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다 2
강경옥 지음 / 작은책방(해든아침)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15



아이들이 살아가는 길

― 두 사람이다 2

 강경옥 글·그림

 해든아침 펴냄, 2007.7.20.



  좀 어리석은 줄 알면서 일곱 살 큰아이더러 “놀이터가 좋니, 바다가 좋니?” 하고 묻습니다. 둘 다 좋아하니 두 군데 모두 갈 만하지만, 두 군데에서 다 놀자면, 자전거로 면소재지 놀이터에다가 제법 달려가야 할 바닷가까지 오가면서 아버지가 고단합니다. 아이들한테 무언가 물을 적에 앞쪽에 더 좋아할 만한 말을 넣는다고 하기에, “바다와 놀이터”라 안 묻고 “놀이터와 바다”로 물었어요. 큰아이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다가 “바다요!” 하고 말합니다. 그래, 놀이터를 앞지를 만큼 바다가 훨씬 좋구나. 아버지도 바다가 놀이터보다 훨씬 좋단다. 바다가 들려주는 노래와 냄새와 빛깔이 모두 좋아.


  아이들한테 “바다와 골짜기” 또는 “골짜기와 바다” 가운데 어느 쪽이 좋으냐고, 어디로 나들이를 가면 좋으냐고 물으면 무어라 말할까요. 큰아이는 또 한동안 망설일 테지요. 거참 아버지도, 둘 다 가면 되잖아, 하고 생각할 테지요. 그래, 오늘은 바다를 가고 이튿날은 골짜기를 가고 다음날은 놀이터에 가면 될 테지.




- ‘세계가 뒤바뀌었다. 어제 오후부터. 아침이면 일어나서 엄마와 늦잠 실랑이 하며 등교하고, 공부하고 밥을 먹고, TV를 보고, 친구와 수다 떨고, 그 모든 일상이 갑자기 검은 먹칠을 칠하듯 세계가 바뀌었어.’ (8쪽)

- “여행을 가자, 지나야.” “여행?” “그래. 문제를 해결하러 가는 거야.” (54∼55쪽)



  밥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밥만 먹고 자라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이야기를 먹습니다. 동무와 뛰놀면서 이야기를 먹고, 언니 동생과 놀면서 이야기를 먹습니다. 어머니 아버지하고 어울리거나 놀거나 심부름을 하면서 이야기를 먹습니다.


  이야기는 삶입니다. 이야기를 먹을 적에는 늘 삶을 먹습니다. 밥을 짓는 어버이 곁에서 밥짓기를 구경하면서 삶과 이야기를 먹습니다. 밭을 일구거나 풀을 뜯는 어버이 곁에서 밭일과 풀뜯기를 구경하면서 삶과 이야기를 먹습니다. 언제나 자전거에 태워 함께 마실을 다니는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달리는 바람과 냄새와 빛을 모두 받아먹습니다.


  뛰노는 아이들은 놀이가 노래입니다. 모든 놀이는 노래입니다. 노래가 없는 놀이는 없습니다. 노래를 부르지 않고 논다면, 아이들은 논다고 할 수 없어요. 아마, 레크리에이션이나 학습이나 체험을 할 수는 있겠지요. 레크리에이션이나 학습이나 체험에는 노래가 없거든요.


  학교에도 노래가 없어요. 교과서 진도를 나가면서 노래를 부르는 교사나 학생이 없습니다. 시험을 치르면서 노래를 부르는 교사나 학생이 없어요. 음악 수업이라서 노래를 부를까요? 아닙니다. 학교에서는 음악 수업은 수업이요 공부이며 학습입니다. 노래가 아닙니다. 그러면, 방송에서 떠도는 ‘아이돌 만들기’나 ‘가수 되기’는 노래일까요?




- “네 인간성 안 좋은 줄은 알았지만 이건 정말 심했다! 넌 자신에게 창피하지도 않니?” (26쪽)

- “세상에 끝이 없는 경우는 없어. 그러나 끝이 나도 또 어떤 일들이 다시 시작되지. 결국 세상 일은 끝의 연속. 그리고 또 시작의 연속이 아닐까? 우리는 잠시 순간을 정리하는 걸 거야.” (58쪽)

-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 지나야. 지금 네겐 그런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일 수도 있어.” (145쪽)



  아이들이 죽습니다. 자동차에 치여 죽고, 시험지옥에서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습니다. 가난한 살림이라면서 어버이가 함께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입니다. 엉터리로 몰던 배가 가라앉아 죽습니다. 엉성하게 지은 다리가 무너져서 죽습니다. 엉망으로 지은 건물이 와르르 무너져 깔려죽습니다. 어른들끼리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죽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를 소년병사로 데려가려고 죽입니다. 핵폭탄을 떨어뜨려 죽이고, 핵발전소를 돌리면서 방사능으로 죽입니다. 방사능에 젖은 분유와 우유를 먹여 아이들을 죽입니다. 입시지옥과 취업지옥에서 쳇바퀴와 뺑뺑이를 돌려 스스로 제풀에 지쳐 죽음으로 내몹니다.


  온통 죽음수렁입니다. 온갖 죽음밭입니다. 아이들은 지구별에서 무엇을 해야 살아갈 만할까요. 이웃이나 동무가 없이 서로 툭탁툭탁 겨루면서 밟고 올라서지 못하면 모두 죽어야 하는가요. 어깨동무와 이웃사랑은 잊은 채 혼자 쇠밥그릇 땅땅 두들기면서 살아남아야 하는가요.


  아이들 놀이에는 노래가 있을 뿐, 등수도 순위도 차례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운동장이나 빈터나 골목을 달리며 놀 적에 1등부터 꼴등까지 매기지 않습니다. 장난 삼아 차례를 매기더라도 다시 달리면 차례는 덧없습니다. 1등은 꼴등이 되고 꼴등은 1등이 됩니다. 모두 1등이고 모두 꼴등입니다. 웃으면서 달리고, 웃으면서 노래해요.





- “다행이다.” “응?” “다른 사람을 걱정할 정도로 여유가 생긴 것 같아서 말야. 너, 지금까지 반 넋나가 있었잖아.” (98쪽)

- ‘안 될 때 안 되더라도, 혹여 죽을 때 죽더라도, 할 수 있는 것까지는 열심히 해 보는 거야. 귀신 따위에 살아 있는 인간이 질 수야 없지. 저주도 마찬가지야. 결국 인간의 일인걸. 그렇지?’ (119쪽)



  강경옥 님 만화책 《두 사람이다》(해든아침,2007) 둘째 권을 읽으며 생각에 젖습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는 ‘스스로 잘못한 일’이 없습니다. 아주 수수한 고등학생입니다. 그러나, 먼먼 옛날 어떤 어른이 저지른 잘못이 있다고 해서 그 잘못이 이어지고 이어지면서 이 아이한테까지 들이닥칩니다.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탄 버스가 뒤집어집니다.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이 탄 배가 가라앉습니다. 기차가 넘어지고 비행기가 떨어집니다. 버스와 배와 기차와 비행기에 탄 아이들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까요. 이 아이들은 왜 이렇게 아프거나 슬프다가 목숨까지 잃어야 할까요. 목숨을 잃은 아이를 둔 어버이는 왜 이토록 모진 아픔과 슬픔을 치러야 할까요. 참말 이녁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고 이런 괴로움이 몰려들어야 하는가요.


  대통령을 잘못 뽑은 탓일까요. 시장이나 군수나 도지사나 교육감을 잘못 뽑은 탓일까요. 어른들이 우리 사회를 제도권으로 꽁꽁 묶은데다가 국가보안법이나 자유무역협정이니 쌀개방이니 도시화이니 새마을운동이니 주한미군이니 한국전쟁이니 전쟁무기이니 핵발전소이니 송전탑이니, 그야말로 끝간데없이 바보짓을 하기 때문일까요.





- “때때는 내 말도 누구의 말도 아닌 너 자신의 육감을 믿어야 돼. 지나야.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없는 상황도 있을 수 있는 거니까.” (159쪽)

- “그렇구나. 그래, 사는 건 이런 사소한 것에 행운을 느낄 수도 있는걸. 살아 있다는 건 인간관계에 의해서 더더욱 실감돼. 살아 있다는 건 좋은 거야.” (177쪽)



  우리 집 처마 밑에는 제비집이 셋 있습니다. 제비는 세 군데 제비집 가운데 한 곳에 깃듭니다. 멀쩡한 다른 한 곳은 짓기만 하고 깃들지 않습니다. 허물어진 한 곳은 조금 손질하다가 그대로 둡니다. 멀쩡한 다른 제비집에는 참새나 딱새가 살짝 깃들곤 합니다. 먼 옛날부터 제비는 사람들이 둥지를 허물어도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씩씩하게 둥지를 새로 지었습니다. 요즈음은 시골사람이 온갖 곳에 농약을 뿌려댈 뿐 아니라, 마을에서 숲과 나무를 모조리 없애고, 마당에도 풀이나 나무를 두지 않으려 합니다. 풀이 있으면 모기가 생긴다 하고, 나무가 있으면 그늘진다고 해서, 참말 요즈음 시골사람은 풀과 나무를 끔찍하게 싫어해요. 시골에는 논과 밭만 있으면 된다 여기고, 숲과 멧골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숲과 멧골이 있어야 골짝물이 흘러 맑은 물을 마실 수 있지만, 이제는 시골에서마저 ‘댐에 가둔 수돗물을 마셔야 몸에 좋다’고 여기기 일쑤입니다. 시골사람 스스로 시골물을 안 좋아합니다.


  도시에는 맑은 냇물이나 샘물이나 우물물이 없습니다. 도시에서는 물꼭지에 정수기를 달아 수돗물을 마실밖에 없습니다. 도시사람은 나들이를 다니면서 가게에서 ‘페트병 먹는샘물’을 사다 마십니다. 이제 한국에서는 냇물이나 샘물을 즐겁게 떠 마실 만한 데가 많이 사라졌습니다. 어디를 가도 공장과 발전소와 골프장이다 보니, 또 송전탑과 고속도로와 찻길이다 보니, 게다가 시골에서는 농약물결이다 보니, 한국에서는 맑은 바람을 마시기 몹시 어렵습니다.


  맑은 물과 바람이 없고 고운 흙과 숲이 없는 한국입니다. 이런 한국에서 친환경이나 유기농으로 거두는 곡식이나 열매는 이 나라 사람들한테 얼마나 도움이 될까 궁금합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가장 맑거나 가장 좋거나 가장 정갈하거나 가장 아름답거나 가장 사랑스러운 숨결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 ‘도망치지 않는다.’ (240쪽)



  아이들이 살아가는 길은, 아이들이 사랑하는 길입니다. 어른도 아이와 함께 이웃과 동무하고 사랑하는 길이 될 때에 참답고 착하게 살아가는 길이 됩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삶이 됩니다. 사랑은 내빼지 않습니다. 삶은 사랑처럼 내빼거나 등돌리지 않습니다. 사랑은 남을 때리거나 괴롭히지 않습니다. 삶이라 할 적에도 이웃이나 동무를 때리거나 괴롭히지 않습니다.


  어깨동무하기에 삶입니다. 두레와 품앗이를 하기에 삶입니다. 서로 아끼고 돌보며 좋아하기에 사랑입니다. 서로 믿고 따르며 손을 맞잡고 눈빛을 밝히기에 사랑입니다. 아이들이 사랑을 배워 사랑으로 살아가자면, 누구보다 우리 어른 스스로 사랑을 배워 사랑으로 살아가야지 싶습니다. 밥 한 그릇에 사랑을 담고, 말 한 마디에 사랑을 실으면서, 아이와 함께 이 땅에 튼튼하게 두 다리로 서야지 싶습니다. 4347.5.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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