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의 가방 1 - 사진으로 가는 비밀 통로 사진가의 가방 1
강영호 외 지음, 포토넷 편집부 / 포토넷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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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사진가방에는 천기저귀와 아이 옷가지
 [찾아 읽는 사진책 41] 포토넷, 《사진가의 가방 1》(포토넷,2011)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에 잠이 깹니다. 오늘은 두 시 사십 분에 일어납니다. 여느 사람들은 모두 곱게 잠들어 느긋하게 쉴 때일 테지만, 두 아이하고 옆지기랑 살아가는 어버이로서는 이때가 느긋하게 생각을 가다듬으면서 글을 쓸 수 있는 때입니다.

 먼저, 밤새 나온 오줌기저귀가 얼마쯤 되는가를 살핍니다. 잠자리에 들기 앞서 빨아서 넌 기저귀는 어느 만큼 말랐는가를 헤아립니다. 빨래감이 좀 많이 쌓였으면 빨래부터 합니다. 그닥 안 많으면 한두 시간 즈음 글을 쓰고 나서 기저귀를 빱니다. 시골집은 여름날 밤에도 온도가 퍽 떨어지니까 방에 불을 넣습니다. 방에 불을 넣는 김에 아직 덜 마른 기저귀 빨래를 방바닥에 죽 펼칩니다. 십 분이나 이십 분에 한 번씩 뒤집습니다. 이러고 한두 시간쯤 지나면 덜 마른 기저귀 빨래는 모두 보송보송해집니다.

 “어디든 다녀 보면 작업이 될 만한 것들이 있어요(31쪽/강홍구).”라 이야기합니다만, 따로 어디를 다니지 않더라도 사진으로 찍어 이야기를 담을 삶은 가득합니다. 아니, 나 스스로 내 삶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내 삶을 내 손길로 담을 때에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사진이야기가 태어납니다. 굳이 ‘다른 먼 사람’을 찾아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어떻게 보면, ‘나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찾아나서’고, ‘다른 사람은 내 이야기를 찾아나선’다 할 만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 이야기를 찾아나서도록 하기보다, 나 스스로 내 이야기를 제대로 느끼며 깨달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으’면 넉넉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도 마땅하지만 너무도 마땅히 깨닫지 않고 마는 삶자락이라 할 텐데, 구태여 ‘낯선 다른 아이들을 어여쁘게 사진으로 담으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내가 낳아 나와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을 날마다 가만히 바라보면서 그때그때 눈부시게 달라지는 온갖 모습을 꾸밈없이 받아들이면서 담으려고 할 수 있으’면 됩니다. 더 많은 나라를 누비거나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야 하지 않아요. 더 깊은 두메로 찾아가거나 더 멀디먼 나라까지 돌아다녀야 하지 않습니다.

 “주로 시골에 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그들에게 거부감 없이 친근하게 다가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의 살림살이와 내가 들고 다니는 고급 가방 사이에는 이질감이 생기기 마련이죠. 부담 없어 보이는 이 가방은 벌써 10년째 사용하고 있어요. 평범하고 낡은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면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웃어요(176쪽/노익상).”라 이야기합니다만, 내 조그마한 살림집에서 내 살가운 살붙이하고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느낄 수 있으면 즐겁습니다. 내 살붙이부터 따사롭게 다가설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내 좋은 동무부터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즐겁습니다. 내 고마운 이웃부터 포근하게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기뻐요. 꼭 ‘가난한 시골사람’한테만 살가이 다가서야 하지 않아요. 부자한테든 가난뱅이한테든, 도시사람한테든 시골사람한테든, 자연한테든 사람한테든, 푸나무한테든 잠자리한테든, 모두모두 사랑스러운 목숨이자 넋이라고 느끼면서 예쁘게 바라볼 수 있으면 됩니다.

 둘째를 맞이하고 두 달을 지내면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둘째를 맞이하기 앞서부터 옆지기하고 시골집에서만 지내면서 가만히 돌아봅니다.

 내가 사랑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나는 누구한테 사랑받아야 할 목숨인가요.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나는 누구를 사랑하며 누구를 사진으로 찍을 때에 즐거울까요. 나는 누구하고 내 사진을 가장 예쁘며 기쁘게 나눌 때에 아름다운가요.

 “새 촬영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새들이 경계하면 더는 가까이 가지 않아야 한다는 거예요. 새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거든요. 새들도 익숙해지면 조금 더 가까이 오는 것을 허용해요. 그리고 둥지 촬영 시 시야 확보를 하겠다고 주위 나뭇가지를 꺾거나 치면 안 돼요. 천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게 되거든요(208쪽/박웅).”라 이야기합니다만, 새한테뿐 아니라 내 보금자리에서 내 아이를 사진으로 담을 때에도 ‘사진으로 찍히는 내 아이가 사진찍기 때문에 짜증스럽거나 번거롭거나 귀찮거나 성가셔서’는 안 됩니다. 이 모습 저 모습 갖은 모습 온갖 모습 들을 사진으로 차곡차곡 담기 앞서, 내 아이를 사랑하며 아끼는 매무새여야 합니다.

 더 멋져 보이는 사진 한 장 얻는 일은 대단하지 않아요. 더 좋아 보이는 사진 한 장 얻는대서 대수롭지 않아요.

 사진을 찍는 사람이랑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랑 오붓하게 살아가는 삶이어야 하고, 서로서로 살포시 껴안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진책 《사진가의 가방 1》(포토넷,2011)를 찬찬히 펼치면서 곱씹습니다. 첫째 권이 먼저 나왔고 곧 둘째 권이 나옵니다. 사진쟁이들이 저마다 당신 사진가방이 어떠한가를 찬찬히 보여주는 책을 펼치면서 이모저모 곱새깁니다. 몇몇 분을 빼고는 하나같이 큼지막한 사진기와 사진가방을 쓰고, 이 사진 장비를 알뜰히 갖추어 돌아다니자면 자가용을 몰아야 하는구나.

 “의뢰받은 일이 아닌 제 작업으로 촬영하는 경우에는 작은 가방을 들고 다녀요(226쪽/백지순).”라 이야기하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한테는 ‘네 일’과 ‘내 일’이란 따로 없습니다. ‘찍어 달라 하는 사진’이든 ‘나 스스로 찍으려 하는 사진’이든 ‘모두 내 손으로 내가 빚는 사진’입니다. 만들어 달라는 사진이든 찍어 달라는 사진이든, 내가 만들려는 사진이든 내가 찍으려는 사진이든, 그예 내가 이루는 사진이에요.

 내가 이루는 사진은 대형사진기를 손수 만들어 쓰든, 중형사진기를 만만하지 않은 값을 치러 장만해서 쓰든, 작은 필름사진기를 쓰든, 디지털사진기를 쓰든, 로모사진기를 쓰든, 똑딱이를 쓰든, 언제나 내가 이루는 사진일 뿐입니다. 다만, 《사진가의 가방 1》에 나오는 사진쟁이 가운데 ‘똑딱이 디지털사진기’로 사진삶을 이루는 분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전문 사진쟁이’가 되자면 똑딱이로는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겠지요.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똑딱이로도 넉넉히 사진삶을 이루거나 사진책을 내놓거나 사진잔치를 베풀 만큼 ‘그림’에 앞서 ‘이야기’에 눈길을 두거나 마음을 쏟는 사진쟁이가 모자란 탓이라 하겠지요.

 책을 덮고 마지막으로 되돌아봅니다. 내 사진가방은 어떠할까. 내 사진가방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아니, 나는 내 사진가방이라 할 가방이 있을까.

 아이를 낳기 앞서까지는 사진가방이라는 가방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은 뒤로는 사진가방을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아이를 낳고부터 내 사진기는 목걸이가 되었습니다. 아이를 안거나 업어야 하니 사진가방은 몹시 거추장스럽습니다. 아니, 아이를 데리고 돌아다니는데 사진가방을 들 수 없습니다. 어떠한 사진가방도 ‘아이를 안거나 업거나 데리고 다니면서 쓰기에 좋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나는 60리터들이 커다란 멧사람배낭을 멥니다. 이 커다란 멧사람배낭에는 아이 옷가지와 천기저귀를 맨 먼저 담습니다. 아이가 마실 물을 담는 병을 담고, 아이 손닦개와 아이 먹을거리를 담습니다. 아이가 볼 그림책을 담고, 아이 놀잇감이나 인형도 하나쯤 담습니다. 코가 막힐 때에 코를 뚫을 소금물이랑 면봉을 담습니다. 손톱깎이와 귀후비개 들을 천주머니에 담아 배낭주머니에 넣습니다. 몇 가지 응급약품을 천주머니에 담아 배낭주머니에 넣습니다. 60리터들이 내 커다란 가방에 들어가는 내 사진 장비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작은 가방을 하나 따로 마련해서 이 작은 가방에 필름사진기 한 대랑 필름 몇 통을 넣습니다. 디지털사진기 하나는 목걸이로 걸칩니다. 메모리카드 몇 장을 또다른 작은 가방 주머니에 넣습니다. 작은 가방에는 아이가 쓸 머리핀과 머리끈이 깃듭니다. 아이 머리를 빗을 빗도 깃들고, 곧바로 꺼내어 쓸 손닦개도 깃듭니다. 자가용을 몰지 않을 뿐더러, 자가용 굴릴 돈이 없는 우리 식구는 늘 걸어서 움직입니다. 걸어서 움직이다가 버스가 있으면 고맙게 버스를 얻어 탑니다. 읍내를 다녀올 때에는 자전거에 수레를 붙여 아이는 수레에 앉히고 아버지가 자전거를 몹니다. 등에 멘 가방과 수레 뒤쪽에 장날 저잣거리에서 장만한 먹을거리를 담습니다. 이때에도 디지털사진기는 목걸이입니다. 자전거를 몰면서 뒷거울로 아이 모습을 살핍니다. 한손으로는 자전거 손잡이를 붙잡고 다른 한손으로 사진기를 들어 뒷거울에 비치는 아이 모습을 찍습니다. 이러고 보면, 조금 먼 마실이 아닌 가까운 읍내 마실일 때에는 내 사진가방이 ‘집식구 먹을거리’로 가득 찹니다. 둘째가 열 몇 살을 넘을 때까지 내 사진가방에는 한결같이 아이들 옷가지와 아이들이 쓸 물건으로 꽉 차리라 봅니다. (4344.7.26.불.ㅎㄲㅅㄱ)


― 사진가의 가방 1 (포토넷 엮음,포토넷 펴냄,2011.7.14./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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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Focus: August Sander: Photographs from the J. Paul Getty Museum (Paperback) - Photographs from the J. Paul Getty Museum
August Sander / J Paul Getty Museum Pubns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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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사진이 아름다운 까닭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31]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 《in focus AUGUST SANDER》(The J.Paul Getty Museum,2000)



 타셴(Taschen)에서 1999년에 내놓은 《August Sander》를 2006년 7월에 처음 만났습니다. 서울 연남동 골목 안쪽에 자리한 책쉼터에 예쁘게 꽂힌 이 책을 이곳을 찾아갈 때마다 들추곤 했습니다. 빌려서는 읽을 수 없고, 이곳에 찾아올 때에만 읽을 수 있습니다. 이제 이곳은 문을 닫았으니 더 찾아 읽을 수 없습니다만, 도서관이나 책쉼터가 왜 있어야 하는가를 새삼 깨닫도록 해 주었습니다.

 2010년 11월, 서울 홍익대 앞에 자리한 책방 〈온고당〉에서 또다른 《August Sander》를 만납니다. 이번에는 포토 포쉐(PHOTO POCHE)에서 1995년에 낸 판입니다. 이곳에서는 구경만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살 수도 있습니다. 기꺼이 장만합니다. 석 달이 지난 2011년 2월, 설마 싶어 누리책방을 뒤적여 봅니다. 사진쟁이 아우구스트 잔더 님 사진책 몇 가지를 집에서 받아볼 수 있습니다. 마땅한 소리이지만, 돈만 있으면 5만 원짜리이든 8만 원짜리이든 마음껏 살 수 있습니다. 내 살림돈은 그리 넉넉하지 않기에 2만 원짜리 작은 사진책을 하나 사기로 합니다. 보름쯤 기다린 끝에 책을 받아듭니다. 2000년에 나온 《in focus AUGUST SANDER》(The J.Paul Getty Museum,2000)를 손에 쥐면서 생각합니다.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아우구스트 잔더 님 사진책이 한글판으로 나오기를 바랄 수 없고, 바라기 힘들며, 바란다는 일은 부질없으니, 책을 살 돈을 조금씩 그러모아 이렇게 하나씩 나라밖 책을 사야겠구나.

 내 누리책방 ‘보관함’에는 어느덧 백서른 권이 넘는 나라밖 사진책이 담깁니다. 권마다 줄잡아 사오만 원쯤 되니, 백서른 권만 하더라도 책값으로 오백만 원이 넘습니다. 언제쯤 이 사진책을 다 장만할 수 있겠는가 꿈을 꿉니다. 어쩌면 앞으로 열 해나 스무 해나 서른 해가 지난 뒤까지 보관함에서 잠을 자다가 그만 판이 끊어져 더는 살 수 없는 책이 있겠지요. 책으로는 만지거나 들추지 못한 채 그저 책이름만 읊으며 그칠 사진책이 퍽 많겠지요. 나는 내 깜냥껏 푼푼이 그러모은 돈으로 겨우겨우 사들인 사진책을 갈무리해서 자그마한 ‘개인 도서관’을 하나 열었지만, 내 적은 살림돈으로는 장만하기 어려운 수많은 사진책이 가득 꽂힌 너른 사진책 도서관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마련한다면, 이리하여 이 나라에 ‘국립 사진책 도서관’이 한 군데쯤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새로운 꿈을 꿉니다.

 그러나, 여권 없고 비행기표 살 틈이 없는 몸으로서는 덧없다 싶은 꿈은 꾸지 말아야지요. 나라밖 사진책을 귓돈 살짝 얹어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오늘날 터전을 생각한다면, 내 책을 내가 건사해서 마련한 도서관으로도 흐뭇하고, 나라밖 사진책으로 무엇이 있는지를 누리책방에서 살펴보며 보관함에 담을 수 있기라도 한 일은 아주 고마우며 반갑고 즐겁습니다. 아우구스트 잔더 님 사진책을 반드시 한글 판으로 읽어야 하지는 않거든요. 영어 판이든 프랑스말 판이든 독일말 판이든 일본말 판이든 괜찮습니다. 사진을 볼 수 있으면 어느 판이든 고맙습니다. 그저, 책 앞이나 뒤에 붙는 풀이말이나 도움말은 한 줄조차 못 읽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책 앞뒤에 붙는 다른 글을 못 읽기 때문에, 더욱더 땀을 쏟거나 마음을 기울여 ‘사진읽기’만 하면 됩니다. 내 깜냥껏 사진을 읽고, 내 슬기를 모두어 사진을 새기며, 내 기운을 들여 사진을 껴안습니다.

 《in focus AUGUST SANDER》(The J.Paul Getty Museum,2000)를 펼칩니다. 박물관에서 건사한 사진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이 사진마다 깃든 이야기를 붙입니다. 책 끝에는 퍽 길게 ‘아우구스트 잔더 사진삶 돌아보기’를 놓고 박물관 사람이랑 사진비평가랑 주고받은 이야기를 싣습니다.

 《August Sander》(PHOTO POCHE,1995)를 펼칩니다. 앞머리에 ‘아우구스트 잔더 사진삶 살피기’를 꽤 길게 붙인 다음, 사진만 죽 보여줍니다.

 두 사진책에는 겹치는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in focus AUGUST SANDER》에 실린 사진은 ‘The J.Paul Getty Museum’이라는 데에서만 책으로 엮어 보여줄 수 있는지 모릅니다. 한 장쯤 겹치는 듯한데, 두 사진책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으면서, 아우구스트 잔더 님 사진을 하나라도 더 볼 수 있어 기쁩니다.

 사람을 앞에서 가만히 마주 바라보면서 담은 사진은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발자취와 굳은살이 살포시 감돕니다. 마주 바라보는 사진은 많고, 마주 바라보는 사진은 누구나 으레 찍습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 발자취와 굳은살을 고이 어우르려고 마음을 바치거나 힘을 들이는 사진쟁이는 많지 않아요. 얼굴과 차림새와 눈빛에 사로잡히기 일쑤입니다.

 얼굴이 이루어진 발자취, 차림새에 드러나는 하루하루, 눈빛에 서린 마음결과 생각밭을 고루 헤아리면서 함께 사랑하는 ‘사람사진’은 좀처럼 태어나지 못합니다.

 사람을 찍는 사진이란,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떠한가만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람을 찍는 사진이란, 이 한 사람하고 얽힌 사람살이와 마을과 이웃과 동무와 사랑과 꿈이 줄줄이 이어지도록 찍는 사진입니다. 굳이 눈물을 찍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애써 웃음을 찍어야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삶을 찍으면 됩니다. 사진기를 쥔 사람과 사진기를 바라보는 사람이 서로를 삶으로 마주하면서 함께 손을 맞잡듯 사람사진을 찍을 수 있으면 됩니다.

 아우구스트 잔더 님 사진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진으로 찍는 밑바탕을 보여줄 뿐입니다. 사람을 사진으로 찍는 매무새를 마무리짓는다든지 빛낸다든지 한껏 끌어올린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사진으로 찍는 밑마음을 들려줄 뿐입니다.

 사진이란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람사진이란 대단하지 않습니다. 아우구스트 잔더 님이란 대단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 삶과 목숨과 죽음과 사랑이 대단합니다. 이 대단한 다 다른 사람들 삶과 목숨과 죽음과 사랑을 사진으로 옮긴대서 사진이 대단하지 않습니다. 이 대단한 이야기를 사진으로 적바림할 수 있으면, 사진은 아름답습니다. 사진은 아름답게 걸어가는 사람들 삶자락을 적바림하는 예쁜 문화이자 예술이요 이야기마당입니다. (4344.7.1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1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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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as Feininger (Paperback)
Andreas Feininger / Stern Portfolio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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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야기하려는 사진책은 뜨지 않기에, 안드레아스 파이닝거 님 사진삶을 알 수 있는 다른 책에 걸어 놓습니다.



 한국 사진쟁이는 나이 들면 ‘추상’에 젖는다만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30] 안드레아스 파이닝거(Andreas Feininger), 《TREES》(Rizzoli,1991)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사진길을 걸어온 ‘사진밭 어르신’은 나이가 들수록 ‘추상’ 사진을 찍곤 합니다. 나이가 아직 많이 안 들었어도 제법 이름을 알린 뒤에는 추상 사진을 즐기곤 합니다. 돌을 보거나 나무를 보거나 시골 논자락을 보거나 물을 보거나 풀을 보거나 하면서 추상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림이든 글이든 사진이든 ‘구상’이 있기에 추상이 있고, 추상이 있으면서 구상이 있을 테지요. 그러나, 구상이든 추상이든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애써 구상이나 추상으로 나눌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은 사진으로 말할 뿐이요, 사진을 찍는 사람 또한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사진책 《TREES》(Rizzoli,1991)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TREES》를 내놓은 이는 ‘Andreas Feininger’ 님입니다. 한글로 이 이름을 어떻게 적어야 좋을는지 모르겠는데, ‘안드레아 파이닝거’라 적는 분이 있고 ‘앙드레아 파이닝거’라 적는 분이 있으며 ‘안드레아스 파이닝거’라 적는 분이 있어요. 어쩌면 ‘앤드래이어스 파이닝거’라고 적어야 할는지 모릅니다. 저로서는 어느 쪽이 맞게 부르는 이름인지 알쏭달쏭하기에 ‘안드레아스 파이닝거’로 읽기로 합니다.

 그러니까, 사진책 《나무들》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안드레아스 파이닝거 님은 적잖은 사진비평을 썼고, 이분 사진비평은 1970∼80년대에 곧잘 한국말로 옮겨졌습니다. 1990년대로 접어들고 2000년대와 2010년대가 된 오늘날에는 이분 사진비평을 찾아보기 몹시 어렵고, 이제 이분 사진비평을 들면서 사진을 살피거나 배우는 흐름은 거의 없다 할 만합니다. 예전 사람이요 예전 이야기이며 예전 사진이니까 이렇게 잊을 만하거나 손사래쳐도 괜찮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진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어느 한때에만 읽거나 살필 만하고 다른 한때에는 안 읽거나 안 살필 만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읽거나 살필 만하면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읽거나 살필 만합니다. 안 읽거나 안 살필 만하면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안 읽거나 안 살필 만해요.

 어찌 바라보면 사진책 《나무들》 또한 추상 사진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무들》을 추상 사진으로 넣는 일은 썩 옳지 않다고 느껴요. 안젤 아담스 님 사진이 추상 사진이 아니듯, 안드레아스 파이닝거 님 사진도 추상이 아니요, 또 구상이 아닌, 그예 사진이라고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사진책 《나무들》에는 나무들을 사진으로 담은 안드레아스 파이닝거 님 글이 퍽 길게 많이 깃듭니다.

 무슨 할 말이 이다지도 많아 ‘사진쟁이’가 사진 아닌 글로 이야기를 일구어 사진책을 내놓을까요. 사진쟁이가 사진 아닌 글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은 얼마나 사진쟁이답거나 사진책을 잘 일구었다 할 만할까요.

 사진은 사진이기에 사진으로 처음과 끝을 보여주어야 옳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진은 사진이니까 사진이 아닌 글로 처음과 끝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글이나 그림도 이와 똑같습니다. 글은 글이기에 글로 모두 보여줄 수 있지만, 글을 줄이거나 덜어 그림이나 사진을 넣으면서 보여줄 수 있어요. 그림에서도 그림으로 모든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나, 그림을 줄이거나 덜며 사진이나 글이 어우러지도록 이야기를 엮을 수 있어요.

 사랑은 사랑으로 보여줍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느끼게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어디에 깃들까요. 사랑은 무엇으로 보여주거나 무엇으로 느끼게 할까요.

 어버이가 아이한테 차리는 밥 한 그릇에 사랑이 깃듭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입히는 옷을 빨아서 곱게 널어 보송보송 말릴 때에 사랑이 깃듭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새근새근 재우는 포근한 보금자리에 사랑이 깃듭니다.

 사진쟁이가 사람 삶을 차근차근 돌아보면서 사진을 찍을 때에도 다큐사진이 된다 하지만, 사진쟁이가 무당벌레 삶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사진을 찍을 때에도 다큐사진이 됩니다. 사진쟁이가 가난한 사람들 마을에서 오래오래 지내면서 사진을 찍을 적에도 다큐사진이 된다 할 테지만, 사진쟁이가 쑥이나 질경이 한살이를 곰곰이 들여다보면서 사진을 찍을 때에도 다큐사진이 돼요.

 다큐사진에는 어떠한 틀이 없습니다. 사진에는 이런저런 울타리가 없습니다. 다큐글도 아무런 틀이 없고, 글 또한 구지레한 울타리가 없어요. 오직 삶으로 말합니다. 오로지 삶을 사랑하는 넋으로 말합니다. 온통 삶을 사랑하는 넋을 따스히 어루만지면서 말해요.

 사진책 《나무들》을 여러 차례 되읽으면서 거듭거듭 되뇝니다. 우리 나라에서 사진길을 걷는 숱한 어르신들이 사진책 《나무들》에 어떠한 손길과 마음길과 눈길이 깃드는가를 차분히 느낄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고 거듭거듭 되뇝니다. 사람을 찍어도 사람들 눈동자만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스며들면서 어깨동무하지 않을 때에는 겉치레로 그칩니다. 나무 한 그루를 찍어도 나뭇잎 한 장이 아니라 등걸과 나이테와 꽃송이 깊디깊게 스며들어 어깨동무할 때라야 비로소 사진입니다.

 안드레아스 파이닝거 님은 숱하게 쓴 사진비평으로 사진길 걷는 사람들한테 좋은 이슬떨이가 되었는데, 사진비평을 《나무들》 같은 사진책에 살포시 녹이면서 ‘머리로 하는 이론’이나 ‘머리로 만드는 사진’이 아닌, ‘삶으로 나누는 말’과 ‘마음으로 찍는 사진’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나무숲에 들어가 보셔요. 가까이에 나무숲이 없다면, 도시 한복판에서 자동차한테 둘러싸인 외로운 나무 곁에 서 보셔요. 우거진 나무들 사이에서든 외로운 나무 곁에서든, 나무 한 그루가 자라온 나날이 아로새겨진 굵직한 줄기를 쓰다듬으면서 나무가 사람 손을 거쳐 나누려 하는 따스한 기운을 받아들여 보셔요.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를 들어 보셔요. 우람한 나무에 내려앉아 다리쉼을 하는 온갖 새를 바라보고, 이 온갖 새가 지저귀는 끝없는 노래를 들어 보셔요.

 나무 숨소리와 나무 노랫소리를 나무 푸른그늘과 함께 맞아들일 수 있으면, 누구나 《나무들》 같은 사진책을 예쁘게 일구며 흐뭇하게 웃습니다. (4344.7.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1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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荒木經惟ト-キョ-·アルキ (とんぼの本) (單行本)
荒木 經惟 / 新潮社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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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나게 살아가며 재미나게 사진찍기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9]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經惟), 《ト-キョ-·アルキ》(新潮社,2009)


 1940년에 태어나 젊은 날부터 사진을 찍은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2009년에 《ト-キョ-·アルキ》(新潮社,2009)라는 자그마한 사진책 하나를 내놓습니다. 1964년에 사진상을 한 번 받고, 1971년에는 혼인나들이를 한 이야기를 당신 돈으로 1000권 내놓기도 했다니까, 2009년에 내놓은 《ト-キョ-·アルキ》는 어쩌면 ‘아라키 사진삶 쉰 해’를 기리는 자그마한 선물이라 여길 수 있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보여준 사진삶을 다른 사진책으로 만난 이한테 《ト-キョ-·アルキ》는 좀 남다르다 싶은 사진책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ト-キョ-·アルキ》는 책이름 그대로 ‘아라키’가 여태껏 내 나름대로 재미나게 살아온 나날을 재미난 발걸음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책이라 느낄 수 있어요.

 사진기 하나 목에 걸고는 도심지를 천천히 거닐면서 사진을 찍은 이야기를 그러모아 책 하나로 묶었다고 볼 수 있는 한편, ‘아라키는 이렇게 걷고 이렇게 만나며 이렇게 느껴 이렇게 나눈다’고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땅한 이야기입니다만,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2007년에 내놓은 《ARAKI》(Taschen)를 읽는다 해서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알 수 없고, 1971년에 당신 돈을 들여 내놓은 《センチメンタルな旅》를 어찌저찌 찾아내어 읽는다 해서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요즈음 어떠한 삶을 일구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와 함께, 《ARAKI》나 《センチメンタルな旅》를 읽지 않고서 아라키 노부요시 사진과 삶과 사랑과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없어요.

 사진책 《ト-キョ-·アルキ》를 읽을 때에는 오직 하나만 느끼면서 알 수 있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걸은 길은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걸었기에 뜻있거나 뜻깊지 않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사진으로 담는 사람들을 만나기 앞서 언제나 뜻있고 뜻깊던 길입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사진으로 담든, 다른 누군가가 사진으로 담든 한결같이 뜻있고 뜻깊은 길입니다. 왜냐하면 누가 어떠한 얼거리와 넋으로 사진으로 담든, ‘사진으로 담기는 사람들마다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저마다 다르게 아끼면서 보살피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들이 이제껏 살아오며 일군 이야기 가운데 한 자락을 고맙게 얻습니다. 사진쟁이가 고맙게 얻은 사진을 그러모아 내놓은 책을 읽는 사람은 이 사진책 하나에 그러모인 숱한 사람들 숱한 삶과 사랑 이야기를 고맙게 들여다보면서 생각날개를 펼칩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숱한 사람들 삶자락 이야기 가운데 귀퉁이를 예쁘게 바라보면서 담고, 아라키 노부요시 님 사진책을 읽는 사람은 아라키 노부요시 님 눈썰미 가운데 한 조각을 아리땁게 읽으면서 가슴이 벅찹니다.

 어느 누구 삶이라 하더라도 똑같습니다. 사랑스럽지 않은 삶이 없고, 사랑스레 담지 못할 삶이 없습니다.

 도쿄 한복판에도 있다는 가난한 사람들 뒷골목이라 해서 후줄근할 까닭이 없습니다. 돈이 적어 살림살이가 후줄근하더라도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들인걸요. 도쿄 변두리에도 있다는 돈있는 사람들 복닥거리는 눈부신 길거리라 해서 돋보일 까닭이 없습니다. 돈이 많아 한밤에도 불빛이 번쩍거리더라도 사랑스레 살아가지 않으면 사랑스럽지 않습니다.

 사랑스레 살아가는 사람한테서는 사랑스레 살아가는 기운을 느끼면서 사랑스레 살아가는 손길로 담은 사랑스레 나눌 사진이 태어납니다. 재미나게 살아가는 사람한테서는 재미나게 살아가는 얼을 받아들이면서 재미나게 살아가는 손놀림으로 담은 재미나게 나눌 사진이 태어납니다.

 주문을 받아 멋들어지게 찍어야 하는 사진이라면, 참말로 멋들어지게 보이는 사진이 태어나겠지요. 사랑하는 짝꿍이랑 살아가며 낳은 사랑스러운 아이를 담는 사진이라면, 참말로 사랑스레 보이는 아이 모습이 빛나는 사진이 태어나겠지요.

 사람이 선 삶자리에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람이 마주하는 삶자락에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람이 사랑하는 삶터에서 사진이 태어납니다.

 일본 도쿄라 해서 더 대단하다 싶은 사진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한국 괴산이라 해서 더 시골스럽거나 투박하다 싶은 사진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든, 내 넋과 얼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사진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찍는 사진이기에 꼭 도시스러운 사진이 되지 않아요. 멧골이나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찍은 사진이라서 반드시 멧골스럽거나 바닷가스러운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품는 꿈과 돌보는 넋에 따라 달라지는 사진입니다. 좋아하는 길과 사랑하는 사람에 따라 바뀌는 사진이에요.

 제주섬에서 살아가거나 제주섬을 자주 찾아가지만, 정작 제주섬 속내를 사진으로 못 담고 글로 못 쓰며 그림으로 못 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지내거나 서울을 자주 들르지만, 막상 서울 속살을 사진으로 못 찍고 글로 못 옮기며 그림으로 못 보이는 사람이 있어요.

 늘 지내거나 오래 지내거나 자주 가까이한대서 더 잘 알지 않습니다. 늘 걷는 길이라서 더 꼼꼼히 잘 알아보지 않습니다. 처음 지나가거나 한 번 지나치는 길이라 하더라도 내 마음밭에서 사랑씨가 자라는 사람이라면, 날마다 수없이 지나가는 길이라 하지만 내 마음밭에 아무런 씨앗 하나 자라지 않는 사람보다 살뜰히 느끼어 꽃피우는 이야기열매가 있습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 사진책 《ト-キョ-·アルキ》는 이야기합니다. 재미난 이야기를 재미난 눈썰미와 손짓과 발걸음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나저나, 큰아이를 짐받이에 붙인 걸상에 앉히고 작은아이를 등에 업은 채 바구니에는 먹을거리나 짐을 실은데다가 가방을 손잡이에 걸고 기어 없는 자전거를 달리는 아주머니는 언제 보아도 그지없이 아름답구나 싶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 가운데 이와 같은 자전거를 모는 분은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사진으로도 찾아보지 못합니다. (4344.7.10.해.ㅎㄲ
 

 

(최종규 . 2011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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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ra 2011-07-1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같이 비오는 날, 따뜻한 녹차와 함께 보고싶은 책이네요. 리뷰보고 구매하고 싶어졌습니다.^^

숲노래 2011-07-11 17:11   좋아요 0 | URL
일본말을 할 줄 아신다면, 글을 읽으면서 한결 재미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木村伊兵衛昭和を寫す〈1〉戰前と戰後 (ちくま文庫) (文庫)
木村 伊兵衛 / 筑摩書房 / 1995년 5월
평점 :
품절





 사진으로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 찾기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25] 기무라 이헤이(木村伊兵衛),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1 戰前と戰後》(筑摩書房,1995)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어떤 나날인가를 돌아보면서 나눈 사진이 살포시 실린 사진책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1 戰前と戰後》(筑摩書房,1995)를 넘기면서 생각합니다. 소설 《스물네 개의 눈동자》에 나오는 쇼도지마섬 작은 학교 작은 아이들을 맡은 작은 교사는 스물네 눈동자를 맑게 빛나는 열두 아이하고 나란히 서서 사진 한 장을 찍습니다. 교사와 아이들은 사진 열석 장을 하나씩 나누어 갖고, 이 사진을 언제까지나 간직하면서 지난날을 그립니다. 일본 정부가 대동아전쟁이니 태평양전쟁이니 자꾸자꾸 일으키면서 아이들까지 ‘전쟁 바보’로 만들어 싸움터로 내몰아 죽고 죽이는 짓을 일삼도록 하지만, 작은 섬 작은 학교 작은 교사는 아이들한테 ‘충은 보국’이 아닌 ‘사랑과 믿음’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무렵 작은 섬 작은 학교 작은 교사 둘레에 ‘일본이 일으키는 전쟁이 얼마나 덧없으면서 나쁜가’를 함께 느끼면서 나무라는 이웃이란 없습니다. 초롱초롱 눈망울을 맑게 빛내던 열두 아이조차 저희 어버이가 ‘일본 정부가 시키는 제국주의 교육과 정책’에 젖어들며 저희를 키우기 때문에, 이러한 틀에서 쉬 헤어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기무라 이헤이 님이 빚은 사진으로 엮은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1 戰前と戰後》는 어떤 사진이라 할 만할까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기 앞서’와 ‘전쟁을 끝마친 다음’에 보이는 모습이 담긴 이 사진책은 사진쟁이 어떠한 넋을 실었다 할 만할까요.

 사진이란 ‘기록하는 사진’일까요. 사진은 ‘기록하는 구실’을 하도록 만들었을까요. 사진이란 ‘예술하는 사진’인가요. 사진은 ‘예술하는 노릇’을 하자며 만들었나요.

 어쩌면, 사진을 처음 만들어 널리 퍼뜨린 사람들은 ‘기록하는 사진’과 ‘예술하는 사진’을 함께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여기에 ‘돈을 버는 사진’이라든지 ‘외치는 사진’이 차근차근 샘솟았다 할 만합니다. 그런데, 기무라 이헤이 님 사진은 이 가운데 어디 갈래에도 들지 않습니다.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1 戰前と戰後》에 담긴 사진은 ‘1920년대 일본’이나 ‘1940년대 일본’이나 ‘1960년대 일본’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기무라 이헤이 님이 찍은 사진을 그러모은 조그마한 사진책에는 ‘일본에서 살아간 사람들 나날’이 담길 뿐입니다. 기록도 증언도 인문지리도 아닙니다. 문화도 예술도 멋도 호사 취미도 아닙니다. 오직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사진으로 옮길 뿐이에요.

 원자폭탄을 맞아 송두리째 날아간 나가사키 천주교회당 사진을 보며 생각합니다. 나가카시 천주교회당과 천주교마을 이야기는 나가이 다카시 님이 쓴 《영원한 것을》이라는 이야기책에 잘 나왔습니다. 시골사람들이 조용한 시골자락에서 조용히 흙을 일구면서 천천히 일군 자그마한 마을 자그마한 예배당이 나가사키 천주교회당입니다. 남을 해코지하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으며 역사가 오래된 물건이라서 섬기지 않을 뿐더러, 곁에서 아파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옆에서 착하게 살아가는 이웃을 보살피는 믿음집이 나가사키 천주교회당이에요. 그런데, 이러한 곳에도 원자폭탄은 떨어져 너나 가리지 않고 하루아침에 사라집니다. 2011년 봄날, 후쿠시마 작은 마을이 난데없이 사라진 일하고 엇비슷합니다. 착하게 살던 사람도 밉게 살던 사람도 곱게 살던 사람도 짓궂게 살던 사람도 똑같이 하루아침에 사라져요. 폭격기에서 떨구는 폭탄 때문에 죽든, 바닷물이 크게 불어 마을을 휘감으면서 죽든, 죽음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 죽든, 차에 치어 죽든, 죽음은 사람을 고르지 않습니다.

 기무라 이헤이 님 손길을 거쳐 사진으로 옮겨진 삶이 그러모인 《木村伊兵衛 昭和を寫す 1 戰前と戰後》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을 다시금 헤아립니다. 바닷마을 사내들이 배를 바다에 띄우는 모습에서라든지, 바닷마을 아가씨들이 일손을 멈추고 쉬면서 웃음꽃을 피우는 모습에서라든지, 바나나송이를 이고 장마당을 걷는 뒷모습이라든지, 검불을 모으는 아이들 모습이라든지, 베틀을 밟는 젊은 여자와 늙은 여자 모습이라든지, 사진마다 이 사진에 깃든 사람들 이야기가 고스란히 어우러집니다. 돋보이고자 찍은 사진이 아니요, 내보이려고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무슨 인문지리 연구를 한다며 찍는 사진이 아니며, 가난한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를 다큐멘터리로 보여주겠다는 사진이 아닙니다. 그예 나랑 함께 살아가는 이웃을 차분히 마주하면서 이야기꽃 함께 피우는 사진입니다.

 사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사진은 무엇을 하면 아름다울까요. 사진으로 무엇을 하자며 사진길을 걸을 수 있나요. 사진으로 무엇을 하면서 아름다움을 서로 나누는가요.

 역사에 길이길이 남아야 좋은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져야 훌륭한 사진이 되지 않습니다. 교과서에 실린다거나 박물관 잘 보이는 자리에 걸려야 거룩한 사진이 되지 않아요. 웃음이 나게 이끌고 눈물이 나게 끌어당길 때에 사진입니다. 웃음이 나게 읽혀야 글이고, 눈물이 나게 보여져야 그림입니다. 웃으면서 부르는 노래요, 울면서 추는 춤입니다. 모든 삶은 모든 이야기입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삶을 일구면서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2010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한국 사진쟁이는 어떤 길을 걷는지 궁금합니다. 2000년대에는 어떤 길을 걸었고, 1990년대에는 어떤 길을 걸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날은 어찌저찌 걸었을지라도 2010년대와 2020년대를 새롭게 걸을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2030년대에는 2030년대대로 아름다운 꿈을 찾고, 2040년대에는 2040년대대로 아름다운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곁에 있습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한테는 내가 아름다운 님입니다. 아름다운 사진은 내 삶자리에서 찍습니다. 내 삶자리를 사랑할 때에 내 둘레에서 사진길을 걷는 사람은 나한테서 사랑스러운 빛을 느껴 고운 사진을 시나브로 이룹니다.

 아름다운 사진을 찾아 멀리 떠날 수 없고, 나 스스로 아름답게 살지 않는다면 가까이에서든 멀리에서든 무엇이 아름다운지 깨닫지 못합니다. (4344.7.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사진책 읽는 즐거움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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