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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 글논그림밭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15
전쟁과 평화는 서로 같은 얼굴
― 팔레스타인
조 사코 글·그림
함규진 옮김
글논그림밭 펴냄, 2002.9.16.
땅에 농약을 치면, 사람은 땅에서 나는 곡식에 묻은 농약을 함께 먹습니다. 땅에 농약을 치면, 농약이 땅으로 스미기 앞서 바람에 후 날립니다. 농약을 치는 사람은 늘 농약을 마시고, 농약바람은 이웃에까지 퍼집니다.
자동차를 달리면, 자동차 배기가스가 나오고, 자동차에 탄 사람뿐 아니라 자동차를 타지 않고 길을 걷는 사람까지 배기가스를 마십니다. 여느 집에 있는 사람도 바깥에서 흐르는 배기가스를 마십니다.
푸르게 우거진 숲은 언제나 푸른 바람을 베풉니다. 집이나 마을이 숲으로 둘러싸였으면 언제나 푸르고 싱그러운 바람을 마십니다. 숲으로 나들이를 하는 사람도 언제나 푸르면서 싱그러운 바람을 누립니다.
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누리를 골고루 비춥니다. 누구라도 햇볕을 쬐고 햇빛을 받습니다. 집안에 있든 집밖에 있든 우리는 햇볕과 햇빛과 햇살을 먹으면서 삶을 누립니다.
- “이스라엘은 엿먹으라고 해! 유대놈들은 당한 만큼 갚아 주려는 거야. 그래서 팔레스타인을 저 꼴로 만들고 있다구. 그 새끼들이 그 땅에서 살려고 그러는 줄 알아? 정복하려는 거야, 정복.” (20쪽)
- ‘그곳은 실완, 아랍인들만의 마을이었다. 일 주일 전에 유대인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가족 몇몇을 내몰았다. 그리고 그 땅을 점거하고, 철조망을 두른 뒤, 다윗의 별을 내걸었다. 물론, 우지 기관총과 법무장관의 승인서도 빠지지 않았다. 그럼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36쪽)
조 사코 님이 빚은 만화책 《팔레스타인》(글논그림밭,2002)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팔레스타인 이야기에 눈길을 두는 이라면, 이 만화책이 아니더라도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을 훤히 알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이야기에 눈길을 안 두는 이라면, 이 만화책에 흐르는 이야기를 못 믿거나 안 믿거나 ‘그래서 뭘 어쩌라고?’ 하는 마음이 됩니다.
참은 무엇일까요. 팔레스타인에서 전쟁이 늘 벌어집니다. 사람이 죽고 다칩니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끔찍한 모습을 보면서 자랍니다. 전쟁과 폭력은 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똑같이 찾아듭니다. 총칼을 들고 탱크를 모는 어른들은 이웃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총질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발길질을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군인이 되는 어른은 왜 이웃과 동무한테 총질을 하거나 발길질을 할까 궁금합니다. 이스라엘에 맞서 작은 무기를 든 팔레스타인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저쪽이 나를 죽이니 나도 저쪽을 죽여야 할까요. 저 녀석이 우리 아이를 때렸으니 나도 저 녀석을 때려야 할까요.
- ‘나는 ‘문제’라는 게 아마도 아직 그곳에 살고 있을 수백, 수천의 팔레스타인 사람일 거라고 짐작한다. 비록 그들은 영국 통치기인 1942년에 정해진 촌락의 범위 안에 갇혀 지내고 있겠지만. 이스라엘은 농촌의 건축 허가를 불허하는 일이 많아서, 그에 따라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불법’ 건물에서 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스라엘은 매년 수백 채의 불법 건물을 파괴한다.’ (81쪽)
평화는 쉽지 않습니다. 평화가 쉽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에 평화는 쉽지 않습니다. 평화는 쉽습니다. 평화가 쉽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에 평화는 쉽습니다.
배고픈 이한테 밥 한 그릇 나누어 줄 때에 평화입니다. 아픈 사람을 쓰다듬고 보살필 때에 평화입니다. 가난한 이하고 집·돈을 나눌 때에 평화입니다.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어깨동무할 때에 평화입니다. 두레와 품앗이로 서로 도울 때에 평화입니다.
모든 미움은 전쟁입니다. 모든 손가락질은 전쟁입니다. 도둑질도 새치기도 전쟁입니다. 입시지옥도 전쟁이고 교통지옥도 전쟁입니다. 무역도 전쟁이며 경제발전도 전쟁입니다.
등수를 매기고 점수를 따지는 일은 모두 전쟁입니다. 서로 아끼면서 웃을 수 없다면 모두 전쟁입니다.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지 않으면 모두 전쟁입니다. 혼자만 잘 살려고 한다면 모두 전쟁이에요.
- “군인 다섯 명이 저를 침대에서 들어올려, 바닥에 동댕이쳤어요. 그 바람에 제 팔이 부러졌죠. 제가 팔을 움켜쥐는 걸 보자, 놈들은 부러진 팔을 걷어차기 시작했죠. 의사와 간호원들이 말리려 했지만, 밀려서 나가떨어지고 말았어요. 놈들은 병원 직원 한 사람의 팔도 부러뜨렸죠.” (218쪽)
- ‘한 무리의 이스라엘 군인들이 12살인가 13살 먹은 팔레스타인 소년을 멈춰 세웠다. 그들 자신은 처마에서 비를 피하며, 소년에게 케피예를 벗도록 했다. 그리고 빗속에 서 있으라고. 아마 그 소년에게 그 일은 수없이 겪었던 치욕의 하나일 뿐이었으리라.’ (300쪽)
사람은 총에 맞아도 죽고, 차에 치여도 죽습니다. 배가 가라앉아도 죽고, 비행기가 떨어져도 죽습니다. 입시지옥에 시달리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둘레에서 모질게 괴롭혀서 스스로 죽습니다. 온통 죽음투성이입니다. 총과 폭탄이 춤추지 않아도 죽음수렁이라면, 이 나라는 평화롭지 않습니다. 전투기와 탱크가 날지 않더라도 죽음물결이라면, 이 나라는 전쟁통입니다.
팔레스타인 어린이는 어떻게 자랄 때에 평화로울까요. 이스라엘 어린이는 무엇을 배울 때에 평화로울까요. 한국 어린이는 집과 마을과 학교에서 무엇을 보고 자랄 때에 평화로울까요. 일본과 중국과 미국 어린이는 어떤 넋을 추스르면서 어떤 삶을 지을 수 있을 때에 평화로울까요.
전쟁과 평화는 서로 같은 얼굴입니다. 그악스러운 사람이 따로 있기에 전쟁이 터지지 않습니다. 훌륭한 사람이 따로 있기에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악스럽게 살아가면 전쟁이 자랍니다. 우리 스스로 사랑스럽게 어깨동무하면 평화가 싹틉니다.
미친 듯이 달리며 빵빵거리는 자동차도 전쟁이에요. 농약이 춤추는 시골 논밭도 전쟁이에요. 큰도시 커다란 할인매장에서 바글거리는 사람들도 전쟁이에요. 술에 절어 해롱거리면서 떠드는 사람들도 전쟁이에요.
맑게 웃으며 노래하는 아이들은 평화예요. 빙그레 웃으며 아침저녁을 지어 밥상에 올리는 손길은 평화예요. 풀과 나무를 살뜰히 보듬는 사람은 평화예요. 숲이 평화이고, 푸른 들이 평화입니다. 나비와 제비가 평화요, 개구리와 풀벌레가 평화입니다. 4347.5.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