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츠코의 술 애장판 12
오제 아키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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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58



목숨을 다스리는

― 나츠코의 술 12

 오제 아키라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2.2.25.



  시골에서는 으레 새벽 일찍 하루를 엽니다. 동이 트기 앞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늘 매한가지입니다. 하루를 일찍 열고 일찍 닫습니다. 이른 새벽에 멧새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일손을 여밉니다. 고요하게 맞이하는 새벽이면서 하루이고, 가장 맑고 밝은 기운으로 여는 삶입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지난날에는 지구별 모든 곳이 시골입니다. 지구별에 도시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됩니다. 그러니까, 지구별 어느 곳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동이 트기 앞서 하루를 열었고, 해가 뉘엿뉘엿 기울 즈음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지구별 모든 사람은 가장 맑으면서 밝은 기운으로 하루를 열었고, 언제나 싱그러우면서 기쁜 넋으로 삶을 지었습니다.


  정치권력이 생기면서 사람들을 도시로 끌어들입니다. 왜냐하면, 정치권력을 거머쥐려는 이들은 스스로 밥을 짓지 않고 옷을 짓지 않으며 집을 짓지 않습니다. 정치권력은 ‘스스로 할 일’을 남한테 시킵니다. ‘스스로 할 일’을 안 하면서 주먹힘과 군대힘으로 사람들을 억누릅니다.


  스스로 할 일, 그러니까 ‘짓기(밥짓기·옷짓기·집짓기)’를 안 하는 사람들은 삶을 짓지 않습니다. 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하루를 새롭게 짓지 않습니다. 늘 똑같은 틀에 따라 움직입니다. 늘 똑같은 틀에 따라 움직이면서 ‘스스로 해야 하지만 스스로 안 하는 일’을 남한테 시키면서, 이 일을 해야 하는 다른 사람들도 이녁과 똑같이 틀에 맞추어 움직이도록 억누릅니다. ‘사회’란 바로 ‘똑같은 틀’입니다. 정치권력을 지키도록 하는 틀이 바로 사회입니다.





- “진정해라, 나츠코. 아직 갈 길이 멀다.” “2주쯤이야 금방인걸! 난 작년부터 기다렸다고. 그 정도는 눈 깜짝할 사이야.” (11쪽)

- “왜 그러냐?” “긴조 상조 때까진 술을 입에 대고 싶지 않아. 2주 동안 참으며 시음에 대비하고 싶어.” (19쪽)



  사회에는 새로움이 없습니다. 사회는 틀을 지키면 될 뿐입니다. 사회에는 새로운 바람이 없습니다. 사회는 틀을 그대로 이어야 할 뿐입니다.


  새로움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투표를 민주 제도에 따라 꾸준히 치르더라도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지 못하고, 새로운 정책이 생기지 않습니다. 언제나 똑같은 틀을 그대로 이으려고 할 뿐이기 때문에, 이 정당이나 저 정당이나 똑같습니다. 어느 정당 아무개가 정치 일꾼이 되더라도 사회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당 일꾼은 정당 밥그릇에 따라 ‘사회를 그대로 잇는 틀’을 단단히 하려는 생각만 하기 때문입니다.


  틀을 그대로 지키려고 하는 사회를 이으려는 마음이기에, 학교교육이 불거집니다. 모든 아이한테 똑같은 교과서 지식을 외우도록 시키고, 똑같은 대입시험을 치르게 하며, 똑같은 회사원이나 공무원이 되도록 이끄는 까닭을 잘 살펴야 합니다. 학교교육은 오직 한 가지 길을 가리킵니다. 사회를 그대로 건사하는 길, 바로 이 한 가지 때문에 학교교육에 나라돈을 엄청나게 들입니다.


  아주 마땅한 일일 텐데, 사회를 그대로 지키는 뜻을 이으려는 학교교육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시골일을 안 가르칩니다. 시골학교조차 아이들한테 시골일을 안 시킵니다. 그리고, 사회를 지키는 뜻만 가르치는 학교인 터라, ‘아이를 사랑으로 낳아서 돌보기’라든지 ‘마음에 드는 짝꿍을 만나서 사랑스럽게 어울리기’를 안 가르칩니다. 학교에서 ‘꿈을 키우는 삶’이라든지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사랑’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셨나요? 볼 수 없습니다. 학교는 이런 일을 하려는 뜻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모든 사람을 나이에 따라 틀에 맞추려고 할 뿐이면서,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빛을 가꾸지 못하도록 가로막으면서, 옷차림까지 아주 판에 박도록 길들입니다. 사람들은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더 틀에 박힐 뿐 아니라, 생각이 갇히고, 마음이 굳어집니다. 삶과 생각과 마음이 흐르지 못하는 사람이 되면, 사랑이나 꿈은 자라지 못하고, 정치권력자가 꾀하는 대로 사회를 따분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 “2년 전 고작 한 움큼의 볍씨였던 쌀이 이제, 조금씩. 들어 봐요! 양조장이 새로운 술의 탄생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누룩의 속삭임이에요.” (23쪽)

- “준마이 생산량이 늘었다고는 해도 아직 10% 정도입니다. 그렇게 양이 적은 건 아무래도 합리적인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탓도 있을 겁니다. 아무리 근대화했다 해도 결국은, 인간의 감이라든가 오랜 경험이라는 미지의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건 음식이나 술을 만드는 데 있어 어쩔 수 없는 숙명이잖아요. 아무래도 살아 있는 것을 상대하다 보니.” (30∼31쪽)



  예부터 마을마다 말이 달랐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마을마다 말이 달랐습니다. 정치권력자는 어떤 땅을 이녁 경계로 삼아서 ‘나라’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예부터 지구별 시골마을 사람들은 ‘마을이 곧 나라’일 뿐입니다. 그러니, 마을마다 말이 다릅니다.


  마을마다 밥짓기와 옷짓기와 집짓기가 다릅니다. 서로 다른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예전에는 마을마다 말이 다르고 밥과 옷과 집이 모두 달랐기 때문에, 삶이 달랐어요. 스스로 삶을 지었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스스로 삶을 지으니, 마을마다 말과 옷과 밥과 집이 다를밖에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셔요. 지난날에는 누구나 옷을 손수 지어서 입었습니다. 똑같은 옷이 한 벌조차 없습니다. 집을 스스로 지어서 살아갑니다. 밥을 스스로 지어서 먹습니다. 마을뿐 아니라 집마다 물맛이 다르고 땅 높낮이가 달라요. 그러니, 집집마다 이녁 집안 기운에 맞추어 밥을 다르게 짓습니다.


  밥맛이 다르다는 소리는, 끼니마다 밥맛을 새로 짓는다는 뜻입니다. 밥 한 그릇을 차릴 적에도 늘 삶을 짓는다는 뜻이요, 하루 내내 새로운 이야기가 넘실거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부터 밥을 짓건 풀을 베건 길쌈을 하건 나락을 털건 지붕을 잇건 무엇을 하건 늘 노래를 부릅니다. 옛날 시골에서는 누구나 언제나 노래를 불렀어요. 하루 내내 노래를 부르며 살았습니다. 언제나 삶을 새로 지으니, 언제나 새로운 노래가 흐릅니다. ‘민요를 채집하는 학자’가 없어도, 사람들은 마음속에 노래를 담습니다. ‘민속문화를 연구하는 학자’가 없어도, 마을마다 사람들은 스스로 삶을 지어 ‘문화를 이룹’니다.


  이와 달리 오늘날에는 삶에 노래가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루 내내 스스로 노래를 안 짓습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상업노래는 있을는지 모르나, 스스로 이녁 삶에서 길어올리는 노래는 없습니다.




- “같은 술쌀을 같은 방식으로 빚어도 서로 다른 술이 나오는 경우가 있지?” “물론이지. 아니, 오히려 똑같은 술을 만드는 게 더 어렵다고나 할까.” (69쪽)

- “나츠코. 올려도 될까?” “물론이지!” “여보. 나츠코와 양조장 사람들이 만들어 줬어요. 당신의 목숨이에요.” (131∼132쪽)



  도시가 커지는 일은 정치권력자가 바라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시골로 떠나는 일은 정치권력자가 안 바라는 일입니다. 요즈음은 정치권력자가 생각을 넓혀 ‘시골로 떠나는 사람을 길들이는 새로운 길’을 만들곤 합니다. 요새는 나라에서 ‘귀농·귀촌 지원사업’을 꾀합니다. 사람들이 시골로 가려는 뜻은 ‘도시에서 이루는 사회가 사람을 죽음 구렁텅이로 내모는 줄 뼛속 깊이 느끼기 때문’인데,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려는 사람들한테 ‘시골에서조차 논밭을 일구어 돈을 버는 쳇바퀴 삶이 되도록 몰아붙입’니다.


  시골살이는 ‘논밭에서 유기농 곡식과 열매를 키워 돈을 버는 삶’이 아닙니다. 시골살이는 말 그대로 ‘시골을 누리는 삶’입니다.


  스스로 ‘내 말’을 되찾으려고 시골에 갑니다. 스스로 ‘내 삶’을 가꾸려고 시골에 갑니다. 스스로 ‘내 빛’을 바라보려고 시골에 갑니다.


  말과 삶과 빛을 되찾고 제대로 바라보면서 가꾸는 동안, 시나브로 ‘밥짓기·옷짓기·집짓기’에 눈을 뜹니다. 오랫동안 도시에서 길든 몸인 터라, 도시에서 묻은 때와 먼지를 털면서 시골빛을 받아들일 몸과 마음으로 가다듬습니다.


  시골에 와서 농약이나 비료나 농기계를 쓰려 한다면, 도시에서 지내는 삶하고 똑같습니다. 시골에 와서 돈벌이를 생각하려 한다면, 도시에서 보내는 쳇바퀴하고 똑같습니다. 삶을 지을 때에 삶이 빛나고, 사랑을 지을 때에 사랑이 따뜻합니다. 꿈을 지을 때에 꿈을 이루고, 노래를 지을 때에 언제나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 “내 오장육부가 춤을 추고 있어. 술을 마시고 우는 건 내 평생 처음이라고. 내가 고생해서 지은 쌀이, 이렇게 엄청난 술이 되어 돌아오다니.” (155쪽)

- “중간 작업부터 마무리 작업까지의 시간을 얼마나 줄이나. 그게 포인트란 걸 잊지 마라.” “네.” “우리 역할은 누룩과 효모에게 명령하는 게 아니다. 이 녀석들이 건강하게 활약할 자리를 만들어 주는 거지.” (183쪽)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나츠코의 술》(학산문화사,2012) 열둘째 권을 읽었습니다. 이태 앞서 열둘째 권을 읽은 뒤 오래도록 곰곰이 삭힙니다. 제대로 거둔 나락은 여러 해 묵힌 뒤 심어도 씩씩하게 싹을 틔우며 자랍니다. 알뜰히 빚은 만화책이라면 여러 해 묵히면서 생각하더라도 아름다운 슬기를 베풉니다.


  가만히 따지자면, 우리가 익힐 이야기란 ‘슬기’입니다. ‘지식’이 아닌 ‘슬기’를 익힐 노릇입니다. 지식 가운데 ‘참다운 지식’을 익혀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느낍니다만, 삶을 밝히려면 지식이 아닌 ‘슬기’로 거듭나야지 싶습니다. 똑똑히 바라보면서, 똑똑히 알고, 똑똑히 움직이며, 똑똑히 생각하고, 똑똑히 사랑하는 동안, 똑똑히 이루는 삶으로 나아가는 빛이 바로 ‘슬기’입니다.


  시골에서 논밭을 일구는 ‘지식’을 배울 일이 아닙니다. 논밭이 아닌 흙과 숲과 들을 사랑하는 ‘슬기’를 온몸과 온마음으로 느껴서 받아들일 일입니다. 만화책 《나츠코의 술》 열두 권을 돌아보면, 열두 권 가운데 열한 권은 ‘시골에서 흙을 어떻게 만져야 아름다운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열두 권 가운데 고작 한 권에서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해님과 같은 술을 빚는 즐거움’을 이야기합니다.




- “그 사실을 알면서도 결정한 거라면. 그럼에도 사에키의 가업을 잇겠다 하는 거라면, 나는.” “아버지, 전 이제 24살이 됐어요. 앞으로는 오빠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위해서도 아니라, 저 자신을 위해 술을 빚겠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191쪽)



  목숨을 다스리는 술 한 방울입니다. 목숨을 보살피는 밥 한 그릇입니다. 목숨을 살찌우는 말 한 마디입니다. 목숨을 북돋우는 웃음 한 자락입니다. 목숨을 일깨우는 눈빛 한 줄기입니다. 목숨을 바라보는 사랑 한 타래입니다.


  만화책 《나츠코의 술》에 나오는 나츠코는 열둘째 권을 마무르는 자리에서 스물네 살이 됩니다. 더없이 꽃다운 나이라 할 만하면서, 비로소 피어나는 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열둘에 열둘을 더한 스물넷이라는 나이는 스스로 삶을 가꾸어 빛내는 나이로구나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그러면, 한국에서 스물네 살은 어떤 나이일까요? 사내들은 군대에서 전쟁훈련에 시달리는 나이인가요? 가시내들은 아직 대학생이거나 취업 후보생으로 보내는 나이인가요?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스물네 살을 맞이할 적에 아이들 스스로 어떤 삶을 꽃피우도록 어떤 슬기를 물려주는가요?


  천천히 동이 틉니다. 멧새와 들새는 일찌감치 들과 숲을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찾습니다. 새끼를 까서 다 키운 어미는 ‘다 자란 새끼 새’와 함께 즐겁게 날갯짓을 하면서 하늘을 가릅니다. 언제나 아름답게 새로운 하루를 맞이합니다. 4347.7.2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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