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의 개 - 타카하시 루미코 걸작 단편집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58



죽으면 다시

― 전무의 개, 다카하시 루미코 걸작 단편집

 타카하시 루미코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7.4.25.



  삶을 새롭게 지을 줄 아는 사람은 날마다 새롭습니다. 삶을 새롭게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은 날마다 따분합니다. 삶을 새롭게 지을 줄 아는 사람은 아침마다 상큼하게 일어나서 기운차게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합니다. 삶을 새롭게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은 아침마다 지겹고 고단하며 졸음이 넘칩니다.


  삶을 새롭게 짓기에 오늘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떤 일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웃음이 넘칩니다. 웃음은 어느새 노래가 되고, 노래는 천천히 사랑으로 피어납니다. 삶을 새롭게 짓지 않기에 오늘 하루도 어제와 똑같으리라 여기면서 웃음이 안 나옵니다. 웃음이 없으니 낯을 찌푸리고, 낯을 찌푸리니 노래가 흐르지 않으며, 아무런 사랑도 꿈도 이야기도 피어나지 않습니다.



- “나참, 왜 딱부러지게 거절을 못 해?” “아아, 또 원형탈모증이.” “개도 아니고. 허구헌날 시키면 네! 네!” (19쪽)

- “후. 마음쓰지 마. 마츠리다. 너를 위해 한 거짓말이 아니니까. 사랑하는 가족과 우리 집을 지키기 위해서야. 이 집은 나의 성이니까.” (32∼33쪽)





  죽으면 다시 살아야 하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죽기 때문입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삶은 없다고 느낍니다. 어려운 말로 ‘윤회’ 같은 낱말을 쓰기도 하는데, 삶을 누릴 적에 ‘삶짓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쳇바퀴 돌기’를 했을 테니, ‘살고 죽기를 되풀이하는 나날’로만 나아가리라 느껴요. 삶을 누릴 적에 말 그대로 삶을 누렸다면, 그러니까 삶짓기를 하면서 날마다 새롭게 맞아들여 웃고 노래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새로운 빛이 되리라 느껴요.


  다만, 이렇게 말하는 나도 내 삶이 앞으로 어느 길로 나아갈지는 아직 모릅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기에 나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짓는 삶이라 한다면, 나는 새로운 빛이 되는 길로 갈 테고, 내가 나를 바라보기에 나 스스로 쳇바퀴를 되풀이하는 지겹거나 따분한 하루라 한다면, 나는 언제나 ‘살고 죽고 살고 죽기를 되풀이하는 수렁’에 갇힌 채 예전 생각(기억)은 모조리 잊어버리리라 느낍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셔요. 깨어나지 못하는 목숨은 어떻게 살까요. 깨어나지 못한 채 밥을 먹고 똥을 누기만 하는 몸뚱이도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목숨이 있기에 모두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넋이란 없이 몸뚱이만 있다면, 내 넋을 스스로 다스리거나 가꿀 줄 모르는 채, 몸뚱이만 움직이는 나날이라 한다면, 이러한 모습을 가리켜 ‘삶’이라 할 수 있을까요.



- ‘이젠 틀림없어. 돈을 펑펑 쓰고. 좋아하는 걸 원없이 하고. 그 다음엔 일가 동반자살. 잠들면 위험해.’ (42쪽)

- ‘안 돼. 내가 도망치면, 엄마 아빠는 둘이서만이라도 죽고 말지도 몰라.’ (46쪽)





  죽으면 다시 죽으리라 느낍니다. 살면 다시 살리라 느낍니다. 죽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죽음과 맞닿습니다. 삶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삶과 이어집니다.


  사랑을 하려 하기에 사랑을 합니다. 사랑을 할 마음이 없으면 사랑을 안 하거나 못 합니다. 꿈을 꾸려 하기에 꿈을 꿉니다. 꿈을 꿀 마음이 없으면 꿈을 안 꾸거나 못 꿉니다.


  아이들이 뛰놀면서 노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은 뛰놀면서 기쁘고, 기쁘기에 노래가 샘솟습니다. 어른들은 술에 절다가 더러 노래를 읊기도 하지만, 기뻐서 읊는 노래가 아니라, 넋이 풀려서 해롱거리는 바보짓이기 일쑤입니다. 어른들도 스스로 삶이 기쁘다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늘 노래가 흐를 수 있어야 합니다. 웃고 노래하면서 스스로 아름다운 빛이 될 때에 비로소 삶입니다. 웃고 노래하는 하루를 날마다 새롭게 지으면서 스스로 아름다운 꿈을 키울 때에 바야흐로 삶이지 싶습니다.



- “아빤 바보야! 아빠 미워! 집에 가요! 죽으면 우리 다시 못 만나잖아!” (63쪽)

- “힘드시겠어요. 저, 과장님이 손수 음식을?” “아아, 이거 참 쑥스러운 꼴을 보였구먼.” “하하. 식당 밥이나 편의점 도시락에도 이제 질려서 말이지.” (107쪽)





  ‘다카하시 루미코 걸작 단편집’ 가운데 한 권으로 나온 《전무의 개》(학산문화사,2007)를 읽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타카하시 루미코 님은 예전부터 ‘삶과 죽음’ 사이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그리곤 했습니다.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를 곰곰이 살피면, 어느 작품이든 으레 ‘삶과 죽음’을 물었구나 싶습니다.


  짧게 그린 만화를 모은 《전무의 개》에서도 작품마다 삶이 흐르고 죽음이 흐릅니다. 삶을 생각하는 사람이 나오고,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삶을 생각하는 사람은 낯빛에 웃음과 노래가 흐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낯빛이 늘 죽음빛입니다.



- “당신, 내가 있는 게 그렇게 거슬려?” “아니.” “흥. 미련 같은 건 없어. 굳이 말하자면, 심술 나서!” (120쪽)

- “여보. 우린 중매로 결혼해서, 저렇게 간질간질한 추억은 하나도 없지?” “자야지.” “여보. 나중에 거실 장식장 맨 아랫서랍을 봐.” (128쪽)



  살아야 사랑을 합니다. 살아야 꿈을 꿉니다. 살아야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살아야 서로 손을 잡고 노래를 합니다. 살아야 신나게 놀고, 살아야 마음껏 하늘을 가르며 콩콩 뜁니다. 살아야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달리고, 살아야 들길이나 숲길을 거닐며 푸른 바람을 쐽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다면, 죽음입니다. 어느 것도 마음에 담지 못한다면, 죽음이지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한다면, 죽음일밖에 없습니다. 어느 것에도 마음을 기울이지 못한다면, 그예 죽음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죽으려고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음으로 나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삶을 꽃피우려고 날마다 새로 맞이합니다. 삶을 깨달아 참답게 눈을 뜨고 사랑으로 피어나고 싶기에 아침을 다시금 맞아들입니다. 4347.7.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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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Puzzle - 강경옥 Special 단편집 이미지 퍼즐
강경옥 지음 / 반디출판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56



별빛과 함께

― 이미지 퍼즐

 강경옥 글·그림

 반디 펴냄, 2005.7.15.



  요 며칠, 밤마다 별을 봅니다. 나는 눈이 썩 좋지 않아 안경을 끼어야 별을 제대로 보는데, 밤에 마당에 나올 때에 ‘아차, 안경을 또 깜빡했네.’ 하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안경을 끼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안경을 끼고 별빛 가득한 밤을 누려도 즐겁고, 안경이 없는 채로도 뭇별을 올려다보면서 별내음을 맡아도 즐겁습니다.


  2014년 올여름에는 칠월 이십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별을 보았습니다. 유월 끝무렵부터 전남 고흥에 비가 내리더니 칠월 십구일까지 비가 멎지 않았어요. 이른 장마라고 해야 할는지, 날씨가 뒤틀렸다고 해야 할는지, 스무 날 남짓 언제나 구름이 가득 끼고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내리는 스무 날 남짓, 그저 ‘비야 비야 알맞게 내리고 멈추어 주렴. 여러 날 해가 난 뒤 비가 한 차례 오고, 다시 해가 여러 날 나고, 또 비가 한 차례 오고, 이렇게 예쁜 날씨로 돌아가 주렴.’ 하고 빌었습니다. 고속도로는 끝없이 늘어나고, 공장과 아파트도 줄어들 줄 모르며, 도시는 자꾸 커지기만 하지만, 게다가 밀양에는 송전탑을 우악스럽게 밀어붙이고, 제주에도 해군기지를 억척스레 지으려고 하지요. 숲과 들과 시골을 와장창 짓밟는 짓만 이어집니다. 4대강사업이라 하면서 온 나라 냇바닥을 시멘트로 뒤덮은 짓은 또 얼마나 끔찍한가요.



- ‘E.T.를 보았다. 개봉관에서 볼 당시엔 그와 함께 갔었는데, 그는 자고 나는 울었었다. 둔감한 인간 같으니. 두 번째로 〈코러스라인〉을 보려는데 3TV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방영하고 있었다. 앞이 많이 지나갔지만 잊을 수 없는 향수로 보게 되었다. 첫째 딸의 애인이 독일군에게 그들을 알렸을 때의 배반감이 크게 느껴졌다. 옛날에도 이랬었나? (10∼11쪽)





  밤에 별을 올려다보며 생각합니다. 나와 곁님과 아이들은 밤별을 보고 싶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식구가 깃든 이 마을에 있는 할매와 할배는 별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가로등을 더 많이 놓아서 밤에 ‘어둡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 봤자, 할매와 할배는 저녁 여덟 시면 불을 다 끄고 주무시면서, 왜 이렇게 ‘밝은 밤’을 바라는지 알 노릇이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도시에서는 별을 잃어버린 지 참말 한참 되었는데, 시골에서는 별을 잊어버린 지 똑같이 한참 되었습니다. 도시에서는 아파트와 건물과 자동차와 가게와 술집과 공장 따위로 별을 잃고, 시골에서는 새마을운동과 농약과 도시화와 텔레비전 때문에 별을 잊습니다.


  참말 그래요. 시골에서조차 밤에 별빛을 누리기 힘들 뿐 아니라, 농약 냄새와 비닐쓰레기 태우는 냄새 때문에 창문을 열기에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웃집에서 빨래를 널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농약을 뿌립니다.



- ‘차 한 대, 사람 하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으로써 이곳은 마치 사람 없는 놀이동산. 이상한 세계의 앨리스. 현실 세트의 앨리스가 된 것 같은 기분. 낮 1시에 지나다닌 이 길과 부산한 저녁 8시의 이 길과 새벽 3시의 이 길은 아주 다른 세계.’ (20쪽)

- ‘한 손엔 아버지께 선물할 담배 한 갑. 동생 줄 과자 하나. 나와 동생을 위한 잡지 한 권. 오늘 밤의 여행의 선물. 기분 좋은 산책. 기분 좋은 밤이었어. 오늘은.’ (24쪽)




  강경옥 님 만화책 《이미지퍼즐》(반디,2005)을 읽습니다. 짤막하게 그린 만화를 모은 책입니다. 짧게 그린 만화를 엮은 책에 붙인 이름은 ‘이미지퍼즐’인데, 하나하나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별빛과 함께 내가 있다’는 이야기로구나 싶습니다.



- ‘살아야 할 이유가 있으면 행복하겠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 자신이 알 수 있으면, 죽어야 할 이유가 있어도 행복한 거라고 생각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 자신이 알 수 있으면.’ (74쪽)

- ‘이렇게 조용한 달밤과 조용한 이상한 나라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이 꿈속이라도 상관없어.’ (79∼80쪽)



  옛날부터 사람들은 누구나 별을 보며 살았습니다. 옛날부터 흙을 만지고 풀과 나무를 아끼던 사람들은 모두 별을 읽으며 살았습니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고 하는 말이든, 개미가 집을 옮기면 큰비가 온다고 하는 말이든, 빛을 읽으며 살았다는 뜻입니다. 들빛을 읽고 숲빛을 읽으며 별빛과 햇빛과 달빛을 읽는 우리 삶이었습니다. 물빛을 읽고 하늘빛을 읽었어요. 구름빛과 무지개빛과 흙빛을 읽었지요.


  이리하여, 지난날 시골사람은 서로서로 낯빛을 읽습니다. 얼굴빛만 보아도 이녁 몸이 어떠한가를 알고, 이녁 마음이 어떠한가를 짚습니다. 종이로 만든 책은 읽지 않았으나 얼마든지 아름다운 이야기가 피어납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이 없더라도 서로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 아니라, 숨길 것이 없습니다. 얼굴에 모든 이야기가 훤히 드러나니까요.


  삶에 흐르는 빛을 서로 읽습니다. 쌀이 떨어져서 그저 아궁이에 불만 때며 연기를 피우는지, 제대로 끼니를 이으려고 쌀로 밥을 짓는지 모두 읽습니다. 예부터 시골에서는 이웃이 모두 살붙이(사촌)입니다. 한 마을에서 모두 이웃이면서 동무로 지냈습니다.





- “굉장해요. 이 가게 참 멋있어요. 밤에 열어야 할 이유를 알 것 같아요.” “그래요? 와, 고마워요. 별이 정말로 예쁘지요?” “예, 그대로 똑똑 떨어질 것 같아요. 왓. 탁자에도 별이 비치고 있어요. 별들이 모두 이 탁자에 떨어졌으면 좋겠어요. 저 건물 뒤로 떨어져 버리면 찾을 수가 없잖아요.” (118쪽)

- “어떤 것을 원하니? 자, 뭐든지 말해 보렴!” “2천 년 전의 세상도 볼 수 있을까요?” “글쎄. 2천 년 전의 세상 전체를 보여주는 것은 어려운데. 음, 하지만 세상의 반은 보여줄 수 있다.” “세상의 반이요?” “그래. 하늘과 땅. 그 중에 반인 하늘을 보여주마. 2천 년 전의 하늘을.” (124∼125쪽)



  별을 읽지 않으면서 사람들 스스로 제 빛을 잃습니다. 해와 달하고 등을 지면서 사람들 스스로 제 넋을 잊습니다. 풀과 나무를 짓밟으면서 사람들 스스로 제 삶을 잃습니다. 흙과 하늘과 물을 어지럽히면서 사람들 스스로 제 꿈을 잊습니다.


  오늘날 우리 도시와 문명은 무엇을 읽을까요? 무엇을 말할까요? 무엇을 보여줄까요? 무엇을 나눌까요?


  밤에 별이 없는 이 나라에는 무엇이 있나요? 낮에 해를 누리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 되나요?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낮에는 해를 모르고 밤에는 별을 모릅니다.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모는 어른들도 낮에는 해를 모르고 밤에는 별을 모릅니다. 아이도 어른도 똑같은 쳇바퀴에 갇힙니다. 아이와 어른이 나란히 수렁에 갇히고 굴레를 뒤집어씁니다.





- ‘아마도 우리가 나갈 사회란 이런 거겠지. 능력 없으면 빠져라 하는 양육강식이 움직인다는 사회.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 학교 학생이지만, 선생님들에게 이 학교가 우리가 아는 벌어먹고 사는 사회임을 실감하는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안 됐다, 너무하다, 라는 느낌은 들어도 우리는 단지 그뿐인 것이다. 하긴, 우리가 뭘 할 건가.’ (165쪽)



  서른 해쯤 앞서 강경옥 님 만화를 처음 보던 때를 떠올립니다. 그무렵에 ‘별’을 자주 이야기하는 강경옥 님 만화를 보면서 ‘서울에서는 별을 보기 힘든가 보네’ 하고만 느꼈습니다. 생각해 보면, 강경옥 님 만화를 처음 만난 그무렵에, 열 살 언저리인 나이였는데, 내 고향인 인천에서 별똥을 처음으로 보았어요. 5초쯤이었나, 무척 길고 큰 별똥을 보았어요. 별똥을 처음으로 본 그때, 심부름 가던 길에 우뚝 멈추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무엇인가 활활 타오른다고 느꼈어요. 별이란 무엇이고, 별을 보는 삶이란 무엇인가 하고, 오래도록 헤아렸어요. 도시나 문명을 이루어 별을 잊거나 잃을 적에 우리들은 누구나 무엇인가 아주 크고 아름다운 빛을 잃거나 잊는다고 느꼈어요.


  별빛과 함께 삶이 빛날 수 있습니다. 별빛이 스러지면서 삶이 함께 스러질 수 있습니다. 별빛이랑 어깨동무하면서 이웃과 어깨동무할 수 있습니다. 별빛과 등지면서 이웃하고도 등질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는 자동차가 줄어들기를 바랍니다. 시골에서는 농약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도시에서는 나무가 우거지는 공원이 늘기를 바랍니다. 시골에서는 풀밭과 숲이 늘기를 바랍니다. 별이 빛나는 밤을 아름답게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햇볕과 함께 다 같이 까무잡잡한 흙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347.7.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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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코의 술 애장판 7~12권 박스 세트 2 - 전6권
오제 아키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2011년 9월부터 쓰던 <나츠코의 술> 느낌글을 2014년 7월에 마무리짓는다. 기쁘면서 홀가분하고 서운하면서 설렌다. 7권부터 12권에 이르는 책들에 붙인 느낌글을 한 자리에 모은다.


..


12권 : 목숨을 다스리는 (2014.7.24.)

http://blog.aladin.co.kr/hbooks/7083707


11권 : 맛·삶·사랑을 느끼는 사람 (2013.6.18.)

http://blog.aladin.co.kr/hbooks/6420329


10권 : 사랑맛이 날 때에 (2013.4.16.)

http://blog.aladin.co.kr/hbooks/6311080


9권 : 농약 안 쓰기를 바라나요 (2012.12.28.)

http://blog.aladin.co.kr/hbooks/6039603


8권 : 귀여운 벌레 (2012.10.12.)

http://blog.aladin.co.kr/hbooks/5903994


7권 : 마음을 고스란히 담는 손길 (2012.7.5.)

http://blog.aladin.co.kr/hbooks/5711595


만화책 <나츠코의 술>을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면서

삶을 사랑하는 기운을

사람들이 널리 받아들여서

하루를 기쁘게 열고 '지을'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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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츠코의 술 애장판 12
오제 아키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58



목숨을 다스리는

― 나츠코의 술 12

 오제 아키라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2.2.25.



  시골에서는 으레 새벽 일찍 하루를 엽니다. 동이 트기 앞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늘 매한가지입니다. 하루를 일찍 열고 일찍 닫습니다. 이른 새벽에 멧새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일손을 여밉니다. 고요하게 맞이하는 새벽이면서 하루이고, 가장 맑고 밝은 기운으로 여는 삶입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지난날에는 지구별 모든 곳이 시골입니다. 지구별에 도시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됩니다. 그러니까, 지구별 어느 곳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동이 트기 앞서 하루를 열었고, 해가 뉘엿뉘엿 기울 즈음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지구별 모든 사람은 가장 맑으면서 밝은 기운으로 하루를 열었고, 언제나 싱그러우면서 기쁜 넋으로 삶을 지었습니다.


  정치권력이 생기면서 사람들을 도시로 끌어들입니다. 왜냐하면, 정치권력을 거머쥐려는 이들은 스스로 밥을 짓지 않고 옷을 짓지 않으며 집을 짓지 않습니다. 정치권력은 ‘스스로 할 일’을 남한테 시킵니다. ‘스스로 할 일’을 안 하면서 주먹힘과 군대힘으로 사람들을 억누릅니다.


  스스로 할 일, 그러니까 ‘짓기(밥짓기·옷짓기·집짓기)’를 안 하는 사람들은 삶을 짓지 않습니다. 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하루를 새롭게 짓지 않습니다. 늘 똑같은 틀에 따라 움직입니다. 늘 똑같은 틀에 따라 움직이면서 ‘스스로 해야 하지만 스스로 안 하는 일’을 남한테 시키면서, 이 일을 해야 하는 다른 사람들도 이녁과 똑같이 틀에 맞추어 움직이도록 억누릅니다. ‘사회’란 바로 ‘똑같은 틀’입니다. 정치권력을 지키도록 하는 틀이 바로 사회입니다.





- “진정해라, 나츠코. 아직 갈 길이 멀다.” “2주쯤이야 금방인걸! 난 작년부터 기다렸다고. 그 정도는 눈 깜짝할 사이야.” (11쪽)

- “왜 그러냐?” “긴조 상조 때까진 술을 입에 대고 싶지 않아. 2주 동안 참으며 시음에 대비하고 싶어.” (19쪽)



  사회에는 새로움이 없습니다. 사회는 틀을 지키면 될 뿐입니다. 사회에는 새로운 바람이 없습니다. 사회는 틀을 그대로 이어야 할 뿐입니다.


  새로움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투표를 민주 제도에 따라 꾸준히 치르더라도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지 못하고, 새로운 정책이 생기지 않습니다. 언제나 똑같은 틀을 그대로 이으려고 할 뿐이기 때문에, 이 정당이나 저 정당이나 똑같습니다. 어느 정당 아무개가 정치 일꾼이 되더라도 사회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당 일꾼은 정당 밥그릇에 따라 ‘사회를 그대로 잇는 틀’을 단단히 하려는 생각만 하기 때문입니다.


  틀을 그대로 지키려고 하는 사회를 이으려는 마음이기에, 학교교육이 불거집니다. 모든 아이한테 똑같은 교과서 지식을 외우도록 시키고, 똑같은 대입시험을 치르게 하며, 똑같은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도록 이끄는 까닭을 잘 살펴야 합니다. 학교교육은 오직 한 가지 길을 가리킵니다. 사회를 그대로 건사하는 길, 바로 이 한 가지 때문에 학교교육에 나라돈을 엄청나게 들입니다.


  아주 마땅한 일일 텐데, 사회를 그대로 지키는 뜻을 이으려는 학교교육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시골일을 안 가르칩니다. 시골학교조차 아이들한테 시골일을 안 시킵니다. 그리고, 사회를 지키는 뜻만 가르치는 학교인 터라,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서 돌보기’라든지 ‘마음에 드는 짝꿍을 만나서 사랑스럽게 어울리기’를 안 가르칩니다. 학교에서 ‘꿈을 키우는 삶’이라든지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사랑’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셨나요? 볼 수 없습니다. 학교는 이런 일을 하려는 뜻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모든 사람을 나이에 따라 틀에 맞추려고 할 뿐이면서,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빛을 가꾸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면서, 옷차림까지 아주 판에 박도록 길들입니다. 사람들은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더 틀에 박힐 뿐 아니라, 생각이 갇히고, 마음이 굳어집니다. 삶과 생각과 마음이 흐르지 못하는 사람이 되면, 사랑이나 꿈은 자라지 못하고, 정치권력자가 꾀하는 대로 사회를 따분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 “2년 전 고작 한 움큼의 볍씨였던 쌀이 이제, 조금씩. 들어 봐요! 양조장이 새로운 술의 탄생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누룩의 속삭임이에요.” (23쪽)

- “준마이 생산량이 늘었다고는 해도 아직 10% 정도입니다. 그렇게 양이 적은 건 아무래도 합리적인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탓도 있을 겁니다. 아무리 근대화했다 해도 결국은, 인간의 감이라든가 오랜 경험이라는 미지의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건 음식이나 술을 만드는 데 있어 어쩔 수 없는 숙명이잖아요. 아무래도 살아 있는 것을 상대하다 보니.” (30∼31쪽)



  예부터 마을마다 말이 달랐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마을마다 말이 달랐습니다. 정치권력자는 어떤 땅을 이녁 경계로 삼아서 ‘나라’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예부터 지구별 시골마을 사람들은 ‘마을이 곧 나라’일 뿐입니다. 그러니, 마을마다 말이 다릅니다.


  마을마다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가 다릅니다. 서로 다른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예전에는 마을마다 말이 다르고 밥과 옷과 집이 모두 달랐기 때문에, 삶이 달랐어요. 스스로 삶을 지었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삶을 지으니, 마을마다 말과 옷과 밥과 집이 다를밖에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지난날에는 누구나 옷을 손수 지어서 입었습니다. 똑같은 옷이 한 벌조차 없습니다. 집을 스스로 지어서 살아갑니다. 밥을 스스로 지어서 먹습니다. 마을뿐 아니라 집마다 물맛이 다르고 땅 높낮이가 달라요. 그러니, 집집마다 이녁 집안 기운에 맞추어 밥을 다르게 짓습니다.


  밥맛이 다르다는 소리는, 끼니마다 밥맛을 새로 짓는다는 뜻입니다. 밥 한 그릇을 차릴 적에도 늘 삶을 짓는다는 뜻이요, 하루 내내 새로운 이야기가 넘실거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밥을 짓건 풀을 베건 길쌈을 하건 나락을 털건 지붕을 잇건 무엇을 하건 늘 노래를 부릅니다. 옛날 시골에서는 누구나 언제나 노래를 불렀어요. 하루 내내 노래를 부르며 살았습니다. 언제나 삶을 새로 지으니, 언제나 새로운 노래가 흐릅니다. ‘민요를 채집하는 학자’가 없어도, 사람들은 마음속에 노래를 담습니다. ‘민속문화를 연구하는 학자’가 없어도, 마을마다 사람들은 스스로 삶을 지어 ‘문화를 이룹’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에는 삶에 노래가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루 내내 스스로 노래를 안 짓습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상업노래는 있을는지 모르나, 스스로 이녁 삶에서 길어올리는 노래는 없습니다.




- “같은 술쌀을 같은 방식으로 빚어도 서로 다른 술이 나오는 경우가 있지?” “물론이지. 아니, 오히려 똑같은 술을 만드는 게 더 어렵다고나 할까.” (69쪽)

- “나츠코. 올려도 될까?” “물론이지!” “여보. 나츠코와 양조장 사람들이 만들어 줬어요. 당신의 목숨이에요.” (131∼132쪽)



  도시가 커지는 일은 정치권력자가 바라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시골로 떠나는 일은 정치권력자가 안 바라는 일입니다. 요즈음은 정치권력자가 생각을 넓혀 ‘시골로 떠나는 사람을 길들이는 새로운 길’을 만들곤 합니다. 요새는 나라에서 ‘귀농·귀촌 지원사업’을 꾀합니다. 사람들이 시골로 가려는 뜻은 ‘도시에서 이루는 사회가 사람을 죽음 구렁텅이로 내모는 줄 뼛속 깊이 느끼기 때문’인데,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려는 사람들한테 ‘시골에서조차 논밭을 일구어 돈을 버는 쳇바퀴 삶이 되도록 몰아붙입’니다.


  시골살이는 ‘논밭에서 유기농 곡식과 열매를 키워 돈을 버는 삶’이 아닙니다. 시골살이는 말 그대로 ‘시골을 누리는 삶’입니다.


  스스로 ‘내 말’을 되찾으려고 시골에 갑니다. 스스로 ‘내 삶’을 가꾸려고 시골에 갑니다. 스스로 ‘내 빛’을 바라보려고 시골에 갑니다.


  말과 삶과 빛을 되찾고 제대로 바라보면서 가꾸는 동안, 시나브로 ‘밥짓기·옷짓기·집짓기’에 눈을 뜹니다. 오랫동안 도시에서 길든 몸인 터라, 도시에서 묻은 때와 먼지를 털면서 시골빛을 받아들일 몸과 마음으로 가다듬습니다.


  시골에 와서 농약이나 비료나 농기계를 쓰려 한다면, 도시에서 지내는 삶하고 똑같습니다. 시골에 와서 돈벌이를 생각하려 한다면, 도시에서 보내는 쳇바퀴하고 똑같습니다. 삶을 지을 때에 삶이 빛나고, 사랑을 지을 때에 사랑이 따뜻합니다. 꿈을 지을 때에 꿈을 이루고, 노래를 지을 때에 언제나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 “내 오장육부가 춤을 추고 있어. 술을 마시고 우는 건 내 평생 처음이라고. 내가 고생해서 지은 쌀이, 이렇게 엄청난 술이 되어 돌아오다니.” (155쪽)

- “중간 작업부터 마무리 작업까지의 시간을 얼마나 줄이나. 그게 포인트란 걸 잊지 마라.” “네.” “우리 역할은 누룩과 효모에게 명령하는 게 아니다. 이 녀석들이 건강하게 활약할 자리를 만들어 주는 거지.” (183쪽)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나츠코의 술》(학산문화사,2012) 열둘째 권을 읽었습니다. 이태 앞서 열둘째 권을 읽은 뒤 오래도록 곰곰이 삭힙니다. 제대로 거둔 나락은 여러 해 묵힌 뒤 심어도 씩씩하게 싹을 틔우며 자랍니다. 알뜰히 빚은 만화책이라면 여러 해 묵히면서 생각하더라도 아름다운 슬기를 베풉니다.


  가만히 따지자면, 우리가 익힐 이야기란 ‘슬기’입니다. ‘지식’이 아닌 ‘슬기’를 익힐 노릇입니다. 지식 가운데 ‘참다운 지식’을 익혀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느낍니다만, 삶을 밝히려면 지식이 아닌 ‘슬기’로 거듭나야지 싶습니다. 똑똑히 바라보면서, 똑똑히 알고, 똑똑히 움직이며, 똑똑히 생각하고, 똑똑히 사랑하는 동안, 똑똑히 이루는 삶으로 나아가는 빛이 바로 ‘슬기’입니다.


  시골에서 논밭을 일구는 ‘지식’을 배울 일이 아닙니다. 논밭이 아닌 흙과 숲과 들을 사랑하는 ‘슬기’를 온몸과 온마음으로 느껴서 받아들일 일입니다. 만화책 《나츠코의 술》 열두 권을 돌아보면, 열두 권 가운데 열한 권은 ‘시골에서 흙을 어떻게 만져야 아름다운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열두 권 가운데 고작 한 권에서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해님과 같은 술을 빚는 즐거움’을 이야기합니다.




- “그 사실을 알면서도 결정한 거라면. 그럼에도 사에키의 가업을 잇겠다 하는 거라면, 나는.” “아버지, 전 이제 24살이 됐어요. 앞으로는 오빠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위해서도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 술을 빚겠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191쪽)



  목숨을 다스리는 술 한 방울입니다. 목숨을 보살피는 밥 한 그릇입니다. 목숨을 살찌우는 말 한 마디입니다. 목숨을 북돋우는 웃음 한 자락입니다. 목숨을 일깨우는 눈빛 한 줄기입니다. 목숨을 바라보는 사랑 한 타래입니다.


  만화책 《나츠코의 술》에 나오는 나츠코는 열둘째 권을 마무르는 자리에서 스물네 살이 됩니다. 더없이 꽃다운 나이라 할 만하면서, 비로소 피어나는 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열둘에 열둘을 더한 스물넷이라는 나이는 스스로 삶을 가꾸어 빛내는 나이로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국에서 스물네 살은 어떤 나이일까요? 사내들은 군대에서 전쟁훈련에 시달리는 나이인가요? 가시내들은 아직 대학생이거나 취업 후보생으로 보내는 나이인가요?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스물네 살을 맞이할 적에 아이들 스스로 어떤 삶을 꽃피우도록 어떤 슬기를 물려주는가요?


  천천히 동이 틉니다. 멧새와 들새는 일찌감치 들과 숲을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찾습니다. 새끼를 까서 다 키운 어미는 ‘다 자란 새끼 새’와 함께 즐겁게 날갯짓을 하면서 하늘을 가릅니다. 언제나 아름답게 새로운 하루를 맞이합니다. 4347.7.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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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이야기 2
타니카와 후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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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357



가장 좋아하는 이름

― 솔로 이야기 2

 타니카와 후미코 글·그림

 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2.9.15.



  둘레에서 만나는 수많은 여느 어른들은 아이들을 처음 만날 적에 으레 나이를 묻습니다. 그러고는 다른 것은 묻지 않습니다. 오로지 나이를 묻습니다. 아이한테 궁금한 대목이란 나이 한 가지인 줄 여깁니다.


  둘레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여느 사람들은 어른과 어른 사이에 만날 적에도 으레 나이를 묻습니다. 그러고는 다른 것은 잘 안 묻습니다. 그냥 나이를 묻습니다. 나보다 위인지 아래인지 궁금할 뿐입니다.


  내가 나이가 위라 하면, 내가 나이값을 잘 해야 할까요. 내가 나이가 밑이라 하면, 이녁이 나이값을 잘 해야 할까요. 나이란 무엇일까요. 이번 삶에서 누리는 나이가 내 참 나이라 할 만할까요, 아니면 먼먼 옛날부터 살아온 내 나이가 참 나이라 할 만할까요.


  아이한테든 어른한테든 나이를 물을 까닭이 없습니다. 이름을 물으면 넉넉합니다. 이름조차 안 물어도 됩니다. 서로 무엇을 바라보는가를 가만히 느끼면서, 서로 무엇을 사랑하면서 삶을 누리려 하는지 천천히 헤아리면 넉넉합니다.



- ‘정신을 차리고 보니 20년 간 모태솔로. 그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은 깜짝 놀라며 날 위해서 미팅에 데려가 주곤 하지만, 사실 나는 미팅에 나오는 남자가 싫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의 100% 주정뱅이이고, 나는 주정뱅이가 싫기 때문입니다.’ (6∼7쪽)

- “어머, 내가 뭘 잘못 들었나. 네 용돈은 엄마랑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번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이야. 그런데 그걸 직접 받으러 오는 게 귀찮아?” (12쪽)






  둘레에서 스치는 수많은 풀과 나무 가운데 ‘이름을 아는’ 풀과 나무가 있으나, ‘이름을 모르는’ 풀과 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아는’ 풀과 나무란, 다른 사람이 붙인 이름입니다. 내가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어느 풀이나 꽃이나 열매가 우리 몸에 어떻게 좋은가 하는 대목을 안다고 할 적에도, 다른 사람이 알아내거나 살펴본 대목일 뿐입니다. 나 스스로 먹고 마시고 누리면서 온몸으로 알아내거나 살펴본 대목이 아닙니다.


  맨 처음 꽃한테 ‘꽃’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누구일까요. 맨 처음 ‘민들레’나 ‘쑥’이나 ‘벼’ 같은 이름을 붙인 사람은 누구일까요. 우리들은 왜 이런 이름을 그대로 따라서 쓸까요.


  그런데, ‘민들레’는 서울말이나 민들레이지, 고장마다 이름이 다릅니다. 고을과 마을에서도 이름이 다릅니다. 요즈음은 신문과 방송과 책과 인터넷과 학교 때문에 모두 똑같은 이름을 쓰고 말지만, 고작 백 해 앞서만 하더라도, 또는 쉰 해 앞서만 하더라도 고장과 고을과 마을마다 다 다르게 붙인 이름을 썼습니다.



- “술 이름이 뭐가 어때서! 마스미는, 마스미는, 술을 좋아하는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술이다. 제일 좋아하는 것의 이름을 제일 소중한 딸한테 붙여 주는 게 뭐가 나빠!” (18쪽)



  지난달에 아이들과 골짝마실을 하면서 ‘하늘말나리’라는 멧꽃을 처음 보았습니다. 아주 곱게 피어난 꽃을 바라보면서 이름이 궁금했는데, 학자나 남이 붙인 이름이 궁금하다기보다, 내 마음속으로 이 꽃한테 어떤 이름을 붙일 만한지 궁금했습니다.


  이름을 잘 생각해 보셔요. 우리는 감을 굳이 ‘감’이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나름대로 이름을 얼마든지 새롭게 붙이면 됩니다. 남들이 못 알아듣는다구요? 왜 남들을 생각하나요? 나를 생각해야지요. 남들이 못 알아듣는다면, 남들은 ‘내 말’을 배워야 합니다.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말을 배워야 하고, 전라도 사람들이 경상도말을 배워야 하듯이, 남들은 ‘내 말’을 배워야 하고 나는 ‘남들 말’을 배워야 할 뿐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사귀려 한다면, 서로를 제대로 배우고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울릉도 호박엿’이라 말하지만, 이는 아주 엉터리 이름입니다. 울릉섬에서 퍼진 엿은 ‘호박엿’이 아니라 ‘후박엿’입니다. 후박나무 껍질과 열매로 고은 엿이기에 ‘후박엿’인데, 후박나무를 뭍사람이 거의 모르다 보니, 이름을 엉뚱하게 붙였고, 엉뚱한 이름이 오늘날에도 아직 널리 퍼진 채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후박엿’이 올바른 이름인데 거의 모든 사람들은 ‘호박엿’이라는 잘못된 이름을 씁니다. 잘못된 이름을 쓰면서 잘못인 줄조차 느끼지 않을 뿐더러, 아예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잘못 쓰면서 길들고 퍼진 이름이나 말이란 무엇일까요? 올바른 이름은 묻히거나 알려지지 못하는데, 참다운 이름이나 말이란 무엇일까요?




- ‘완전하게 혼자가 되어야지. 내가 바란 것은 나 자신. 그날 내가 선택한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혼자가 되어야 해. 다시 한 번 완전히 혼자가 되어야 해.’ (38쪽)

- ‘정말 바보 같은 여자. 너 같은 녀석은 평생 혼자 살아야 해. 평생 정신 차리지 말고, 착해빠져서 남자 보는 눈도 형편없는 상태로 울기만 하며 살아가렴. 언제든지 내가 너에게 달려갈 수 있게. 바보는 나야. 사랑해.’ (67∼70쪽)



  타니카와 후미코 님 만화책 《솔로 이야기》(대원씨아이,2012) 둘째 권을 읽습니다. 첫째 권에 이어 살가우면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찬찬히 흐릅니다. 나는 이 만화책을 책상맡에 이태나 그대로 둔 채 지냈습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아버지 만화책에 다섯 살 적에 빨간 볼펜으로 곳곳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큰아이는 여섯 살로 접어든 뒤에 아버지 책에 그림을 더 안 그리고, 일곱 살로 넘어선 뒤에는 제가 아버지 책에 그림을 신나게 그린 줄 까맣게 모릅니다. 알려주어도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만화책 《솔로 이야기》 둘째 권에서 ‘이름’과 얽혀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주 아끼는 딸아이한테 주정뱅이 아버지가 ‘술에 붙은 이름’을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아주 좋아하면서 늘 마시는 술에 붙은 이름이 더없이 사랑스럽다고 느껴, 이 이름을 이녁한테 아주 알뜰한 딸아이한테 붙였다고 해요.




- ‘미안해요. 인정할게요. 난 도쿄로 상경한 후 계속 쓸쓸했습니다. 너무너무 쓸쓸해서,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84쪽)

- “물론 결혼도 전업주부도 동경하고 있지만, 난 우ㅜ카타가 좋아. 지금은 그 마음을 소중하게 아끼고 싶어.” (96쪽)



  이름이란 무엇일까요. 술에 붙은 그 이름은 처음부터 ‘술 이름’이었을까요? 그 이름이 술이 아닌 꽃한테 붙었다면? 나무한테 붙었다면? 구름이나 해나 무지개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면? 이때에 우리는 무엇을 느낄까요? 술에 붙은 이름이니 영 마뜩찮을까요? 이를테면, ‘참이슬’ 같은 이름은 어떠한가요? 그냥 술이름일 뿐일까요? ‘새누리’ 같은 이름은 어떠한가요? 그냥 정당 이름일 뿐일까요?


  ‘참이슬’은 술에 붙는 이름이기 앞서 적잖은 사람들이 스스로 아름다운 넋을 가꾸려고 쓰던 이름입니다. ‘새누리’ 또한 정당에서 이 이름을 쓰기 앞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사랑스러운 얼을 일구려고 쓰던 이름입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가장 살가우면서 애틋하게 이름을 부르면서 살아갑니다. 이름을 부르는 까닭은, 다 다른 넋을 다 다르다고 느끼면서 다 같은 숨결로 사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빛을 언제나 이루고 싶기에 이름 몇 글자를 지어서 함께 부릅니다.


  풀벌레가 노래하는 여름 밤에 아이들한테 틈틈이 부채질을 해 줍니다. 밤 열 시에서 열한 시로 넘어가면 부채질은 그칩니다. 시골집에서는 밤 열한 시부터는 선선합니다. 바야흐로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찰 때이니, 배와 가슴에는 이불을 잘 여미어 주면서 새벽까지 새근새근 즐겁게 자야겠습니다. 4347.7.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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