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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왕국 12
라이쿠 마코토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46
내가 ‘나’를 가질 때
― 동물의 왕국 12
라이쿠 마코토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4.2.25.
민들레가 돋습니다. 민들레는 이른봄에 살그마니 잎을 내놓고, 잎이 조금씩 커지면서 꽃대가 오르며, 꽃대가 쏙쏙 기운을 내면서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하얗거나 노란 꽃송이가 벌어지면 벌과 나비를 부르지요. 이른봄에 막 깨어난 벌과 나비는 소담스러운 민들레 꽃송이에 내려앉아 꽃가루를 받아먹습니다. 민들레는 벌과 나비, 또는 개미와 파리한테까지 꽃가루를 나누어 주면서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이러고 나서 꽃이 지고 꽃대가 더 높이 오르면서 하얗고 동그란 씨앗꾸러미를 이룹니다.
어느 풀이든 씨앗이 퍼지면 시듭니다. 그리고, 곧 새로운 풀이 돋습니다. 풀은 씨앗을 내놓으면서 힘을 잃어요. 씨앗을 맺기까지 모든 힘을 쏟아부었기 때문일까요.
생각해 보면, 사람도 아기를 낳은 뒤 기운이 많이 줄어듭니다. 아기를 낳은 어머니는 뼈도 살도 머리카락도 이도 많이 흔들립니다. 그만큼 새 목숨인 아기한테 엄청나게 커다란 기운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 “살기 위해 보여준 그 아름다운 모습!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내 눈엔 가련한 시체밖에 안 보여.” (14쪽)
- “동물이 오직 하나만 갖고 있는 것. 그것은 ‘주의력’이다. 뇌가 적은 에너지를 갖고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그런 구조로 되어 있지. 뭔가 하나에 집중하면, 주위를 보는 것 같아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단 말이야.“ (26쪽)
여름에 민들레가 새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가을에도 민들레가 새로 올라옵니다. 새로 올라오는 민들레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러다가 잎을 톡톡 뜯습니다. 살살 쓰다듬은 뒤 입에 넣습니다. 여름에 먹는 민들레잎은 여름다운 싱그러움이 묻어난 맛입니다. 가을에는? 가을에는 가을빛이 서린 고운 맛입니다.
민들레 옆에서 자라는 쇠비름을 뜯습니다. 질경이를 뜯습니다. 돌나물을 뜯고 고들빼기를 뜯습니다. 까마중도 뜯고 싶지만, 까마중은 잎이 돋기 무섭게 진딧물이 달라붙습니다. 까마중잎이 이렇게 맛있는가 보군요. 참말 까마중잎은 남아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뽕잎도 그래요. 뽕잎도 진딧물과 풀벌레가 아주 좋아해요. 이렇게 맛난 잎은 온갖 풀벌레가 다 좋아합니다.
어떤 풀을 먹을 만한지 잘 모르겠다면, 벌레 먹은 잎을 먹으면 돼요. 무잎이나 배춧잎도 벌레가 잘 먹어요. 왜 그럴까요? 맛있기 때문입니다. 벌레한테도 맛난 잎을 나누어 줄 수 있으면 돼요. 벌레가 너무 먹는다고 근심하지 말고, 벌레 몫을 남기면서 사람 몫을 함께 누리자고 생각하면 즐겁습니다. 한 가지 남새만 밭에 심으려 하지 말고 온갖 남새를 골고루 심는 한편, 갖은 풀이 살뜰히 자라도록 돌보면서, 남새와 나물을 함께 누리면 아름답습니다.
- “로빈! 난 네가 좋다! ‘나’를 가져! 제발 힘내!” (32쪽)
- “이번 내 목적은 싸우는 것만이 아니다.” “뭐라고?” “다들, 좀 힘들겠지만, 버텨라. 내 울음소리를 필요로 하는 아이가 있다.” (49쪽)
- “하긴. 내가 가르쳐 주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문제는 바로 그거라고! 풀이며 열매를 먹어 본 적 없는 육식동물이, 영원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알지?” (60쪽)
라이쿠 마코토 님이 빚은 만화책 《동물의 왕국》(학산문화사,2014) 열둘째 권을 읽습니다. 《동물의 왕국》 열둘째 권에서는 ‘내’가 ‘나’인 줄 잊은 목숨들이 나오고, ‘내’가 ‘나’인 줄 생각하거나 찾는 목숨들이 나옵니다. ‘내’가 ‘나’인 줄 잊기 때문에 ‘남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기계나 노예나 바보’가 됩니다. ‘내’가 ‘나’인 줄 알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살아가려는 길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됩니다.
남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목숨은 힘이 세거나 이름이 높거나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지 못합니다. 내가 스스로 살아가려는 길대로 걸어가는 목숨은 힘이 여리거나 이름이 낮거나 돈이 없다고 하더라도 아름답거나 사랑스럽습니다.
- “우린 타로우자가 없었다면, 사자의 새끼 죽이기에서 죽었어. 그렇지? 난 새끼 죽이기가 왜 있는 걸까 고민하다 깨달았어. 먹이 수가 제한되어 있으니, 살 수 있는 사자 수도 제한되고, 결국 사자끼리 서로 죽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된 거야.” (78∼79쪽)
- “너, 네가 뭔지 모르지? 나도 그래. 그냥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태어났고, 친구라 여겼던 주위 녀석들은 모두 텅 빈 껍데기였고, 마음이 담긴 대화라곤 할 수 없었어. 풀이며 나무, 탑 외의 동물들은 모두 ‘살아 있다’는 느낌으로 빛나는데.” (118∼119쪽)
오늘날 사람들은 저마다 어떻게 살아간다고 할 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오늘날 사람들한테 ‘삶’이 있다고 할 만할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날마다 똑같이 쳇바퀴를 돌기만 할 뿐, 스스로 삶하고 자꾸 동떨어지지 않느냐 싶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날마다 새 하루를 빚거나 가꿀 줄 모르는 한편, 스스로 이녁 삶을 아끼거나 돌보는 길을 잊거나 잃지 싶습니다.
밥을 먹는다면 내가 스스로 먹습니다. 남이 숟가락에 떠서 먹이더라도 내가 입으로 씹고 목구멍으로 삼키며 뱃속에서 삭혀야 합니다. 밥을 먹어서 얻은 기운으로 내 삶을 스스로 돌보면서 북돋아야 합니다.
밥뿐 아니라 물과 바람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남이 숨을 쉬게 해 주지 않아요. 내가 스스로 숨을 쉬어야 합니다. 남이 나한테 물을 주지 않아요. 내가 스스로 물을 마셔서 내 몸을 ‘물빛’으로 채워야 합니다.
스스로 먹고, 스스로 살며, 스스로 잡니다. 스스로 일하고, 스스로 놀며, 스스로 생각합니다. 스스로 사랑하지요. 스스로 노래해요. 스스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요. 언제나 스스로 합니다. 학교에 다녀야 배우지 않습니다. 내가 나 스스로 가르치면서 배웁니다.
- “그래. 이건 내 경험이 아니야. 아마 누군가 맛본 유년 시절의 경험을, 적당히 짜 맞춰 만든 추억 프로그램이겠지. 갓 태어나, 무엇을 할지, 나 자신이 어떤 생물인지도 모르는 내겐, 안성맞춤의 억제력이었던 거지. 하지만 이제 난 혼자 일어설 수 있어. 타로우자가 가르쳐 줬거든.” (132쪽)
- “어떤 인간이, 자신의 목숨을 살피지 않고, 동료를 모욕한 상대에게 화를 낸 녀석이 있다. 난 그 모습에서 ‘강인함’을 느꼈고, 무척이나 흥미로웠지.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아름다움’과 ‘고귀함’이었어. 동료에 대한 사랑으로, 생명이 고귀하게 빛나 보였단 말이다.” (134쪽)
내가 ‘나’를 가질 때에 나는 비로소 ‘참다운 나’인 ‘참나’가 됩니다. 내가 나를 가지지 못할 때에는 아직 ‘참다운 나’가 아닙니다. 어쩌면 ‘거짓스러운 나’라 할 만합니다. 거짓스러운 나일 때에는 거짓을 마주하면서도 거짓이 거짓인 줄 알아차리지 못해요. 거짓스러운 나일 때에는 거짓이 거짓인 줄 모를 뿐 아니라 참이 참인 줄 모릅니다. 거짓도 참도 없이, 거짓도 참도 모르는 채, 그저 쳇바퀴를 굴리는 바보로 지냅니다.
내가 나를 가지면서 내 삶이 태어납니다. 내가 나를 가지면서 내 이웃 누구나 서로서로 ‘나’가 싱그럽게 어깨동무하는 줄 알아봅니다. 나한테는 내가 있고 너한테는 너가 있습니다. 나와 너는 서로 다른 빛이면서 나와 너는 서로 같은 숨결입니다. 나와 너는 우리를 이루는 넋이면서 나와 너는 우리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 “함께 살아갈 방법을 많이 많이 가르쳐 줘.” (82쪽)
- “키메라라도 그런 가족을 갖자. 친구를 갖자. 덜 떨어진 목숨이란 말 따위나 듣고 있지 말자. 고귀하게 빛나는 훌륭한 동물이 되자.” (136쪽)
사랑을 하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사랑을 하며 아름답기에 훌륭합니다. 올림픽 같은 운동경기에서 1등을 해야 훌륭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하며 삶을 지을 때에 아름답고 훌륭합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이 착합니다. 도덕 교과서나 철학책을 달달 외운들 착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나 시장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어야 먹고살 만하지 않습니다. 삶을 스스로 짓듯, 밥을 스스로 짓습니다. 삶과 밥을 스스로 지으니, 사랑과 꿈도 스스로 지어요.
직업교육을 받아야 꿈을 짓지 않습니다. 돈을 크게 벌어야 꿈을 지을 만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아야 사랑을 알지 않습니다. 살을 섞거나 입을 맞추어야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빛을 가슴에 품으면서 이 빛이 새롭게 태어나도록 이끌 때에 바야흐로 사랑입니다. 빛이 있기에 사랑이 싹틀 수 있고, 사랑이 싹트는 자리에서 아름다움이 환하게 퍼지며, 아름다움이 퍼지는 곳에서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야기가 있어 삶입니다.
만화책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목숨 가운데 ‘내가 나인 줄 아는’ 이들은 언제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나인 줄 모르는’ 이들은 아무 이야기가 없습니다. ‘내가 나인 줄 아는’ 이들은 날마다 새 이야기를 짓습니다. ‘내가 나인 줄 모르는’ 이들은 지구별에 죽음과 잿더미를 만들 수는 있어도 이야기가 없습니다. 이야기가 없는 이들한테는 명령과 지시와 복종과 계급과 신분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이들한테는 명령도 지시도 복종도 계급도 신분도 없습니다. 자, 오늘 한국에는 무엇이 있나요? 오늘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 무엇이 있습니까? 4347.6.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