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실길에 읽는 책 2017.10.31.


예전부터 퍽 궁금하게 여긴 만화책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을 서울마실길에 장만해서 전철에서 읽는다. 책이름으로 줄거리가 어떠할는지 확 떠오르기 때문에 이 만화책을 그동안 안 장만했는데, 이러면서도 장만해 볼까 하고 생각했다. 간기를 보니 2012년에 1쇄가 나왔다. 여섯 해씩이나 조용히 지켜보며 기다린 셈이네. 나도 참 대단하구나 싶다. 그런데 어느 책이든 갓 태어날 적에만 사서 읽어야 하지는 않는다. 뒤늦게 장만할 수 있고 느즈막하게 읽을 수 있다. 붐빌 듯 말 듯 숱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타고 내리는 전철에서 노래를 들으며 만화책을 읽는데, 이 만화에 나오는 마흔한 살짜리 만화가 지망생 아재는 애틋하면서 살갑다. 이 만화책을 사서 읽을 분은 어느 나이일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마흔한 살이라는 나이를 벌써 지났다. 그래서 마흔한 살인 아재를 놓고 마흔한 살짜리라고 말할 수 있다. 내 나이도 재미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내 모습을 돌아본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이지만 11월을 하루 앞둔 오늘도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닌다. 80리터들이 커다란 가방에 책하고 무릎셈틀을 가득 채웠고, 고흥으로 돌아가면 곁님하고 아이들한테 줄 선물을 챙겼다. 노래하는 박완규 님만큼은 아니지만 긴머리를 치렁치렁하면서 다니고, 오직 책방 앞에서만 가방에서 사진기를 꺼내어 찰칵찰칵 찍는다. 전철길에 만화책을 읽다가 눈물바람이 되기도 하고, 내릴 곳을 으레 놓치기 일쑤이며, 길에서 사람들은 나를 외국사람으로 여기는데, 이런 내가 하는 일이란 한국말사전 새로짓기. 내가 걷는 길이나 내가 하는 일이 나하고 얼마나 어울릴까? 나는 잘 모른다. 그저 나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면서 가는 길이다. 만화책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에 나오는 아재는 열다섯 해 동안 다니던 일터를 그만두고서 빈둥거리다가 이녁이 온힘을 다해서 할 만한 일이란 ‘만화 그리기’라고 깨달았단다. 남 눈치를 볼 일이란 없다. 스스로 온힘을 다하면서 살면 된다. 스스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길을 걸으면 된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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