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창비시선 446
안희연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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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4.7.

노래책시렁 490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안희연

 창비

 2020.7.24.



  꿈을 그리지 않을 무렵에는 여기저기서 들은 대로 읊거나 시늉하게 마련입니다. 차츰 알아보면서 하나하나 익히는 동안 스스로 꿈을 그려야 하는 줄 깨달으면서 이제부터 “마음을 소리로 얹은 말”을 터뜨립니다. 아기는 처음에는 소리를 따라하고, 이윽고 말을 뱉을 수 있는데, 삶과 하루와 오늘과 이곳을 하나로 아우르는 길을 알아보았다는 뜻입니다. 말마디를 빚어낼 적에는 마음을 헤아리면서 읽는 길을 걷는다고 하겠지요.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전문시인이 쓴 글이로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책을 덮으며 생각했습니다. 굳이 ‘전문시인’으로서 쓰기보다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오늘을 바라보는 나’로서 쓰면 될 텐데 싶습니다. 나를 나로서 드러내고 말하고 밝히는 글을 쓸 적에는 아무런 꾸밈말이 없습니다. 나를 나로 안 드러낼 뿐 아니라, 멋(문학성)을 내려고 할 적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꾸밈말입니다. 꾸미는 말씨가 나쁠 까닭은 없되, 온통 꾸미고 붙이고 보태고 치레하다 보면, 막상 줄거리나 이야기는 하나도 안 남습니다. 요즈음 글판은 줄거리와 이야기를 숨기는 채 글멋을 펴는 얼거리일 수 있습니다만, 모름지기 노래(시)라면, 이 삶을 눈물로든 웃음으로든 읊는 길일 노릇이어야지 싶습니다.


ㅍㄹㄴ


그는 날이 제법 차다는 생각을 했다 / 그리고 조금 외롭다고도 // 오늘은 불을 피워야지 / 그는 마른 장작을 모아다 불을 피웠다 (불이 있었다/10쪽)


소란스러운 기억이 얼굴을 만든다 / 파묻힌 발을 쓰다듬으면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거야/75쪽)


+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안희연, 창비, 2020)


가장 찬란했다는 것을 모르고

→ 가장 눈부신 줄 모르고

→ 가장 빛난 줄 모르고

15쪽


털실의 길이는 제각기 달랐지만 어떤 뭉치든 빛과 어둠의 총량은 같았다

→ 털실은 다 길이가 다르지만 빛과 어둠은 같다

→ 털실은 다 길이가 다르지만 빛과 어둠은 나란하다

18쪽


겨울은 길고 혼자인 그는 적적함을 느낀다

→ 겨울은 길고 혼자라서 쓸쓸하다

→ 겨울은 길고 혼자이니 외롭다

23쪽


그는 나의 잠 속까지 따라왔다

→ 내 꿈까지 따라온다

→ 내가 자도 따라온다

26쪽


우리는 곧장 보트에 오르려 했지만 더 어두워져야 한다고 했다

→ 우리는 곧장 배에 오르려 하지만 더 어두워야 한단다

30쪽


호수에 이르는 길은 수십가지였다

→ 못에 이르는 길은 갖가지이다

→ 못에 이르는 길은 많다

34쪽


우리는 공원을 산책 중이었다

→ 우리는 쉼뜰을 거닌다

→ 우리는 쉼터를 걷는다

34쪽


버려진 행성으로 갔다 나에게 두개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

→ 외딴별로 간다 나한테 두 가지 틈이 생긴다

→ 홀로별로 간다 나는 두 가지 짬이 생긴다

50쪽


할아버지께 호되게 혼이 났다

→ 할아버지가 호되게 말했다

→ 할아버지가 꾸짖었다

52쪽


저마다의 이유가 있으나 결국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 저마다 까닭이 있으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 저마다 뜻이 있으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55쪽


초침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 가는바늘이 천둥소리처럼 들린다

63쪽


나는 이곳의 포플러나무를 좋아합니다

→ 나는 이곳 미루나무를 좋아합니다

71쪽


소란스러운 기억이 얼굴을 만든다

→ 시끄러운 어제가 얼굴이 된다

→ 시끌시끌한 일이 내 얼굴이다

75쪽


나는 투명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 나는 안 보이려고 안간힘을 쓴다

→ 나는 보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이다

90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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