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중이 팥중이 네버랜드 우리 옛이야기 2
이주혜 지음, 홍선주 그림 / 시공주니어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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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34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

― 콩중이 팥중이

 홍선주 그림

 이주혜 글

 시공주니어 펴냄, 2006.6.1. 9000원



  한겨레 옛이야기에 그림을 입혀 되살린 《콩중이 팥중이》(시공주니어,2006)를 읽습니다. 이 옛이야기에는 몇 사람이 안 나옵니다. 먼저 새엄마가 나오고, 팥중이가 나오며, 콩중이가 나와요. 나중에 원님이 나오지요. 콩중이네 아버지는 좀처럼 얼굴을 내밀지 않습니다. 콩중이한테 새어머니를 들일 만한 사람이기는 하되 무슨 일을 하는지 알 길이 없어요.


  콩중이네 아버지는 집안일이나 집살림을 못 할까요? 어쩌면 집안일도 집살림도 영 모를는지 모릅니다. 스스로 집안일이나 집살림을 건사할 줄 안다면 굳이 새어머니를 들이지 않고도 이녁 스스로 콩중이를 알뜰살뜰 돌보면서 살아갈 테니까요.



콩중이네 엄마가 일찍 죽어 새엄마가 들어왔는데 함께 데릭고 온 아이가 팥중이였어. 새엄마는 팥중이는 뭘 해도 곱상, 콩중이는 뭘 해도 밉상으로 여겨서 맛난 것, 좋은 옷은 팥중이만 주고 콩중이는 쥐어박기 일쑤였지. (2쪽)



  콩중이네하고 한식구가 된 팥중이입니다. 한솥밥을 먹는 사이입니다. 그렇지만 팥중이하고 새어머니는 콩중이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다. 늘 괴롭히고, 늘 때리며, 늘 미워해요.


  팥중이하고 팥중이네 어머니는 왜 이렇게 이웃이나 한식구를 괴롭히거나 때리거나 미워할까요. 이 둘은 어쩌다가 이렇게 다른 사람을 못살게 구는 마음이 되고 말았을까요.


  곰곰이 헤아리면 팥중이네는 ‘아버지가 없는 살림’이에요. 아버지가 없으니 콩중이네로 들어올 수 있을 테지요. 아버지 없는 살림으로 팥중이하고 팥중이네 어머니 둘이 야무지게 살아왔으리라 생각해요.



콩중이가 하도 속상해 훌쩍훌쩍 울고 있으니, 하늘에서 암소 한 마리가 내려와 물었어. “쿵중이야, 왜 울고 있니?” 콩중이가 힘들어서 운다고 하자 암소가 말했어. (4쪽)


새엄마는 거꾸로 시킨 일도 콩중이가 더 잘 해내자, 화가 잔뜩 치밀어 콩중이를 더욱 밉살스레 여겼지. (15쪽)



  옛이야기는 우리를 일깨웁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와 함께 이야기에 깃든 가르침을 베풀어요. 옛이야기 《콩중이 팥중이》에서는 여러 이야기를 들려줄 텐데, 시달리는 콩중이 이야기 못지않게 ‘퍽 고되게 살아왔을’ 팥중이네 살림을 엿볼 수 있구나 싶어요. 어쩌면 그동안 사랑받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오다 보니, 그만 콩중이한테 괜스레 투정을 부리듯이 미움질을 해댈는지 모르지요.


  이제는 마음을 펴도 될 텐데. 이제부터 느긋하면서 따사로운 마음이 될 만한데. 이제 서로 돕고 아끼면서 즐거이 지내면 좋을 텐데.



원님이 밥을 먹으려고 보니 젓가락이 짝짝이네. “젓가락이 왜 짝짝이인가?” 원님이 묻자, 장롱 안에서 콩중이가 나왔어. “원님, 젓가락이 짝짝이인 건 바로 보시면서 각시가 바뀐 건 왜 바로 못 보십니까?” (38쪽)



  미움질로는 사랑이 태어나지 못합니다. 시샘질로도 사랑이 깨어나지 못합니다. 모르는 노릇인데, 팥중이네는 콩중이네로 들어온 뒤에도 마을에서 썩 좋은 말을 못 들은 나머지 더 우악스러운 마음이 되었을 수 있어요.


  이런 콩중이는 혼자 씩씩하게 서야 합니다. 혼자 서는 길에 ‘하늘에서 암소가 내려와’서 돕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암소는 ‘일찍 돌아간 어머니’일까요. 하늘에서 내려온 암소는 콩중이만 돕지 않아요. 팥중이도 돕지요. 다만 팥중이는 하늘에서 내려온 암소가 도와주었어도 이 도움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외려 미움질을 더 키워요.


  콩중이가 고운 색시인 줄 알아본 마을 원님은 콩중이를 각시로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을 원님은 콩중이를 마음결보다 생김새로 알아보며 받아들인 터라, 나중에 팥중이가 콩중이 자리에 슬그머니 들어왔을 적에 이를 깨닫지 못해요.


  가만히 따져 본다면, 콩중이네 아버지하고 마을 원님 두 사내는 바보스러운 모습을 잘 드러낸다고 할 만해요. 여기에 팥중이하고 새어머니 두 가시내도 바보스러운 모습을 잘 보여주고요. 이런 틈바구니에서 콩중이는 이 삶에 눈물짓기만 하지 않고 다시 일어섭니다. 죽음과 같다고 할 만한 삶을 보내다가, 참말로 한 번 죽어야 했어요. 죽고 되살아난 뒤에는 예전처럼 한숨만 쉬지 않고, 스스로 일어서는 길을 찾지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이 둘레에 있더라도 ‘내가 스스로 씩씩하면서 사랑스러운 숨결’이 될 수 있을 노릇이라고 느껴요. 눈을 못 뜬 이웃이나 한식구를 내가 스스로 먼저 눈을 뜨고서 찬찬히 일깨울 수 있어요. 콩중이는 제 아버지를 일깨워 주지 못했으나, 마을 원님은 일깨워 주었어요. 콩중이네 아버지는 콩중이를 곁에 두고도 배우지 못했지만, 마을 원님은 콩중이가 일깨운 말에 눈을 번쩍 떴어요. 살림길은 우리가 스스로 닦고 엽니다. 2017.5.11.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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