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전날
호즈미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47



사랑받기

― 결혼식 전날

 호즈미 글·그림

 조은하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3.11.8.



  직박구리가 후박나무에 내려앉습니다. 여름에 무르익은 후박알을 따먹으려고 내려앉습니다. 직박구리는 아침 낮 저녁으로 우리 집에 찾아들어 후박알을 따먹으면서 노래를 들려줍니다. 후박알을 먹은 값이라고 할까요.


  참새와 딱새도 후박나무에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직 이름을 모르는 여러 멧새가 후박나무에 내려앉습니다. 후박나무는 온갖 새들이 날마다 수없이 찾아들어도 넉넉히 밥을 나누어 줍니다. 온갖 새들은 우리 집 후박나무에서 후박알을 먹은 뒤 이곳저곳 날아다니다가 똥을 뽀직 누면서 작은 씨앗을 퍼뜨리겠지요.



- “내일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신부니까. 드레스 입은 거 보면 아버지 우실 거야.” (9쪽)

- ‘일도 이제 익숙해졌다. 부모님은 내가 열한 살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부모님을 대신해 날 키워 준, 여덟 살 위의 누나가, 오늘 결혼을 한다.’ (18∼20쪽)






  올해에도 우리 집 헛간에서 마을고양이가 새끼를 낳습니다. 새끼를 낳은 줄 모르다가, 어린 고양이 두세 마리가 마당에서 노니는 모습을 보고는 비로소 알아챕니다. 이 녀석들, 우리 집 헛간이 너희 집인 줄 아니.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면 새끼 고양이와 어미 고양이는 조용히 숨을 죽입니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다가 집으로 들어오면 살금살금 둘레를 살피면서 풀밭에 고개를 빼꼼 내민 뒤, 아무도 없구나 싶으면 마당으로 나와서 콩콩 뛰면서 놉니다.


  지난해에 우리 집에서 태어난 고양이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러께에 우리 집에서 태어난 고양이는 또 어디에 있을까요. 다들 잘 살면서 이 마을 저 마을로 퍼졌을까요. 이웃 할매 집에서 밥을 나누어 먹을까요.


  처마 밑 제비집에서 새끼는 모두 잘 자라서 어른 제비가 되었습니다. 새끼 제비가 어른이 되니 이른아침에 둥지를 떠나 저녁에 해가 기울고서야 돌아오는데, 새로운 목숨인 새끼 고양이가 볼볼 아장걸음을 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봅니다.



- “전 남편이 그렇게나 못 믿을 사람인가?” “그거야, 아빠가 ‘담배 사올게’ 해 놓고선 그대로 집에 안 돌아왔으니까.” (27쪽)

- “너, 언니 되는 거냐?” “응?” “네 엄마, 재혼 하냐?” “어?” “아니, 방금 네가 언니가 된다고.” “아. 이제 그런 나이가 됐다, 이런 말이었는데?” (33∼34쪽)





  호즈미 님 만화책 《결혼식 전날》(애니북스,2013)을 읽습니다. 작고 가녀린 두 사람이 서로를 아끼며 보듬은 나날이 모이고 모여 이루어진 사랑이 흐르는 만화입니다.


  사랑은 살섞기가 아니지요. 사랑은 사랑이지요. 누나와 동생 사이에도 사랑이 흐릅니다. 나와 까마귀 사이에도 사랑이 흐릅니다. 나그네와 토박이 사이에도 사랑이 흐릅니다. 아이와 허수아비 사이에도 사랑이 흐릅니다.


  사랑은 어디에서나 흐릅니다. 사랑은 어디에서나 따스합니다. 사랑이 있기에 새롭게 힘을 냅니다. 사랑이 있으니 즐겁게 잠자리에 들고는, 기쁘게 아침에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납니다.



-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많은 얘기들. 리버풀 출신의 4인조 그룹이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리고, 인간이 달에 첫발을 내딛고, 반전운동이 각지에서 일어나고, 이 광활한 세상 속에, 우리가 맘 편히 있을 곳은 여기뿐이었다.’ (97쪽)

- ‘베티를 보호하는 내 역할은 이미 끝났다. 아니, 애초부터, 처음부터 그런 역할은 있지도 않았던 거다. 다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문득 떠올린 적은 있었다. 그 허수아비는 지금도 고향을 떠나버린 오빠를 대신해 여동생을 지켜봐 주고 있을까?’ (120쪽)





  사랑이 없다면 삶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사랑은 없는 채 돈만 많이 번다면, 이러한 삶은 어떤 빛깔이 될까요? 사랑은 없으면서 이름값이 높거나 권력을 거머쥐었다고 한다면, 이러한 삶은 어떤 무늬를 드리울까요?


  사랑이 없는 정치는 덧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경제개발이나 문화행정은 부질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교육은 끔찍합니다. 사랑이 없는 책은 알맹이가 없습니다. 사랑이 흐르지 않는 노래는 무섭습니다. 사랑이 감돌지 않는 그림은 예술도 문화도 되지 못합니다.


  사랑을 담아 지은 밥을 맛있게 먹습니다. 사랑을 담아 한 땀 두 땀 바느질을 한 옷이 포근합니다. 사랑을 담아 내미는 손길이 즐거우면서 반갑습니다.



-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고 하지 않아도 돼. 그보다 먼저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돼.” (174쪽)



  아이들은 사랑받으려고 애쓰지 않아요. 아이들은 사랑하려고 마음을 기울입니다. 아이들은 어버이한테 사랑을 베풀고, 동무와 동생과 이웃한테 사랑을 베풉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베푸는 숨결’로 태어났어요. 우리는 늘 ‘사랑을 베푸는 넋’으로서 자랐어요. 우리는 앞으로도 ‘사랑을 베푸는 빛’이 되면서 살아갑니다.


  건네는 사랑이 받는 사랑입니다. 나누는 사랑이 돌아오는 사랑입니다. 선물하는 사랑이 선물받는 사랑입니다.


  하늘처럼, 흙처럼, 구름처럼, 풀처럼, 새처럼, 개구리처럼, 여기에 비와 냇물처럼, 서로 아끼는 싱그러우면서 푸른 손길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사람은 서로를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을 때에 비로소 환하게 빛납니다. 4347.6.29.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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