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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
고히야마 하쿠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얼미디어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132 ― 아름다운 책 하나 찾는 길
: 고히야마 하쿠, 《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
- 책이름 : 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
- 글 : 고히야마 하쿠
- 옮긴이 : 양억관
- 펴낸곳 : 한얼미디어 (2006.2.13.)
- 책값 : 1만 원
(1) 책을 어떻게 맞아들여 읽는가
나라밖으로 옮겨지는 우리 나라 책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나라안에서 널리 사랑받는 책이 아니라 나라안에서 무척 아름답다고 여기는 책 가운데에는 어떠한 책이 나라밖으로 옮겨지는지 궁금합니다.
나라안에 옮겨지는 책들을 살피면 으레 나라밖에서 무척 사랑받고 있는 책이기 일쑤입니다. 나라밖에서 널리 사랑받지 않을지라도 나라밖에서 깊이 아끼거나 보듬는 조그마한 책을 나라안으로 옮기는 일이 있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제아무리 훌륭한 나라안 책이라 할지라도 ‘사서 읽을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할 때에는 출판사에서 망설이거나 손사래치는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알맹이가 훌륭한 책일지라도 출판사에서는 팔림새를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책방마실을 하면서 책을 고를 때에 곰곰이 헤아립니다. 나한테 가장 사랑스럽다고 느낄 책을 고르는 책방마실이지만, 오늘 책방마실에서 고르는 책 하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부대끼는 동안 깨달은 ‘나한테 사랑스러울 느낌’입니다. 오늘까지 바라보는 눈길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인 만큼 앞으로는 달라지거나 새로워지거나 거듭날 수 있는 느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제까지는 못 알아본 책을 오늘 알아볼 수 있고, 오늘까지 알아보지 못하는 책을 이듬날 알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반가이 집어드는 책 바로 옆에 꽂혀 있을 더없이 반가울 책을 오늘까지 못 알아본 채 지나칠 수 있습니다.
1995년에는 알아보지 못했으나 2000년에 비로소 알아보는 책이 있습니다만, 고작 다섯 해 만에 판이 끊기는 수가 있습니다. 2002년에는 알아보지 못했으나 2005년에 바야흐로 알아보는 책이 있는데, 겨우 세 해 만에 사라지는 수가 있습니다. 2008년에는 알아볼 눈이 얕았으나 2010년에 드디어 알아보는 책이 있어도, 기껏 두 해밖에 안 지났어도 다시는 찾아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지난날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제 책눈이 얕아서 책을 따스히 껴안지 못하기 일쑤이고, 오늘날뿐 아니라 앞날까지 제 책눈이 어설픔을 뒤늦게 깨달으며 책 하나 더욱 넉넉히 보듬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책방마실을 할 때에 ‘내가 오늘 꼭 읽지 않더라도 앞으로 읽을 만한 책일 수 있다’고 여기는 책을 조금씩 장만하곤 했습니다. 고등학생 때에는 ‘오늘 다 읽어치울 책’만 빠듯하게 장만했으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두어 해 뒤에는 ‘이듬날 읽을 책을 몇 가지’ 장만합니다. 군대에서 스물여섯 달을 보내고 사회로 돌아오고 나서는 이동안 사라지는 책이 있으며 이동안 무슨 책이 나왔는가를 하나도 알 길이 없던 탓에 ‘언제 어느 책이 내 눈에 한 번도 스치지 못하고 사라질는지 모른다’고 헤아리며 이듬이듬날 읽을 책을 차곡차곡 장만합니다. 사랑스러운 님을 만나거나 사귈 때에는 나로서는 아직 내키지 않으나 둘이 서로 나눌 책을 곰곰이 살피는 눈길을 기르고, 아이를 낳아 키울 때에는 나로서는 마음이 들지 않아도 아이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는지 모르기 때문에 더 넓고 깊게 책밭을 둘러보면서 책을 장만합니다. 2010년 오늘은 그지없이 사랑받으며 잘 팔리는 책이라 하여도 고작 서너 해 뒤에는 갑작스레 미움을 받으며 스러지는 책이 있을 수 있어요. 한 번 자취를 감추는 책을 나중에 찾아보고자 한다면 대여섯 해는 아무것 아니고 일고여덟 해나 열 몇 해쯤은 넉넉히 잡아먹습니다.
있을 때 사고, 샀으면 잘 간수하며, 간수했으면 마음으로 고이 삭인 다음, 삭였으면 즐거이 몸으로 맞아들이면서 살아갈 노릇입니다.
누리신문 오마이뉴스에서 지난 열 해에 걸쳐 가장 훌륭하다고 느끼는 책이 무엇인가를 뽑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걷는 책길에 따라 만화책 하나와 글책 하나와 사진책 하나를 뽑았습니다. 지난 열 해(2000∼2009) 동안 제 손을 거친 책은 여러 만 권이 될 테고 우리 집 책꽂이에 남은 책은 이만 권이 조금 안 됩니다. 좋으면 다 좋은 책이지, 어느 책이 더 좋고 덜 좋고를 가를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이때에 제 마음을 덥혔고, 저 책은 저때에 제 생각을 일깨웠습니다. 한 줄로 사로잡는 책이 있고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아리따운 책이 있습니다. 읽는 기쁨이 있는 책이 있고, 나누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 있으며, 내 삶으로 곰삭이는 멋이 있는 책이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올 한 해(지난 열 해) 나한테 가장 아름다운 책’ 한두 가지를 뽑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부질없습니다. 왜냐하면 만 사람한테는 만 가지 좋은 책이 있는데, 이러한 만 가지를 몇 가지로 뭉뚱그린다는 일은, 고작 몇 가지 책을 드높일는지 몰라도 만 가지로 다 다르게 아름다운 책을 저버리거나 등지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등수나 차례를 밝힌다 하여도, 어렵사리 추천을 한 모든 책들이 어떤 책인지 이름을 하나하나 알려주어도 ‘다 다른 아름다움과 멋’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우리라 봅니다.
그래도 일은 일인 탓에 저 또한 제 깜냥껏 세 권을 가까스로 추렸고, 세 권 이름을 들면 《도자기》(만화책), 《이 여자 이숙의》(글책), 《역전 풍경》(사진책)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본 사람이 있을는지 궁금한데, 아마 세 가지를 모두 본 사람은 아주 드물지 않으랴 싶습니다. 온 나라에 걸쳐 다섯 사람이나마 있을까 말까 한 노릇이라고 봅니다. 만화책 《도자기》는 제법 사랑받고 있어도 《이 여자 이숙의》를 알아보는 사람은 몇 천 사람이 안 되고, 《역전 풍경》을 알아보는 사람은 몇 백 사람이 안 되는데, 그나마 《역전 풍경》은 몇 해 앞서 ‘더는 안 찍어 살 수 없는’ 책이 된 탓입니다. 무엇보다도 만화책을 즐겨읽으며 글책을 즐겨읽는다든지 글책을 즐겨읽으며 사진책을 즐겨읽는다든지, 사진책을 즐겨읽으며 글책이나 만화책을 즐겨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기는. 《역전 풍경》은 김기찬 님 사진책인데, 김기찬 님이 《골목 안 풍경》이나 《잃어버린 풍경》 같은 사진책을 냈어도 새책으로 반가이 사들인 사람은 얼마 안 됩니다. 모두들 헌책방에서만 (좀더 값싸게) 찾아보려고 할 뿐입니다.
사진 하나를 놓고 생각할 때에, 오늘날 사진쟁이 이름을 내거는 사람이 제법 많고 사진쟁이 이름을 내걸지 않더라도 사진을 즐겨찍는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잘나가는 젊은 사진쟁이 누구누구 이름을 들먹이는 사진밭이며, 아무개저무개가 우리 사진문화를 새로 일군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사진비평이든 사진평론이든 김기찬 님이 살아 있을 적이나 돌아가신 뒤로나 ‘김기찬 골목사진 이야기’를 깊고 넓게 읽어내며 풀어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제는 이분 사진책이 하나둘 ‘절판 길’을 걷고 있으니, 앞으로는 이분 사진책 이야기는 더 나오기 힘들 테지요. 골목길이라는 사진감이든 서울역이라는 사진감이든, 사람들은 으레 그 사진은 그렇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바라보고 있기에 김기찬 님 사진을 김기찬 님 눈길을 따라가며 느끼기는 어려울 테지요.
책을 책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며 보듬지 못하는 흐름은 《역전 풍경》이라는 책 하나에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른 수많은 책에서도 어슷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요츠바랑!》이라는 만화책을 우리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빙점》이라는 문학책을 우리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윤미네 집》이라는 사진책을 우리들은 어떻게 보듬고 있을까요. 틀에 박히거나 판에 박힌 눈썰미와 생각밭은 아니온지요. 차갑거나 딱딱한 마음결이나 손길은 아니온지요.
누구나 삶을 꾸리는 모양새대로 책을 마주합니다. 누구나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책을 붙잡습니다. 누구나 살림살이 일구는 결에 따라 책을 찾아 읽습니다. 아름답고 따사로우며 포근한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한테는 아름답고 따사로우며 포근한 책입니다. 즐겁게 고운 삶을 가꾸는 사람들한테는 즐겁고 고운 책입니다. 땀흘려 일하고 신나게 어깨동무하는 삶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한테는 땀과 신이 담긴 책입니다.
(2) 《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이라는 책
《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을 쓴 일본사람 고히야마 하쿠란 분이 있습니다. 고히야마 하쿠 님은 소설을 쓰는 분이라 하는데, 나라안에는 이분 소설책이 한 가지도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책 하나, 수필 《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 하나 옮겨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롭다. 그 대신에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남을 생각해 주는 마음. 전후 일본인이 잃어버렸던 가장 큰 미덕은 남에게 밥 먹었느냐고 걱정해 주는 말이다(212쪽).” 같은 이야기를 사이사이 곁들이며 ‘일본사람이 일본땅에서 이웃 일본사람하고 내 삶터 일본땅에서 가장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길’이란 무엇인가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수필책 하나만 옮겨져 있습니다.
나라안에 옮겨진 일본책을 읽다 보면 ‘일본사람은 오늘날 이렇게 뒤틀린 채 살아간다’고 이야기를 하거나 ‘일본사람은 지난날 돈에 미쳐서 오늘날까지 바보스레 살아간다’고 하는 대목을 곧잘 만납니다. 이 책에서도 “도쿄에서 지하철을 타면 사람을 밀치면서 자리를 잡으려고 달려가는 사람이 있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까지 남을 밀치고 자리를 잡으려 한다(215쪽).”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중학생이나 초등학생도 마찬가지요, 초중고등학생을 키웠거나 키우는 어버이라 하는 아줌마와 아저씨와 할머니와 할아버지 또한 매한가지입니다. 어리거나 젊거나 늙거나 다르지 않습니다. 저마다 제 밥그릇 챙기는 데에 바쁘고, 저마다 제 배속 채우는 데에 홀려 있습니다.
고히야마 하쿠 님은 당신 둘레에서 마주하는 사람들한테 ‘우리 모두한테 꼭 한 번 주어진 고마운 선물인 삶을 왜 아름답고 즐겁게 꾸리면서 신나고 보람있게 나누다가 아쉬움과 미움 하나 없이 살가이 마무리하지 못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짤막한 글을 씁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억지스런 가르침이나 꾸짖음이 아닌, 당신 어버이가 당신한테 베푼 속깊은 사랑이 무엇이었는가를 톺아보는 글로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따분한 수다가 아닌, 당신 둘레 수수한 사람들이 당신한테 선사한 넓디넓은 믿음이 어떠했는가를 살피는 글로 들려줍니다.
작으면서 고운 책이요, 수수하면서 아름다운 책이며, 조용하면서 산뜻한 책입니다. 이러한 책일 때에는 출판사에서 굳이 양장으로 꾸미지 않으면 한결 낫고, 더 값싸고 더 조촐하며 더 조그마한 판으로 묶어서 사람들 앞에 내보이면 훨씬 낫습니다. 새책방에 꽂히든 헌책방에 꽂히든 도서관에 꽂히든 사람들이 쉬 알아보지 못하는 크기와 짜임새가 될 수 있을지라도, 더욱 작고 수수하고 값싼 책으로 여미었다면 좀더 낫습니다. 글쓴이부터 스스로 돋보이고자 쓴 글이 아니었으니까요. 읽는이한테 반드시 이 글들을 읽히고 깨우치려고 소매를 잡아끌지 않으니까요.
때가 되면 알아볼 책입니다. 마음이 닿으면 스스럼없이 집을 책입니다. 생각이 있으면 찬찬히 헤아리며 찾아볼 책입니다. 이쁘장해야 할 곳은 책껍데기가 아닌 종이에 박힌 글월입니다. 눈에 띄어야 할 곳은 책꾸밈새가 아닌 종이에 찍힌 글월입니다. 가난하기에 아름답고 가난하기에 사랑하며 가난하기에 두레를 합니다. 가난하기에 착하고 가난하기에 믿음직하며 가난하기에 손을 잡습니다.
돈있는 사람이 되며 넉없는 사람으로 바뀌고, 돈있는 나라가 되며 얼빠진 나라로 굴러떨어지며, 돈있는 마을이 되며 멋없는 마을로 달라지는 우리 터전이라고 느낍니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이라는 책 하나는 삶을 알차고 아름답고 애틋하게 어루만지는 손길은 바로 나부터 비롯하면서 씨앗이 퍼져 나갈 수 있음을 밝힙니다. 일본사람 소노 아야코 님이 《계로록》 또는 《아름답게 늙는 지혜》 같은 책을 써냈듯이,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젊음과 아름다운 늙음을 마음껏 뽐내며 책 하나 이루어 냅니다. 남 앞에서 으스대는 젊음과 늙음이 아니라, 스스로 기쁨에 겨워 기쁨을 온누리에 솔솔 뿌리는 젊음과 늙음입니다. 또다른 일본사람 사하시 게이죠 님은 《할아버지의 부엌》이라는 책을 써내며 늙음을 마주하거나 맞이하는 젊음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줍니다. 따지고 보면 리영희 님이 쓴 《스핑크스의 코》 같은 책 또한, 늙음으로 달려가는 마당을 돌아보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젊음을 마음껏 드러내는 나이부터 우리 삶을 어떤 넋으로 가다듬으며 살아야 아름다울까를 일러 주고 있다고 할 만합니다.
고운 삶에서 고운 말이 나오고, 고운 말을 들려주는 가운데 고운 책이 태어납니다. 따순 삶에서 따순 말이 나오고, 따순 말을 주고받는 가운데 따순 책이 태어납니다. 좋은 삶에서 좋은 말이 나오고, 좋은 말을 펼쳐 보이는 가운데 좋은 책이 태어납니다.
(3) 《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을 거듭 읽는 맛
그리 두껍지 않아 금세 한 번 읽어내릴 수 있는 책 《인생이라는 이름의 여행》은 퍽 더디더디 읽어야 제맛입니다. 눈에 뜨이는 글 꼭지부터 차곡차곡 읽으며 마무리를 지어도 제맛이요, 마음에 와닿는 글을 여러 차례 되읽어도 제맛입니다.
눈물이나 웃음 묻어나는 글을 식구들 앞에서 소리내어 읽어도 제맛입니다. 혼자 있는 방에서 홀로 소리내어 읽어도 제맛입니다. 찻집에서 말없이 읽어도 제맛이요, 전철이나 버스나 기차나 배나 비행기에서 한 꼭지 두 꼭지 읽어 보아도 제맛입니다.
단락 하나 통째로 수첩에 옮겨 적은 다음, 수첩을 북 뜯어서 살가운 벗님한테 선물해 주어도 제맛입니다. 저마다 다 달리 좋은 맛을 즐길 수 있는 책이로구나 싶습니다. 저는 제 가슴으로 촉촉히 젖어든 대목을 밑줄을 그으며 읽고 나서, 천천히 한 줄 두 줄 옮겨 적어 봅니다. (4343.4.1.나무.ㅎㄲㅅㄱ)
[14, 15, 83쪽] 집이 좁고 이불이 없어서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도 아버지와 한 이불에서 잤다. 그래서 나는 평소 아버지와 별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었고, 아버지 또한 내 마음을 잘 알았을 것이다 … 나는 50세가 되어서야, 훗카이도에 온 후로 낳은 다섯 자식을 아버지가 모두 손수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산파를 부를 형편이 못 돼 산기를 보이는 어머니를 봉당에 깐 멍석 위에 눕히고, 아버지가 손수 어머니의 가랑이 사이로 자식을 받았다고 한다. 산탕을 끓이고 산후 정리도 손수 했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의 나이 스물하나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알았다. 행복이란 지위도 명예도 돈도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임을 … 내가 훗카이도 신문사에 취직이 결정되던 그날, 산골마을에 살고 있던 아버지는 밭일도 나가지 않고 대낮부터 소주를 마시고 취해서 우리 아들이 신문사에 들어갔다고, 훗카이도 신문사에 들어갔다고 온 마을을 자랑하며 다녔다 한다.
[14쪽] 나는 늘 어머니를 불쌍하게 생각했지만, 스무 살이 넘으면서 어머니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연상인 어머니는 늘 아버지를 바보 취급 했고, 책을 많이 읽은 탓에 교묘한 논리로 아버지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질투심도 많아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를 의심하고 닦달했다.
[31∼33, 75∼76쪽] ‘고쿠코’라는 회사에서 만든 원고용지였다. 더 살 수도 있었지만 다 쓴 다음에 다시 사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라 참았다. 두 달 후에 다시 사러 가서 서른 묶음을 사는데, 가게를 지키는 중년 여성이 물었다. “이렇게 많이 사서 어디다 쓰려고 그러세요?” 아직 문학상과는 인연이 없었던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설을 쓰거든요.” 도무지 폼이 나지 않았다. “어머, 그러세요. 정말 대단하네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계산대의 직원에게 20% 할인해 주라고 특별히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정중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섰다. 내 몸속의 중심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구쳐 올랐다. 원고용지의 가격을 깎아 준다는 말은 아직 들어 본 적이 없었다 … 또 10년이 지난 어느 날, 그 가게에 갔더니 이사를 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 20여 년 동안 나와 면식을 가졌던 그 전무는 여전히 원고용지를 싸게 해 주었다. 아무리 사양해도 막무가내였다 … “난바 상점입니다.” 나는 “앗!” 하고 소리쳤다. 32년 간 내게 원고용지를 싸게 주었던 난바상점의 전무 난바 나츠코 씨의 목소리였다. 나는 건강하시냐고 안부를 물었다. 전화 건너편의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다, 그녀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시대의 흐름에 밀려 도산하고 말았다고 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밝았다. 나는 “그렇습니까. 그렇게 되었습니까.” 하고 중얼거렸을 뿐이다. 달리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 “60년 전에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가게를 이렇게 만들어 버리고는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쓴 글을 읽고 어깨의 짐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내가 그 문방구점을 하는 동안 유능한 작가를 하나 길렀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글 하나만으로도 내가 60년 간 그 가게를 경영한 보람이 있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36쪽] 어린 시절, 아버지와 어머니는 매일처럼 거실 난로 곁에서 고향 이야기를 했었다. 아이즈 시절의 친구, 학교, 집 주변의 산이며 강이며 전답에 대해 그리고 부모형제에 대해 지칠 줄 모르고 이야기했다.
[43, 45, 86∼87쪽] 나는 소설을 쓸 때 가능한 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말을 배제하고, 설명조의 문장을 안 쓰도록 노력한다. 인간의 마음이나 의식, 모든 현상을 표현과 묘사만으로 제시하자고 늘 다짐한다. 가능하다면 읽는 사람의 머리속에서 어떤 풍경이나 상황이 떠오르는 듯한 그런 문장을 만들어 내고 싶은데,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아버지는 반론을 펼쳤다. “고등학교나 다닌다는 놈이 무슨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해.” 나는 정달 (지구는) 둥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아버지는 따지고 들었다. “너, 본 적 있어?”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걸 어떻게 봐.” 내 목소리는 거의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 현기증이 일었다. 아버지는 간발의 틈도 주지 않고 말했다. “보지도 못한 걸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거 아냐.” … 나는 영화 각본은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 다른 소설을 집필 중이라 거절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편지를 다섯 번이나 읽었다. 왜냐하면 기계로 친 글자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쓴 글씨였기 때문이다. 읽을수록 글자 한 자 한 자가 살아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다이치 씨의 열의가 나에게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아마도 직접 손으로 쓴 글씨의 힘일 것이다. 다이치 씨가 전화가 아니라 손수 쓴 편지로 나에게 의논했다는 데 나는 감동하고 말았다. 이것은 간단히 거절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본래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 설령 그것이 3천 엔밖에 안 되는 돈을 빌릴 때라 하더라도 직접 상대를 만나 부탁하는 것이 예의다. 상대가 규슈에 있건 미국에 있건, 거기까지 찾아가서 얼굴을 보이고 육성으로 부탁하는 것이 도리다 … 상대에게 뭔가를 부탁할 때 무작정 전화를 사용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그런 기본적인 예의를 무시해 버릴 정도로 비상식적인 인간이 되어 버렸다.
[62∼63쪽] 어느 날, 갑자기 도쿄에서 편집자가 찾아오는 바람에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년필을 전당포로 가지고 갔다. 그 당시 월급이 5만 엔이었는데, 제대로 된 소설도 못 쓰는 주제에 만년필만은 10만 엔이나 하는 펠리칸, 쉐퍼, 몽블랑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연장으로 자신의 무능을 슬쩍 가려 보려 했던 것 같다. 세 개의 만년필 가운데 펠리칸과 몽블랑은 벌써 전당포로 들어가 있었기에 남은 쉐퍼를 맡겼다. 그 돈으로 원고를 의뢰하러 온 편집자와 술을 퍼마시고 밤중에는 집으로 갈 택시비도 없는 형편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월급날, 먼저 맡긴 만년필의 이자를 들고 전당포로 갔다. 평소에는 웃음 한 번 보이지 않던 전당포 아주머니가 이자를 갚는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부탁이 있는데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 하고 나는 모호하게 대답했다. 순간, 혹시 이자가 부족해서 그런가 하고 생각했다. 그 아주머니가 창구로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사흘 전에 서점에 깔린 나의 첫 저서 《데바》였다. “여기 사인 좀 해 주세요.” 아주머니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숨이 딱 막혔다. 아직 이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책에 사인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필이면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리는 전당포에서 사인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정말 기뻤다.
[120∼121쪽] 어느 날 저녁, 일을 마치고 내가 사는 공단주택으로 돌아왔더니 아내가 웃으면서 방으로 뛰어들었다. 두 권을 팔았다는 것이다. 그녀가 들고 있는 종이봉투 안을 엿보았더니 《데바》가 댓 권이나 들어 있었다. 이게 뭐냐고 물어 보니, 아내는 매일 책을 팔러 다녔다고 한다. 이웃 동의 1층에서 4층까지 한 집 한 집 문을 두드려고 남편이 쓴 소설인데 어떠냐고 하면서 행상을 했던 것이다. 강매라고 생각한 어떤 주부는 화를 내기도 했고, 신흥종교의 포교자라고 여겨 문도 안 열어 주는 사람도 있었따. 책을 들고 요모조모 뜯어보는 사람에게 가격을 말하자, 그냥 주는 게 아니냐고 하면서 책을 돌려주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닷새 만에 여섯 권이나 팔았어.” 아내는 밝게 웃었다.
[169쪽] 지금 살고 있는 낡은 집을 부동산업자에게 내놓으면 토지와 집을 합하여 1천 5백만 엔이라도 살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고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웃을 것이다. 토지에도 집에도 정신이란 것이 있어서, 사람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물질의 가치와는 다른 가치를 형성한다.
[195쪽] 꽤 오래전에 모유보다 분유가 좋다는 이상한 말이 퍼져 분유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얼마 후 역시 모유가 좋다는 설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장사치들이 분유를 팔아먹으려고 정보를 조작한 것이다. 그러나 모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기의 입과 어머니의 피부가 만나면서 오가는 마음이다. 그것이 인간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207∼208쪽] 그로부터 49년이 지나 〈서리〉라는 글을 썼는데, 그 1년 후에 그 글을 읽은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우리 기숙사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농가에서 자랐는데, 지금은 63세지만 당시에는 13세의 중학생이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나에게 그즈음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버지는 매년 공고 기숙사 학생들이 서리를 한다는 걸 알고, 교장과 사감에게 항의하러 가려 했어요. 그러자 어머니가 어린 학생들이 서리 좀 하면 어떠냐고, 좀더 심으면 될 텐데 뭘 그러냐고, 애들이 얼마나 배가 고프면 그러겠냐고 하셨어요.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멈칫하더니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 그리고 다음해부터 아버지는 기숙사 학생들을 위해 캐비지, 감자, 호박을 더 많이 심었어요.” … 17세 때의 나는 오로지 내 배 고픈 것만 생각했다. 농가야 어떻게 되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정말 바보였다. 그런데 그 농가는 우리가 서리를 하리란 예상을 하고 더 많이 씨를 뿌리고 가꾸었다. 나는 숨이 막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