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이야기 2
타니카와 후미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357



가장 좋아하는 이름

― 솔로 이야기 2

 타니카와 후미코 글·그림

 김진수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2.9.15.



  둘레에서 만나는 수많은 여느 어른들은 아이들을 처음 만날 적에 으레 나이를 묻습니다. 그러고는 다른 것은 묻지 않습니다. 오로지 나이를 묻습니다. 아이한테 궁금한 대목이란 나이 한 가지인 줄 여깁니다.


  둘레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여느 사람들은 어른과 어른 사이에 만날 적에도 으레 나이를 묻습니다. 그러고는 다른 것은 잘 안 묻습니다. 그냥 나이를 묻습니다. 나보다 위인지 아래인지 궁금할 뿐입니다.


  내가 나이가 위라 하면, 내가 나이값을 잘 해야 할까요. 내가 나이가 밑이라 하면, 이녁이 나이값을 잘 해야 할까요. 나이란 무엇일까요. 이번 삶에서 누리는 나이가 내 참 나이라 할 만할까요, 아니면 먼먼 옛날부터 살아온 내 나이가 참 나이라 할 만할까요.


  아이한테든 어른한테든 나이를 물을 까닭이 없습니다. 이름을 물으면 넉넉합니다. 이름조차 안 물어도 됩니다. 서로 무엇을 바라보는가를 가만히 느끼면서, 서로 무엇을 사랑하면서 삶을 누리려 하는지 천천히 헤아리면 넉넉합니다.



- ‘정신을 차리고 보니 20년 간 모태솔로. 그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은 깜짝 놀라며 날 위해서 미팅에 데려가 주곤 하지만, 사실 나는 미팅에 나오는 남자가 싫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의 100% 주정뱅이이고, 나는 주정뱅이가 싫기 때문입니다.’ (6∼7쪽)

- “어머, 내가 뭘 잘못 들었나. 네 용돈은 엄마랑 아빠가 열심히 일해서 번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이야. 그런데 그걸 직접 받으러 오는 게 귀찮아?” (12쪽)






  둘레에서 스치는 수많은 풀과 나무 가운데 ‘이름을 아는’ 풀과 나무가 있으나, ‘이름을 모르는’ 풀과 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아는’ 풀과 나무란, 다른 사람이 붙인 이름입니다. 내가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어느 풀이나 꽃이나 열매가 우리 몸에 어떻게 좋은가 하는 대목을 안다고 할 적에도, 다른 사람이 알아내거나 살펴본 대목일 뿐입니다. 나 스스로 먹고 마시고 누리면서 온몸으로 알아내거나 살펴본 대목이 아닙니다.


  맨 처음 꽃한테 ‘꽃’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누구일까요. 맨 처음 ‘민들레’나 ‘쑥’이나 ‘벼’ 같은 이름을 붙인 사람은 누구일까요. 우리들은 왜 이런 이름을 그대로 따라서 쓸까요.


  그런데, ‘민들레’는 서울말이나 민들레이지, 고장마다 이름이 다릅니다. 고을과 마을에서도 이름이 다릅니다. 요즈음은 신문과 방송과 책과 인터넷과 학교 때문에 모두 똑같은 이름을 쓰고 말지만, 고작 백 해 앞서만 하더라도, 또는 쉰 해 앞서만 하더라도 고장과 고을과 마을마다 다 다르게 붙인 이름을 썼습니다.



- “술 이름이 뭐가 어때서! 마스미는, 마스미는, 술을 좋아하는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술이다. 제일 좋아하는 것의 이름을 제일 소중한 딸한테 붙여 주는 게 뭐가 나빠!” (18쪽)



  지난달에 아이들과 골짝마실을 하면서 ‘하늘말나리’라는 멧꽃을 처음 보았습니다. 아주 곱게 피어난 꽃을 바라보면서 이름이 궁금했는데, 학자나 남이 붙인 이름이 궁금하다기보다, 내 마음속으로 이 꽃한테 어떤 이름을 붙일 만한지 궁금했습니다.


  이름을 잘 생각해 보셔요. 우리는 감을 굳이 ‘감’이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나름대로 이름을 얼마든지 새롭게 붙이면 됩니다. 남들이 못 알아듣는다구요? 왜 남들을 생각하나요? 나를 생각해야지요. 남들이 못 알아듣는다면, 남들은 ‘내 말’을 배워야 합니다.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말을 배워야 하고, 전라도 사람들이 경상도말을 배워야 하듯이, 남들은 ‘내 말’을 배워야 하고 나는 ‘남들 말’을 배워야 할 뿐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사귀려 한다면, 서로를 제대로 배우고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울릉도 호박엿’이라 말하지만, 이는 아주 엉터리 이름입니다. 울릉섬에서 퍼진 엿은 ‘호박엿’이 아니라 ‘후박엿’입니다. 후박나무 껍질과 열매로 고은 엿이기에 ‘후박엿’인데, 후박나무를 뭍사람이 거의 모르다 보니, 이름을 엉뚱하게 붙였고, 엉뚱한 이름이 오늘날에도 아직 널리 퍼진 채 바로잡히지 않습니다.


  ‘후박엿’이 올바른 이름인데 거의 모든 사람들은 ‘호박엿’이라는 잘못된 이름을 씁니다. 잘못된 이름을 쓰면서 잘못인 줄조차 느끼지 않을 뿐더러, 아예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잘못 쓰면서 길들고 퍼진 이름이나 말이란 무엇일까요? 올바른 이름은 묻히거나 알려지지 못하는데, 참다운 이름이나 말이란 무엇일까요?




- ‘완전하게 혼자가 되어야지. 내가 바란 것은 나 자신. 그날 내가 선택한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혼자가 되어야 해. 다시 한 번 완전히 혼자가 되어야 해.’ (38쪽)

- ‘정말 바보 같은 여자. 너 같은 녀석은 평생 혼자 살아야 해. 평생 정신 차리지 말고, 착해빠져서 남자 보는 눈도 형편없는 상태로 울기만 하며 살아가렴. 언제든지 내가 너에게 달려갈 수 있게. 바보는 나야. 사랑해.’ (67∼70쪽)



  타니카와 후미코 님 만화책 《솔로 이야기》(대원씨아이,2012) 둘째 권을 읽습니다. 첫째 권에 이어 살가우면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찬찬히 흐릅니다. 나는 이 만화책을 책상맡에 이태나 그대로 둔 채 지냈습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아버지 만화책에 다섯 살 적에 빨간 볼펜으로 곳곳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큰아이는 여섯 살로 접어든 뒤에 아버지 책에 그림을 더 안 그리고, 일곱 살로 넘어선 뒤에는 제가 아버지 책에 그림을 신나게 그린 줄 까맣게 모릅니다. 알려주어도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만화책 《솔로 이야기》 둘째 권에서 ‘이름’과 얽혀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주 아끼는 딸아이한테 주정뱅이 아버지가 ‘술에 붙은 이름’을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아주 좋아하면서 늘 마시는 술에 붙은 이름이 더없이 사랑스럽다고 느껴, 이 이름을 이녁한테 아주 알뜰한 딸아이한테 붙였다고 해요.




- ‘미안해요. 인정할게요. 난 도쿄로 상경한 후 계속 쓸쓸했습니다. 너무너무 쓸쓸해서,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84쪽)

- “물론 결혼도 전업주부도 동경하고 있지만, 난 우ㅜ카타가 좋아. 지금은 그 마음을 소중하게 아끼고 싶어.” (96쪽)



  이름이란 무엇일까요. 술에 붙은 그 이름은 처음부터 ‘술 이름’이었을까요? 그 이름이 술이 아닌 꽃한테 붙었다면? 나무한테 붙었다면? 구름이나 해나 무지개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면? 이때에 우리는 무엇을 느낄까요? 술에 붙은 이름이니 영 마뜩찮을까요? 이를테면, ‘참이슬’ 같은 이름은 어떠한가요? 그냥 술이름일 뿐일까요? ‘새누리’ 같은 이름은 어떠한가요? 그냥 정당 이름일 뿐일까요?


  ‘참이슬’은 술에 붙는 이름이기 앞서 적잖은 사람들이 스스로 아름다운 넋을 가꾸려고 쓰던 이름입니다. ‘새누리’ 또한 정당에서 이 이름을 쓰기 앞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사랑스러운 얼을 일구려고 쓰던 이름입니다.


  우리는 서로서로 가장 살가우면서 애틋하게 이름을 부르면서 살아갑니다. 이름을 부르는 까닭은, 다 다른 넋을 다 다르다고 느끼면서 다 같은 숨결로 사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는 아름다운 빛을 언제나 이루고 싶기에 이름 몇 글자를 지어서 함께 부릅니다.


  풀벌레가 노래하는 여름 밤에 아이들한테 틈틈이 부채질을 해 줍니다. 밤 열 시에서 열한 시로 넘어가면 부채질은 그칩니다. 시골집에서는 밤 열한 시부터는 선선합니다. 바야흐로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찰 때이니, 배와 가슴에는 이불을 잘 여미어 주면서 새벽까지 새근새근 즐겁게 자야겠습니다. 4347.7.2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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