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데서 시간이 더 천천히 몰개시선 4
황화섭 지음 / 몰개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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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시집을 읽고서

별꽃을 다섯 모두 붙인 지 언제였는지

떠오르지조차 않는다.

얼마만에 별꽃을 다섯 붙이는가?

스스로도 놀란다.

.

.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4.23.

노래책시렁 495


《낮은 데서 시간이 더 천천히》

 황화섭

 몰개

 2023.7.28.



  우리는 마음을 으레 바다나 하늘이나 그릇에 빗댑니다. 누구나 마음이란, 바다와 하늘과 그릇마냥 깊이와 너비를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푸짐하게 담을 뿐 아니라, 푸근하게 담고, 푸지게 나눌 뿐 아니라 모든 앙금과 응어리를 풀어내는 바다와 하늘과 그릇과 같은 마음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낮은 데서 시간이 더 천천히》를 대구 ‘앞산’ 곁에 있는 ‘노래책집(시집 전문서점)’ 〈산아래시〉에서 만났습니다. 손바닥에 가볍게 안기는 자그마한 노랫자락을 시외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길에 천천히 읽습니다. ‘시’나 ‘문학’을 한다는 티나 허울은 거의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저 ‘노래’를 하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노래를 짓고 나누는 사람이 있나 싶어 놀랍니다. 어떤 이는 이 노래책을 ‘산문시’라 여기는데, 덧없는 말입니다. 이 노래책은 “노래를 담은 꾸러미”입니다. 하루하루 살아내고 살아가고 살아온 발걸음을 발바닥에 새긴 이야기 그대로 손바닥에 얹어서 하나하나 돌아본 뒤에, 마룻바닥에 앉아서 차분히 써내려간 노래입니다. 온누리에는 ‘좋은노래’나 ‘나쁜노래’란 없습니다. 그저 ‘삶노래·살림노래’하고 ‘꾸민노래·허울노래’가 있습니다. 참으로 드문 삶노래에 살림노래를 다 읽고서 고흥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즈넉이 눈을 감고서 긴긴 책집마실 발걸음을 되새겼습니다.


ㅍㄹㄴ


한낮이 되어 마당에 두껍던 눈이 반쯤 녹을 즈음에도 / 새들은 하늘을 한없이 날다가도 / 다시 마당으로 내려앉았다. / “야야, 새들한테 좁쌀 좀 뿌려줘라.” / 아버지 말씀에 좁쌀을 뿌려주니 / 참새들이 쫑알쫑알 신나게 좁쌀을 먹어치운다. (새/16쪽)


내 나이 34세 때, 어머니는 76세에 돌아가셨다. / 어머니 돌아가신 날 산소에서 훌쩍이다가 / 해가 지자 무서워져서 집으로 내달렸다. / 집 마당까지 달려와서 어머니한테 큰절을 했었다. (외갓집 가는 길/23쪽)


“교수님 왜 하필이면 서울에서 멀기도 먼 이곳에 박물관을 지으셨습니까?” “여기 예천이 밤하늘 별 관찰하기가 젤 좋은 곳이야.” (53쪽)


나는 슬금슬금 강의실을 빠져나와 정문으로 다시 나갔다. 수업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정문 바깥쪽 길가에 헌책을 팔고 있었다. 《思想界》 《씨알의 소리》 곰팡내가 나는 것 같은 책. 당시 형님은 약수동에서 헌책방을 열고 계셨다. 그때 산 헌책을 다 읽고 나면 형님한테 갔다 드렸다. 형님 말씀 “야야, 대학 들어갔으면 전공책을 읽어야지 뭐 이런 헌책을 읽노.” … 느닷없는 석사장교 6개월 제도로 그의 아들, 그의 친구 아들도 석사장교 6개월로 군제대한 사실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들이 석사장교 6개월 제대 후 얼마 안가서 석사장교 제도는 폐지되었다. 대학 졸업 정원제도 없어졌다. (낮은 땅에서 살아보려고/58, 59쪽)


나에겐 내 몸과 같은 친구가 있다. 중학교 때부터 사귀던 여자친구를 대학 다니던 시절에 운동권 선배하테 빼앗긴 친구. 노동운동을 열심히 하던 그 친구는 현장에서 손가락이 두 번이나 잘려 나간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모든 슬픔을 딛고서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띠면서 (반가사유상/62쪽)


한참 후에 그분한테 물었다, 여자처럼 화장하는 이유에 대해서. / 자기는 직업군인으로 군 헌병대에 오랫동안 근무했다고, / 무슨 사건이 생겼는데 그 사건으로 해서 너무나 억울하게 너무나 심하게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 그 후에 군에서 쫓겨났다고, 그 고문 후유증으로 남자들이 싫어서 여장을 하고 다닌다고 했다. (화장하는 남자/84쪽)


+


《낮은 데서 시간이 더 천천히》(황화섭, 몰개, 2023)


기억의 처음은 내가 기어 다니다가 첫걸음을 걸으면서 똥을 내질렀다는 것

→ 떠오르는 처음은 내가 기어다니다가 첫걸음을 떼면서 똥을 내질렀다는

→ 되새기는 처음은 내가 기어다니다가 처설음을 디디며 똥을 내질렀다는

5쪽


가끔씩은 고양이 수염 따라

→ 가끔은 고양이 나룻 따라

5쪽


바람의 향기, 톱날에 쓰러지는 나무들 톱밥의 냄새

→ 바람내음, 톱날에 쓰러지는 나무마다 톱밥냄새

→ 바람내, 톱날에 쓰러지는 나무에 톱밥내

13쪽


한없이 곡식 씨같이 생긴 것을 가끔씩 쓸어주었다

→ 가없이 낟알같이 생긴 알을 가끔 쓸어주었다

20쪽


정한수 물을 귀한 반상에 올리고서

→ 새벽물을 값진 자리에 올리고서

→ 비나리물 고운 밥자리에 올리고서

27쪽


바보가족들의 행진에도 바다는 그저

→ 바보네가 거닐어도 바다는 그저

→ 바보집안이 걸어도 바다는 그저

35쪽


서른 호 정도의 집들이 서로 다투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 서른 집 즈음이 서로 다투지 않을 만큼 알맞게 떨어져서

→ 서른 채 남짓이 서로 다투지 않을 만큼 슬슬 떨어져서

56쪽


백년해로하는 부부가 있었다

→ 한꽃사랑인 둘이 있다

→ 꽃사랑인 짝지가 있다

77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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