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말을 모르는구나



  “귀한 시간 뺏어서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는 이웃님이 있다. 이때에 언제나 거북하다. 그이는 참말로 내 하루를 빼앗았을까? 어쩌면 빼앗았을 수 있다. 그런데 빼앗긴 사람은 나요, 내 하루를 빼앗기도록 내버린 이도 나다. 무엇보다 이웃님이 나한테 “시간 뺏어서 죄송”하고 말하면 몸둘 바를 두기 어렵다. 이웃님이 나한테 찾아올 적에 그분이 이렇게 말한다면, 내가 이웃님이 지내거나 일하는 자리에 찾아갈 적에도 똑같이 말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이웃이라고 하면서 정작 서로 “시간을 뺏는 사이”인 꼴이다. 곰곰이 돌아본다. 반가운 이웃을 만날 적에는 하루가 즐겁다. 나를 반가운 이웃으로 여기는 분이라면 내가 찾아갔을 적에 즐거운 하루가 되겠지.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 ‘쓸 말을 모르는’ 셈이지 싶다. 어떤 말을 어떻게 써야 할까를 배운 적이 없어서 알맞게 말하지 못한다. 어떤 말을 어떻게 써야 할까를 스스로 생각하는 길을 짚는 길벗이나 스승이 없으니 알맞게 말하겠다는 생각을 못하고 만다. 이리하여 나는 요즈음 “이 아름다운 한때를 같이 누리겠습니다.”라든지 “이 즐거운 하루를 함께 있네요.” 하고 살며시 말씀을 여쭌다. 2018.3.15.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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