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무 백가지 - 꼭 알아야 할 우리 나무의 모든 것
이유미 지음 / 현암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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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마을 집집마다 후박숲을 이룬다면
― 우리 나무 백가지
 이유미
 현암사, 1995.2.28.첫/2015.10.30.깁고 고침


자귀나무를 소쌀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농가에서 가장 소중한 소가 유난스레 좋아하는 나무이고 보면 농부들의 주름진 눈가에 자귀나무가 곱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싶다. (37쪽)


  자귀나무를 볼 적마다 으레 멈춥니다. 봄이 저물며 여름을 맞이할 적마다 자귀꽃이 눈길을 확 끌어요. 자전거를 달리다가도 아이들이 불러요. “아버지, 저기 저 나무!”

  저는 서울말이라 할 ‘자귀나무’라 하지만, ‘소쌀나무·소쌀밥나무·소찰밥나무’ 같은 이름도 있다고 해요. 어느 이름을 어디에서 먼저 썼는지 모르는데, 어쩌면 고장마다 다 다르게 이름을 붙였을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나무뿐 아니라 풀을 놓고도 우리가 어떻게 가까이하느냐에 따라 이름이 다르구나 싶어요. 우리 살림새가 풀이름이나 나무이름에 고스란히 깃든다고 할까요. 그래서 요즈막에는 소쌀나무 같은 이름은 퍽 낯설 수 있고, 이팝나무 같은 이름도 이름으로만 남기 쉽지 싶습니다.


햇살이 유난스런 겨울날, 반짝반짝 윤이 나는 잎새와 빨간 열매는 바라만 보아도 즐거운 마음이 들 만큼 아름답다. 긴긴 겨울이 다 가고 이른 봄에 피워내는 작고 앙증스런 꽃송이들, 그 꽃들이 내어놓은 향기로움. 호랑가시나무는 가까이 두고 아끼고 사랑해야 할 우리의 나무이다. (51쪽)


  《우리 나무 백가지》(현암사)는 1995년에 처음 나온 뒤로 꾸준히 고침판이 나옵니다. 글쓴이 스스로 나무를 더 배우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을 테고, 스무 해 앞서 처음 여밀 적에는 빠뜨린 나무 이야기를 더 담을 수 있을 테고요.

  한국은 그리 큰 땅덩이는 아니라지만, 남녘하고 북녘 사이에 여러 가지 나무가 고루 자랍니다. 철 따라 남녘 끝에서 북녘 끝까지 달려 본다면, 거꾸로 북녘 끝에서 남녘 끝으로 달려 본다면, 이 앙증맞은 땅덩이에서 얼마나 갖가지 나무가 사이좋게 자라는가를 새롭게 느껴 볼 만하지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는 인천서 살다가 충북 충주에서 살다가 전남 고흥에서 살면서 고장마다 다른 나무 흐름을 여러모로 지켜볼 수 있어요. 나무 한 그루는 그냥 나무일 수 없을 뿐 아니라, 바람에 땅높이에 볕에 비에 흙에 따라 생김새나 크기나 굵기나 잎빛이 모두 다릅니다.


이팝나무 꽃을 한번 본 이들은 그 꽃이 만들어내는 황홀경에 빠졌다가는 왜 이렇게 아름다운 나무를 아직까지 몰랐는지 또 왜 관상수로 널리 심지 않는지 반문한다. (101쪽)

우리 선조들은 이 단단한 회양목으로 얼레빗을 많이 만들어 썼다. 회양목으로 만든 얼레빗은 부러지지 않고 부드러워 머리가 잘 빗겨지며 결이 일어나서 머리카락을 상하는 일도 없어 최고로 쳤다. (146쪽)


  겨울이 저물고 봄이 될 무렵, 아이들은 매화나무를 타겠다고 섣불리 나서지 않습니다. 이제 아이들 눈에도 매화나무 꽃망울이 잘 보여요. 나무타기를 하다가 겨우내 꿈꾸던 꽃망울이 다칠까 걱정해 줍니다.

  큰아이도 작은아이도 해마다 감나무를 더 높이 탑니다. 아마 올가을에는 아이들이 나무를 씩씩하게 타서 감을 따겠구나 싶습니다. 봄이 깊으면 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매화나무를 타면서 열매를 딸 테고요. 지난겨울에는 사다리를 받쳐서 유자나무 곁에서 유자알을 함께 땄어요.

  한 해 동안 잎하고 가지를 보는 나무라면, 꽃철에는 꽃을, 열매철에는 열매를 보는 나무예요. 여름에는 시원스레 그늘을 내어주고, 겨울에는 찬바람을 가려 주는 나무이고요. 아이들한테는 줄기를 잡거나 밟고서 타는 놀이벗이 되는 나무요, 어른한테는 보금자리를 넉넉히 품는 사랑스러운 나무입니다.


어린나무들이 훌륭하게 자라 더욱 아름다운 후박나무 숲이 이어지도록 하는 일은 이제 우리의 손에 달렸다. 우리의 푸른 미래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파괴되어 가는 우리 자연의 현실 속에 어린 후박나무들이 새로운 희망을 준다. (399쪽)


  《우리 나무 백가지》는 우리가 잘 살피고 알기를 바라는 나무를 백 가지 다룹니다. 우리 나무가 어디 백 가지뿐이겠습니까. 이백 가지도 삼백 가지도 될 테지요. 이웃나라에서 들어온 나무도 우리 나무처럼 고운 숨결이 될 테고요.

  글쓴이가 후박나무를 이야기하면서 ‘우리 푸른 앞날’이 어린 후박나무한테 있다고 적은 대목이 새삼스럽습니다. 우리 집 마당나무인 후박나무는 우리 집에 찾아오는 열 나문 마을고양이한테 낮잠 자는 터가 되곤 합니다. 큰 녀석도 새끼 고양이도 후박나무 그늘에서 여름내 서로 차지하겠다며 자리를 다투지요.

  태평양을 낀 남녘 고장 집집마다 후박나무가 우뚝 선다면 무척 어여쁘리라 봅니다. 바닷바람을 머금으며 씩씩하게 자라는 후박나무집이나 후박나무길을 가꾸어 본다면, 이 땅에 뿌리내린 우람한 나무가 마을숲이며 고을숲을 이룬다면, 참말 푸른 앞날을 열 만하지 싶습니다. 2018.2.26.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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