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 -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의
서천석 지음 / 창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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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299


그림책은 ‘분석’하지 말고 ‘즐겁게’ 읽어요
그림책을 아이와 함께 읽는 기쁨이란?
―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
 서천석 글
 창비 펴냄, 2015.7.10. 15800원


  소아정신과 의사인 서천석 님은 서울대 의대를 마치고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로 일한다고 합니다. 아이와 어버이 사이에 얽힌 심리분석과 상담을 한다고 하며, 이러한 일을 하다가 ‘아이 마음을 읽어’ 보려는 뜻으로 그림책을 만났다고 해요. 소아정신과 의사인 서천석 님한테  “그림책 함께 읽기는 부모가 아이에게 선물하는 언어와 이미지의 잔칫상(12쪽).”이라고 합니다.

  서천석 님이 쓴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창비,2015)은 그림책을 아이하고 함께 읽으려는 어버이가 제법 가까이에 두고 읽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는 아이들하고 열 해째 살며 수많은 그림책을 함께 읽어 온 어버이로서 이 책을 읽기로 합니다. 지난 열 해 동안 아이들하고 그야말로 수많은 그림책을 읽었으나 아직 못 읽은 그림책이 많고, 새로 나오는 그림책도 많아요.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는 어떤 길잡이책이 될 만할까 하고 생각하며 차근차근 넘기는데, 뜻밖에 여러모로 아리송한 대목이 많이 드러납니다. 이리하여 이 책에서 아리송하구나 싶은 대목을 차근차근 짚어 보고자 합니다.


가브리엘 벵상의 그림책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렇게 따뜻할 수 있을까? 이렇게 넓은 마음으로 아이를 받아 줄 수 있을까? 그러다 보면 조금 답답해진다. 마음 한구석에서 까칠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아이 뜻을 다 받아 줘서야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겠어? 부모가 원칙을 안 지키면 제멋대로인 아이로 만들 수도 있는데.’ (61쪽)

잘 알려진 대로 마녀의 원형은 엄마다. 너무나 강해 신비롭기까지 하지만 심술궂다 못해 잔인한 존재. 바로 아이가 보고 싶지 않은 엄마의 모습이 마녀다. (107쪽)


  가브리엘 벵상이라는 분이 빚은 그림책은 참으로 많은 분들이 아름답다고 여깁니다. 이분이 빚은 그림책을 바탕으로 지난 2012년에 만화영화 〈어네스트와 셀레스틴〉이 나오기도 했어요. 서천석 님도 밝히지만 가브리엘 벵상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품이 매우 넓습니다. 참말로 넓게 모두 받아들입니다.

  아니, 가만히 보면 가브리엘 벵상 님은 모두 받아들이지는 않아요. 이분은 전쟁을 굳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분은 싸움이나 시샘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전쟁을 사랑으로 녹여서 받아들이려 하고, 싸움이나 시샘도 사랑으로 삭혀서 받아들이려 해요. 사랑을 사랑으로 바라보면서 사랑스럽게 받아들입니다. 미움이나 슬픔을 믿음으로 되새겨서 받아들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설 때까지 차분히 기다립니다. 아이가 나아갈 길을 어버이로서 먼저 슬기롭게 걷습니다. 말로 알려줄 때가 있으나 말없이 알려줄 때가 있어요.

  서천석 님은 이런 그림책을 읽다가 “조금 답답해진다(61쪽)”고 합니다. “아이 뜻을 다 받아 줘서야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겠(61쪽)”느냐고 물어요. 그러면 저는 되묻고 싶어요.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옳은’가요? 아이한테 너른 사랑을 베풀며 나누고 함께 누리지 않는다면, 어버이로서 어떤 삶이라 할 만할까요? 아이를 사랑으로 받아들여서 키우는 일이 왜 ‘제대로 자라는 길’이 아니라고 말을 할까요?


안타까운 것은 아이의 호기심이 부모에겐 고역이 되는 현실이다. 쉴새없이 터지는 아이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170쪽)

앞을 못 보는 두더지를 아이들이 좋아할 리 없다. 아이들은 더 강하고, 더 멋진 동물이고 싶다. 그러나 두더지야말로 아이들 모습이다. 아이들은 눈이 있지만 다 보지 못한다. (177쪽)


  마녀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심리분석으로는 마녀가 바로 엄마일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림책을 읽으면서 굳이 이런 심리분석을 써야 할는지 아리송하기도 해요. 때로는 이런 심리분석이 옳을 수 있으나, 그림책 나라에서는 심리분석으로 읽을 수 없는 이야기와 사랑과 꿈이 있어요.

  그림책은 늘 묻습니다. 여느 어린이문학도 늘 묻지요. 아이들은 아직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자꾸 묻습니다. 묻는 아이들 앞에서 어버이는 ‘고역(170쪽)’일 수 있으나, 이 고역이란 언제나 기쁨일 수 있어요. 기쁜 손길이며 기쁜 땀방울이지요.

  저는 우리 아이들이 저한테 끝없이 물어볼 적에 괴롭다고 여긴 적이 없어요. 이 수수께끼는 함께 풀 이야기요, 함께 알아내어 함께 찾아갈 삶길이기도 하다고 느껴요. 무엇보다 늘 아이한테 되물어요. 저는 아이들을 보면서, ‘얘들아 너희 마음속에 대고 물어보렴’ 하고 말하지요. 모르기 때문에 묻는 아이들한테는 어버이로서 낱낱이 밝혀 주기도 하면서 아이가 스스로 길을 찾도록 이끌기도 하면 된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우리는 바로 아이를 사랑으로 낳은 어버이잖아요.

  아이들이 두더지를 참말 안 좋아할까요? 아이들은 꼭 더 센 주인공이나 동물을 더 좋아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처음에는 모두 다 좋아해요. 뭐를 좋아하고 안 좋아한다는 틀은 어른들이 이 사회에 새겨 놓은 선입관이나 편견이지 싶습니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그림책의 줄거리와 리듬감은 매력적이지만 다소 생경한 번역으로 인해 읽어 주는 호흡이 편하지 않다. 또 70년이 더 된 목탄 그림은 요즘 아이들의 시각적 요구를 충분히 채워 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204쪽)

숲은 무의식을 상징한다. 무의식은 합리적이지 않고 제멋대로다. 하지만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흔들고,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만들어 낸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눈에 보이는 것, 합리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이약기한다. 아이 역시 자기 마음의 어두운 부분, 가려진 부분을 보는 것은 두렵다. (208쪽)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은 나쁜 책이나 안타까운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섣불리 이 책 줄거리를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이 책은 ‘그림책을 심리분석으로 낱낱이 가르는 얼거리’인 터라, 이러한 칼질을 함부로 받아들이다가는 ‘그림책을 즐겁게 읽는 삶’하고 멀어지겠구나 싶어요.

  서천석 님은 204쪽에서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를 ‘일흔 해를 더 묵은 목탄 그림’이라서 요즘 아이들한테 “시각적 요구를 충분히 채워 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고 밝힙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일흔 해가 더 된 그림책인지 아닌지 몰라요. 게다가 이를 안 따집니다. 아이들은 목탄으로 그렸는지 연필로 그렸는지 몰라요. 게다가 아이들은 연필로 그림 그리기를 대단히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알록달록한 그림만 좋아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연필이나 펜으로 그린 듯한 만화를 아주 사랑하지요. 만화가 ‘흑백’이라서 안 사랑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목탄이건 연필이건 펜이건, 어느 그림을 보든지 마음속으로 가없이 꿈을 그릴 줄 알아요.

  꿈을 들려주거나 건드리는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사랑하는 아이들이라고 느껴요. 오래된 작품이건 아니건 그리 대수롭지 않아요. 게다가 수백 해를 묵은 작품도 아이들은 ‘꿈·사랑’을 읽어내면서 좋아합니다.


결국 육아란 버티는 것이다. 육아에 대한 수많은 조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시간을 버텨 내는 것이다. 부모도 한계가 있다. 그 한계 속에서 최대한 인간적으로 어른스럽게 아이를 대하는 것이다. (285쪽)

부모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아주 단순한 진실이 있다. 아이들은 말을 안 듣기 마련이라는 것. 옳고 그름도 모르고, 길게 바라보고 생각할 줄도 모르지만 아이도 한 인간인 이상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다. (286쪽)


  숲은 때로는 ‘무의식’을 상징할는지 모르지만, 숲은 그저 숲이곤 합니다. 아이들하고 숲마실을 다니다 보면, 아이들은 이 숲에서 얼마나 홀가분하게 뛰어놀면서 숲바람을 마시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맨발로 숲을 딛고 싶어 해요. 아이들은 숲바닥을 마음껏 뒹굴어요.

  심리분석으로 그림책을 읽어도 뜻이나 보람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그림책을 놓고서 너무 딱딱하거나 메마른 이론으로 심리분석만 한다면, 아이들하고 그림책을 함께 읽는 일이 ‘말과 그림으로 이루는 잔치’하고 가깝기는 어려우리라 봐요.

  서천석 님은 “육아란 버티는 것(285쪽)”이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바탕이었기에 그림책을 다른 무엇보다 심리분석으로 바라보았지 싶습니다. 저는 ‘아이키우기’는 ‘버티기’라고 여기지 않아요. “아이키우기는 오직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와 함께 살림을 짓는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길”이 바로 아이와 이 보금자리에서 함께 사는 하루라고 생각해요.

  아이를 사랑하는 어버이는 버틸 까닭이 없고 한계를 따로 두지 않아요. 아이가 그릇을 깨뜨리면 그저 그릇을 깨뜨렸을 뿐이에요. 아이가 넘어졌으면 그저 넘어졌을 뿐이에요. 아이는 수많은 삶을 처음으로 맞닥뜨리거나 다시 마주하면서 차근차근 배워요. 어버이도 아이와 함께 무엇이든 새롭게 맞아들이면서 배워요.

  아이들은 “말을 안 듣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윽박지르기’를 안 들을 뿐입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배워서 새롭게 뛰놀고 꿈꾸는 바탕이 되는 말이라면 모조리 받아들입니다.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이라는 책을 놓고서, 어느 모로 보면 ‘궂은 말’만 적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림책이나 육아를 심리분석으로만 바라본다면 아이 속마음과 사랑과 꿈하고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런 말을 적어 보았어요.

  그림책을 그저 즐겁게 읽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아이를 그저 사랑으로 마주하면서 즐겁게 하루를 지으면 좋겠어요. 아이하고 따사롭게 말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서로 생각을 아름답게 피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멋진 어버이로 하루를 지을 만하리라 생각해요. 아무렴, 우리는 모두 우리 어버이한테서 사랑으로 태어나 신나는 아이로 뛰어놀고 자라면서 새로운 어버이가 되었거든요. 2017.4.1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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