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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일요일 ㅣ 문학의전당 시인선 361
이유선 지음 / 문학의전당 / 2023년 5월
평점 :
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5.3.
노래책시렁 494
《그래도 일요일》
이유선
문학의전당
2023.5.31.
누구나 말을 합니다. 더더리인 사람이 있고, 재주꾼인 사람이 있습니다. 한 마디를 읊어도 혀가 꼬이는 사람이 있고, 온 마디를 풀어도 술술 흐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은 다 다른 목소리로 다 다른 삶을 들려주고 듣습니다. 이때에 한 가지를 헤아릴 만합니다. 우리는 누가 듣기를 바라면서 말을 하나요? 우리는 누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나요? 《그래도 일요일》을 읽었습니다. 혼잣말 같기도 하지만, 사람들 곁에서 들려주고 싶은 말 같기도 합니다. 어디에 서서 읊거나 외거나 들려주는 말인지 가늠하기는 어렵습니다. 요즈음 흐르는 숱한 글은 ‘듣는 귀’인 이웃과 너를 그리 안 헤아리더군요. ‘말하는 입’인 숨빛과 나를 그다지 안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메마르다거나 외톨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만, ‘시’나 ‘문학’이 아니라, “서로 나눌 말”이라고 여긴다면, 낱말 하나를 어떻게 골라서 어떤 실로 엮고 여미어 옷으로 지을 적에 서로 ‘이야기’로 피어날 만한지 알아보게 마련입니다. 풋감이 지붕에 떨어질 적에 내는 소리는 ‘풋감소리’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낮을 누리고 저녁을 맞이한 뒤에 밤에 잠드는 길이란 우리가 다 다르게 보내는 삶입니다. 그저 삶을 적으면 모두 노래로 피어날 수 있습니다.
ㅍㄹㄴ
서럽지도 않게 왔다가 / 서럽지도 않게 떠나가기에 바쁜 / 우리는 풀꽃이다 //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뜯어 / 점심으로 먹고 싶은 일요일 / 오후의 귓불 느닷없이 아카시 향기에 닿았다 (어린 기억들/26쪽)
비탈길 폐지 싣고 오르는 할머니에게 / 전봇대 위에서 기다리던 비둘기 / 물똥을 쌌다 // 흥건한 이마의 땀을 닦는 할머니 / 일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 눈길 마주친 / 전봇대 위의 비둘기 / 꽃 한 송이 더 필요한가요? (낮달/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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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일요일》(이유선, 문학의전당, 2023)
허무주의자도, 무골호인도, 외톨박이도, 불한당도, 한량도
→ 넋빈이도, 뭉술이도, 외톨박이도, 각다귀도, 노는이도
→ 멀뚱이도, 느물이도, 외톨박이도, 날라리도, 빈둥이도
13쪽
바람 부는 날 잎들은 비워졌고
→ 바람 부는 날 잎을 비우고
14쪽
과육의 살갗은 더 이상 부풀어 오를
→ 살점도 살갗도 더는 부풀어 오를
→ 열매살은 더 부풀어 오를
14쪽
나날의 고통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 괴로운 나날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 나날이 고달파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15쪽
바퀴와 노면 사이에
→ 바퀴와 바닥 사이에
24쪽
용서와 배려라는 너의 말은 그만
→ 봐주고 살피라는 네 말은 그만
→ 눈감고 보라는 네 말은 그만
31쪽
결국엔 일족인 바람이 데리러 오겠지만
→ 끝내 한집안 바람이 데리러 오겠지만
→ 뭐 집에서 바람이 데리러 오겠지만
61쪽
나는 형용사를 버렸다
→ 나는 그림씨를 버렸다
62쪽
전봇대 위의 비둘기 꽃 한 송이 더 필요한가요
→ 빛줄대 앉은 비둘기 꽃 송이 더 바라는가요
68쪽
물의 보법을 본다
→ 물살을 본다
→ 물씨 걸음새 본다
72쪽
나그네로 머물게 하는 수상가옥이 된다
→ 나그네로 머물 물살림집이 된다
→ 나그네로 머무를 물살이집이 된다
73쪽
매 순간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수변 물빛은
→ 늘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둔덕 물빛은
→ 노상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냇가 물빛은
→ 언제나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기슭 물빛은
89쪽
직립의 시간에 눌려
→ 바로설 때에 눌려
→ 곧설 틈에 눌려
→ 곧게펼 짬에 눌려
93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