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10.3.
896쪽에 이르는 《현대 유럽의 역사》라는 책을 읽기로 한다. 책을 읽으면서 몇 쪽짜리인가를 굳이 살필 까닭은 없지만, 요즈막 유럽이라는 고장이 어떤 발자국을 남겼는가를 다루는 책이니 896쪽이라는 두께가 될 만하겠지 싶으면서도 꼭 이렇게 써야 그들 발자국을 적을 수 있나 싶기도 하고, 달리 보면 고작 896쪽으로 숱한 유럽 나라 이야기를 뭉뚱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숲집 한쪽에 얌전히 둔 채 한 달 즈음 지나고서야 비로소 이 책을 펼치는데, 생각보다 부드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고 느낀다. 책이 잘 읽힐 적에는 글결이 좋아서일 수도 있으나, 이야기가 살뜰하다면 글결이 안 좋아도 얼마든지 잘 읽힌다. 나는 솜씨 좋은 글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다. 빼어난 글결이나 보기 좋은 글결로 책을 읽을 일도 없다고 느낀다. 삶을 이루는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배우거나 들여다보려고 책을 읽는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보면 ‘현대 한국 역사’를 다룬 책이 꽤 많다. 어린이 역사책도 꾸준하게 새로 나온다. 다들 역사를 좋아할까?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뜻일까? 이제껏 이 나라는 역사를 제대로 안 가르쳤으니, 교과서를 벗어난 자리에서 역사를 배우자는 흐름일까? 가을비 내리는 소리하고 바람을 곁에 두면서 《현대 유럽의 역사》를 읽는다. 핀란드, 아일랜드, 카탈루냐, 터키 언저리를 살살 감도는 유럽이라는 얼거리를 헤아리면서 발자국 이야기를 읽는다.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