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1.13.


《텍스트의 포도밭》

이반 일리치 글/정영목 옮김, 현암사, 2016.7.25.



  작은아이를 데리고 순천으로 나들이를 다녀오는 길에 《텍스트의 포도밭》을 더 읽는다. 지난 1월 6일에 대구 마을책방 〈읽다 익다〉에서 이 책을 장만해서 조금씩 읽는데 너무 엉성한 기계질 같은 번역에 혀를 내두른다. 설마 이반 일리치라는 분이 영어로 기계질 같은 글쓰기를 했을까? 우리가 이반 일리치를 스스로 영어로 읽으려 하지 않는다면 내내 이런 번역을 마주해야 할까? 번역 일을 하는 분은 한국 말씨 아닌 ‘번역 말씨’로 배웠을 테고, 이 틀을 못 벗어나겠지. 지난주에 서울에 들르며 어느 출판사 대표님하고 나눈 말을 떠올린다. 그분은 교수나 기자한테서 글을 받을 적마다 “어쩜 이렇게 글을 못 쓰셔요?” 하고 묻는단다. 하나같이 ‘기계질 번역’ 같은 ‘기계질 글쓰기’를 한단다. 어느 날 교수나 기자한테 “왜 이렇게 어렵게 꼬아서 쓰셔요?” 하고 물으셨다는데 “그렇게 써야 학문적으로 보인다”고 말한단다. 교수나 기자는 “다리가 넷인”이라 안 하고 “네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이나 “네 개의 다리를 소유하는”이라고 써야 글멋이 난다고 하니 …… “글이라는 포도밭”에서 글을 따지 못하고 ‘텍스트’만 딴다면, 글밭에서 글씨를 심지 못하고 글넋을 찾지 못한다면, 글읽기는 삶읽기 아닌 겉멋읽기일 뿐.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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