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재우기까지

 


  졸리면서 안 자려고 하는 아이들을 재우려고 재우려고 하다가, 오늘 곰곰이 헤아려 본다. 왜 굳이 재우려고 하나. 이 아이들 두 눈에 졸음 가득 와서 벌건 데다가 해롱거린다 하더라도, 더 놀고파서 저런 모습이니, 굳이 재우려 하지 말고 함께 놀다가, 때로는 아버지 혼자 책을 읽거나 종이에 글을 쓰다가, 더는 못 견뎌 할 적에 품에 안아 재우자고 생각한다.


  이리하여, 작은아이 먼저 여덟 시 조금 넘어 곯아떨어져 살며시 재운다. 큰아이는 글씨놀이를 하고 그림놀이까지 실컷 하고도 더 놀더니 아버지더러 안아 달라 한다. 그래, 안아 주지, 그럼, 얼마든지. 큰아이는 아홉 시 사십 분 즈음 되어 비로소 자리에 눕히니 그대로 곯아떨어진다.


  이 아이들은 이듬날에 다시금 새벽 여섯 시 언저리에 깨어날까. 설마 새벽 다섯 시 반에 쉬 마렵다고 칭얼대다가 그때부터 또 하루를 열려 하지 않을까. 그러면 어찌해야 좋을까. 뭐, 딱히 다른 수란 없다. 그렇게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라고 해야지. 그때부터 놀고프다면 그때부터 놀라 해야지.


  아이들 하고프다는 흐름을 잘 살펴서 맞추자. 아이들 물놀이 알맞게 시키고, 마당에서 개구지게 달리며 놀도록 하자. 참말 어느 곳에서 오늘날 아이들이 저희 마음껏 뛰놀 수 있는가. 참으로 어느 학교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아이들을 하루 내내 놀리는가. 이 아이들 마음에 사랑과 꿈과 믿음이 자라날 길을 생각하자. 4346.7.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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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이다

 


  한여름이다. 아이들은 물을 받은 마당 고무통을 하루에도 여러 차례 들락거리면서 물놀이를 한다. 아이들 옷을 하루에 두 차례나 세 차례씩 갈아입히며 그때그때 물로 헹구거나 비누를 발라 비빔질을 한다. 한여름에는 하루에 세 차례 빨래를 하더라도 이내 보송보송 마른다. 아이들 살갗은 햇볕 듬뿍 받아 까무잡잡하고, 아이들 옷은 쉬 땀으로 젖지만 새로 빨아 새로 입히면서 즐겁다. 한여름에는 한여름다운 시원한 빨래와 싱그러운 햇살내음 널리 퍼진다. 4346.6.3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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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30 08:40   좋아요 0 | URL
햇빛과 바람에 보송보송하게 말려진 옷과 신을 보니
제 마음까지 다 보송보송해지는 듯 합니다.~^^
햇살내음이 저에게까지 웃으며 오네요.~

숲노래 2013-06-30 13:12   좋아요 0 | URL
무더운 만큼
따스한 기운 나누어 주는 여름
즐거이 누리셔요
 

집똥

 


  읍내마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더위에 아이들 무척 애썼구나 싶어, 마당에 마련한 큰 고무통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라고 말한다. 두 아이 모두 옷을 입은 채 고무통에 들어간다. 한참 노는가 싶더니 큰아이가 아버지를 부른다. “아버지! 보라 똥 쌌어요!” 부엌에서 붉은 오얏알 물에 헹구다가 헐레벌떡 마당으로 내려선다. 작은아이를 본다. 물에 똥을 떨구었나? 아니네. 똥은 바짓가랑이에 걸려 출렁인다. 작은아이를 덥석 안아 바깥 수돗가로 간다. 바지를 벗기고 밑을 씻긴다. 작은아이는 웃도리만 입은 채 고무통으로 돌아가서 물놀이를 마저 한다.


  바깥마실을 오래 다니지 않으면, 작은아이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집똥을 눈다. 작은아이가 바깥똥 누는 일은 퍽 드물다. 큰아이도 작은아이하고 비슷하다. 두 아이 모두 으레 집에서 집똥을 누지, 밖에 나가서 바깥똥을 잘 안 눈다. 바깥에서는 똥을 참을까. 바깥에서는 쉴새없이 뛰노느라 똥 마려운 줄 못 느낄까.


  아이들이 바깥에서 똥을 눌까 싶어 늘 옷을 넉넉히 챙기고 밑 닦을 종이도 가방마다 따로 챙긴다. 아버지가 가방에 챙긴 바지와 종이를 쓰는 일은 거의 없지만, 가방에서 이 짐을 덜지 않는다. 아이들은 바깥똥을 눌 때가 더러 있지만, 참말 집똥을 잘 눈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풀고, 새로 장만한 먹을거리를 냉장고에 넣고, 빨래 걷고, 햇볕에 말린 평상 들이고, 이럭저럭 집일 하다 보면 어느새 작은아이가 똥을 누고, 큰아이도 곧 똥을 눈다. 참으로 귀엽고 멋진 아이들이다. 4346.6.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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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가고 싶어

 


  바닷가에 다녀온 이듬날, 큰아이는 “아, 바다에 가고 싶어.” 하는 말을 열 차례 남짓 꺼낸다. 바다에 그렇게 가고 싶니? 그래, 그러면 가야지. 아버지는 자전거 끌며 바닷가 다녀오면 이틀이나 사흘쯤 먼 마실은 쉬어야지 싶은데, 사흘에 한 차례씩 바닷가마실을 해 볼까. 택시를 불러 다녀오면 만사천 원이면 넉넉한 마실길이기는 한데, 택시로 달리면 여름날 푸른 숲과 나무를 한껏 누리지 못해. 그저 폭신한 걸상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에어컨바람을 쐬야 할 뿐이야.


  땀을 흘리며 자전거를 달리고, 햇살을 쬐면서 자전거 발판을 구르지. 땀이 볼을 타고 흐르며 땅바닥에 떨어져. 훅훅 가쁜 숨 몰아쉬면서도 고갯마루 오르면 쏴아아 내리막에서 신나게 휭휭 바람을 누리지.


  바다에 가면 무엇이 좋을까. 바닷가에 서면 어떻게 즐거울까. 가만히 바닷바람을 떠올린다. 곰곰이 모래밭을 되새긴다. 하얀 조개껍데기를 생각하고, 모래밭으로 밀려든 미역과 바닷말을 헤아린다. 바다에서 양식 하느라 바닷가로 밀려드는 온갖 스티로폼 쓰레기를 하나하나 곱씹는다.


  바다는 우리한테 어떤 품일까. 숲은 우리한테 어떤 가슴일까. 흙은 우리한테 어떤 이야기일까. 얘들아, 우리 물빛 마음이 되면서 바다에서 놀자. 4346.6.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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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9 09:58   좋아요 0 | URL
아...정말..여름을 온몸과 마음으로 시원하고 즐겁게 누리시는군요.^^
항상 아침마다 함께살기님 올려 주시는 나무와 꽃 나비 길 바다...글과 사진 통해
제 마음까지 함께 기쁘고 시원하고 즐거워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숲노래 2013-06-29 10:15   좋아요 0 | URL
바다빛도
함께 누리는 사람이 있을 때에
훨씬 환하답니다~~
 

그림을 함께 그린다

 


  세 살 산들보라가 크레파스로 죽죽 금긋기를 하다가 내팽개친 종이 한 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종이는 이대로 두면 틀림없이 쓰레기처럼 버려지리라. 그렇다고 여섯 살 사름벼리가 이 종이에 그림을 그릴 듯하지는 않다. 깨끗한 종이에 그림을 그리려 할 테지.


  큰아이가 그림 그리는 곁에 ‘작은아이가 죽죽 금을 그은 종이’를 펼치고는 우리 집 후박나무를 그려 본다. 잎사귀를 어떻게 그릴까 생각하다가, 모두 동글동글 하나씩 그려 넣는다. 생각보다 느낌이 좋다 싶어 바지런히 동글동글 잎사귀 넣는다.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여기는 왜 다 안 그려?” 음, 그게 다 그린 그림인데?


  후박나무 위쪽을 그린 다음 하늘빛을 입히는데, 노랑나비 네 마리 그리고, 고추잠자리 세 마리 그린다. 노랗게 맑은 해님을 그린다. 작은아이가 크레파스를 쥐더니 해님 둘레를 죽죽 긋는다. 작은아이 딴에는 그림을 함께 그리겠다는 뜻이다. 좋아. 네 마음대로 죽죽 그어 주렴.


  이윽고 후박나무 아래쪽 그릴 때. 무얼 그릴까 하고 1초쯤 생각하다가 나무뿌리를 그리기로 한다. 나무뿌리를 죽죽 잇다가는, 몇 가지 글씨를 넣는다. 맨 먼저 나무. 작은아이가 곁에서 자꾸 ‘나무’라고 말하기에 나무를 적는다. 그러고서 뿌리를 쓴다. 그러고서 잎을 쓰고 꽃을 쓰고 열매를 쓴다. 마지막으로 씨앗을 쓴다. 가만히 생각하니, 나무는 뿌리와 잎과 꽃과 열매에 씨앗, 이렇게 다섯 가지로 이루어진다고 할 만하네.


  아래쪽 빛깔을 입힌다. 이야, 여러 날 걸려 그림 한 장 다 그렸네. 큰아이도 제 그림을 다 그리고는 아버지 그림을 바라본다. 아까와는 달리 “어, 아버지 그림 잘 그리네.” 하고 말한다. 그래? 그러면 아버지가 그림을 왜 잘 그린다고 생각하니? 알겠니? 아버지는 아버지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니까 잘 그려. 아버지가 언제나 오래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에 담으니까 잘 그린단다. 사름벼리 너도 말이야, 네가 좋아하는 마음속 이야기를 늘 그리니까, 너도 그림을 잘 그리지. 그래서 네 그림을 온 집안에 잘 보이도록 붙인단다. 4346.6.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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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7 08:42   좋아요 0 | URL
그림이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너무 좋습니다.
나무 나비 잠자리 해님 뿌리
땅 위의 푸르름과 땅 아래의 따뜻한 흙 색감이 어우러져 이야기를 하는군요..
이 그림 한 장 벽에 붙여 놓으면 매일 우주와 함께 있는 느낌일 것 같아요. ^^
그림이 무척 탐이 납니다. ㅎㅎ

숲노래 2013-06-27 08:58   좋아요 0 | URL
이번 그림은 나뭇잎 동글동글 하느라 좀 오래 걸렸는데,
아이들과 또 다른 그림을 하나 그리면
선물할게요.

어떤 그림 그리면 좋을는지
3초 생각하니 떠올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