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과 헌책방 7
최종규 지음 / 그물코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시중 책방에 배본을 안 하는 1인잡지인 만큼, 마지막으로 배본을 했던 책에다가 이 글을 달아 놓습니다. 즐겁게 기념 삼아~ ^^)


 교보·영풍·알라딘 어디에도 배본 안 하는 책
 - ‘작은 책’과 ‘작은 책마을’이라는 이름


 작은 책방만으로 책마을을 살릴 수 있을는지, 큰 책방이 함께 있어야 책마을을 알뜰살뜰 살릴 수 있을는지 모릅니다. 다만, 큰 책방만으로는 책마을을 살릴 수 없으며, 작은 책방이 씨가 말라 가는 오늘날 흐름에서는 책마을이 오롯이 살아나기란 더욱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큰 책방에서 마련해 놓고 있는 ‘점수쌓기(마일리지)’가 없어져야 한다고 느낍니다. 책 또한 물건이라 여길 수 있는 만큼 책을 살 때마다 어느 만큼 점수를 쌓아 나중에 덤을 선물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도 괜찮은 노릇이지만, 책을 찾아 읽는 우리들은 점수가 아닌 내 삶을 살찌우는 책 알맹이에 더 눈길을 둘 노릇이 아니랴 싶습니다. 더 많은 책을 더 많은 돈을 치르고 사들이는 우리들이 아니라, 다문 한 권을 찾아 읽더라도 내 삶을 가다듬고 내 넋을 보듬으며 내 몸을 새롭게 추스르는 책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같은 책을 한꺼번에 열 권이나 스무 권씩 장만해서 둘레에 선물하는 때라면 좀더 눅은 값으로 사들일 길을 찾느라 출판사에 전화로 여쭐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때에도 우리들은 되도록 책에 적힌 값 그대로 장만해서 둘레에 선물해야 더욱 좋으리라 봅니다. 우리가 찾아서 읽는 책이 더없이 훌륭하고, 우리가 둘레에 선물하려는 책이 참으로 아름답다 한다면, 이 책을 쓰느라 애쓴 사람과 이 책을 펴내느라 힘쓴 일꾼이 땀값을 알뜰히 거둘 수 있도록 ‘책값 에누리하기’는 되도록 안 해야 올바른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달이 나오는 잡지 가운데 ‘작은 책’이 있습니다. ‘좋은 생각’이 있고 ‘아름다운 동행’이 있습니다. ‘마음 수련’이 있고, 제가 잘 모르는 수많은 잡지가 있습니다. 너나없이 곱고 멋지며 좋은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 잡지를 돌아볼 때에 참말 이 잡지에 붙은 이름 그대로 잡지 알맹이가 이루어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허울은 훌륭하나 속살은 허술한 짜임새가 아닌지 궁금합니다. 참으로 작게 여미는 ‘작은 책’인지 궁금하고, 더없이 좋은 생각을 나누는 ‘좋은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어느 만큼 아름다운 길벗이 되는 ‘아름다운 동행’일까요. 우리들 마음을 갈고닦는 자리에서 얼마나 알찬 ‘마음 수련’일까요.

 책을 펴내는 일터를 곰곰이 돌아보면 어느 곳이건 그지없이 좋은 이름을 붙이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이들 좋은 이름을 쓰는 출판사 가운데 ‘처음과 같이 작은 살림으로 작게 책을 내는’ 곳을 뺀, ‘처음과 달리 크게 북돋운 살림으로 크게 책을 내는’ 곳들은 당신들 이름에 걸맞게 한길을 곧게 걸어가고 있는지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첫마음을 버리거나,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마디로 참마음을 걷어차고 있지는 않느냐고 여쭙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부터 제 책 하나 엮어내면서 참마음을 어느 만큼 건사하고 있는지 늘 돌아볼 노릇입니다. 다른 사람 말을 하기 앞서 저부터 올바르거나 착하거나 참되거나 곱게 살아가며 책에 이러한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지 되새길 노릇입니다. 







 

 

 

 

 

 

 

 

 이번에 제 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9호인 《작은 책방이 살리는 책마을》을 내놓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제가 틈틈이 내놓는 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은 지난 8호인 《오래된 책은 아름답다》 때부터 시중 새책방이나 인터넷책방에 배본을 안 하고 있습니다. 잡지 7호까지는 시중 새책방이나 인터넷책방에 배본을 했으나, 8호부터는 오로지 정기구독만 받기로 했고, 동네 한켠에서 알뜰히 꾸리는 몇 군데 책방에만 ‘손수 배달’을 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제 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은 교보, 영풍,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 어디에서도 찾아보실 수 없습니다. 점수쌓기를 하고 제값팔기(정가제)를 안 하는 책방에는 “우리 말과 헌책방”을 배본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책값이란 책을 쓰고 만드는 사람들 땀방울에 값하면서 다음 책을 내놓을 힘을 얻는 보람으로 붙여야지, 점수쌓기와 깎아팔기를 따져서 비싸게 올려붙이는 숫자놀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글쓴이와 출판사 일꾼이 살고, 여기에 책방 일꾼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책마을이 되도록 더 작게 책을 내고 더 작게 책을 팔며 더 작게 책을 나누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누리에서 교보, 영풍,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 같은 곳에 책을 들여놓지 않고서 어떻게 책을 팔아 먹고사느냐고 걱정할 만합니다. 그렇지만 굶어죽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꽤 즐겁게 책을 팔고 책을 나누며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잘 팔리는 책을 내놓아야 먹고살 만하지 않습니다. 많고 적고가 아닌 알맞게 사랑받고 알맞게 나눌 수 있는 책으로 알맞춤한 살림을 꾸리면 넉넉하고 즐겁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거나 아이를 안거나 손잡고 걸리며 함께 천천히 걸어다니기를 좋아합니다. 제가 쓴 책을 즐겁게 찾아보려 하거나 만나려 하는 분들이라면 저처럼 자전거를 즐기거나 두 다리로 걸어다니면서 이 땅에서 알차고 신나며 보람있게 일하고 놀고 어울릴 수 있기를 꿈꿉니다.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꾸리며 스스로 아름다운 책 하나 곁에 놓고, 스스로 아름다운 넋을 추스르며 스스로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우는 고운 길을 어깨동무하고 싶습니다. (4343.6.20.해.ㅎㄲㅅㄱ)

 



   
   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을 살 수 있는 책방 :
  - 인천 배다리 책쉼터 〈나비날다〉
  - 서울 명륜동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

(살가운 작은 책방을 차츰차츰 알아보며, ‘다리품 팔아 찾아가 책을 만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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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권 받아보기 : 6×8000 = 48000원
 열두 권 받아보기 : 12×8000 - 6000 = 90000원
 평생 받아보기 : 200만 원
 
   

= 잡지 9호 차례 = 
가. 헌책방
 - 〈숨어있는 책〉 발자국
 - 〈숨어있는 책〉 일꾼과 나눈 이야기
 - 예전 이야기나눔 몇 대목
 - 〈숨어있는 책〉 나들이 ㄱ
 - 〈숨어있는 책〉 나들이 ㄴ
 - 〈숨어있는 책〉 풍경 하나, 말 하나
나. 책과 삶
 - 작은 책방이 살리는 책마을
 - 골목마실
 - 신개념 헌책방
 - 반갑고 기쁘며 좋은 책은
 - 아픈 목소리
 - 책방에 가는 아빠
 - 글을 쓸 때에
 - 문학과 글쓰기
 - 젊은 대학생을 보며
 - 내 사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인천사람 책읽기
 - 이지연
다. 우리 말
 - 내가 좋아하는 말
 - 함께 살아가는 말
 - 한 바닥 이야기 (16꼭지)
 -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 좋은 말 새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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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낯선 희망들 - 끊이지 않는 분쟁, 그 현장을 가다
이유경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한국이 ‘평화’로울 때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38] 이유경,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



 아이 사진을 찍으면서 아이 눈높이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하고 눈을 마주하는 가운데 사진을 찍는 동안 반드시 아이가 제 사진기 눈을 맞대고 바라볼 때에만 찍어야 할 까닭은 없다고 느낍니다.

 옆지기 부모님이 살고 있는 일산으로 이틀 마실을 다녀왔습니다. 날이 무척 더워 큰 들통에 물을 담아 아이를 씻겼습니다. 들통 뒤로는 일산 부모님이 돌보는 텃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선 채로 아빠 눈높이에서 아이 씻는 사진을 한 장 찍다가는 쭈그리고 앉아 아이 눈높이에서 아이 씻는 사진을 다시 한 장 찍습니다.

 아이하고 어울리며 놀 때에는 멀거니 선 채로 아이 손을 잡고 놀 수 없습니다. 허리를 구부리든지 쭈그리고 앉든지 땅바닥에 털푸덕 주저앉아야 합니다. 아이하고 키높이를 맞추어야 하고, 아이와 걸음걸이를 맞추어야 하며, 아이하고 힘을 맞추어야 합니다.

 아이랑 놀다 보면 아이는 틈틈이 안아 달라며 두 팔을 활짝 펼치곤 합니다. 그저 칭얼대느라 이러할 수 있으나 다리가 아프고 힘들어 쉬고 싶기 때문이곤 합니다. 어른이라면 혼자 마땅한 자리를 찾아 털썩 앉거나 드러누울 테지만, 아이로서는 어버이 품에 안겨 쉴 때가 가장 느긋하고 좋습니다. 우리 집식구들은 아이한테 아기수레에 태울 뜻이 없이 스물석 달을 살아냈는데, 아이가 쉴 때라든지 아이가 잠들 때에 품에 안거나 등에 업고 다니자면 제법 고단하지만, 이렇게 고단한 만큼 비로소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보람이 무엇인가 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아기수레를 안 쓰는 까닭이라면, 우리가 아기수레를 써 온 역사란 얼마 안 되고 언제나 업거나 안고 키워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기수레를 태울 만한 판판한 길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한테는 자가용이 없고, 자가용이 없는 우리들은 늘 걸어다니며, 늘 걷고 몸을 쓰면서 살아가는 아빠랑 엄마이기에 아이 또한 걷기를 좋아해 주며 함께 다니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스물석 달에 걸쳐 아이를 안고 걸리며 다니노라니 아이는 걷기뿐 아니라 뛰기를 몹시 좋아하고, 계단 타고 오르기를 아주 즐깁니다. 그예 스스로 튼튼하고 싱그럽게 자라 주는구나 싶어요.


.. 대학 시절 한국 사회에서 내가 꿈꾸는 기자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하기도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 시드니 도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머니께서는 이것저것 담아 상자 하나를 보내 주셨는데, 그 안에는 이런 편지가 들어 있었다. “유경아, 공부 너무 많이 하지 마라. 몸 상한다. 세상 보는 것도 다 공부니라.” … 몇 명이 죽었고, 무엇이 파괴되었고, 어디가 공격을 받았고 등의 나열식 ‘분쟁 르포’엔 정치도, 역사도, 그리고 분쟁도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  (4, 18, 39쪽)


 평화로운 삶이란 평화로운 넋과 평화로운 몸과 평화로운 말로 이루어 간다고 느낍니다. 정치가 평화롭다든지 경제가 평화롭대서 내 삶이 평화롭지는 않다고 느낍니다. 정치와 경제와 사회가 평화롭지 않더라도 우리들은 우리 삶을 한결같이 평화롭게 가꾸며 지킬 수 있다고 느껴요. 어수선한 정치일 때라도 봄이 되면 봄꽃이 맑게 피고, 어지러운 경제일 때라도 여름이 되면 여름꽃이 환하게 피며, 어리석은 사회일 때라도 가을이 되면 가을꽃이 곱게 핍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봄꽃을 닮도록 가꾸고 여름꽃을 받아들이도록 일구며 가을꽃을 곰삭이도록 돌볼 때에 참다운 평화이지 않느냐 싶어요.


.. 나는 ‘인생 선배’라는 이름으로 존중을 강요하는 어르신들의 나이 따지기 병을 아주 질색한다. 그 존중이라는 건 나이, 성별, 인종, 국적, 피부색을 불문하고 자연스럽게 우러나와 서로 주고받아야 할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 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작가 R씨의 인도기행문에 자극받아 인도를 찾았다고 했다. 성지의 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를 품고 온 그들에게 나는 카스트와 폭력, 힌두 극우주의와 점령 따위의 아주 낯선 이야기들을 녹음기처럼 풀어대며 초를 쳤다. 의도한 건 정말 아니었다 ..  (21, 100쪽)


 국제분쟁 전문기자라고 일컫는 이유경 님이 쓴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온누리 구석구석 싸움이 일지 않는 곳이 없다 보니까 이유경 님과 같은 ‘국제분쟁을 전문으로 다루는 기자’가 태어납니다. 국제분쟁만을 다루는 글과 사진이 넘치도록 많으며, 우리들은 수많은 국제분쟁이 얼마나 자주 많이 터지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아파하는가를 알 길이 없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어슷비슷하다고 여길 만’한 국제분쟁이 많아서 웬만큼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지 않고서는 이야기거리조차 안 되고 나라안 새소식에 안 실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재벌회사 사장님이 돌아가시든 골목동네 가난한 할머니가 돌아가시든 같은 목숨값입니다. 대통령 한 분이 돌아가시든 농사짓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든 매한가지 목숨결입니다. 국제분쟁이라 할 때에도 우리한테 익숙한 나라에서 벌어지면서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쳐야 널리 알아줄 만한 다툼이나 싸움이 아닙니다. 왜 온누리 나라들마다 싸움과 다툼이 그치지 않는가를 꿰뚫으면서, 온누리 나라들이 저마다 아름다우며 사랑스러울 삶을 나누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걸림돌을 찾아야 하는 국제분쟁 기자들입니다.


.. 버마는 내가 알고 있던 대로 ‘민주 대 반민주’같은 단순한 모순만 지닌 게 아니었다. 버마의 소수민족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부터 50여 년 동안 타이-버마 국경이 접한 밀림에서 자치와 독립 무장투쟁을 벌여 왔고 이런 ‘민족해방 진영’은 반독재투쟁을 벌이는 다수 버마 족 중심의 ‘민주주의 진영’과 또다른 갈등과 모순 관계에 있었다. 다시 말하면 두 진영 모두 군부독재를 반대하며 싸우고는 있지만, 그들 내부에서 ‘다수인종 대 소수인종’이라는 갈등의 골을 겪고 있는 셈이다 … 인도에서는 달리트와 하층 카스트, 무슬림, 여성 등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폭력, 고문, 그리고 심지어 살해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이 모든 폭력이 대국 인도의 천태만상 속에 도드라지지 않을 뿐이다 … 인도 ‘본토’에서도 하층 카스트와 소외 계층이 민주주의와 정의를 만날 겨를은 별로 없는 판에 점령 지역에서는 오죽하겠는가. 점령지 카슈미르에서 민주주의는 세월 좋은 양반네들이나 부리는 멋있는 ‘구라’였고, 일반 주민들이 당하는 일상적 모욕과 위협과 폭력은 민주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  (36∼37, 173, 331쪽)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이라는 책에는 이 나라 신문과 방송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 이야기가 새록새록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처음 나온 2007년과 오늘 2010년을 견주어 헤아린다면,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그리 나아지거나 달라지지 않습니다. 다치거나 죽는 사람들 숫자하고 이름이 다를 뿐입니다. 권력을 쥔 이들은 총칼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내리누르거나 들볶습니다. 더 큰 권력을 바라고 더 힘센 총칼을 거머쥐려 합니다. 커다란 권력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이 큰 힘으로 더 너른 사랑과 믿음을 나누려 하지 않습니다. 총을 녹여 호미를 만들고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들고자 하는 권력자나 군인이란 없습니다. 총을 만들 돈과 품과 땀으로 우리 삶터를 아름다이 일구거나 칼을 만들 돈과 품과 땀으로 우리 이웃을 사랑하며 돌보려 하는 권력자나 군인이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우리 나라에서 군인 1만을 줄이거나 군 간부 1천을 줄이기만 하여도 온 나라 초중고등학교 아이들한테 ‘무상급식’을 이룰 수 있지 않겠어요? 군인 1만을 더 줄이거나 군 간부 1천을 더 줄인다면 온 나라 대학교에서 ‘무상교육’을 할 수 있겠지요. 군인 1만을 더 줄이거나 군 간부 1천을 더 줄인다면 온 나라 가난한 사람들 살림살이를 뒷배할 ‘무상복지’를 이룰 수 있겠지요.


.. 다카도 그랬지만 또다른 일본 여기자 기요코 오구도 내 머리를 쳤다. 《카트만두의 봄 : 1990 저항운동》의 저자인 그녀를 카트만두 기자회견장에서 주의 깊게 바라본 적이 있다. 네팔어로 질문하고 알아듣는 유일한 외신기자였기 때문이다. 어느 지역에서건 보통 영어로 큰 어려움 없이 대부분의 취재가 이루어졌지만, 현지어를 그렇게 구사하는 수준이라면 그건 두말할 것도 없이 굵고 깊은 취재를 할 수 있는 천상의 조건이다 ..  (273쪽)


 국제분쟁을 전문으로 다루고자 발로 뛰고 눈물과 웃음으로 글을 쓰는 이유경 님은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이라는 책을 빌어 우리들한테 나즈막이 속삭입니다. “나는 또 기대한다. 한국 혹은 한국인이 꼭 연루되지 않은 분쟁이나 재난이라도 그 비명 소리가 절박하다면 귀 기울여 들어 주고 받아 적을 줄 아는 그런 통 큰 언론을. ‘한국인 피해는 없는 것으로……’라고 끝나는 뉴스는 늘  ‘그 다음 뉴스는 없는 것으로……’라고 끝내는 그런 언론 말고(391쪽).” 이러한 속삭임은 내 밥그릇과 얽힌 일에서만 내 이웃과 동무를 생각하는 우리 삶이 아니라, 내 밥그릇하고 얽히지 않은 내 이웃과 동무 일에도 온 사랑을 쏟을 수 있기를 꿈꾸는 속삭임입니다. 나 스스로 아름답게 살고 싶은 마음이라면 내 이웃 누구나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애쓰려는 마음이기를 꿈꾸는 속삭임입니다. 나 스스로 평화를 누리며 살고 싶은 마음이라면 내 동무 누구나 서로 미워하거나 괴롭히지 않으며 어깨동무하고 손을 맞잡으려는 마음이기를 꿈꾸는 속삭임입니다.

 나 스스로 내 눈높이에만 머물지 않고 내 이웃과 동무 눈높이가 되기를 꿈꾸는 속삭임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어버이로서는 아이 눈높이로서 아이하고 부둥켜안기를 꿈꾸는 속삭임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스승으로서는 아이들 눈높이로서 가르치고 배우며 서로 살가운 배움터를 이루고픈 속삭임입니다.


.. 내가 변했는지 서울이 변했는지 아니면 서울이 원래 그런 녀석인 걸 내가 잠시 까먹었던 건지. 아무튼 서울은 ‘물질이 충만’한 도시의 거드름을 과하게 뽐내며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 거드름에 대한 거부감은 2주 만에 서둘러 서울을 떠나는 나의 발걸음을 위로해 주었다. 교보문고 10대 서적 코너에 깔린 ‘서울대와 하버드대로 가는 길’을 뒤로 하고 다시 방콕으로 갔다 ..  (72쪽)


 희망이란 낯선 생각이 아니나, 오늘 이 땅에서는 더없이 낯선 생각이기 일쑤입니다. 희망이란 찾아볼 길이 없이 돈만이 넘치는 오늘날 우리 터전입니다. 이리하여 더더욱 낯선 희망을 바랄밖에 없고, 희망이야말로 낯설지 않은 우리 삶이 되기를 바랄밖에 없습니다. 끊이지 않는 분쟁이란 서로서로 평화를 찾자는 몸부림일까요? 끊이지 않는 분쟁이란 기득권과 권력자가 더 큰 밥그릇을 움켜쥐려고 일부러 평화를 짓밟거나 짓누르는 소용돌이일까요? (4343.6.7.달.ㅎㄲㅅㄱ)


 ┌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인물과사상사,2007)
 ├ 글ㆍ사진 : 이유경
 └ 책값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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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을 디자인하다
시노하라 오사무 지음, 강영조 옮김 / 동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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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어루만지지 않는 ‘도시 디자인’이라면
 [애 아빠가 오늘 읽은 책 31] 시노하라 오사무, 《토목을 디자인하다》



 인천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제 살림집과 학교 둘레에는 늘 공장이 있었습니다. 제일제당, 강원연탄, 동양화학, 대우중공업처럼 굵직하고 큰 공장을 비롯하여 남동공단과 주안공단과 월미도공단이라든지 숭의야구장이나 신흥동 쪽에 자리한 작은 공장이라든지 아주 많았습니다. 이 공장들 가운데 몇몇이 자리를 비우거나 떠나곤 했으나 거의 모든 공장들은 예나 이제나 그대로 그 자리에서 물건을 만들며 먼지와 매연을 내놓고 있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닐 때에는 집부터 학교까지 걸어다녔는데, 집과 학교 사이에 있던 제일제당에서 내뿜는 매연은 코를 찔렀고, 비오는 날이면 폐수를 더욱 많이 쏟아부어서 온몸에 공장 매연과 냄새가 배어들곤 했습니다. 그런데 제일제당 매연과 냄새로 그치지 않고 강원연탄에서 날리는 탄먼지가 잇달아 날리니까 아침부터 노상 낯을 찌푸릴밖에 없고 하루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골이 띵하면서 괴로웠습니다. 그래도 저나 동무들이나 이런 터전에서 용케 학교를 잘(?) 다녔고 골목에서 신나게 뛰어놀았습니다. 석탄이나 연탄을 실어 나르는 기차가 지날 때면 미리 주워 놓은 병뚜껑을 철길에 올려놓고 납짝쿵 만들기를 즐겼습니다.

 야구장을 갈 때면 크고작은 철공소 쇠붙이 냄새를 고스란히 마시면서 걸어갔고, 바닷가에 가서 낚시를 하거나 물놀이를 하거나 배를 탈 때면 으레 월미도공단이니 남동공단이니 주안공단 끝자락이니 하는 데에서 쏟아내는 폐수와 매연이 바람을 타고 찾아들어 듬뿍 들이마셨습니다. 중고등학교 적에 학교 가는 길에는 동양화학과 대우중공업 먼지와 매연을 마셨고, 이제는 아파트가 들어선 자리가 되었으나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오늘날 아파트 자리에 원목처리장과 폐수처리장이 있었습니다.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란 언제나 공장 둘레에서 먼지와 매연을 마시는 한편, 살림집은 경인고속도로 들머리인 탓에 숱한 컨테이너차하고 덤프차가 날리는 먼지와 소리에 길드는 나날입니다. 이런 터전에서 머리통이 굵은 사람으로서 인천이라는 곳을 고향으로 느끼며 뿌리내리고 살겠다는 마음을 품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되든 안 되든 인천을 떠나는 길을 살폈고, 한 번 인천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가지 말자는 생각을 품습니다.


.. 설계사무소에서 하는 대로 맡겨 둔 것이 실수였다. 다리 위를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난간, 교명주, 방호책의 완성도가 다리의 인상을 결정해 버린다. 이런 자잘한 것은 다리의 형태에 비하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다리를 모르는 이들의 생각이다. 내 경험 부족 때문에 마쓰도에 이어, 에도가와 구의 메이와바시 교, 다쓰미신바시 교에서도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  (28쪽)


 고등학교를 마치고 인천을 등졌습니다. 열두 해를 다른 곳에서 떠돌거나 머물며 살았습니다. 안 그래도 숱한 공장과 발전소에다가 공항까지 들어서며 사람들 살림터로는 영 엉터리인 인천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영 엉터리인 인천을 고향으로 삼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물과 바람이 안 좋은 줄 뻔히 알아도 가난한 가운데 살림을 일구고 조그마한 집 한 칸이나마 마련하며 딸아들 키운 분들이 있습니다. 물과 바람이야 한국땅 어디를 가든 마찬가지가 아니냐면서 거의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파트나 빌라에서 여느 월급쟁이로 지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는 서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고, 부산이나 대구나 광주나 대전이라고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큰도시이기에 일자리가 더 많아 더 많은 사람이 몰립니다. 큰도시이기에 작은도시나 시골과 견주어 큰 학교가 많고 이모저모 시설이나 문화가 한결 낫다고 여기며 더 많은 사람이 넘실거립니다. 아무래도 큰도시라 할 때에는 사람이 사람다이 지낼 만한 터전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입에 풀칠을 할 돈벌이가 될 일자리가 조금 더 있고, 워낙 많은 사람이 복닥이다 보니 쉴거리나 놀거리나 즐길거리로 문화이니 공연이니 예술이니 교육이니 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자급자족이 아닌 돈으로 물건과 곡식과 옷가지와 집을 사들이며 목숨을 잇는 도시인 만큼, 끝없이 돈벌이 일자리에 매여야 하고, 은행계좌에 꽤 큰돈이 들어 있어도 마음을 놓지 못하며 자꾸자꾸 다람쥐 쳇바퀴 월급쟁이 삶자락을 이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도시에서 자연을 생각하며 생태를 살리며 지내는 길을 찾는다는 몸짓이 조금씩 불거지는데, 스스로 먹을거리 입을거리 잠잘거리를 마련할 수 없는 도시에서는 자연이든 생태이든 붙이기 좋은 이름으로 그치지 않느냐 싶습니다. 자연을 닮거나 흉내내는 밥은 있어도 자연스럽거나 자연 그대로인 밥은 없는 도시입니다. ‘생태적’이라는 말을 쓰고 ‘웰빙’이나 ‘그린’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하여도 참말 푸르거나 깨끗하거나 맑거나 싱그럽거나 고운 삶은 아닌 도시입니다.


.. 고도성장 이후에 태어난 세대로서는 대도시 교외의 집합주택 풍경이, 혹은 나무가 거의 없는 단독주택 풍경이 원풍경이 되어 있을 터이다. 가령, 자잘하지만 예스러운 변두리 마을이 원풍경이 되어 있으면 거기에는 전통이 숨쉬고 있을 터이므로 그나마 괜찮다. 살벌한 풍경을 원풍경, 고향의 풍경으로 해서 자라난 사람들의 참담함을 알아야 한다 … 건널목을 없애기 위해 철도를 고가철도로 한다, 혹은 교차점을 없애기 위하여 입체교차로 한다. 이유는 그럴싸하게 보여도, 왠지 모르지만 사람보다 도로나 철도가 먼저라는 생각이다 … 일본에서는 도로든 철도든 고가교 천국이라고 해도 달리 할 말이 없다. 원래는 고가교가 없는 편이 좋다. 그것이 인간을 중시하는 도시다 ..  (75, 289, 291쪽)


 골목 한켠이나 마당 한켠에 꽃밭을 가꾸거나 텃밭을 일구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 그렇지만 꽃밭이나 텃밭을 일구는 분 숫자는 대단히 적습니다. 거의 모든 도시사람들은 꽃밭을 가꿀 겨를이 없고 텃밭을 일굴 짬이 없습니다. 꽃밭 텃밭 가꾸거나 일굴 틈이 있으면 한푼이라도 더 벌어들여야 한다고 여깁니다. 꽃이야 꽃집에서 사면 되고 먹을거리야 ㅇ마트 ㄹ마트에서 값싸게 사들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전거는커녕 두 다리로 다니는 일조차 드물고 자가용을 몹니다. 어쩔 수 없는 계층에 있을 때에는 대중교통을 탑니다. 다달이 기름값이며 보험삯이며 무엇이며 수십만 원이나 백만 원 안팎을 쓸지라도 더 돈을 벌어 메꾸면 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수백만 원이나 수천만 원에 이르는 자가용을 장만하지 않고, 이 돈으로 이웃사랑을 한다든지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북돋우는 마음밥을 장만하는 데에 쓴다든지 하지 못합니다. 더 많이 써야 하니까 더 많이 벌어야 하고, 더 많이 쓸 곳이 있으니까 더 많이 벌어들이지 않으면 조바심을 냅니다.

 저 또한 도시에서 목숨 하나 잇는 가운데 목숨 둘을 함께 보살피는 몸으로 지내고 있지만, 이 도시에서 어찌저찌 덧셈뺄셈을 하며 살림을 맞추는 길은 막다른 데로 나아갈 뿐 아니겠느냐고 느낍니다. 어느 만큼 목돈을 모아 시골 논밭을 마련한다면 참 꿈같은 노릇일 텐데, 누구나 비슷한 노릇으로 어느 만큼 목돈을 모으면 더 큰 목돈을 모으고파 하며, 더 큰 목돈이 모이면 다시금 더 큰 목돈을 바랍니다. 바로 지금 가진 만큼 나누거나 즐기면서 스스로 좀더 낮은자리에서 고개숙이며 조용히 살아가지 못합니다.


.. 근대 예술의 개성 중시 경향과 함께, 근대 건축에도 두 가지 폐해가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개인과 개인의 정신을 표현한다고 해서, 나무 자유로운(자의적인)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것을 보다 더 눈에 띄게 하려고 대지와 동떨어진, 극도로 자기완결적인 형태를 추구하게 된다 … 말하자면 건축의 추상 조각화, 추상 예술화다 … 예전의 건전한 건축이 기후, 풍토에 적합한 필연적인 형태를 지니고, 산촌ㆍ어촌에서는 그곳의 자연과 일체가 되고, 또 도시에서는 운하와 길과 또 다른 주거들과 함께 하나로 어우러진 거리를 형성하는, 그런 비자기완결성을 당연시하던 사실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  (131쪽)


 《토목을 디자인하다》라는 책을 읽습니다. ‘토목 디자인’을 하는 일본사람이 쓴 책입니다. 글을 쓴 시노하라 오사무 님은 당신이 ‘실패했던 경험’을 책 곳곳에서 스스럼없이 밝히며 ‘이제는 예전처럼 실패하는 법은 없다’고 적바림합니다. 젊은 날 어줍잖게 벌인 일들이 좋은 보기가 되어 ‘참답고 아름다운 토목 디자인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토목을 디자인하다》를 읽는 동안, 시노하라 오사무 님으로서는 당신이 쓴맛을 본 갖가지 ‘토목 디자인’이 좋은 배움터이자 스승 노릇을 해 왔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쓴맛을 보았기에 이 책 하나 살뜰히 여미는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시노하라 오사무 님은 지난날 시노하라 오사무 님하고 견주어 ‘실패하는 일이 없다’고 느낄는지 모르나, 앞으로 스무 해나 서른 해가 지난 다음에 새롭게 돌아본다면, 그때에도 ‘실패했던 경험’이 아니었을까 궁금합니다. 아직 당신 스스로 당신 길을 꾸밈없이 들여다보거나 톺아보는 눈높이에 이르지는 못한 노릇 아닌가 궁금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쓴맛을 본 일을 밝히면서 당신 뒷사람과 동료한테 ‘이렇게 잘못 나아가면 안 된다’고 도움말을 들려주고 있는데, 도움말을 들려주기 앞서 ‘당신이 잘못 만들어 놓은 토목 디자인 때문에 수십 해에 걸쳐 잘못된 터전에서 엉터리 삶을 꾸리고 있을 사람’들을 더 깊이 돌아보는 일을 먼저 해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남 앞에서 도움말을 들려주기 앞서 나 스스로를 되새기거나 뉘우쳐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당신이 자꾸 쓴맛을 본 까닭이란, 당신이든 엔지니어이든 설계자이든 ‘토목이나 건축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살아왔고 살아가며 살아갈 사람이 아니기 때문임을 읽어내지 못하면 어떡하느냐 싶습니다.


.. 수명이 긴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패션의 디자인과는 반대 방향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상적으로는 50년 봐도 질리지 않는 그런 디자인이다. 질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적어도 기발함이나 유행을 좇지 않는 것이며, 시간의 경과와 함께 열화하지 않는 디자인이다 … 사람이 생활하는 일상의 환경을 형성할 때에 무엇이 가장 중요하느냐고 물으면, 그것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말 한 마디면 된다 … 환경을 형성하는 도로, 하천, 철도 등의 토목 구조물, 시설은 눈에 거슬리지 않고 대지에 녹아들어가, 그 존재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해야 된다. 그래야만 사람은 그 환경 속에서 안정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  (143쪽)


 제 고향 인천을 1994년에 등졌다가 2007년에 돌아온 까닭은, 하루가 다르게 엉망진창이 되고 있는 고향동네에 더 큰 엉망진창 ‘토목 사업’이 마구잡이로 펼쳐지고 있어, 이 엉망진창 토목 사업을 가로막는 데에 작은 손 하나를 보태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더 큰 엉망진창 토목 사업이란 골목동네 한복판에 ‘너비 50∼70미터에 이르는 고가도로형 산업도로’를 놓으며 산업도로 둘레로는 모조리 아파트숲을 심겠다는 인천시장 계획입니다. 저한테만 끔찍하게 보이는 토목 사업일는지 모르나, 이 끔찍한 토목 사업을 막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경인철도 위를 지나서 동네 한복판을 가로지르려던 고가도로는 막아냈고, 왕복 16차선으로 놓겠다던 산업도로는 왕복 4차선 일반도로로 줄이게 했으며, 인천종합건설본부에서 문서로 약속해 주지는 않았으나 땅위가 아닌 땅밑으로 길을 내겠다고 기자회견을 하고 지역신문에 보도자료를 띄웠습니다. 아쉬운 대로 한숨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커다란 엉망진창 토목 사업 하나를 겨우 다독거렸다 하더라도, 동네 곳곳에는 고만고만한 엉망진창 토목 사업이 끊이지 않습니다. 온나라 사람이 다 아는 ‘멀쩡한 보도블럭 뒤집기’라든지 ‘큰돈 들여 자전거길 만들었다가 없애기’라든지 ‘시에서 목돈 들여 재래시장 현대화를 한다며 바닥돌과 지붕을 새롭게 만들어 놓은 시장에 이번에는 관광시장화를 외치며 바닥돌과 지붕을 다시 새롭게 만들기’를 한다든지 ‘경인전철 굴다리 밑 쌈지공원을 만들기는 해 놓고 개방을 안 하다가 이 쌈지공원을 허물고 새로운 쌈지공원으로 만들기’를 한다든지 하면서 애먼 돈을 쏟아붓습니다. 적으면 수 억에서 많으면 수십 억에 이르는 돈이 고만고만한 엉망진창 토목 사업에 해마다 쓰입니다. 이런 토목 사업을 벌이는 공무원이 있고, 이런 토목 사업을 맡는 건축가와 설계가와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토목을 디자인하다》라는 책을 쓴 시노하라 오사무 님 말마따나 ‘토목은 디자인해야’ 맞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어떤 토목을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사람이 손질하거나 꾸미거나 매만지거나 어루만질 수 있을까요. 토목 사업을 맡는 건축가와 설계가와 디자이너는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무엇을 배우고 있나요. 이들은 대학교에서 어떤 수업을 듣고 어떤 교양을 쌓으며 어떤 지식을 갖추고 있나요. 이들은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니기까지 당신들이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고향동네를 어느 만큼 가까이하거나 느끼거나 살피거나 받아들이거나 들여다보았을까요.

 올바른 토목 디자인이란 태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름다운 토목 디자인이란 있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슬기롭고 멋지며 곱고 싱그러운 토목 디자인을 만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골목길을 생각하고 동네를 헤아리며 도시와 시골을 잇고 나라와 겨레를 아우르는 건축가와 설계가와 디자이너란 이 나라 한국땅에서 몇 사람이나 태어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돈벌이를 하자면, 입에 풀칠을 하자면, 토끼 같은 살붙이들 먹여살리자면, 올바르거나 아름답거나 슬기롭거나 멋진 토목 디자인이란 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이 나라는 삶을 어루만지지 않는 교육이요, 삶을 어루만지지 않는 문화이며, 삶을 어루만지지 않는 문화예술인데다가, 삶을 어루만지지 않는 정치경제입니다. 이런 흐름에서 토목이나 건축이나 디자인이 어떻게 삶을 어루만질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4343.4.15.쇠.ㅎㄲㅅㄱ)


 ┌ 《토목을 디자인하다》(동녘,2010)
 ├ 글 : 시노하라 오사무
 ├ 옮긴이 : 강용조
 └ 책값 :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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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글쓰기 - 내 마음을 살리는 말 한 마디
최종규 지음 / 호미 / 2009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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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책을 나 스스로 말하기. 내 이름을 박아서 내놓은 책이지만, 이 책에 담은 알맹이와 땀방울은 나한테 고마운 분들 넋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내가 쓴 책을 내가 이야기한다기보다는, 내 둘레 아름다운 사람들 삶과 넋이 책 하나로 어떻게 갈무리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글을 적바림한다고 하겠다. 야옹야옹~) 


 이 책 하나 146 ― 내 마음을 살리는 말 한 마디
 : 최종규, 《생각하는 글쓰기》


- 책이름 : 생각하는 글쓰기
- 글 : 최종규
- 펴낸곳 : 호미 (2009.11.30.)
- 책값 : 1만 원


 (1) 나는 왜 책을 쓰는가


 글 한 줄을 적바림하면서 우리 누리를 바로세우거나 알차게 가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글 한 줄을 적바림할 때에는 오늘 하루 제가 꾸리는 삶을 옮길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둘레 사람들이 우리 누리를 올바르고 어여쁘게 일구어 나가리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땀흘리고 애쓰는 분들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돈값 이름값 힘값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사랑을 나눌 수 있으리라고는, 또 이렇게 하리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저 제 둘레 사람들이 모두 올곧게 애쓰든 몇 사람만 올바르게 힘쓰든 거의 모든 사람이 사랑스러운 길을 저버리든, 저는 저대로 저한테 가장 알맞으면서 올바른 길을 찾고 꿋꿋하게 걸어갈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적바림하는 글쪼가리 하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저 스스로 제 삶을 얼마나 제 마음에 흐뭇하도록 일구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이야기 한 자락일 뿐이라고 여깁니다.

 제가 쓴 글 한 줄이 많은 사람한테 읽힐 수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제가 쓴 글 한 줄을 많은 사람한테 읽혀야 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아 주면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안 읽어 준다 하여도 저 스스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 제 글을 꾸준히 되읽으면서 어제와 오늘과 이듬날이 한결같이 곧고 고우며 맑을 수 있도록 가다듬을 노릇이라고 여깁니다.

 남을 일깨우는 글이 될 수 있습니다만, 남을 일깨우기 앞서 저 스스로를 일깨우는 글이 되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저를 가르쳐 주는 고마운 책을 수없이 찾아 읽든, 저를 가르쳐 주는 고마운 스승을 수없이 찾아가서 말씀을 여쭈든, 저를 가르쳐 주는 고마운 일거리를 찾아 바지런히 땀흘리며 일하든,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하고 어울리더라도 저 스스로 깨달은 이야기를 글 한 꼭지에 차곡차곡 담을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저 스스로 깨달은 이야기를 담는 글이고, 저 스스로 깨달은 이야기를 저 스스로 잊지 않고 되새기고자 읽는 글이라고 느낍니다.

 날마다 차근차근 새로워지는 삶이 되도록 날마다 글 한 꼭지이든 두 꼭지이든 갈무리하면서 날마다 제 삶을 가다듬는다고 느낍니다. 하루하루 좋은 생각을 맺으면서 하루하루 조금씩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도록 이끌어 주는 글쓰기라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 꾸준하게 새로워지고 고우며 맑게 거듭날 수 있으면 저는 제 삶을 곱고 맑게 꾸리는 셈입니다. 제가 제 삶을 곱고 맑게 꾸릴 수 있다면, 제가 터잡고 있는 마을에서 곱고 맑은 넋을 나눌 수 있습니다. 제가 터잡고 있는 마을에서 곱고 맑은 넋을 나눌 수 있으면, 제 둘레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한테 곱고 맑은 기운을 주고받을 수 있고, 제 삶자락과 삶터부터 좋은 이야기가 어우러지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한꺼번에 혁명이나 개혁을 이룰 수 있기도 할 터이나, 저한테는 열 해나 스무 해나 쉰 해나 예순 해에 걸쳐 아주 더디게 천천히 걷는 걸음으로 제 삶부터 혁명이나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땀을 흘리고 싶습니다. 제 글쓰기란 갑작스레 크게 뜨거나 널리 읽히는 글을 낳는 일이 아니라, 짧으면 열 해이고 으레 서른 해이며 길면 예순 해 남짓에 걸쳐 좋은 뜻 하나를 이루고 싶은 긴 걸음걸이입니다.

 지난 2004년에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처음으로 내놓은 다음 2006년에 《헌책방에서 보낸 1년》을 내놓았습니다. 올여름부터는 세 번째 헌책방 이야기를 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서너 해 또는 대여섯 해가 지난 다음에는 네 번째 헌책방 이야기를 쓰고자 새 마음을 가다듬고 싶습니다.

 지난 2009년 봄에 《자전거와 함께 살기》를 내놓았습니다. 이 책을 내기 앞서인 2008년 여름에 딸아이를 낳아 기르는 터라 두 번째 자전거 이야기를 내놓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워야 할 뿐 아니라, 아이와 다닐 때에는 자전거를 탈 수 없는 탓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서 자전거수레에 아이를 태울 수 있다면, 또 아이 스스로 자전거를 탈 무렵이 되면 시나브로 두 번째 자전거 이야기를 내놓을 수 있겠지요.

 지난 2009년 가을에 《책 홀림길에서》를 내놓았습니다. 이 책에 실은 글은 다른 어디에 한 번도 내놓지 않은 글을 묶었는데, 앞으로 우리 살림집을 느긋한 곳으로 옮긴 다음에 두 번째 책 이야기 책을 새롭게 내놓고픈 꿈을 꿉니다. 서른다섯 나이에 돌아본 책 이야기가 있으면 마흔이나 마흔다섯에 돌아보는 책 이야기가 있고, 쉰이나 예순이나 일흔에 돌아보는 책 이야기가 있어요. 저마다 깊이와 너비가 다릅니다.

 그리고 지난 2009년 겨울 들머리에 《생각하는 글쓰기》를 내놓았습니다. 제가 가장 깊이 마음을 쏟으며 하는 일이 ‘우리 말 이야기’ 쓰기임을 헤아린다면, 제가 내놓은 책 가운데 가장 늦게 나온 책입니다. 책이 나온 이제야 밝히면, 이 책은 2005년에 진작에 내기로 했으나 다섯 해를 미루고 늦춘 끝에 겨우 나왔습니다. 아마 2005년에 번쩍 하고 내놓았으면 좀더 많이 읽히거나 이야기가 될 수 있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2005년이 아닌 2009년 겨울에 내놓았기에 글을 더 손질하고 매만질 수 있었고, 다섯 해 사이에 새롭게 배우거나 뒤늦게 깨달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앞으로 두 번째 ‘우리 말 이야기’를 내놓을 때에는 그동안 새로 깨닫거나 배우는 이야기에 따라 제 어설프고 어리석은 생각밭을 다시금 가누어서 내놓을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책 하나를 내놓을 때마다 저로서는 지나온 삶을 갈무리하는 한편, 제가 걷는 오늘을 곰곰이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좀더 슬기롭게 다스리는 눈길을 닦는다고 하겠습니다. 








 (2) 나는 왜 책을 선물하는가


 지난 《모든 책은 헌책이다》부터 《생각하는 글쓰기》까지 다섯 가지 낱권책을 내놓았고,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붙인 개인잡지는 여덟 권을 내놓았습니다. 모두 열세 권이며, 책방에 넣지 않은 비매품 책으로 《사진은 삶이다》와 《말은 삶이다》를 내놓은 적 있습니다. 이리하여 서른여섯 나이에 모두 열다섯 권이 되는 책을 쓴 셈인데, 열다섯 권에 이르는 책을 내놓는 동안 출판사에서 받은 글삯은 한 푼도 없습니다. 때로는 출판사에 책 찍을 돈을 보태어 주었습니다. 이러면서 우리 누리에 내놓은 책 열다섯 가지를 줄잡아 200권 남짓 둘레에 선물했습니다. 맨 먼저 헌책방 일꾼한테 선물했고, 저한테 고마운 분들한테 하나하나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이제까지 제 책을 3000권 넘게 선물해 온 셈입니다.

 지난날에는 책 만드는 일을 하며 일삯을 벌었으니 제 책을 제 돈으로 만들어 둘레에 선물하고 나면 빈털털이가 됩니다. 그런데 빈털털이가 되기 때문에 새로운 글을 잇달아 쓸 수 있고 새삼스러운 책을 꾸준히 내놓을 수 있습니다. 아쉬움을 남기려고 쓰는 글이 아니라, 스스로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어 쓰는 글이기에 다른 곳에서 돈벌이를 하여 푼푼이 모은 돈 얼마를 책한테 송두리째 바쳐 이 책들을 둘레에 선물할 때 그지없이 보람있다고 느낍니다.


.. 지식으로 다루는 ‘우리 말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식을 보여주는 ‘우리 말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식을 쌓자는 ‘우리 말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식을 참다이 사랑하자는 ‘우리 말 이야기’입니다. 지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깨닫자는 ‘우리 말 이야기’입니다. 지식이란 다름아닌 내 삶임을 옳게 느껴 넉넉하게 껴안자는 ‘우리 말 이야기’입니다 ..  (머리말)


 누구는 자가용을 몰고 누구는 아파트를 장만하며 누구는 맛난 밥 좋은 옷을 입는 데에서 보람을 느끼겠으나, 저로서는 자가용 안 몰고 아파트 장만 안 하며 맛난 밥 안 먹고 좋은 옷 안 입는 자리에서 보람을 느낍니다. 이런 데에 들어갈 돈을 옹글게 그러모아서 책 하나를 여미는 일만큼 저한테 기쁜 일은 다시 없으니까요. 제가 고운 목숨 하나 선물받아 이 땅에 태어나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으면서 가장 즐거운 일이란 글 하나 쓰고 책 하나 묶는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 올봄 5월이 되면 지난 몇 해 동안 조용히 일구어 놓고 있던 글을 여미어 두 가지 책을 함께 내놓습니다. 하나는 사진을 이야기하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인천골목길을 사진으로 담은 책입니다. 낱권책으로 치니 여섯째 책과 일곱째 책이 됩니다. 이 책들이 어여쁘게 태어나면 이 책들도 ‘글삯에 맞먹는’ 만큼 책으로 받아서 둘레에 하나둘 선물하고 다니겠지요. 인천골목길을 담은 사진책은 따로 더 장만해서 좋은 사진이 태어나도록 도와준 골목이웃을 찾아다니며 한 권씩 선물하고 다닐 테고요.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 바쁘고 힘들어 책을 읽을 겨를을 못 낸다고 하는데, 책을 읽을 겨를을 못 낼 뿐 아니라, 바쁘고 힘든 가운데 즐겁고 손쉽고 재미나게 읽을 책이 없기도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제 글이 썩 재미나거나 신나는 글은 못 된다고 느끼지만, 바쁘고 힘든 가운데 손쉽게 읽으며 생각 한 줌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책이 되면 좋겠다고 꿈을 꿉니다. 새로운 책을 내놓을 때마다 생각하는데, 이번 책은 지난 책과 견주어 좀더 손쉬우며 살가울 수 있기를 비손합니다. 하루하루 나아지는 사람이 되고자 꿈꾸고, 차츰차츰 아름다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자고 비손합니다. 이 마음을 책 하나에 살며시 담아 이웃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입으로는 잘 나타내지 못하는 사랑을 책 하나로 쑥스러이 나누고 싶습니다.
 







 (3) 내가 쓴 글을 내가 눈물겹게 읽기


 제가 쓴 글은 제 이름을 걸고 나오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오롯이 제 글이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 둘레 곱고 맑은 사람들 넋을 고맙게 물려받고 선물받으면서 쓸 수 있는 글인 까닭입니다. 제가 잘나서 쓰는 글이 아니라 제 둘레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쓰는 글입니다. 제 둘레 좋은 사람들이 좋은 말과 삶을 보여주고 베푼 까닭에 이 말과 삶을 고스란히 글로 옮겨낸다고 하겠습니다.

 이리하여 저는 제가 쓴 글을 즐겨읽습니다. 거듭 읽고 새겨서 읽습니다. 제 이웃들이 저한테 어떤 사랑을 나누어 주었는가를 제 글을 읽으면서 되돌아보고, 제 이웃들이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얼마나 온몸 바쳐 일하고 있는가를 깨닫고 싶어 제 글을 곰삭입니다. 제가 읽는 제 글이지만, 제 글을 읽으며 더없이 기쁘고 즐겁고 반가우며 고맙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읽는 글이요 웃음을 터뜨리며 읽는 글입니다. (4343.4.3.흙.ㅎㄲㅅㄱ)


[19쪽] 나라가 나라다울 수 있을 때 삶터가 삶터다웁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나라가 엉망이어도 조그마한 마을 하나는 홀로 튼튼히 우뚝 설 수 있을 테지만, 이제는 작은 마을도 중앙정부와 지역정부가 벌이는 숱한 막개발에 쫓기고 밀리고 무너집니다. 큰뜻에 따라 작은뜻은 묻어야 한다면서 용역 철거꾼과 경찰이 한몸이 되어 밀어냅니다. 이러는 동안 우리 삶다움을 지킬 수 없고,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지킬 수 없는 자리에서 우리다운 생각을 품을 수 없습니다. 우리다운 생각을 품을 수 없고, 우리다움을 추스를 일과 놀이를 즐기지 못하는 자리라면, 우리가 하는 일과 쓰는 글이 말답고 글답기 어렵습니다. 뒤틀리고 맙니다.

[30쪽] 무엇보다도 ‘기피 옥수수’라는 이름에서는 혀를 내두릅니다. 낱말책에도 없는 한자말 ‘기피’인데, 이런 이름을 어디에서 찾아내거나 알아내어 쓰는지 더없이 궁금합니다. 모양새 그대로 “껍질 벗긴 옥수수”라 하면 될 텐데, 왜 ‘기피 옥수수’라고 이름을 붙이면서 써야 할까요. 글자수가 둘 늘어서 “두 글자짜리 짧은” 이름을 쓰려는 마음이었을까요. 길이는 짧더라도 알아듣기에 좋지 않으면, 짧으나 마나임을 몰라서일까요. 농협에서 이와 같은 한자 이름을 즐겨쓰기 때문인가요. 농사짓는 분들 모두 이러한 이름만으로 곡식을 가리키기 때문인가요. 콩은 ‘콩’이고 팥은 ‘팥’이며 깨는 ‘깨’입니다. 이런 곡식한테 얼토당토않을 뿐 아니라, 우리 삶하고 아주 동떨어진 이름을 붙이는 일은 농사짓는 분들한테나, 생협 운동 하는 분들한테나, 또 우리한테나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우리 땅을 살리는 농사와 생협뿐 아니라, 우리 말과 글을 함께 살리는 농사와 생협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34∼35쪽] 밥상에 차린다고 아무 먹을거리나 집어먹을 수 없습니다. 먹고살기 팍팍하다고 군인이 되어 싸움터에 나가 사람 죽이는 짓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없습니다. 또는 전쟁무기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거나 환경을 더럽히는 공장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일할 수 없습니다. 밥 한 그릇을 먹어도 제대로 몸과 마음에 피와 살이 되는 밥을 먹을 노릇입니다. 돈 한 푼을 벌어도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느껴질 돈을 벌 노릇입니다. 말 한 마디를 쓰더라도 우리 넋과 마음과 삶을 일으키거나 사랑스레 보듬을 만한 말을 할 노릇입니다. 밥과 옷과 집이, 마음과 생각과 넋이, 삶과 일과 놀이가, 그리고 말과 글과 이야기가 따로따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38∼39쪽] 사람이 사람다울 수 없으며, 세상이 세상다울 수 없는 이 땅에서는 책이 책다울 수 없는데다가 말이 말답지 못합니다. 우리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거나 나눌 자유가 없이 국가보안법에 짓눌리고, 우리 마음을 스스럼없이 펼치거나 함께할 권리가 없이 통신검열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자리에 학문이 학문답게 뿌리를 내립니다. 세상이 세상다울 수 있는 터전에 말이 말답게 줄기를 뻗습니다. 얼과 넋이 얼과 넋다이 아름다울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 일과 놀이는 기쁨과 보람과 즐거움이 가득한 일과 놀이로 새로워지거나 새삼스러워집니다.

[45. 46쪽] 길을 가니 길손이요, 함께 길을 가서 길동무이며, 길에서 먹으니 길밥이고, 길을 그려 놓으니 길그림입니다. 길에서 살듯 일을 하거나 길을 좋아하니 길사람이고, 어디로 나아갈까 헤아리면서 길머리를 찾고, 반가운 이를 맞이하고자 길마중을 나갑니다 … 돌아가신 분이 있을 때 “고인故人의 명복冥福을 빈다”고 흔히 말합니다. “죽은 이가 저승에서도 잘살기를 빈다”는 뜻으로 하는 말입니다. 예부터 써 왔으니 오늘날에도 쓴다고 할 테고, 앞으로도 꾸준히 써도 괜찮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문이 아닌 한글을 쓰는 우리요, 우리 나름대로 우리 말투를 하나둘 꾸려 나갈 때가 한결 낫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라면, “돌아가신 이를 기립니다”라든지 “떠나가신 넋이 걱정없이 잠드시기를 빕니다”라든지 “고이 잠드시기를 빕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50, 69쪽] 예전에는 저도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나쳤습니다. 그래서 참 좋구나 싶은 말을 보든, 참 얄궂구나 싶은 글을 읽든, 그러려니 하고 흘려보냈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면, 저뿐 아니라 누구나 우리 말과 글을 놓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니, 좋은 말이 좋은 말인 줄 느끼지 못하고, 얄궂은 글이 얄궂은 줄 느끼지 못하지 싶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좋은 버릇은 들이지 못하고, 얄궂은 물이 자꾸 들면서, 당신 스스로도 안타깝고, 우리 나라나 문화로 보아도 안쓰러운 쪽으로만 치닫고 있습니다 … 누구나 조금씩 생각을 기울여 보면 얼마든지 한결 걸맞고 알맞고 살갑게 낱말 하나 엮어 낼 수 있습니다. 말투나 말씨도 더욱 부드럽고 아름다이 여밀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생각을 기울이지 않으니 좀더 낫다고 여길 만한 낱말이나 말투나 말씨를 못 찾고 못 느끼고 못 쓰고 있을 뿐입니다.

[57, 59쪽] 한자말을 쓰는 일이 잘못은 아닙니다. 어느 말을 쓰든 올바르게 쓰지 못하는 일이 잘못입니다. 알맞게 써야 할 자리에 알맞지 못하게 쓰니 잘못입니다 … 퍽 예전부터 궁금했습니다. ‘가난뱅이’는 토박이말로 있는데, ‘부자富者’는 왜 한자말로 있을까 하고. 돈이 없거나 적은 살림을 가리키는 말은 토박이말로 ‘가난’이면서, 돈이 많거나 넉넉한 살림을 가리키는 말은 왜 한자말로 ‘부유富裕’일까 하고. 머리통이 굵어지고 여러 낱말책을 찾아보던 어느 날, 우리 토박이말로도 돈이 많거나 넉넉한 살림을 가리키는 낱말이 있음을 뒤늦게 배웁니다. 토박이말로는 ‘가멸다’입니다. 돈이 아주 많은 살림을 ‘가멸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느 ‘부자’라면 ‘가면이’이고, ‘억만장자’라면 ‘가멸찬이’입니다.

[63쪽] 말을 살리는 일은 제 삶을 살리고 제 넋과 얼 또한 살리는 일입니다. 말 한 마디를 살리면서 우리 삶 한 자리를 차근차근 살립니다. 우리 삶 한 자리를 차근차근 살리는 가운데 우리 넋과 얼이 새로워집니다. 아름답게 빛나든 그리 밝지 않게 빛나든 나날이 싱그러움을 더해 갑니다. 작은 한 가지를 들여다보는 마음이기에, 내 둘레에서 내 자그마한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좀더 찬찬히 둘러봅니다. 천리길을 왜 한 걸음부터 걸어야 하는지, 티끌을 모으면 왜 큰산이 되는지, 첫 술에 어이하여 배부를 수 없는지,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깨달으며 가슴으로 새깁니다.

[64, 66쪽] 말을 살리지 못하면 내 삶을 살리기 어렵습니다 … 일제강점기 때 지식인 손과 입을 거쳐서 들어온 말투가 사그라들기는커녕 되살아나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를 깊이 내리기만 할 뿐입니다. 이러는 가운데 영어 말투가 또다른 뿌리를 내리면서 속속들이 퍼집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한테 고유한 말과 글을 가꾸면서 보듬기란 참 어렵습니다. 말과 글에 앞서 삶이 뿌리뽑히고 문화가 내동댕이쳐지며 넋과 얼이 짓밟힙니다. 말만 살릴 수 없고 글만 북돋울 수 없기에, 삶을 함께 살리고 문화를 같이 북돋우지 않는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87, 90쪽] 말이란, 말하는 사람 스스로 가꿔야 합니다. 글이란, 글 쓰는 사람 스스로 가꿔야 합니다. 얼도 넋도 맟나가지이며, 생각과 슬기도 매한가지입니다. 우리 스스로 가꿀 때 비로소 싱그러운 새싹을 돋우어 내고 줄기를 올립니다. 우리 말을 가꾸고자 우리 머리를 쓸 때 바야흐로 튼튼한 가지가 뻗어나고, 가지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하지 않는다면, 자꾸 바깥에 눈을 돌리며 바깥에서 거저 얻으려 한다면, 꿍꿍이속을 키우는 바깥에 있는 빚쟁이들이 어느 한때 갑자기 들이닥치며 우리 말살림을 죄 거덜나게 하리라 봅니다 … 같은 서울에서도 서로를 돈과 힘과 이름으로 나누는 짓을 그만두지 않고서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서울 안과 서울 밖을 나누는 못남을 떨쳐내지 않고서야, 사람과 뭇목숨 모두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고서야, 입으로만이 아닌 몸으로 콩 한 알도 나누는 매무새로 살아가지 않고서야, 옹글게 쓰는 우리 말이란 뿌리를 내릴 수 없다고 봅니다.

[103, 132쪽] 좋은 사람들한테 마음을 쓰듯, 우리가 날마다 쓰는 우리 말에도 마음 한 번 써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좀더 살가운 마음을 담을 수 있도록, 좀더 쉽고 깨끗하게 쓸 수 있도록, 좀더 알맞고 넉넉하게 쓸 수 있도록, 좀더 우리 삶터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우리 생각도 알뜰히 담아낼 수 있도록 마음을 쓰면 좋겠습니다 … 바라는 대로 살게 되고, 살아가는 대로 말이 됩니다. 꾸미는 대로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는 대로 글이 바뀝니다. 우리가 옳게 살고자 애쓰면 옳은 말을 저절로 쓰게 되고, 우리가 그릇되게 사는 틀을 깨지 않으면 우리 글은 그릇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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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
고히야마 하쿠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얼미디어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132 ― 아름다운 책 하나 찾는 길
 : 고히야마 하쿠, 《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



- 책이름 : 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
- 글 : 고히야마 하쿠
- 옮긴이 : 양억관
- 펴낸곳 : 한얼미디어 (2006.2.13.)
- 책값 : 1만 원


 (1) 책을 어떻게 맞아들여 읽는가


 나라밖으로 옮겨지는 우리 나라 책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나라안에서 널리 사랑받는 책이 아니라 나라안에서 무척 아름답다고 여기는 책 가운데에는 어떠한 책이 나라밖으로 옮겨지는지 궁금합니다.

 나라안에 옮겨지는 책들을 살피면 으레 나라밖에서 무척 사랑받고 있는 책이기 일쑤입니다. 나라밖에서 널리 사랑받지 않을지라도 나라밖에서 깊이 아끼거나 보듬는 조그마한 책을 나라안으로 옮기는 일이 있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제아무리 훌륭한 나라안 책이라 할지라도 ‘사서 읽을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할 때에는 출판사에서 망설이거나 손사래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알맹이가 훌륭한 책일지라도 출판사에서는 팔림새를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책방마실을 하면서 책을 고를 때에 곰곰이 헤아립니다. 나한테 가장 사랑스럽다고 느낄 책을 고르는 책방마실이지만, 오늘 책방마실에서 고르는 책 하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부대끼는 동안 깨달은 ‘나한테 사랑스러울 느낌’입니다. 오늘까지 바라보는 눈길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인 만큼 앞으로는 달라지거나 새로워지거나 거듭날 수 있는 느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제까지는 못 알아본 책을 오늘 알아볼 수 있고, 오늘까지 알아보지 못하는 책을 이듬날 알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반가이 집어드는 책 바로 옆에 꽂혀 있을 더없이 반가울 책을 오늘까지 못 알아본 채 지나칠 수 있습니다.

 1995년에는 알아보지 못했으나 2000년에 비로소 알아보는 책이 있습니다만, 고작 다섯 해 만에 판이 끊기는 수가 있습니다. 2002년에는 알아보지 못했으나 2005년에 바야흐로 알아보는 책이 있는데, 겨우 세 해 만에 사라지는 수가 있습니다. 2008년에는 알아볼 눈이 얕았으나 2010년에 드디어 알아보는 책이 있어도, 기껏 두 해밖에 안 지났어도 다시는 찾아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지난날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제 책눈이 얕아서 책을 따스히 껴안지 못하기 일쑤이고, 오늘날뿐 아니라 앞날까지 제 책눈이 어설픔을 뒤늦게 깨달으며 책 하나 더욱 넉넉히 보듬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책방마실을 할 때에 ‘내가 오늘 꼭 읽지 않더라도 앞으로 읽을 만한 책일 수 있다’고 여기는 책을 조금씩 장만하곤 했습니다. 고등학생 때에는 ‘오늘 다 읽어치울 책’만 빠듯하게 장만했으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두어 해 뒤에는 ‘이듬날 읽을 책을 몇 가지’ 장만합니다. 군대에서 스물여섯 달을 보내고 사회로 돌아오고 나서는 이동안 사라지는 책이 있으며 이동안 무슨 책이 나왔는가를 하나도 알 길이 없던 탓에 ‘언제 어느 책이 내 눈에 한 번도 스치지 못하고 사라질는지 모른다’고 헤아리며 이듬이듬날 읽을 책을 차곡차곡 장만합니다. 사랑스러운 님을 만나거나 사귈 때에는 나로서는 아직 내키지 않으나 둘이 서로 나눌 책을 곰곰이 살피는 눈길을 기르고, 아이를 낳아 키울 때에는 나로서는 마음이 들지 않아도 아이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는지 모르기 때문에 더 넓고 깊게 책밭을 둘러보면서 책을 장만합니다. 2010년 오늘은 그지없이 사랑받으며 잘 팔리는 책이라 하여도 고작 서너 해 뒤에는 갑작스레 미움을 받으며 스러지는 책이 있을 수 있어요. 한 번 자취를 감추는 책을 나중에 찾아보고자 한다면 대여섯 해는 아무것 아니고 일고여덟 해나 열 몇 해쯤은 넉넉히 잡아먹습니다.

 있을 때 사고, 샀으면 잘 간수하며, 간수했으면 마음으로 고이 삭인 다음, 삭였으면 즐거이 몸으로 맞아들이면서 살아갈 노릇입니다.

 누리신문 오마이뉴스에서 지난 열 해에 걸쳐 가장 훌륭하다고 느끼는 책이 무엇인가를 뽑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걷는 책길에 따라 만화책 하나와 글책 하나와 사진책 하나를 뽑았습니다. 지난 열 해(2000∼2009) 동안 제 손을 거친 책은 여러 만 권이 될 테고 우리 집 책꽂이에 남은 책은 이만 권이 조금 안 됩니다. 좋으면 다 좋은 책이지, 어느 책이 더 좋고 덜 좋고를 가를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이때에 제 마음을 덥혔고, 저 책은 저때에 제 생각을 일깨웠습니다. 한 줄로 사로잡는 책이 있고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아리따운 책이 있습니다. 읽는 기쁨이 있는 책이 있고, 나누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 있으며, 내 삶으로 곰삭이는 멋이 있는 책이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올 한 해(지난 열 해) 나한테 가장 아름다운 책’ 한두 가지를 뽑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부질없습니다. 왜냐하면 만 사람한테는 만 가지 좋은 책이 있는데, 이러한 만 가지를 몇 가지로 뭉뚱그린다는 일은, 고작 몇 가지 책을 드높일는지 몰라도 만 가지로 다 다르게 아름다운 책을 저버리거나 등지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등수나 차례를 밝힌다 하여도, 어렵사리 추천을 한 모든 책들이 어떤 책인지 이름을 하나하나 알려주어도 ‘다 다른 아름다움과 멋’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우리라 봅니다.

 그래도 일은 일인 탓에 저 또한 제 깜냥껏 세 권을 가까스로 추렸고, 세 권 이름을 들면 《도자기》(만화책), 《이 여자 이숙의》(글책), 《역전 풍경》(사진책)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본 사람이 있을는지 궁금한데, 아마 세 가지를 모두 본 사람은 아주 드물지 않으랴 싶습니다. 온 나라에 걸쳐 다섯 사람이나마 있을까 말까 한 노릇이라고 봅니다. 만화책 《도자기》는 제법 사랑받고 있어도 《이 여자 이숙의》를 알아보는 사람은 몇 천 사람이 안 되고, 《역전 풍경》을 알아보는 사람은 몇 백 사람이 안 되는데, 그나마 《역전 풍경》은 몇 해 앞서 ‘더는 안 찍어 살 수 없는’ 책이 된 탓입니다. 무엇보다도 만화책을 즐겨읽으며 글책을 즐겨읽는다든지 글책을 즐겨읽으며 사진책을 즐겨읽는다든지, 사진책을 즐겨읽으며 글책이나 만화책을 즐겨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기는. 《역전 풍경》은 김기찬 님 사진책인데, 김기찬 님이 《골목 안 풍경》이나 《잃어버린 풍경》 같은 사진책을 냈어도 새책으로 반가이 사들인 사람은 얼마 안 됩니다. 모두들 헌책방에서만 (좀더 값싸게) 찾아보려고 할 뿐입니다.

 사진 하나를 놓고 생각할 때에, 오늘날 사진쟁이 이름을 내거는 사람이 제법 많고 사진쟁이 이름을 내걸지 않더라도 사진을 즐겨찍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잘나가는 젊은 사진쟁이 누구누구 이름을 들먹이는 사진밭이며, 아무개저무개가 우리 사진문화를 새로 일군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사진비평이든 사진평론이든 김기찬 님이 살아 있을 적이나 돌아가신 뒤로나 ‘김기찬 골목사진 이야기’를 깊고 넓게 읽어내며 풀어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제는 이분 사진책이 하나둘 ‘절판 길’을 걷고 있으니, 앞으로는 이분 사진책 이야기는 더 나오기 힘들 테지요. 골목길이라는 사진감이든 서울역이라는 사진감이든, 사람들은 으레 그 사진은 그렇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김기찬 님 사진을 김기찬 님 눈길을 따라가며 느끼기는 어려울 테지요.

 책을 책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보듬지 못하는 흐름은 《역전 풍경》이라는 책 하나에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른 수많은 책에서도 어슷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요츠바랑!》이라는 만화책을 우리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빙점》이라는 문학책을 우리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윤미네 집》이라는 사진책을 우리들은 어떻게 보듬고 있을까요. 틀에 박히거나 판에 박힌 눈썰미와 생각밭은 아니온지요. 차갑거나 딱딱한 마음결이나 손길은 아니온지요.

 누구나 삶을 꾸리는 모양새대로 책을 마주합니다. 누구나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책을 붙잡습니다. 누구나 살림살이 일구는 결에 따라 책을 찾아 읽습니다. 아름답고 따사로우며 포근한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한테는 아름답고 따사로우며 포근한 책입니다. 즐겁게 고운 삶을 가꾸는 사람들한테는 즐겁고 고운 책입니다. 땀흘려 일하고 신나게 어깨동무하는 삶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한테는 땀과 신이 담긴 책입니다.
 





 (2) 《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이라는 책


 《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을 쓴 일본사람 고히야마 하쿠란 분이 있습니다. 고히야마 하쿠 님은 소설을 쓰는 분이라 하는데, 나라안에는 이분 소설책이 한 가지도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책 하나, 수필 《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 하나 옮겨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롭다. 그 대신에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남을 생각해 주는 마음. 전후 일본인이 잃어버렸던 가장 큰 미덕은 남에게 밥 먹었느냐고 걱정해 주는 말이다(212쪽).” 같은 이야기를 사이사이 곁들이며 ‘일본사람이 일본땅에서 이웃 일본사람하고 내 삶터 일본땅에서 가장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길’이란 무엇인가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수필책 하나만 옮겨져 있습니다.

 나라안에 옮겨진 일본책을 읽다 보면 ‘일본사람은 오늘날 이렇게 뒤틀린 채 살아간다’고 이야기를 하거나 ‘일본사람은 지난날 돈에 미쳐서 오늘날까지 바보스레 살아간다’고 하는 대목을 곧잘 만납니다. 이 책에서도 “도쿄에서 지하철을 타면 사람을 밀치면서 자리를 잡으려고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까지 남을 밀치고 자리를 잡으려 한다(215쪽).”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중학생이나 초등학생도 마찬가지요, 초중고등학생을 키웠거나 키우는 어버이라 하는 아줌마와 아저씨와 할머니와 할아버지 또한 매한가지입니다. 어리거나 젊거나 늙거나 다르지 않습니다. 저마다 제 밥그릇 챙기는 데에 바쁘고, 저마다 제 배속 채우는 데에 홀려 있습니다.

 고히야마 하쿠 님은 당신 둘레에서 마주하는 사람들한테 ‘우리 모두한테 꼭 한 번 주어진 고마운 선물인 삶을 왜 아름답고 즐겁게 꾸리면서 신나고 보람있게 나누다가 아쉬움과 미움 하나 없이 살가이 마무리하지 못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짤막한 글을 씁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억지스런 가르침이나 꾸짖음이 아닌, 당신 어버이가 당신한테 베푼 속깊은 사랑이 무엇이었는가를 톺아보는 글로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따분한 수다가 아닌, 당신 둘레 수수한 사람들이 당신한테 선사한 넓디넓은 믿음이 어떠했는가를 살피는 글로 들려줍니다.

 작으면서 고운 책이요, 수수하면서 아름다운 책이며, 조용하면서 산뜻한 책입니다. 이러한 책일 때에는 출판사에서 굳이 양장으로 꾸미지 않으면 한결 낫고, 더 값싸고 더 조촐하며 더 조그마한 판으로 묶어서 사람들 앞에 내보이면 훨씬 낫습니다. 새책방에 꽂히든 헌책방에 꽂히든 도서관에 꽂히든 사람들이 쉬 알아보지 못하는 크기와 짜임새가 될 수 있을지라도, 더욱 작고 수수하고 값싼 책으로 여미었다면 좀더 낫습니다. 글쓴이부터 스스로 돋보이고자 쓴 글이 아니었으니까요. 읽는이한테 반드시 이 글들을 읽히고 깨우치려고 소매를 잡아끌지 않으니까요.

 때가 되면 알아볼 책입니다. 마음이 닿으면 스스럼없이 집을 책입니다. 생각이 있으면 찬찬히 헤아리며 찾아볼 책입니다. 이쁘장해야 할 곳은 책껍데기가 아닌 종이에 박힌 글월입니다. 눈에 띄어야 할 곳은 책꾸밈새가 아닌 종이에 찍힌 글월입니다. 가난하기에 아름답고 가난하기에 사랑하며 가난하기에 두레를 합니다. 가난하기에 착하고 가난하기에 믿음직하며 가난하기에 손을 잡습니다.

 돈있는 사람이 되며 넉없는 사람으로 바뀌고, 돈있는 나라가 되며 얼빠진 나라로 굴러떨어지며, 돈있는 마을이 되며 멋없는 마을로 달라지는 우리 터전이라고 느낍니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이라는 책 하나는 삶을 알차고 아름답고 애틋하게 어루만지는 손길은 바로 나부터 비롯하면서 씨앗이 퍼져 나갈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일본사람 소노 아야코 님이 《계로록》 또는 《아름답게 늙는 지혜》 같은 책을 써냈듯이,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젊음과 아름다운 늙음을 마음껏 뽐내며 책 하나 이루어 냅니다. 남 앞에서 으스대는 젊음과 늙음이 아니라, 스스로 기쁨에 겨워 기쁨을 온누리에 솔솔 뿌리는 젊음과 늙음입니다. 또다른 일본사람 사하시 게이죠 님은 《할아버지의 부엌》이라는 책을 써내며 늙음을 마주하거나 맞이하는 젊음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줍니다. 따지고 보면 리영희 님이 쓴 《스핑크스의 코》 같은 책 또한, 늙음으로 달려가는 마당을 돌아보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젊음을 마음껏 드러내는 나이부터 우리 삶을 어떤 넋으로 가다듬으며 살아야 아름다울까를 일러 주고 있다고 할 만합니다.

 고운 삶에서 고운 말이 나오고, 고운 말을 들려주는 가운데 고운 책이 태어납니다. 따순 삶에서 따순 말이 나오고, 따순 말을 주고받는 가운데 따순 책이 태어납니다. 좋은 삶에서 좋은 말이 나오고, 좋은 말을 펼쳐 보이는 가운데 좋은 책이 태어납니다.
 





 (3) 《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을 거듭 읽는 맛


 그리 두껍지 않아 금세 한 번 읽어내릴 수 있는 책 《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은 퍽 더디더디 읽어야 제맛입니다. 눈에 뜨이는 글 꼭지부터 차곡차곡 읽으며 마무리를 지어도 제맛이요, 마음에 와닿는 글을 여러 차례 되읽어도 제맛입니다.

 눈물이나 웃음 묻어나는 글을 식구들 앞에서 소리내어 읽어도 제맛입니다. 혼자 있는 방에서 홀로 소리내어 읽어도 제맛입니다. 찻집에서 말없이 읽어도 제맛이요, 전철이나 버스나 기차나 배나 비행기에서 한 꼭지 두 꼭지 읽어 보아도 제맛입니다.

 단락 하나 통째로 수첩에 옮겨 적은 다음, 수첩을 북 뜯어서 살가운 벗님한테 선물해 주어도 제맛입니다. 저마다 다 달리 좋은 맛을 즐길 수 있는 책이로구나 싶습니다. 저는 제 가슴으로 촉촉히 젖어든 대목을 밑줄을 그으며 읽고 나서, 천천히 한 줄 두 줄 옮겨 적어 봅니다. (4343.4.1.나무.ㅎㄲㅅㄱ)


[14, 15, 83쪽] 집이 좁고 이불이 없어서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도 아버지와 한 이불에서 잤다. 그래서 나는 평소 아버지와 별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었고, 아버지 또한 내 마음을 잘 알았을 것이다 … 나는 50세가 되어서야, 훗카이도에 온 후로 낳은 다섯 자식을 아버지가 모두 손수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산파를 부를 형편이 못 돼 산기를 보이는 어머니를 봉당에 깐 멍석 위에 눕히고, 아버지가 손수 어머니의 가랑이 사이로 자식을 받았다고 한다. 산탕을 끓이고 산후 정리도 손수 했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의 나이 스물하나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알았다. 행복이란 지위도 명예도 돈도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임을 … 내가 훗카이도 신문사에 취직이 결정되던 그날, 산골마을에 살고 있던 아버지는 밭일도 나가지 않고 대낮부터 소주를 마시고 취해서 우리 아들이 신문사에 들어갔다고, 훗카이도 신문사에 들어갔다고 온 마을을 자랑하며 다녔다 한다.

[14쪽] 나는 늘 어머니를 불쌍하게 생각했지만, 스무 살이 넘으면서 어머니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연상인 어머니는 늘 아버지를 바보 취급 했고, 책을 많이 읽은 탓에 교묘한 논리로 아버지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질투심도 많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를 의심하고 닦달했다.

[31∼33, 75∼76쪽] ‘고쿠코’라는 회사에서 만든 원고용지였다. 더 살 수도 있었지만 다 쓴 다음에 다시 사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라 참았다. 두 달 후에 다시 사러 가서 서른 묶음을 사는데, 가게를 지키는 중년 여성이 물었다. “이렇게 많이 사서 어디다 쓰려고 그러세요?” 아직 문학상과는 인연이 없었던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설을 쓰거든요.” 도무지 폼이 나지 않았다. “어머, 그러세요. 정말 대단하네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계산대의 직원에게 20% 할인해 주라고 특별히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정중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섰다. 내 몸속의 중심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구쳐 올랐다. 원고용지의 가격을 깎아 준다는 말은 아직 들어 본 적이 없었다 … 또 10년이 지난 어느 날, 그 가게에 갔더니 이사를 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 20여 년 동안 나와 면식을 가졌던 그 전무는 여전히 원고용지를 싸게 해 주었다. 아무리 사양해도 막무가내였다 … “난바 상점입니다.” 나는 “앗!” 하고 소리쳤다. 32년 간 내게 원고용지를 싸게 주었던 난바상점의 전무 난바 나츠코 씨의 목소리였다. 나는 건강하시냐고 안부를 물었다. 전화 건너편의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다, 그녀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시대의 흐름에 밀려 도산하고 말았다고 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밝았다. 나는 “그렇습니까. 그렇게 되었습니까.” 하고 중얼거렸을 뿐이다. 달리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 “60년 전에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가게를 이렇게 만들어 버리고는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쓴 글을 읽고 어깨의 짐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내가 그 문방구점을 하는 동안 유능한 작가를 하나 길렀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글 하나만으로도 내가 60년 간 그 가게를 경영한 보람이 있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36쪽]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일처럼 거실 난로 곁에서 고향 이야기를 했었다. 아이즈 시절의 친구, 학교, 집 주변의 산이며 강이며 전답에 대해 그리고 부모형제에 대해 지칠 줄 모르고 이야기했다.

[43, 45, 86∼87쪽] 나는 소설을 쓸 때 가능한 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말을 배제하고, 설명조의 문장을 안 쓰도록 노력한다. 인간의 마음이나 의식, 모든 현상을 표현과 묘사만으로 제시하자고 늘 다짐한다. 가능하다면 읽는 사람의 머리속에서 어떤 풍경이나 상황이 떠오르는 듯한 그런 문장을 만들어 내고 싶은데,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아버지는 반론을 펼쳤다. “고등학교나 다닌다는 놈이 무슨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해.” 나는 정달 (지구는) 둥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따지고 들었다. “너, 본 적 있어?”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걸 어떻게 봐.” 내 목소리는 거의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 현기증이 일었다. 아버지는 간발의 틈도 주지 않고 말했다. “보지도 못한 걸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거 아냐.” … 나는 영화 각본은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 다른 소설을 집필 중이라 거절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편지를 다섯 번이나 읽었다. 왜냐하면 기계로 친 글자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쓴 글씨였기 때문이다. 읽을수록 글자 한 자 한 자가 살아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다이치 씨의 열의가 나에게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아마도 직접 손으로 쓴 글씨의 힘일 것이다. 다이치 씨가 전화가 아니라 손수 쓴 편지로 나에게 의논했다는 데 나는 감동하고 말았다. 이것은 간단히 거절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본래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 설령 그것이 3천 엔밖에 안 되는 돈을 빌릴 때라 하더라도 직접 상대를 만나 부탁하는 것이 예의다. 상대가 규슈에 있건 미국에 있건, 거기까지 찾아가서 얼굴을 보이고 육성으로 부탁하는 것이 도리다 … 상대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 무작정 전화를 사용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기본적인 예의를 무시해 버릴 정도로 비상식적인 인간이 되어 버렸다.

[62∼63쪽] 어느 날, 갑자기 도쿄에서 편집자가 찾아오는 바람에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년필을 전당포로 가지고 갔다. 그 당시 월급이 5만 엔이었는데, 제대로 된 소설도 못 쓰는 주제에 만년필만은 10만 엔이나 하는 펠리칸, 쉐퍼, 몽블랑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연장으로 자신의 무능을 슬쩍 가려 보려 했던 것 같다. 세 개의 만년필 가운데 펠리칸과 몽블랑은 벌써 전당포로 들어가 있었기에 남은 쉐퍼를 맡겼다. 그 돈으로 원고를 의뢰하러 온 편집자와 술을 퍼마시고 밤중에는 집으로 갈 택시비도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월급날, 먼저 맡긴 만년필의 이자를 들고 전당포로 갔다. 평소에는 웃음 한 번 보이지 않던 전당포 아주머니가 이자를 갚는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부탁이 있는데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 하고 나는 모호하게 대답했다. 순간, 혹시 이자가 부족해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다. 그 아주머니가 창구로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사흘 전에 서점에 깔린 나의 첫 저서 《데바》였다. “여기 사인 좀 해 주세요.”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숨이 딱 막혔다.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책에 사인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필이면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리는 전당포에서 사인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정말 기뻤다.

[120∼121쪽] 어느 날 저녁, 일을 마치고 내가 사는 공단주택으로 돌아왔더니 아내가 웃으면서 방으로 뛰어들었다. 두 권을 팔았다는 것이다. 그녀가 들고 있는 종이봉투 안을 엿보았더니 《데바》가 댓 권이나 들어 있었다. 이게 뭐냐고 물어 보니, 아내는 매일 책을 팔러 다녔다고 한다. 이웃 동의 1층에서 4층까지 한 집 한 집 문을 두드려고 남편이 쓴 소설인데 어떠냐고 하면서 행상을 했던 것이다. 강매라고 생각한 어떤 주부는 화를 내기도 했고, 신흥종교의 포교자라고 여겨 문도 안 열어 주는 사람도 있었따. 책을 들고 요모조모 뜯어보는 사람에게 가격을 말하자, 그냥 주는 게 아니냐고 하면서 책을 돌려주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닷새 만에 여섯 권이나 팔았어.” 아내는 밝게 웃었다.

[169쪽] 지금 살고 있는 낡은 집을 부동산업자에게 내놓으면 토지와 집을 합하여 1천 5백만 엔이라도 살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고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웃을 것이다. 토지에도 집에도 정신이란 것이 있어서, 사람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물질의 가치와는 다른 가치를 형성한다.

[195쪽] 꽤 오래전에 모유보다 분유가 좋다는 이상한 말이 퍼져 분유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얼마 후 역시 모유가 좋다는 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장사치들이 분유를 팔아먹으려고 정보를 조작한 것이다. 그러나 모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기의 입과 어머니의 피부가 만나면서 오가는 마음이다. 그것이 인간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207∼208쪽] 그로부터 49년이 지나 〈서리〉라는 글을 썼는데, 그 1년 후에 그 글을 읽은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우리 기숙사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농가에서 자랐는데, 지금은 63세지만 당시에는 13세의 중학생이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나에게 그즈음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버지는 매년 공고 기숙사 학생들이 서리를 한다는 걸 알고, 교장과 사감에게 항의하러 가려 했어요. 그러자 어머니가 어린 학생들이 서리 좀 하면 어떠냐고, 좀더 심으면 될 텐데 뭘 그러냐고, 애들이 얼마나 배가 고프면 그러겠냐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멈칫하더니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 그리고 다음해부터 아버지는 기숙사 학생들을 위해 캐비지, 감자, 호박을 더 많이 심었어요.” … 17세 때의 나는 오로지 내 배 고픈 것만 생각했다. 농가야 어떻게 되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정말 바보였다. 그런데 그 농가는 우리가 서리를 하리란 예상을 하고 더 많이 씨를 뿌리고 가꾸었다. 나는 숨이 막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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