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무의 개 - 타카하시 루미코 걸작 단편집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358



죽으면 다시

― 전무의 개, 다카하시 루미코 걸작 단편집

 타카하시 루미코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07.4.25.



  삶을 새롭게 지을 줄 아는 사람은 날마다 새롭습니다. 삶을 새롭게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은 날마다 따분합니다. 삶을 새롭게 지을 줄 아는 사람은 아침마다 상큼하게 일어나서 기운차게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합니다. 삶을 새롭게 지을 줄 모르는 사람은 아침마다 지겹고 고단하며 졸음이 넘칩니다.


  삶을 새롭게 짓기에 오늘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떤 일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웃음이 넘칩니다. 웃음은 어느새 노래가 되고, 노래는 천천히 사랑으로 피어납니다. 삶을 새롭게 짓지 않기에 오늘 하루도 어제와 똑같으리라 여기면서 웃음이 안 나옵니다. 웃음이 없으니 낯을 찌푸리고, 낯을 찌푸리니 노래가 흐르지 않으며, 아무런 사랑도 꿈도 이야기도 피어나지 않습니다.



- “나참, 왜 딱부러지게 거절을 못 해?” “아아, 또 원형탈모증이.” “개도 아니고. 허구헌날 시키면 네! 네!” (19쪽)

- “후. 마음쓰지 마. 마츠리다. 너를 위해 한 거짓말이 아니니까. 사랑하는 가족과 우리 집을 지키기 위해서야. 이 집은 나의 성이니까.” (32∼33쪽)





  죽으면 다시 살아야 하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죽기 때문입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삶은 없다고 느낍니다. 어려운 말로 ‘윤회’ 같은 낱말을 쓰기도 하는데, 삶을 누릴 적에 ‘삶짓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쳇바퀴 돌기’를 했을 테니, ‘살고 죽기를 되풀이하는 나날’로만 나아가리라 느껴요. 삶을 누릴 적에 말 그대로 삶을 누렸다면, 그러니까 삶짓기를 하면서 날마다 새롭게 맞아들여 웃고 노래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새로운 빛이 되리라 느껴요.


  다만, 이렇게 말하는 나도 내 삶이 앞으로 어느 길로 나아갈지는 아직 모릅니다. 내가 나를 바라보기에 나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짓는 삶이라 한다면, 나는 새로운 빛이 되는 길로 갈 테고, 내가 나를 바라보기에 나 스스로 쳇바퀴를 되풀이하는 지겹거나 따분한 하루라 한다면, 나는 언제나 ‘살고 죽고 살고 죽기를 되풀이하는 수렁’에 갇힌 채 예전 생각(기억)은 모조리 잊어버리리라 느낍니다.


  가만히 헤아려 보셔요. 깨어나지 못하는 목숨은 어떻게 살까요. 깨어나지 못한 채 밥을 먹고 똥을 누기만 하는 몸뚱이도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목숨이 있기에 모두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요. 넋이란 없이 몸뚱이만 있다면, 내 넋을 스스로 다스리거나 가꿀 줄 모르는 채, 몸뚱이만 움직이는 나날이라 한다면, 이러한 모습을 가리켜 ‘삶’이라 할 수 있을까요.



- ‘이젠 틀림없어. 돈을 펑펑 쓰고. 좋아하는 걸 원없이 하고. 그 다음엔 일가 동반자살. 잠들면 위험해.’ (42쪽)

- ‘안 돼. 내가 도망치면, 엄마 아빠는 둘이서만이라도 죽고 말지도 몰라.’ (46쪽)





  죽으면 다시 죽으리라 느낍니다. 살면 다시 살리라 느낍니다. 죽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죽음과 맞닿습니다. 삶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삶과 이어집니다.


  사랑을 하려 하기에 사랑을 합니다. 사랑을 할 마음이 없으면 사랑을 안 하거나 못 합니다. 꿈을 꾸려 하기에 꿈을 꿉니다. 꿈을 꿀 마음이 없으면 꿈을 안 꾸거나 못 꿉니다.


  아이들이 뛰놀면서 노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은 뛰놀면서 기쁘고, 기쁘기에 노래가 샘솟습니다. 어른들은 술에 절다가 더러 노래를 읊기도 하지만, 기뻐서 읊는 노래가 아니라, 넋이 풀려서 해롱거리는 바보짓이기 일쑤입니다. 어른들도 스스로 삶이 기쁘다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늘 노래가 흐를 수 있어야 합니다. 웃고 노래하면서 스스로 아름다운 빛이 될 때에 비로소 삶입니다. 웃고 노래하는 하루를 날마다 새롭게 지으면서 스스로 아름다운 꿈을 키울 때에 바야흐로 삶이지 싶습니다.



- “아빤 바보야! 아빠 미워! 집에 가요! 죽으면 우리 다시 못 만나잖아!” (63쪽)

- “힘드시겠어요. 저, 과장님이 손수 음식을?” “아아, 이거 참 쑥스러운 꼴을 보였구먼.” “하하. 식당 밥이나 편의점 도시락에도 이제 질려서 말이지.” (107쪽)





  ‘다카하시 루미코 걸작 단편집’ 가운데 한 권으로 나온 《전무의 개》(학산문화사,2007)를 읽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타카하시 루미코 님은 예전부터 ‘삶과 죽음’ 사이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그리곤 했습니다.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를 곰곰이 살피면, 어느 작품이든 으레 ‘삶과 죽음’을 물었구나 싶습니다.


  짧게 그린 만화를 모은 《전무의 개》에서도 작품마다 삶이 흐르고 죽음이 흐릅니다. 삶을 생각하는 사람이 나오고,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삶을 생각하는 사람은 낯빛에 웃음과 노래가 흐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낯빛이 늘 죽음빛입니다.



- “당신, 내가 있는 게 그렇게 거슬려?” “아니.” “흥. 미련 같은 건 없어. 굳이 말하자면, 심술 나서!” (120쪽)

- “여보. 우린 중매로 결혼해서, 저렇게 간질간질한 추억은 하나도 없지?” “자야지.” “여보. 나중에 거실 장식장 맨 아랫서랍을 봐.” (128쪽)



  살아야 사랑을 합니다. 살아야 꿈을 꿉니다. 살아야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살아야 서로 손을 잡고 노래를 합니다. 살아야 신나게 놀고, 살아야 마음껏 하늘을 가르며 콩콩 뜁니다. 살아야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달리고, 살아야 들길이나 숲길을 거닐며 푸른 바람을 쐽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다면, 죽음입니다. 어느 것도 마음에 담지 못한다면, 죽음이지요. 아무것도 사랑하지 못한다면, 죽음일밖에 없습니다. 어느 것에도 마음을 기울이지 못한다면, 그예 죽음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죽으려고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음으로 나아가는 삶이 아닙니다. 삶을 꽃피우려고 날마다 새로 맞이합니다. 삶을 깨달아 참답게 눈을 뜨고 사랑으로 피어나고 싶기에 아침을 다시금 맞아들입니다. 4347.7.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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