “잔치가 무시기 좋은 일로 하는 기 아이라. 군인 끌려 나가면 살아 돌아올지 모르이까 하는 거야. 군인 끌려 나가는 집이서 잔치를 하는 거야 … 잔치는 웃다가 울다가, 울다가 웃다가 해.” (36∼37쪽)

- “이 사램 말하는 거를 봅세. 우리가 자식 혼인시기는 거, 자식이 맘이 있는 디 보내야지 떡을 보고 혼인을 시기겠슴메. 싹 가지고 가기오.” (66쪽)





  나무가 없으면 더위에 지치고, 풀이 없으면 더위에 치입니다. 나무와 풀이 있으면 그늘이 지고 빈 자리가 없어 남새를 얻기 어렵다고 말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남새도 곁에 풀이 잘 자라면 한결 싱그럽고 맛있습니다. 들에서 돋는 풀이란 모두 나물이기도 합니다. 굳이 풀을 죽이거나 뽑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더구나, 먹는 풀이 아니면, 옷을 짓거나 새끼를 꼴 적에 쓰는 풀이기 마련입니다. 한겨레뿐 아니라 다른 겨레도, 풀에서 실을 얻어 옷을 지었어요. 어느 겨레이든 풀옷을 입고 풀집을 지었습니다. 흙밥을 먹고 흙집에서 살았습니다.


  풀옷을 입고 풀집을 지으며 풀밥(또는 흙밥)을 먹으면 더위를 모릅니다. 풀을 만지고 흙을 만지며 나무를 쓰다듬으면 더위도 추위도 모릅니다. 풀과 나무가 아름답게 자라지 못하는 곳이 덥거나 춥습니다. 풀과 나무가 사랑스레 뿌리내리지 못하는 자리가 고단하면서 메마릅니다.


  살며시 생각하면 누구나 알 수 있어요. 사막이나 북극이나 남극은 어떠한가요. 풀도 나무도 자라지 못해요. 왜 더울까요. 왜 추울까요. 풀과 나무가 없으니 덥거나 추워요. 왜 고단할까요. 풀이 없거든요. 왜 힘들까요. 나무가 없거든요. 시골이든 도시이든 숲을 가꾸고 들을 보살펴야 즐겁게 살 만한데, 새마을운동이 아니었어도 우리 사회가 숲이랑 들을 함부로 망가뜨리기에 어느 곳에 가더라도 덥거나 춥구나 하고 느낍니다.



- “그 병신 같은 사람들이 게으름 피우고 놀고먹던 사람들이야?” “우리 고향이서는 놀고먹는 사램이 없었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뼈 빠지게 일하지.” “엄마! 뼈가 빠지게 일해도 자기 땅이 없으니까 못 살고 못 배우고 그런 거지. 그런 사람에게 땅을 줘야 맞는 거 아냐.” “그거야 그렇겠지. 땅이 자기 땅이면 먹고는 살 수 있지. 그래도 그렇지. 땅을 뺏더라도 절반이나 뺏던가 해야지 몽땅 뺏는 건 말도 안 되지.” (112∼113쪽)

- “이북이 있는 식구들도 다른 나라에서 다 만난다는데 우리 숙자는 왜, 왜, 이남이 있는 언니가 자기를 찾지도 않나 그럴 같애. 지금 형편은 이런 줄도 모르고 ‘언니가 잘사는데 나를 찾지도 않는구나’ 그럴지 몰라. 만나면 좀 도와줘야 하는데, 우리 살기도 힘들고, 그래도 만나 보깁어.” (119쪽)





  김은성 님이 그린 만화책 《내 어머니 이야기》(새만화책,2014) 둘째 권을 읽습니다. 김은성 님을 낳은 어머니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입니다. 김은성 님네 어머니는 북녘사람입니다. 북녘에서 살다가 남녘으로 와서 살아갑니다. 이 만화책에는 어머니가 북녘에서 즐겁게 누리던 어린 나날과 젊은 나날이 나옵니다.


  첫째 권에 이어 둘째 권을 읽으며 곰곰이 헤아리는데, 늙은 어머니는 이녁이 어릴 적을 돌아보면서 ‘괴롭거나 아프거나 슬픈’ 일 못지않게 ‘즐겁거나 웃거나 사랑스러운’ 일을 조곤조곤 떠올립니다. 웃고 울며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노래하다가 가슴을 찢으며 살아온 이야기입니다.



- “바다가 밤인데도 어둡지 않아. 달빛이 비추더라고. 맘이 탁 트이는 것도 같고 아인 것도 같고. 이 생각 저 생각 드더라고.” (154쪽)

- “그렇기 오래 안 가다가 친정집이 가는데, 우리 아버지가 안막 앞이 우리 논이서 추새(일)를 하다가 우리를 보더이 손을 논물이 씻고 나오더라구.” (159쪽)



  늙은 어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읽는데, 예전 사람들이 더위나 추위를 그닥 많이 타지는 않았구나 하고 느낍니다. 꼭 김은성 님네 어머니를 바라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집 네 식구가 살아가는 시골집을 떠올려도 알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어느 시골이나 창호종이 한 장만 바른 문으로 살았어요. 샤시문이고 무슨 문이고 이중창이고 없었습니다. 창호종이 한 장을 바른 문 안쪽이 바로 방이요 살림터입니다. 지난날에는 전라남도 바닷가에 있는 마을조차 얼음이 꽝꽝 얼었다고 해요. 영도 밑으로 열이나 스무 금까지 내려가기도 했다는데, 다들 잘 살았어요. 오리털이니 무슨 털이니 하는 두꺼운 옷이 없었어도 다들 잘 살았습니다.


  어떻게 살았을까요? 어떻게 추위를 견디었을까요?


  아무래도 흙이 있고 풀과 나무가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느껴요. 나무가 우거진 곳에 바람이 모질게 불지 않습니다. 나무와 풀이 푸르게 덮인 곳은 갑자기 뜨거워지지 않을 뿐 아니라 따순 기운이 쉬 식지 않습니다. 둘레 삶터가 알맞을 뿐 아니라, 집을 나무와 흙으로 지어요. 집 안팎이 무척 좋습니다. 온도계로 따져서 ‘대단한 추위’라고 말할 일이 없습니다. 온도계는 생각할 일이 없어요. 겨울은 겨울답게 옷을 한 꺼풀 껴입습니다. 여름은 여름답게 물을 만지고 바람을 쐬면서 지냅니다.





- “시숙이 밥을 차려 주니 자시고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웃고. 식구 떼 놓고 왔는데도 집이 와서 그런가 좋아하더라구.” (183쪽)

- “젊었을 때 그 혈기 있던 시절 마늘대가리가 불기불기하고 툭툭 터지고 석 접이나 되는 꿈을 꿨는데 깨나니까 기분이 왜 또 이러니야. 내 고향집이 한 번 가 보깁다. 그 집에 우리 형부가 살고 있었다는데.” “6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어?” “60년이 지나니까 더 나. 만약 고향이 간다면 모를 파헤쳐 뼈를 만지 보면 좋겠어. 우리 나고(낳고) 키운 어머이.” (197쪽)



  만화를 그린 분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내 어머니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곁님 어머니 이야기를 헤아려 봅니다. 이 나라 모든 어머니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겨 봅니다. 우리들 어머니라면, 웬만한 분들은 시골에서 태어나 흙을 만지며 자라셨을 테고, 도시에서 태어나 자랐더라도 시골 비슷한 터전에서 지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머니를 낳은 어머니라면 거의 모두 흙과 풀과 나무하고 벗삼으면서 어린 나날과 젊은 나날을 누리셨겠지요.


  우리 어머니는 모두 시골빛을 먹으며 활짝 웃던 숨결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저마다 시골내음을 마시며 맑게 노래하던 넋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다 함께 시골꿈을 꾸면서 즐겁게 어깨동무하던 사이입니다.


  할머니가 된 어머니들이 왜 샹냥하거나 고울는지 생각해 봅니다. 할머니가 된 어머니들이 이녁 어릴 적에 어떤 삶터를 누리면서 마음속에 고운 빛을 품을 수 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모든 사람은 즐겁게 살아가면서 씩씩하게 자라 할머니(또는 할아버지)가 됩니다. 이 땅 아이들은 앞으로 즐겁고 씩씩하게 크면서 할머니(또는 할아버지)로 삶길을 걷습니다. 다들 고운 이야기 한 자락을 가꾸면 좋겠어요. 모두들 고운 노래 한 가락을 부르면 좋겠어요. 4347.5.19.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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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에 미우치 단편 1 - 요귀비전
스즈에 미우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39



마음을 움직이는 힘

― 스즈에 미우치 단편 1 요귀비전

 스즈에 미우치 글·그림

 대원씨아이 펴냄, 2005.6.15.



  땅거미가 질 무렵 나타나는 박쥐를 보며 무섭다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박쥐이든 생쥐이든 무섭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후드득 날아가면 깜짝 놀랄 만합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박쥐도 사람이 무서울 만해요. 박쥐로서는 사람을 놀래키면서 재빨리 내빼려는 마음일 수 있습니다.


  박쥐가 무서웁다면 왜 무서울까 생각해 봅니다. 방송이나 영화에서 박쥐를 무섭게 그리기 때문은 아닌가 싶습니다. 문학이나 만화에서 박쥐를 으레 무섭게 보여주려 하기 때문은 아니랴 싶습니다.


  이를테면, 뱀을 무섭게 여길 까닭이 없습니다. 개구리도 두꺼비도 무섭다고 할 까닭이 없습니다. 지네도 나방도 무서울 까닭이 없어요. 모두 다른 목숨이고, 저마다 다른 숨결로 지구별에서 살아가는 이웃일 뿐입니다.





- “아무도 없는 백화점 안은 꼭 무덤 같아.” (53쪽)

- ‘미야노우치, 요귀비! 지하감옥과 그 기묘한 인형무리. 아흑왕! 우리가 본 건 대체 뭐지?’ (107쪽)

- “불타고 있는 게 아니야, 캐롤. 숲이 모래와 싸우는 거야. 잎이 갈가리 찢겨지고 가지가 꺾이고 쓰러져 파묻히면서도 어떻게든 살려고 하는 거야. 레노아 마을의 주민도 200년 전부터 싸워 왔어. 저 숲처럼. 파묻히고 파괴당하면서 공격해 오는 모래와 몇 번이고 몇번이고 싸워 왔어. 누가 뭐래도 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이 토지를 포기하지 않았던 거야. 살아남으려면 모래를 막아 줄 숲이 필요했어. 저런 숲이라도 마을 사람들에겐 신과 같은 존재지.” (341쪽)



  누군가는 박쥐나 뱀을 무서워 할 만하지만, 도시에서 박쥐나 뱀이 나올 일은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누군가는 범이나 곰을 무서워 할 만하지만, 도시뿐 아니라 이 나라 시골에서 범이나 곰을 만날 일은 아예 없다고 할 만해요. 정작 무서운 무엇인가를 꼽으라 하면, 바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람 못지않게 무서운 무엇인가를 들라 하면, 자동차나 전쟁무기나 핵발전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송전탑이 무섭고 댐이 무섭습니다. 화학공장이 무섭고 농약이 무섭습니다. 바다에서 뒤집히면서 기름을 엄청나게 흘리는 배가 무섭습니다. 흙과 물을 모두 죽이는 쓰레기를 내놓는 공장이 무섭습니다.


  하나하나 따진다면, 오늘날 사회는 사람이 스스로 만든 무서운 것투성이입니다. 사람은 사람이 스스로 무섭도록 문명이 치닫습니다.


  때로는 학력차별이 무섭습니다. 때로는 남녀차별이 무섭습니다. 때로는 따돌림과 괴롭힘이 무섭습니다. 때로는 정치와 경제가 무섭습니다. 때로는 언론 매체가 무섭고, 때로는 제도권 교육과 신분 사회가 무섭습니다. 경찰이나 군인이 무섭기도 하고, 돈이나 카드회사가 무섭기도 합니다.





- “실은 이때부터 요귀비는 자신의 힘을 깨닫고 힘을 키우기 시작했던 모양이야. 몸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잡을 수 없고, 말도 못 했지. 그래서 차츰 염력으로 물건을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 (125쪽)

- “가면을 쓰고 남의 눈을 피했지만, 이윽고 나의 몸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숨이 끊어지고 심장소리도 멈췄는데 그래도 내 영혼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지. 이 추한 몸은 그저 영혼을 담아두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는걸!” (163쪽)



  《스즈에 미우치 단편 1 요귀비전》(대원씨아이,2005)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스즈에 미우치 님이 짤막하게 그렸다고 하지만, 그리 짧지 않은 만화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스즈에 미우치 단편》에 나오는 작품은 어느 모로 보면 《유리가면》과 이어집니다. 《유리가면》에 흐르는 수많은 이야기는 《스즈에 미우치 단편》에 흐르는 여러 이야기와 맞닿습니다.


  이 작품과 저 작품 모두 마음을 다룹니다. 짧게 그린 만화도 《유리가면》도 우리 삶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을 다룹니다. 사랑을 그리는 마음을 다룹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어떤 마음이 되는가를 다룹니다. 즐거움을 나누는 마음을 다루고, 두려움이 찾아들면서 덜덜 떠는 마음과 두려움을 털어내려는 마음을 다룹니다.





- ‘난 완전히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문득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지하철 미야노우치역 저편은 대체 어디로 통하고 있을까 하고.’ (183쪽)

- ‘분신사바니 지박령이니 제령이니 심령사진이니 하는 건, 나와는 상관없는 책에서나 나오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설마 정말로 있었을 줄이야. 그것도 내가 직접 경험하게 되다니.’ (224쪽)



  누군가는 풀을 맛있게 먹습니다. 누군가는 고기가 없으면 밥을 못 먹습니다. 누군가는 물 한 잔을 마시면서 배가 부릅니다. 누군가는 밥그릇을 여럿 비워도 배가 고프다고 합니다. 밥그릇에서 한 숟가락을 덜어 이웃과 나누는 사람이 있습니다. 밥그릇에서 한 숟가락을 던 일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밥그릇을 아예 통째로 이웃한테 건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웃이 굶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어버이가 아플 적에 곁에서 아픈 어버이를 돌본다면, 우리 가운데 아픈 어버이한테서 ‘돌봄삯’을 받을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나, 아마 거의 모든 사람은 어버이를 돌보면서 돈을 받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동무가 아프거나 이웃이 아플 적에도 돈을 받으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해요. 아픈 동무나 이웃한테 죽을 끓여서 내밀면서 ‘죽값’을 받을 생각은 아닐 테지요.


  그러면, 어디까지 이웃이고, 어디까지 동무일까요. 내 이웃과 살가운 이웃이라면? 내 동무와 아주 가까운 동무라면? 내 동무와 아주 가까운 동무하고 아주 가까운 동무라면? 우리 마음은 어디까지 즐겁게 손길을 내밀고, 우리 마음은 어디부터 돈을 바랄 만할까요?





- “너 자신이 코모리 사요코의 영혼과 싸워야 한다. 널 죽이려는 저주에 대항해 살고 싶다고 강하게 비는 거야. 그리고 사요코의 저주를 물리치는 거다. 살아야겠다는 각오로 영혼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줘서는 안 돼. 만약 조금이라도 그 신념이 무너지거나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면 넌 죽는다. 사고일지 병일지 알 수는 없지만 결국 죽게 될 거다!” (238쪽)

-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살고 싶어! 하느님, 살려 주세요! 죽고 싶지 않아. 코모리 사요코! 난 이 세상에 살아서 하고 싶은 일이 아직도 잔뜩 있어! 살고 싶어! 절대로 죽고 싶지 않아!’ (240쪽)



  온누리에는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서운 것은 꼭 한 가지 있으리라 느껴요. 무서움을 생각하는 마음이 가장 무서우리라 느낍니다. 무서움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면 무서운 것이 없으리라 느껴요.


  온누리에는 사랑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속에 사랑이 없으면 사랑이 없다고 느낄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속에 사랑이 가득하면 어디에서나 사랑을 심고 꽃피우며 가꿉니다. 내 마음이 사랑으로 아름다우면, 나 스스로 즐겁게 웃으면서 이웃과 어깨동무를 합니다.


  마음에 따라 삶이 다릅니다.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삶을 다르게 일굽니다. 마음을 읽으면서 삶을 읽습니다. 마음을 아끼면서 이웃을 아낍니다. 마음을 빛내면서 하루를 새롭게 빛내고, 마음을 노래하면서 언제나 기쁘게 노래합니다. 4347.5.12.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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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2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4-05-12 20:21   좋아요 0 | URL
잘 날아갔네요.
한국에서는 거의 사랑받지 못해서
아마 초판만 찍고 재판을 못 찍지 않았나 싶은 책인데,
우연하게 한 권을 보았어요.
잘 아끼고 사랑해 주는 분 손길을 타면
예쁜 이야기가 되살아나리라 생각해요~
 
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15



전쟁과 평화는 서로 같은 얼굴

― 팔레스타인

 조 사코 글·그림

 함규진 옮김

 글논그림밭 펴냄, 2002.9.16.



  땅에 농약을 치면, 사람은 땅에서 나는 곡식에 묻은 농약을 함께 먹습니다. 땅에 농약을 치면, 농약이 땅으로 스미기 앞서 바람에 후 날립니다. 농약을 치는 사람은 늘 농약을 마시고, 농약바람은 이웃에까지 퍼집니다.


  자동차를 달리면, 자동차 배기가스가 나오고, 자동차에 탄 사람뿐 아니라 자동차를 타지 않고 길을 걷는 사람까지 배기가스를 마십니다. 여느 집에 있는 사람도 바깥에서 흐르는 배기가스를 마십니다.


  푸르게 우거진 숲은 언제나 푸른 바람을 베풉니다. 집이나 마을이 숲으로 둘러싸였으면 언제나 푸르고 싱그러운 바람을 마십니다. 숲으로 나들이를 하는 사람도 언제나 푸르면서 싱그러운 바람을 누립니다.


  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누리를 골고루 비춥니다. 누구라도 햇볕을 쬐고 햇빛을 받습니다. 집안에 있든 집밖에 있든 우리는 햇볕과 햇빛과 햇살을 먹으면서 삶을 누립니다.




- “이스라엘은 엿먹으라고 해! 유대놈들은 당한 만큼 갚아 주려는 거야. 그래서 팔레스타인을 저 꼴로 만들고 있다구. 그 새끼들이 그 땅에서 살려고 그러는 줄 알아? 정복하려는 거야, 정복.” (20쪽)

- ‘그곳은 실완, 아랍인들만의 마을이었다. 일 주일 전에 유대인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가족 몇몇을 내몰았다. 그리고 그 땅을 점거하고, 철조망을 두른 뒤, 다윗의 별을 내걸었다. 물론, 우지 기관총과 법무장관의 승인서도 빠지지 않았다. 그럼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36쪽)



  조 사코 님이 빚은 만화책 《팔레스타인》(글논그림밭,2002)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 이야기에 눈길을 두는 이라면, 이 만화책이 아니더라도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을 훤히 알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이야기에 눈길을 안 두는 이라면, 이 만화책에 흐르는 이야기를 못 믿거나 안 믿거나 ‘그래서 뭘 어쩌라고?’ 하는 마음이 됩니다.


  참은 무엇일까요. 팔레스타인에서 전쟁이 늘 벌어집니다. 사람이 죽고 다칩니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끔찍한 모습을 보면서 자랍니다. 전쟁과 폭력은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똑같이 찾아듭니다. 총칼을 들고 탱크를 모는 어른들은 이웃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총질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발길질을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군인이 되는 어른은 왜 이웃과 동무한테 총질을 하거나 발길질을 할까 궁금합니다. 이스라엘에 맞서 작은 무기를 든 팔레스타인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저쪽이 나를 죽이니 나도 저쪽을 죽여야 할까요. 저 녀석이 우리 아이를 때렸으니 나도 저 녀석을 때려야 할까요.





- ‘나는 ‘문제’라는 게 아마도 아직 그곳에 살고 있을 수백, 수천의 팔레스타인 사람일 거라고 짐작한다. 비록 그들은 영국 통치기인 1942년에 정해진 촌락의 범위 안에 갇혀 지내고 있겠지만. 이스라엘은 농촌의 건축 허가를 불허하는 일이 많아서, 그에 따라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불법’ 건물에서 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스라엘은 매년 수백 채의 불법 건물을 파괴한다.’ (81쪽)



  평화는 쉽지 않습니다. 평화가 쉽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에 평화는 쉽지 않습니다. 평화는 쉽습니다. 평화가 쉽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에 평화는 쉽습니다.


  배고픈 이한테 밥 한 그릇 나누어 줄 때에 평화입니다. 아픈 사람을 쓰다듬고 보살필 때에 평화입니다. 가난한 이하고 집·돈을 나눌 때에 평화입니다.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어깨동무할 때에 평화입니다. 두레와 품앗이로 서로 도울 때에 평화입니다.


  모든 미움은 전쟁입니다. 모든 손가락질은 전쟁입니다. 도둑질도 새치기도 전쟁입니다. 입시지옥도 전쟁이고 교통지옥도 전쟁입니다. 무역도 전쟁이며 경제발전도 전쟁입니다.


  등수를 매기고 점수를 따지는 일은 모두 전쟁입니다. 서로 아끼면서 웃을 수 없다면 모두 전쟁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지 않으면 모두 전쟁입니다. 혼자만 잘 살려고 한다면 모두 전쟁이에요.



- “군인 다섯 명이 저를 침대에서 들어올려, 바닥에 동댕이쳤어요. 그 바람에 제 팔이 부러졌죠. 제가 팔을 움켜쥐는 걸 보자, 놈들은 부러진 팔을 걷어차기 시작했죠. 의사와 간호원들이 말리려 했지만, 밀려서 나가떨어지고 말았어요. 놈들은 병원 직원 한 사람의 팔도 부러뜨렸죠.” (218쪽)

- ‘한 무리의 이스라엘 군인들이 12살인가 13살 먹은 팔레스타인 소년을 멈춰 세웠다. 그들 자신은 처마에서 비를 피하며, 소년에게 케피예를 벗도록 했다. 그리고 빗속에 서 있으라고. 아마 그 소년에게 그 일은 수없이 겪었던 치욕의 하나일 뿐이었으리라.’ (300쪽)




  사람은 총에 맞아도 죽고, 차에 치여도 죽습니다. 배가 가라앉아도 죽고, 비행기가 떨어져도 죽습니다. 입시지옥에 시달리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둘레에서 모질게 괴롭혀서 스스로 죽습니다. 온통 죽음투성이입니다. 총과 폭탄이 춤추지 않아도 죽음수렁이라면, 이 나라는 평화롭지 않습니다. 전투기와 탱크가 날지 않더라도 죽음물결이라면, 이 나라는 전쟁통입니다.


  팔레스타인 어린이는 어떻게 자랄 때에 평화로울까요. 이스라엘 어린이는 무엇을 배울 때에 평화로울까요. 한국 어린이는 집과 마을과 학교에서 무엇을 보고 자랄 때에 평화로울까요. 일본과 중국과 미국 어린이는 어떤 넋을 추스르면서 어떤 삶을 지을 수 있을 때에 평화로울까요.


  전쟁과 평화는 서로 같은 얼굴입니다. 그악스러운 사람이 따로 있기에 전쟁이 터지지 않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따로 있기에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악스럽게 살아가면 전쟁이 자랍니다. 우리 스스로 사랑스럽게 어깨동무하면 평화가 싹틉니다.


  미친 듯이 달리며 빵빵거리는 자동차도 전쟁이에요. 농약이 춤추는 시골 논밭도 전쟁이에요. 큰도시 커다란 할인매장에서 바글거리는 사람들도 전쟁이에요. 술에 절어 해롱거리면서 떠드는 사람들도 전쟁이에요.


  맑게 웃으며 노래하는 아이들은 평화예요. 빙그레 웃으며 아침저녁을 지어 밥상에 올리는 손길은 평화예요. 풀과 나무를 살뜰히 보듬는 사람은 평화예요. 숲이 평화이고, 푸른 들이 평화입니다. 나비와 제비가 평화요, 개구리와 풀벌레가 평화입니다. 4347.5.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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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다 세트 - 전3권
강경옥 지음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강경옥 님 만화책 <두 사람이다> 세 권을 놓고 느낌글을 마무리지었다.

이 만화책을 장만할 분들은 세 권 묶음으로 고르실 테니,

낱권마다 붙인 느낌글을 한 자리에 그러모은다.

강경옥 님이 앞으로도 <설희>를 비롯해 

아름다운 만화를 우리한테 베풀어 주시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1권 : 이녁은 어떤 나무를 심겠소?


2권 : 아이들이 살아가는 길

http://blog.aladin.co.kr/hbooks/6998961 


3권 : 이녁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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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다 2
강경옥 지음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15



아이들이 살아가는 길

― 두 사람이다 2

 강경옥 글·그림

 해든아침 펴냄, 2007.7.20.



  좀 어리석은 줄 알면서 일곱 살 큰아이더러 “놀이터가 좋니, 바다가 좋니?” 하고 묻습니다. 둘 다 좋아하니 두 군데 모두 갈 만하지만, 두 군데에서 다 놀자면, 자전거로 면소재지 놀이터에다가 제법 달려가야 할 바닷가까지 오가면서 아버지가 고단합니다. 아이들한테 무언가 물을 적에 앞쪽에 더 좋아할 만한 말을 넣는다고 하기에, “바다와 놀이터”라 안 묻고 “놀이터와 바다”로 물었어요. 큰아이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다가 “바다요!” 하고 말합니다. 그래, 놀이터를 앞지를 만큼 바다가 훨씬 좋구나. 아버지도 바다가 놀이터보다 훨씬 좋단다. 바다가 들려주는 노래와 냄새와 빛깔이 모두 좋아.


  아이들한테 “바다와 골짜기” 또는 “골짜기와 바다” 가운데 어느 쪽이 좋으냐고, 어디로 나들이를 가면 좋으냐고 물으면 무어라 말할까요. 큰아이는 또 한동안 망설일 테지요. 거참 아버지도, 둘 다 가면 되잖아, 하고 생각할 테지요. 그래, 오늘은 바다를 가고 이튿날은 골짜기를 가고 다음날은 놀이터에 가면 될 테지.




- ‘세계가 뒤바뀌었다. 어제 오후부터. 아침이면 일어나서 엄마와 늦잠 실랑이 하며 등교하고, 공부하고 밥을 먹고, TV를 보고, 친구와 수다 떨고, 그 모든 일상이 갑자기 검은 먹칠을 칠하듯 세계가 바뀌었어.’ (8쪽)

- “여행을 가자, 지나야.” “여행?” “그래. 문제를 해결하러 가는 거야.” (54∼55쪽)



  밥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밥만 먹고 자라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먹습니다. 동무와 뛰놀면서 이야기를 먹고, 언니 동생과 놀면서 이야기를 먹습니다. 어머니 아버지하고 어울리거나 놀거나 심부름을 하면서 이야기를 먹습니다.


  이야기는 삶입니다. 이야기를 먹을 적에는 늘 삶을 먹습니다. 밥을 짓는 어버이 곁에서 밥짓기를 구경하면서 삶과 이야기를 먹습니다. 밭을 일구거나 풀을 뜯는 어버이 곁에서 밭일과 풀뜯기를 구경하면서 삶과 이야기를 먹습니다. 언제나 자전거에 태워 함께 마실을 다니는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달리는 바람과 냄새와 빛을 모두 받아먹습니다.


  뛰노는 아이들은 놀이가 노래입니다. 모든 놀이는 노래입니다. 노래가 없는 놀이는 없습니다. 노래를 부르지 않고 논다면, 아이들은 논다고 할 수 없어요. 아마, 레크리에이션이나 학습이나 체험을 할 수는 있겠지요. 레크리에이션이나 학습이나 체험에는 노래가 없거든요.


  학교에도 노래가 없어요. 교과서 진도를 나가면서 노래를 부르는 교사나 학생이 없습니다. 시험을 치르면서 노래를 부르는 교사나 학생이 없어요. 음악 수업이라서 노래를 부를까요? 아닙니다. 학교에서는 음악 수업은 수업이요 공부이며 학습입니다. 노래가 아닙니다. 그러면, 방송에서 떠도는 ‘아이돌 만들기’나 ‘가수 되기’는 노래일까요?




- “네 인간성 안 좋은 줄은 알았지만 이건 정말 심했다! 넌 자신에게 창피하지도 않니?” (26쪽)

- “세상에 끝이 없는 경우는 없어. 그러나 끝이 나도 또 어떤 일들이 다시 시작되지. 결국 세상 일은 끝의 연속. 그리고 또 시작의 연속이 아닐까? 우리는 잠시 순간을 정리하는 걸 거야.” (58쪽)

-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 지나야. 지금 네겐 그런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일 수도 있어.” (145쪽)



  아이들이 죽습니다. 자동차에 치여 죽고, 시험지옥에서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습니다. 가난한 살림이라면서 어버이가 함께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입니다. 엉터리로 몰던 배가 가라앉아 죽습니다. 엉성하게 지은 다리가 무너져서 죽습니다. 엉망으로 지은 건물이 와르르 무너져 깔려죽습니다. 어른들끼리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죽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를 소년병사로 데려가려고 죽입니다. 핵폭탄을 떨어뜨려 죽이고, 핵발전소를 돌리면서 방사능으로 죽입니다. 방사능에 젖은 분유와 우유를 먹여 아이들을 죽입니다. 입시지옥과 취업지옥에서 쳇바퀴와 뺑뺑이를 돌려 스스로 제풀에 지쳐 죽음으로 내몹니다.


  온통 죽음수렁입니다. 온갖 죽음밭입니다. 아이들은 지구별에서 무엇을 해야 살아갈 만할까요. 이웃이나 동무가 없이 서로 툭탁툭탁 겨루면서 밟고 올라서지 못하면 모두 죽어야 하는가요. 어깨동무와 이웃사랑은 잊은 채 혼자 쇠밥그릇 땅땅 두들기면서 살아남아야 하는가요.


  아이들 놀이에는 노래가 있을 뿐, 등수도 순위도 차례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운동장이나 빈터나 골목을 달리며 놀 적에 1등부터 꼴등까지 매기지 않습니다. 장난 삼아 차례를 매기더라도 다시 달리면 차례는 덧없습니다. 1등은 꼴등이 되고 꼴등은 1등이 됩니다. 모두 1등이고 모두 꼴등입니다. 웃으면서 달리고, 웃으면서 노래해요.





- “다행이다.” “응?” “다른 사람을 걱정할 정도로 여유가 생긴 것 같아서 말야. 너, 지금까지 반 넋나가 있었잖아.” (98쪽)

- ‘안 될 때 안 되더라도, 혹여 죽을 때 죽더라도, 할 수 있는 것까지는 열심히 해 보는 거야. 귀신 따위에 살아 있는 인간이 질 수야 없지. 저주도 마찬가지야. 결국 인간의 일인걸. 그렇지?’ (119쪽)



  강경옥 님 만화책 《두 사람이다》(해든아침,2007)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에 젖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는 ‘스스로 잘못한 일’이 없습니다. 아주 수수한 고등학생입니다. 그러나, 먼먼 옛날 어떤 어른이 저지른 잘못이 있다고 해서 그 잘못이 이어지고 이어지면서 이 아이한테까지 들이닥칩니다.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탄 버스가 뒤집어집니다.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탄 배가 가라앉습니다. 기차가 넘어지고 비행기가 떨어집니다. 버스와 배와 기차와 비행기에 탄 아이들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요. 이 아이들은 왜 이렇게 아프거나 슬프다가 목숨까지 잃어야 할까요. 목숨을 잃은 아이를 둔 어버이는 왜 이토록 모진 아픔과 슬픔을 치러야 할까요. 참말 이녁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런 괴로움이 몰려들어야 하는가요.


  대통령을 잘못 뽑은 탓일까요. 시장이나 군수나 도지사나 교육감을 잘못 뽑은 탓일까요. 어른들이 우리 사회를 제도권으로 꽁꽁 묶은데다가 국가보안법이나 자유무역협정이니 쌀개방이니 도시화이니 새마을운동이니 주한미군이니 한국전쟁이니 전쟁무기이니 핵발전소이니 송전탑이니, 그야말로 끝간데없이 바보짓을 하기 때문일까요.





- “때때는 내 말도 누구의 말도 아닌 너 자신의 육감을 믿어야 돼. 지나야.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없는 상황도 있을 수 있는 거니까.” (159쪽)

- “그렇구나. 그래, 사는 건 이런 사소한 것에 행운을 느낄 수도 있는걸. 살아 있다는 건 인간관계에 의해서 더더욱 실감돼. 살아 있다는 건 좋은 거야.” (177쪽)



  우리 집 처마 밑에는 제비집이 셋 있습니다. 제비는 세 군데 제비집 가운데 한 곳에 깃듭니다. 멀쩡한 다른 한 곳은 짓기만 하고 깃들지 않습니다. 허물어진 한 곳은 조금 손질하다가 그대로 둡니다. 멀쩡한 다른 제비집에는 참새나 딱새가 살짝 깃들곤 합니다. 먼 옛날부터 제비는 사람들이 둥지를 허물어도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씩씩하게 둥지를 새로 지었습니다. 요즈음은 시골사람이 온갖 곳에 농약을 뿌려댈 뿐 아니라, 마을에서 숲과 나무를 모조리 없애고, 마당에도 풀이나 나무를 두지 않으려 합니다. 풀이 있으면 모기가 생긴다 하고, 나무가 있으면 그늘진다고 해서, 참말 요즈음 시골사람은 풀과 나무를 끔찍하게 싫어해요. 시골에는 논과 밭만 있으면 된다 여기고, 숲과 멧골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숲과 멧골이 있어야 골짝물이 흘러 맑은 물을 마실 수 있지만, 이제는 시골에서마저 ‘댐에 가둔 수돗물을 마셔야 몸에 좋다’고 여기기 일쑤입니다. 시골사람 스스로 시골물을 안 좋아합니다.


  도시에는 맑은 냇물이나 샘물이나 우물물이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물꼭지에 정수기를 달아 수돗물을 마실밖에 없습니다. 도시사람은 나들이를 다니면서 가게에서 ‘페트병 먹는샘물’을 사다 마십니다. 이제 한국에서는 냇물이나 샘물을 즐겁게 떠 마실 만한 데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어디를 가도 공장과 발전소와 골프장이다 보니, 또 송전탑과 고속도로와 찻길이다 보니, 게다가 시골에서는 농약물결이다 보니, 한국에서는 맑은 바람을 마시기 몹시 어렵습니다.


  맑은 물과 바람이 없고 고운 흙과 숲이 없는 한국입니다. 이런 한국에서 친환경이나 유기농으로 거두는 곡식이나 열매는 이 나라 사람들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궁금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가장 맑거나 가장 좋거나 가장 정갈하거나 가장 아름답거나 가장 사랑스러운 숨결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 ‘도망치지 않는다.’ (240쪽)



  아이들이 살아가는 길은, 아이들이 사랑하는 길입니다. 어른도 아이와 함께 이웃과 동무하고 사랑하는 길이 될 때에 참답고 착하게 살아가는 길이 됩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삶이 됩니다. 사랑은 내빼지 않습니다. 삶은 사랑처럼 내빼거나 등돌리지 않습니다. 사랑은 남을 때리거나 괴롭히지 않습니다. 삶이라 할 적에도 이웃이나 동무를 때리거나 괴롭히지 않습니다.


  어깨동무하기에 삶입니다. 두레와 품앗이를 하기에 삶입니다. 서로 아끼고 돌보며 좋아하기에 사랑입니다. 서로 믿고 따르며 손을 맞잡고 눈빛을 밝히기에 사랑입니다. 아이들이 사랑을 배워 사랑으로 살아가자면, 누구보다 우리 어른 스스로 사랑을 배워 사랑으로 살아가야지 싶습니다. 밥 한 그릇에 사랑을 담고, 말 한 마디에 사랑을 실으면서, 아이와 함께 이 땅에 튼튼하게 두 다리로 서야지 싶습니다. 4347.5.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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