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로 살아라
정송희 만화 / 씨네21북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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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50



오늘 이곳에서 누가 살아가는가

― 나대로 살아라

 정송희 글·그림

 씨네21북스 펴냄, 2013.12.31.



  정송희 님이 그린 만화책 《나대로 살아라》(씨네21북스,2013)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은 ‘소로, 스콧·헬렌, 타샤 튜더’ 네 사람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고등학교 아이들 눈높이에서 도서관에서 여러 가지 책을 살펴서 읽으며 느낀 이야기를 간추리듯이 들려줍니다.


  그런데, 만화책을 넘기며 한 가지 궁금합니다. 정송희 님은 왜 굳이 이 네 사람을 골라서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그리고, 이 책에 깃든 이야기는 네 사람이 쓴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기 일쑤입니다. 정송희 님 나름대로 삭히면서 새로운 넋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네 사람 이야기를 네 사람이 쓴 책을 바탕으로 ‘만화대사를 꾸며 이야기를 엮는다’면, 굳이 이 만화책을 읽을 까닭은 없지 싶습니다. 애써 만화책으로 네 사람 이야기를 새롭게 바라보아야 할 만한 까닭을 만화로 담아야 할 노릇이지 싶습니다.



- “에머슨은 가까운 친구였지만 소로를 잘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아.” “글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한 것 같은데.” (51쪽)



  만화책 《나대로 살아라》에서 주인공은 고등학교 아이 둘입니다. 소로도, 스콧이나 헬렌도, 타샤 튜더도 주인공이 아닙니다. 고등학교 아이 둘이 주인공이 되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여러 사람을 만나려 합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아이 둘은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눈을 뜨면서 삶을 짓고 싶거든요. 고등학교 아이 둘은 스스로 삶을 다시 만나고 아름답게 가꾸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이 만화책은 ‘네 사람이 쓴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넘어서, 고등학교 아이 둘이 ‘네 사람을 만나면서 느낀 마음과 품은 생각’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 ‘스콧은 깔끔하고 소박한 생활. 훌륭한 농장 운영. 차곡차곡 쌓은 땔감과 퇴비 더미. 반짝반짝 빛나는 연장들. 꼼꼼하게 정리된 노트. 정성 들여 읽기 쉽게 쓴 원고에서 예술가였어. 난 스콧이 생활 자체를 예술 작업처럼 하고 있다고 느꼈어. 스콧은 내 독특한 성격을 잘 배려해 줬어.’ (81쪽)

- ‘스콧은 생활 속으로 라디오가 끼어드는 것을 도저히 참지 못했어. 라디오는 기껏해야 뉴스 제목만 들을 정도로 사소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보았지. 우리는 운 좋게도 ‘소음의 시대’가 시작되기 전부터 살아왔어. 저녁이나 낮이나 모두 조용했지. 아침 뉴스도 없었어.’ (96쪽)



  오늘 이곳에서 누가 살아가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오늘 이곳에서 고등학교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 되어 살아가는가 하고 되새깁니다. 입시지옥에서 홀가분한 고등학교 아이들은 몇이나 될까요. 자살로 중·고등학교를 마치는 아이들은 얼마나 많을까요. 대학교에 들어갔어도 마음을 못 놓는 아이들은 얼마나 많을까요. 대학교에 못 들어간 탓에 마음이 찢어지는 아이들은 얼마나 많을까요.


  만화책 《나대로 살아라》는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 나라 푸름이한테 어떤 빛이 될 만한지 궁금합니다. 이 만화책이 모자라거나 아쉽다는 소리는 아닙니다. 이 만화책이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서 들여다보아야 할 곳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이 찬찬히 마음을 쏟아서 바라보아야 할 곳이 있으리라 하고 생각합니다.



- ‘나는 틈틈이 침실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에 ‘햇빛, 새소리, 눈송이, 나무’같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이름을 새겼어.’ (99쪽)

- ‘나는 옛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노래를 읊조렸지. ‘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산처럼 강하게 살아라! 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 네 심장에 여름날의 온기를 간직해라. 그러면 위대한 혼이 언제나 너와 함께하리라’’ (113∼114쪽)



  소로 님이 쓴 책은 언제 읽어도 아름답습니다. 스콧 님이나 헬렌 님이 쓴 책도, 타샤 튜더 님이 쓴 책도 더없이 사랑스럽습니다. 이러한 책들로 나아가는 길동무가 되는 《나대로 살아라》도 여러모로 뜻이 있으리라 느껴요. 아름다운 길동무를 알려주는 책이 있어도 우리 삶은 한결 넉넉할 테니까요.


  그러면, 소로를 만난 고등학교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요. 스콧과 헬렌을 만난 고등학교 아이들은 스스로 삶을 어떻게 가꾸는가요.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그저 ‘옛사람’한테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을 뿐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지식을 쌓기는 하지만, 무언가 달라지는 낌새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저 새로운 사람을 찾아나서기만 합니다. 생각이 자라거나 꿈을 키우거나 사랑을 노래하는 빛으로 흐르는 데까지 건드리지 못합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나대로 살아야지요. 쳇바퀴를 도는 삶이 아닌, 나대로 가꾸는 삶으로 나아가야지요. 도시 물질문명에 갇혀 허덕이는 삶이 아닌, 나대로 사랑하면서 보듬는 하루를 누려야지요. 4347.7.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 아버지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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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실격 1
마츠야마 하나코 지음, 김부장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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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49



가장 바보 같은 녀석

― 아이 실격 1

 마츠야마 하나코 글·그림

 김부장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3.12.18.



  마츠야마 하나코 님이 빚은 만화책 《아이 실격》(애니북스,2013)을 읽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라는 사람이 쓴 소설책 이름을 흉내내어 빚은 만화책 《아이 실격》이랄 수 있습니다. 만화쟁이 마츠야마 하나코 님이 ‘사람살이’를 어느 만큼 읽어내어 이 만화를 그렸는지 알 길은 없는데, 이 만화책에 흐르는 빛은 ‘다시 태어나서 똑같이 괴로운 나날을 되풀이하는 슬픔’입니다. “아이 실격”인 까닭은 까르르 웃고 노래하는 맑은 아이로 태어난 숨결이 아닌, 지난 삶에서 어떤 나날을 괴롭게 누리다가 스스로 죽거나 전쟁 때문에 죽거나 온갖 아픔 때문에 죽었는가를 모두 끌어안고 태어난 숨결이기 때문입니다.



- “아들아! 힘내! 조금만 힘을 내서 태어나 다오! 태어나면 신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이를테면, 아빠처럼 평범한 월급쟁이가 돼서, 고만고만한 월급을 받고, 무난하게 결혼해서…….” “아기의 박동 수가 떨어지고 있어요!” (4쪽)

- ‘이런 인간들과 인생을 다시 사는 건 사양하겠어! 하지만 이 몸으로는 내 의지로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다. 얼마나 무력하단 말인가! 나중에 이 몸이 자유로워진다면, 이 녀석부터 날려 버릴 거야!’ (7쪽)




  우리들은 다시 태어납니다. 우리 스스로 삶을 슬기롭게 깨닫지 못하면 다시 태어납니다. 예전 삶을 그치면서 예전 몸을 내려놓은 뒤, 넋이 하늘을 떠돌다가 새로운 몸을 찾아서 아기로 태어납니다. 새로운 삶을 바라면서 새로운 어버이를 찾아서 태어납니다.


  삶을 슬기롭게 깨달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다시 태어나지 않겠지요. 슬기로운 생각으로 삶을 바라보고 느껴 깨닫는 넋이라면, 굳이 지구별에 다시 태어나지 않고 온누리를 마음껏 휘휘 날아다니는 빛이 될 테지요.


  이리하여, 만화책 《아이 실격》에 나오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어둡습니다. 유치원 교사나 어버이 곁에서는 ‘다 모르는 어리광쟁이’인 듯 연극을 하고, 아이들끼리 있으면 그야말로 ‘예전 삶(수많은 전생에 걸친 윤회)에서 짊어진 굴레를 고스란히 떠맡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어두운 말만 주고받습니다.



- ‘노조미는 전생의 기억을 (세 살 때에) 잊고 말았다. 왜 인생에 절망했는지, 왜 세상 모든 것을 증오했는지를. 새로운 인격으로 삶을 시작하려는 이때 알 수 없는 무력감만이 남아 있었다. (8쪽)

-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전생의 내가 죽는 순간 간절히 원했던, ‘두 번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라는 염원뿐이었다.’ (12쪽)

- “마녀라고 불렸던 사람들은 원래 약초에 대한 지식이 많고 치유 능력을 가졌던 여성들이었는데, 권력자들이 껄끄럽게 생각하여 그녀들을 마녀로 몰아 처형했지. 결과적으로 원령이 된 거래.” (115쪽)





  만화책 《아이 실격》은 재미있게 들여다보는 이야기책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아기조차 기쁨으로 태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어버이도 아기를 기쁨으로 맞이하지 못하는 얼거리를 보여줍니다. 똑같이 흐르는 쳇바퀴에서 아무런 꿈도 사랑도 느끼지 못하는 틀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얼거리나 틀을 알면서 고치거나 바꾸지 않아요. 쳇바퀴를 그대로 밟습니다. 굴레에 스스로 갇힙니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입시지옥을 되풀이합니다. 고등학교를 마치면 대학입시에 얽매이고, 대학생이 되어도 느긋하게 놀지 못할 뿐 아니라, 아름답게 배우지 않습니다. 회사원이 되기를 바라고, 회사원이 되어도 늘 돈에 얽매이다가 아파트 전세와 부동산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데, 이러다가 짝꿍을 만나 살을 섞은 뒤 아기를 낳아요. 아직 스스로 꿈이나 사랑을 마음에 품지 않았는데, 그냥 아기를 낳습니다.


  이런 육아나 저런 육아를 한들 달라지지 않습니다. 삶은 바꾸지 않고 이런 교육과 저런 교육을 한들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저 ‘예전 삶에 쌓은 굴레’만 새삼스레 되풀이할 뿐입니다.



- ‘평범한 놈들이 제일 바보 같아.’ (21쪽)

- “뭐 그냥, 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차기도 하고, 지키고 싶은 정의도, 타도하고 싶은 악도 없지만, 어쨌든 병역은 거부하려고.” “아, 그건 나도 그래.” (28쪽)

- “난 형이 있는데, 형제란 건, 무슨 일이든 서로 비교해서 암묵적인 순위를 정하고선, 부모의 기대와 돈을 상위 랭커에게 집중하는 것일 뿐. 나랑 형이랑 동시에 물에 빠지면 분명히 형을 먼저 구할 거라고 실감하는 날들의 연속이랄까.” (58쪽)





  아이들은 모두 빛입니다. 어른인 우리들도 모두 빛입니다. 누구나 빛으로 태어납니다. 새롭게 살아가고 싶어 태어납니다. 사랑과 꿈을 새롭게 누리면서 아름다운 마음이 되고 싶어 태어납니다.


  무엇을 할 때에 즐거울까요. 사랑을 하고 꿈을 키워야 즐겁겠지요. 전쟁을 하거나 경쟁을 벌이거나 이웃을 괴롭히면 즐겁지 않습니다. 무엇을 할 때에 웃음과 노래가 샘솟을까요. 사랑을 하고 꿈을 키워야 웃음과 노래가 샘솟겠지요. 전쟁무기와 군대를 자꾸 만들 뿐 아니라, 갖가지 사건과 사고가 들끓는 도시 문명사회를 그대로 두면 웃음도 노래도 없습니다.



- “여러분도 이제 상급반이 됐으니까 슬슬 ‘사회’에 대해 공부해 보아요. 우리가 사는 인간 세계의 중심에 있는 건 무엇일가요?” “저요! ‘사랑’이요!” “깜빡했는데, 선생님은 그 단어를 제일 싫어해요.” (47쪽)

- “여자들은 편하게 돈과 권력을 손에 넣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여자들은 왕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왕자에게 선택된 자신을 사랑하는 거겠지.’ (71쪽)

- “투쟁심을 억제하며 협동 정신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목적 아닌가요?” “현 단계에서 인류의 지성은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했어요!” (122쪽)




  가장 바보 같은 녀석은 아마 우리 스스로일 수 있습니다. 삶을 슬기롭게 바라보지 않는 우리 스스로가 가장 바보 같다 할 만합니다. 삶을 꿈과 사랑으로 가꾸지 않는 우리 스스로 가장 바보 같다고 여길 만합니다.


  거꾸로, 가장 아름다운 님이 우리 스스로가 될 수 있어요. 삶을 슬기롭게 바라보면 우리 스스로 가장 아름답습니다. 삶을 꿈과 사랑으로 가꾸면 우리 스스로 가장 빛납니다.


  어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날마다 새롭게 노래하고 기쁘게 웃으면, 우리 곁에서 아이들이 즐겁습니다. 어른으로 일하는 우리들이 언제나 어깨동무와 두레를 펼치면서 서로 아끼고 돌보는 삶을 짓는다면, 바로 우리 둘레 아이들이 즐겁습니다. 만화책 《아이 실격》을 읽을 적에는 하하 웃습니다. 만화책 《아이 실격》을 덮은 뒤에는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4347.7.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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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전날
호즈미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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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47



사랑받기

― 결혼식 전날

 호즈미 글·그림

 조은하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3.11.8.



  직박구리가 후박나무에 내려앉습니다. 여름에 무르익은 후박알을 따먹으려고 내려앉습니다. 직박구리는 아침 낮 저녁으로 우리 집에 찾아들어 후박알을 따먹으면서 노래를 들려줍니다. 후박알을 먹은 값이라고 할까요.


  참새와 딱새도 후박나무에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직 이름을 모르는 여러 멧새가 후박나무에 내려앉습니다. 후박나무는 온갖 새들이 날마다 수없이 찾아들어도 넉넉히 밥을 나누어 줍니다. 온갖 새들은 우리 집 후박나무에서 후박알을 먹은 뒤 이곳저곳 날아다니다가 똥을 뽀직 누면서 작은 씨앗을 퍼뜨리겠지요.



- “내일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신부니까. 드레스 입은 거 보면 아버지 우실 거야.” (9쪽)

- ‘일도 이제 익숙해졌다. 부모님은 내가 열한 살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부모님을 대신해 날 키워 준, 여덟 살 위의 누나가, 오늘 결혼을 한다.’ (18∼20쪽)






  올해에도 우리 집 헛간에서 마을고양이가 새끼를 낳습니다. 새끼를 낳은 줄 모르다가, 어린 고양이 두세 마리가 마당에서 노니는 모습을 보고는 비로소 알아챕니다. 이 녀석들, 우리 집 헛간이 너희 집인 줄 아니.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면 새끼 고양이와 어미 고양이는 조용히 숨을 죽입니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다가 집으로 들어오면 살금살금 둘레를 살피면서 풀밭에 고개를 빼꼼 내민 뒤, 아무도 없구나 싶으면 마당으로 나와서 콩콩 뛰면서 놉니다.


  지난해에 우리 집에서 태어난 고양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러께에 우리 집에서 태어난 고양이는 또 어디에 있을까요. 다들 잘 살면서 이 마을 저 마을로 퍼졌을까요. 이웃 할매 집에서 밥을 나누어 먹을까요.


  처마 밑 제비집에서 새끼는 모두 잘 자라서 어른 제비가 되었습니다. 새끼 제비가 어른이 되니 이른아침에 둥지를 떠나 저녁에 해가 기울고서야 돌아오는데, 새로운 목숨인 새끼 고양이가 볼볼 아장걸음을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 “전 남편이 그렇게나 못 믿을 사람인가?” “그거야, 아빠가 ‘담배 사올게’ 해 놓고선 그대로 집에 안 돌아왔으니까.” (27쪽)

- “너, 언니 되는 거냐?” “응?” “네 엄마, 재혼 하냐?” “어?” “아니, 방금 네가 언니가 된다고.” “아. 이제 그런 나이가 됐다, 이런 말이었는데?” (33∼34쪽)





  호즈미 님 만화책 《결혼식 전날》(애니북스,2013)을 읽습니다. 작고 가녀린 두 사람이 서로를 아끼며 보듬은 나날이 모이고 모여 이루어진 사랑이 흐르는 만화입니다.


  사랑은 살섞기가 아니지요. 사랑은 사랑이지요. 누나와 동생 사이에도 사랑이 흐릅니다. 나와 까마귀 사이에도 사랑이 흐릅니다. 나그네와 토박이 사이에도 사랑이 흐릅니다. 아이와 허수아비 사이에도 사랑이 흐릅니다.


  사랑은 어디에서나 흐릅니다. 사랑은 어디에서나 따스합니다. 사랑이 있기에 새롭게 힘을 냅니다. 사랑이 있으니 즐겁게 잠자리에 들고는, 기쁘게 아침에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납니다.



-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많은 얘기들. 리버풀 출신의 4인조 그룹이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리고, 인간이 달에 첫발을 내딛고, 반전운동이 각지에서 일어나고, 이 광활한 세상 속에, 우리가 맘 편히 있을 곳은 여기뿐이었다.’ (97쪽)

- ‘베티를 보호하는 내 역할은 이미 끝났다. 아니, 애초부터, 처음부터 그런 역할은 있지도 않았던 거다. 다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문득 떠올린 적은 있었다. 그 허수아비는 지금도 고향을 떠나버린 오빠를 대신해 여동생을 지켜봐 주고 있을까?’ (120쪽)





  사랑이 없다면 삶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사랑은 없는 채 돈만 많이 번다면, 이러한 삶은 어떤 빛깔이 될까요? 사랑은 없으면서 이름값이 높거나 권력을 거머쥐었다고 한다면, 이러한 삶은 어떤 무늬를 드리울까요?


  사랑이 없는 정치는 덧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경제개발이나 문화행정은 부질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교육은 끔찍합니다. 사랑이 없는 책은 알맹이가 없습니다. 사랑이 흐르지 않는 노래는 무섭습니다. 사랑이 감돌지 않는 그림은 예술도 문화도 되지 못합니다.


  사랑을 담아 지은 밥을 맛있게 먹습니다. 사랑을 담아 한 땀 두 땀 바느질을 한 옷이 포근합니다. 사랑을 담아 내미는 손길이 즐거우면서 반갑습니다.



-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고 하지 않아도 돼. 그보다 먼저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돼.” (174쪽)



  아이들은 사랑받으려고 애쓰지 않아요. 아이들은 사랑하려고 마음을 기울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 사랑을 베풀고, 동무와 동생과 이웃한테 사랑을 베풉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베푸는 숨결’로 태어났어요. 우리는 늘 ‘사랑을 베푸는 넋’으로서 자랐어요. 우리는 앞으로도 ‘사랑을 베푸는 빛’이 되면서 살아갑니다.


  건네는 사랑이 받는 사랑입니다. 나누는 사랑이 돌아오는 사랑입니다. 선물하는 사랑이 선물받는 사랑입니다.


  하늘처럼, 흙처럼, 구름처럼, 풀처럼, 새처럼, 개구리처럼, 여기에 비와 냇물처럼, 서로 아끼는 싱그러우면서 푸른 손길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사람은 서로를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을 때에 비로소 환하게 빛납니다. 4347.6.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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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드롭스 8
우니타 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애니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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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45



사랑을 아끼는 마음

― 토끼 드롭스 8

 우니타 유미 글·그림,양수현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2.5.11.



  가게나 저잣거리에서 파를 샀는데 뿌리가 그대로 있으면, 뿌리를 심을 수 있습니다. 파뿌리는 흙을 만나면 다시금 기운을 내어 흙을 단단히 움켜쥡니다. 뿌리 쪽을 남기고 위쪽을 잘라서 먹더라도, 파뿌리는 흙에서 새롭게 기운을 얻어 줄기를 올려요. 차근차근 새 잎이 돋습니다.


  상추이든 부추이든 잎을 톡톡 끊더라도 새 잎이 다시 돋습니다. 씀바귀이든 고들빼기이든 잎은 새로 돋아요. 민들레이든 머위이든 새로운 잎이 꾸준히 자랍니다. 나무도 줄기에서 새 줄기와 잎이 돋습니다.


  뜯기거나 꺾이거나 끊긴 줄기나 잎이 다시 돋지 않는다면, 아마 지구별에서 풀과 나무는 모두 사라졌으리라 생각합니다. 풀과 나무는 끝없이 다시 돋고 새로 자라기 때문에 지구별을 푸르게 덮습니다.



- “물론 돈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란 건 마사코도 알아. 하지만 자신이 택한 길을 가면서 린을 위해 해 줄 수 있었던 건 이것밖에 없었을 거야.” (12쪽)

- “어떤 사람이었어?” “에이, 딱 한 번 보고서는 모르지. 하지만 만나 보길 잘했어. 내 자신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됐으니까.” “린. 엄마랑 같이 살 거야?” “응? 아니야. 그런 거. 그쪽에겐 이미 다른 삶이 있고.” (19쪽)




  손에 무엇을 쥐면 손을 덮은 살이 눌립니다. 손에 쥔 것을 놓으면 손을 덮은 살이 눌렸다가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자리에 앉으면 엉덩이가 살며시 옆으로 퍼지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엉덩이가 제자리로 돌아와요.


  다쳐서 살이 찢어지더라도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찢어진 자리는 아뭅니다. 헌 살이 떨어지면 새 살이 돋습니다. 무릎이 까져도 새 살이 돋아 말끔하게 되어요. 머리카락이 빠지면 새 머리카락이 돋고, 손톱을 깎으면 새 손톱이 자랍니다. 우리 몸은 늘 꾸준하게 새로 자랍니다. 돌고 돌면서, 자라고 자라는 세포입니다.


  졸리기에 잠을 잘 테지요. 잠을 푹 자면 개운합니다. 배고프기에 밥을 먹을 테지요. 밥을 넉넉히 먹으면 배가 부르며 새롭게 기운이 솟습니다. 우리 몸은 밥과 물과 볕과 바람을 받아들이면서 움직입니다. 우리 몸이 움직이면서, 이 몸에 깃든 넋은 날마다 새로운 일을 합니다.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면서 생각을 마음에 하나둘 갈무리합니다. 이 일을 하고 저 일을 하면서 마음에 온갖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습니다.



- ‘다이키치 냄새. 다이키치의 이불 냄새. 잠이 오게 만드는 냄새.’ (39쪽)

- ‘학교 남자애들을 봐도, 다른 애들이 멋있다고 하는 사람을 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건 다이키치 때문일까? 연애엔 흥미 없었는데, 이렇게 돼 버리다니.’ (63쪽)

- “다이키치, 저녁밥 뭐 할까?” “아무거나.” “김빠지게.” “린이 만든 건 뭐든 맛있으니까 아무거나 괜찮다, 는 뜻이야. 이제 나보다 더 잘하잖아.” (74∼75쪽)





  먼먼 옛날부터 사람들은 돌고 도는 흐름으로 살아갑니다. 먹으면 눕니다. 누고 다시 먹습니다. 살고 죽으며, 죽음 뒤에 삶이 찾아옵니다. 늘 함께 움직여요. 따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가는 말이란 오는 말이고, 오는 말은 다시 가는 말입니다. 내 몸에 새로운 목숨이 깃들고, 내 목숨은 새롭게 흙으로 돌아가면서 또 다른 목숨을 낳습니다. 몸은 끝없이 되풀이되면서, 마음은 한결같이 흐른다고 할까요. 몸은 스러진다고 하지만, 몸에 깃든 마음은 다른 몸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빛이 된다고 할까요.


  돌고 도는 삶에서 우리는 무엇을 대수로이 바라볼 수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돌고 도는 삶에서 우리는 무엇을 아끼거나 보살필 만할까 생각해 봅니다.


  전쟁을 아낄까요? 돈이나 이름값을 아낄까요? 힘이나 경제발전을 아낄까요? 그렇지 않다면, 사랑과 꿈을 아낄까요? 믿음과 노래를 아낄까요? 평화와 민주를 아낄까요?



-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전 코우키랑 사귄 적 없고 앞으로도 절대로 없을 거예요. 남매나 같은 사이예요.” “흐음.” “그리고 저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85∼86쪽)

- “나 그 사람을 특별히 ‘엄마’로 생각하진 않아. 기억도 안 나니까. 하지만 태어난 아기랑은 형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아, 자매지 참. ‘엄마’와는 전혀 추억이 없으니 실감도 안 나지만, 그 애와는 이제부터 시작이잖아.” (99쪽)

- “저 그 목소리, 저 알고 있어요. 정말로. 죄송해요. 계속 실감하지 못했는데, 방금 처음으로 진짜 엄마라고 깨달은 것 같아요.” (117쪽)




  우니타 유미 님이 빚은 만화책 《토끼 드롭스》(애니북스,2012) 여덟째 권을 읽으면, 만화책 주인공이 아끼려는 한 가지가 환하게 드러납니다. 주인공 ‘린’은 늘 한 가지를 아낍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주인공 ‘린’과 한집에서 지내는 ‘다이키치’도 언제나 한 가지를 아껴요. 바로 ‘사랑’이지요.


  아주 어렸던 린은 날마다 무럭무럭 자랍니다. 바로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랍니다. 어린 린을 돌보는 아저씨 다이키치도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요. 모든 살림과 일과 생각이 어설프거나 낯설던 다이키치였으나, 어린 린을 맡아서 건사하는 나날을 누리면서 차츰차츰 자랍니다. 어린 린한테 사랑을 베풀면서, 어린 린한테 베푼 사랑은 언제나 다이키치한테 베푸는 사랑인 줄 깨닫습니다. 주면 줄수록 받는 사랑이라고 할까요. 아낌없이 주면 줄수록 아낌없이 받는 사랑이라고 할까요.


  그러니까, 샘바른 사랑을 주면 샘바른 사랑을 받습니다. 다라운 사랑을 주면 다라운 사랑을 받아요. 좁쌀만큼 작구나 싶은 사랑을 주면 좁쌀만큼 작구나 싶은 사랑을 받을 테지요. 



- “난 알았어! 확실해졌어!” “린?” “보육원이나 유치원에서 일하고 싶어. 되도록 다이키치 가까이에서 다이키치의 노후를 돌봐 줄까 해. 대학도 그걸 기준으로 지원할 거고.” (153∼154쪽)

- ‘어쩌지. 전혀 안 내켜. 그럴 시간 있으면, 집에서 바느질이나 하는 게 더.’ (188쪽)





  어린 린은 어릴 적부터 다이키치 곁에서 사랑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조건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사랑이란 가없는 사랑이면서 오롯한 사랑인 줄 배우며 자랐어요. 스스럼없이 받는 사랑으로 언제나 둘레에 스스럼없는 웃음과 노래를 돌려준 린은 웃음과 노래 또한 베풀고 베풀어도 마르지 않을 뿐 아니라 더 크게 샘솟는 줄 배웁니다.


  사랑을 아끼는 마음이 흐르는 삶일 때에 즐겁습니다. 어린 린은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고, 이제 고등학교를 마칠 나이가 되는데, 그동안 어렴풋하게 느끼던 빛을 똑바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어렴풋하게 느끼던 빛을 똑바로 바라본 끝에, 이 빛이란 사랑인 줄 알아차립니다. 그러고 나서, 이 빛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해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웃음이 되었고 노래가 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즐겁게 웃고 기쁘게 노래하고 싶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바라보셔요. 내 아이뿐 아니라 이웃 아이를 다 같이 바라보셔요. 아이 손을 잡은 내 손을 바라보셔요. 내 아이뿐 아니라 이웃 아이 손을 잡으면서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셔요.


  어떤 느낌인가요. 어떤 마음이 드는가요. 이 아이들과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요. 이 아이들과 이 땅에서 어떤 빛을 누리고 싶은가요. 아이들한테 주고 싶은 빛은 무엇인가요. 아이들 곁에서 내가 나한테 스스로 주고 싶은 빛은 무엇인가요.


  풀과 나무는 우리가 따사로운 손길로 쓰다듬으면서 맑은 눈빛으로 바라볼 적에 무럭무럭 자랍니다. 아이와 어른 모두 우리가 따사로운 손길로 어깨동무하면서 밝은 눈망울로 마주할 적에 새롭게 기운을 차리면서 사랑을 꽃피웁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일구면서 지내고 싶은지 생각해야 합니다. 가슴속에서 빛이 터져나올 때에 삶이 아름답습니다. 4347.6.22.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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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 12
라이쿠 마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46



내가 ‘나’를 가질 때

― 동물의 왕국 12

 라이쿠 마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2.25.



  민들레가 돋습니다. 민들레는 이른봄에 살그마니 잎을 내놓고, 잎이 조금씩 커지면서 꽃대가 오르며, 꽃대가 쏙쏙 기운을 내면서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하얗거나 노란 꽃송이가 벌어지면 벌과 나비를 부르지요. 이른봄에 막 깨어난 벌과 나비는 소담스러운 민들레 꽃송이에 내려앉아 꽃가루를 받아먹습니다. 민들레는 벌과 나비, 또는 개미와 파리한테까지 꽃가루를 나누어 주면서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이러고 나서 꽃이 지고 꽃대가 더 높이 오르면서 하얗고 동그란 씨앗꾸러미를 이룹니다.


  어느 풀이든 씨앗이 퍼지면 시듭니다. 그리고, 곧 새로운 풀이 돋습니다. 풀은 씨앗을 내놓으면서 힘을 잃어요. 씨앗을 맺기까지 모든 힘을 쏟아부었기 때문일까요.


  생각해 보면, 사람도 아기를 낳은 뒤 기운이 많이 줄어듭니다. 아기를 낳은 어머니는 뼈도 살도 머리카락도 이도 많이 흔들립니다. 그만큼 새 목숨인 아기한테 엄청나게 커다란 기운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 “살기 위해 보여준 그 아름다운 모습!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내 눈엔 가련한 시체밖에 안 보여.” (14쪽)

- “동물이 오직 하나만 갖고 있는 것. 그것은 ‘주의력’이다. 뇌가 적은 에너지를 갖고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그런 구조로 되어 있지. 뭔가 하나에 집중하면, 주위를 보는 것 같아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단 말이야.“ (26쪽)




  여름에 민들레가 새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가을에도 민들레가 새로 올라옵니다. 새로 올라오는 민들레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러다가 잎을 톡톡 뜯습니다. 살살 쓰다듬은 뒤 입에 넣습니다. 여름에 먹는 민들레잎은 여름다운 싱그러움이 묻어난 맛입니다. 가을에는? 가을에는 가을빛이 서린 고운 맛입니다.


  민들레 옆에서 자라는 쇠비름을 뜯습니다. 질경이를 뜯습니다. 돌나물을 뜯고 고들빼기를 뜯습니다. 까마중도 뜯고 싶지만, 까마중은 잎이 돋기 무섭게 진딧물이 달라붙습니다. 까마중잎이 이렇게 맛있는가 보군요. 참말 까마중잎은 남아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뽕잎도 그래요. 뽕잎도 진딧물과 풀벌레가 아주 좋아해요. 이렇게 맛난 잎은 온갖 풀벌레가 다 좋아합니다.


  어떤 풀을 먹을 만한지 잘 모르겠다면, 벌레 먹은 잎을 먹으면 돼요. 무잎이나 배춧잎도 벌레가 잘 먹어요. 왜 그럴까요? 맛있기 때문입니다. 벌레한테도 맛난 잎을 나누어 줄 수 있으면 돼요. 벌레가 너무 먹는다고 근심하지 말고, 벌레 몫을 남기면서 사람 몫을 함께 누리자고 생각하면 즐겁습니다. 한 가지 남새만 밭에 심으려 하지 말고 온갖 남새를 골고루 심는 한편, 갖은 풀이 살뜰히 자라도록 돌보면서, 남새와 나물을 함께 누리면 아름답습니다.



- “로빈! 난 네가 좋다! ‘나’를 가져! 제발 힘내!” (32쪽)

- “이번 내 목적은 싸우는 것만이 아니다.” “뭐라고?” “다들, 좀 힘들겠지만, 버텨라. 내 울음소리를 필요로 하는 아이가 있다.” (49쪽)

- “하긴. 내가 가르쳐 주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문제는 바로 그거라고! 풀이며 열매를 먹어 본 적 없는 육식동물이, 영원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알지?” (60쪽)




  라이쿠 마코토 님이 빚은 만화책 《동물의 왕국》(학산문화사,2014) 열둘째 권을 읽습니다. 《동물의 왕국》 열둘째 권에서는 ‘내’가 ‘나’인 줄 잊은 목숨들이 나오고, ‘내’가 ‘나’인 줄 생각하거나 찾는 목숨들이 나옵니다. ‘내’가 ‘나’인 줄 잊기 때문에 ‘남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기계나 노예나 바보’가 됩니다. ‘내’가 ‘나’인 줄 알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살아가려는 길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남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목숨은 힘이 세거나 이름이 높거나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내가 스스로 살아가려는 길대로 걸어가는 목숨은 힘이 여리거나 이름이 낮거나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습니다.



- “우린 타로우자가 없었다면, 사자의 새끼 죽이기에서 죽었어. 그렇지? 난 새끼 죽이기가 왜 있는 걸까 고민하다 깨달았어. 먹이 수가 제한되어 있으니, 살 수 있는 사자 수도 제한되고, 결국 사자끼리 서로 죽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된 거야.” (78∼79쪽)

- “너, 네가 뭔지 모르지? 나도 그래. 그냥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태어났고, 친구라 여겼던 주위 녀석들은 모두 텅 빈 껍데기였고, 마음이 담긴 대화라곤 할 수 없었어. 풀이며 나무, 탑 외의 동물들은 모두 ‘살아 있다’는 느낌으로 빛나는데.” (118∼119쪽)




  오늘날 사람들은 저마다 어떻게 살아간다고 할 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오늘날 사람들한테 ‘삶’이 있다고 할 만할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날마다 똑같이 쳇바퀴를 돌기만 할 뿐, 스스로 삶하고 자꾸 동떨어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날마다 새 하루를 빚거나 가꿀 줄 모르는 한편, 스스로 이녁 삶을 아끼거나 돌보는 길을 잊거나 잃지 싶습니다.


  밥을 먹는다면 내가 스스로 먹습니다. 남이 숟가락에 떠서 먹이더라도 내가 입으로 씹고 목구멍으로 삼키며 뱃속에서 삭혀야 합니다. 밥을 먹어서 얻은 기운으로 내 삶을 스스로 돌보면서 북돋아야 합니다.


  밥뿐 아니라 물과 바람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남이 숨을 쉬게 해 주지 않아요. 내가 스스로 숨을 쉬어야 합니다. 남이 나한테 물을 주지 않아요. 내가 스스로 물을 마셔서 내 몸을 ‘물빛’으로 채워야 합니다.


  스스로 먹고, 스스로 살며, 스스로 잡니다. 스스로 일하고, 스스로 놀며, 스스로 생각합니다. 스스로 사랑하지요. 스스로 노래해요. 스스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요. 언제나 스스로 합니다. 학교에 다녀야 배우지 않습니다. 내가 나 스스로 가르치면서 배웁니다.



- “그래. 이건 내 경험이 아니야. 아마 누군가 맛본 유년 시절의 경험을, 적당히 짜 맞춰 만든 추억 프로그램이겠지. 갓 태어나, 무엇을 할지, 나 자신이 어떤 생물인지도 모르는 내겐, 안성맞춤의 억제력이었던 거지. 하지만 이제 난 혼자 일어설 수 있어. 타로우자가 가르쳐 줬거든.” (132쪽)

- “어떤 인간이, 자신의 목숨을 살피지 않고, 동료를 모욕한 상대에게 화를 낸 녀석이 있다. 난 그 모습에서 ‘강인함’을 느꼈고, 무척이나 흥미로웠지.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아름다움’과 ‘고귀함’이었어. 동료에 대한 사랑으로, 생명이 고귀하게 빛나 보였단 말이다.” (134쪽)




  내가 ‘나’를 가질 때에 나는 비로소 ‘참다운 나’인 ‘참나’가 됩니다. 내가 나를 가지지 못할 때에는 아직 ‘참다운 나’가 아닙니다. 어쩌면 ‘거짓스러운 나’라 할 만합니다. 거짓스러운 나일 때에는 거짓을 마주하면서도 거짓이 거짓인 줄 알아차리지 못해요. 거짓스러운 나일 때에는 거짓이 거짓인 줄 모를 뿐 아니라 참이 참인 줄 모릅니다. 거짓도 참도 없이, 거짓도 참도 모르는 채, 그저 쳇바퀴를 굴리는 바보로 지냅니다.


  내가 나를 가지면서 내 삶이 태어납니다. 내가 나를 가지면서 내 이웃 누구나 서로서로 ‘나’가 싱그럽게 어깨동무하는 줄 알아봅니다. 나한테는 내가 있고 너한테는 너가 있습니다. 나와 너는 서로 다른 빛이면서 나와 너는 서로 같은 숨결입니다. 나와 너는 우리를 이루는 넋이면서 나와 너는 우리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 “함께 살아갈 방법을 많이 많이 가르쳐 줘.” (82쪽)

- “키메라라도 그런 가족을 갖자. 친구를 갖자. 덜 떨어진 목숨이란 말 따위나 듣고 있지 말자. 고귀하게 빛나는 훌륭한 동물이 되자.” (136쪽)



  사랑을 하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하며 아름답기에 훌륭합니다. 올림픽 같은 운동경기에서 1등을 해야 훌륭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하며 삶을 지을 때에 아름답고 훌륭합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이 착합니다. 도덕 교과서나 철학책을 달달 외운들 착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나 시장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야 먹고살 만하지 않습니다. 삶을 스스로 짓듯, 밥을 스스로 짓습니다. 삶과 밥을 스스로 지으니, 사랑과 꿈도 스스로 지어요.


  직업교육을 받아야 꿈을 짓지 않습니다. 돈을 크게 벌어야 꿈을 지을 만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아야 사랑을 알지 않습니다. 살을 섞거나 입을 맞추어야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빛을 가슴에 품으면서 이 빛이 새롭게 태어나도록 이끌 때에 바야흐로 사랑입니다. 빛이 있기에 사랑이 싹틀 수 있고, 사랑이 싹트는 자리에서 아름다움이 환하게 퍼지며, 아름다움이 퍼지는 곳에서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야기가 있어 삶입니다.


  만화책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목숨 가운데 ‘내가 나인 줄 아는’ 이들은 언제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나인 줄 모르는’ 이들은 아무 이야기가 없습니다. ‘내가 나인 줄 아는’ 이들은 날마다 새 이야기를 짓습니다. ‘내가 나인 줄 모르는’ 이들은 지구별에 죽음과 잿더미를 만들 수는 있어도 이야기가 없습니다. 이야기가 없는 이들한테는 명령과 지시와 복종과 계급과 신분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이들한테는 명령도 지시도 복종도 계급도 신분도 없습니다. 자, 오늘 한국에는 무엇이 있나요? 오늘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 무엇이 있습니까? 4347.6.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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