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로쓰기
누가 나한테 “‘우리말 바로쓰기’를 하면서 글을 써야 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곧바로 대꾸한다. “왜 그렇게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하고. 이렇게 되물으면 으레 “이녁은 늘 ‘우리말 바로쓰기’로 글을 쓰지 않나요?” 하고 다시 물을 텐데, 나는 또다시 “참말로 제가 쓰는 글이 ‘우리말 바로쓰기’라고 여기시나요?” 하고 되물으면 더 묻지 못하곤 한다. 나는 말장난을 하지 않는다. 내가 하는 글쓰기를 고스란히 드러낼 뿐이다. 내 글쓰기는 ‘우리말 바로쓰기’가 아니다. 나는 늘 새롭게 배워서 내 삶으로 익힌 말을 골라서 쓸 수 있을 뿐이다. 열아홉 살에서 스무 살 사이에는 ‘우리말 바로쓰기’를 헤아려 본 적이 있으나 매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벅찼다. 그때 곰곰이 생각했다. 아니, 한국사람으로서 한국말을 바르게 배워서 쓰겠다고 하는 일이 왜 이렇게 힘든가 하고. 이렇게 생각하며 길을 찾다 보니 실마리하고 수수께끼를 한 꺼풀씩 벗길 수 있었다. 첫째, 나는 국민학교에 든 여덟 살부터 학교에서 말다운 말을 배우거나 들은 적이 없다. 둘째, 나는 국민학교에 든 때부터 교과서로는 글다운 글을 배우거나 읽은 적이 없다. 셋째, 나는 국민학교에 들어가 한글을 익혀서 스스로 책을 읽은 뒤로, 책에서 말다운 말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넷째, 나는 어릴 적에 방송을 보면서 말다운 말을 거의 들을 수 없었다. 다섯째, 나는 군대하고 사회를 맴도는 동안 이웃들이 말다운 말로 슬기롭게 생각을 밝혀 살림을 짓는 길을 좀처럼 마주할 수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나 말다운 말이나 글다운 글을 마주하기 어려우니, 내가 쓰는 글이 말답거나 글다울 수 없는 노릇이었다. 모든 말하고 글을 처음부터 배워야 했고, ㄱ부터 ㅎ까지 새롭게 익혀야 했다. 이제 마무리말을 해 본다. “저는 제가 나아가려는 삶·살림·사랑에 걸맞게 배우는 대로 말을 하거나 글을 씁니다. 저는 삶하고 살림하고 사랑을 즐거우면서 곱고 재미나게 짓고 싶은 마음으로 말하고 글을 늘 새롭게 익혀서 제 노래가 되도록 펴려는 몸짓으로 글쓰기를 합니다.” 2017.12.29.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