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승. - 네 발 달린 도반들과 스님이 들려주는 생명 이야기
진엽 글.사진 / 책공장더불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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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11



사형이 ‘개똥 줍는 스님’이라고 놀린다

― 개.똥.승.

 진엽 글·사진

 책공장더불어 펴냄, 2016.11.13. 12000원



  스님 한 분이 개를 기른다고 합니다. 이 스님은 개를 기르니 늘 개똥을 줍는다고 합니다. 이 스님하고 함께 지내는 사형은 ‘개를 기르는 스님’을 보고 “개똥 줍는 스님”이라면서 놀린다고 합니다.


  개를 기르는 스님은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고 합니다. 개똥을 주으니 ‘개똥을 줍는’ 모습이 맞습니다. 개똥을 주으면서 스님으로 지내니까 “개똥 줍는 스님”이 맞습니다. 개똥 줍는 스님은 이녁이 개하고 함께 살면서 배우고 느끼고 나누고 함께한 이야기를 갈무리해서 《개.똥.승.》(책공장더불어,2016)이라는 책을 내놓습니다.



내가 안 보는 사이에 한 아이가 (개) 선우에게 돌을 던진 모양이다. 다른 아이가 돌을 던지면 개가 아프다고 친구를 말리는 소리가 들렸다. 던지는 아이와 말리는 아이. 던지는 아이는 어떤 아이며 또 말리는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19∼20쪽)



  개한테도 사람하고 똑같이 ‘목숨이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 한 아이가 돌을 던진다고 합니다. 개한테 돌을 던진 아이 곁에 왜 개한테 돌을 던지느냐고 말리는 아이가 있다고 합니다. 한 아이는 거의 아무 생각이 없이 개한테 돌을 던지면서 ‘괴롭히는’ 짓을 하는데, 괴롭히는 줄 안다면 아이로서 받은 생채기 때문일 터요, 괴롭히는 줄 모른다면 참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노릇일 테지요.


  거꾸로 개가 사람한테 돌을 던진다면, 우리 사람들은 어떤 느낌일까요? 개를 비롯한 온갖 짐승을 괴롭히거나 들볶는 우리 사람들이 거꾸로 개를 비롯한 뭇짐승한테서 돌을 맞거나 들볶이거나 시달린다면, 참말로 우리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요?



달걀이 아이들의 식탁 위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찾아봤다. A4용지 3분의 2 크기도 안 되는 공간에 갇혀 기계처럼 알을 낳는 닭들. 이랬구나. 달걀을 생산하는 닭의 삶이란 것이, 소와 돼지의 삶이, 다른 생명들의 삶이. 몰랐다. 내가 먹지 않고, 내가 입지 않는다고 귀는 열려 있었지만 들으려 하지 않았고, 눈은 뜨고 있었지만 보려 하지 않았다. (34쪽)


어렸을 때 우리 동네에는 묶인 개가 없었다. 동네 아이들이 골목에 모이면 집개들도 함께 나와서 겅중겅중 뛰놀았다. 아이들은 모두 이웃집 개의 이름을 알았고, 우리 개 남의 개 구분 없이 밥을 먹었다. (42쪽)



  고기도 달걀도 안 먹는 스님은 ‘달걀이 무엇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아니, 오늘날 우리가 흔히 쉽게 먹는 달걀이 어떻게 나와서 가게에 놓이는지를 까맣게 몰랐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해요. 혼자 고기나 달걀을 안 먹는대서 ‘공장 축산’에서 시달리는 닭이나 돼지나 소나 온갖 짐승까지 모르쇠로 지냈구나 하고 깨달았대요.


  오늘날 손수 닭을 치는 집은 얼마나 있을까요? 오늘날 손수 돌보는 닭한테서 알을 조금씩 얻어 알뜰히 여기는 집은 얼마나 될까요? 손수 닭을 기르지 않기 때문에 닭이 낳는 알뿐 아니라 닭 몸뚱이로 얻는 살코기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까맣게 모르는 우리 모습은 아닐까요? 집집마다 손수 닭을 키울 적에는 조류독감 걱정 따위는 없었을 텐데, 값싸고 손쉽게 어디에서나 사먹을 수 있는 달걀이나 닭고기가 되면서, 우리 사회 어디에나 조류독감을 비롯한 무시무시한 ‘새로운 현대 사회 질병’이 퍼지는 셈이 아닐까요?



“우리가 스님이지, 선우가 스님은 아니지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내가 만든 잣대로 모든 것을 맞추려 했을까. 나는 스님이기도 하지만 선우의 보호자이기도 하니 잘 보살펴야 할 책임이 있다. 더 이상 고민할 게 없었다. (55쪽)


아침에 공양을 마치면 똥 봉투를 들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보물찾기를 하는 냥 마당 이곳저곳에서 개똥을 찾는다. 찾은 똥을 살피면서 아이들 건강 상태를 가늠한다. 누가 속이 안 좋은지, 누가 변비인지 알아보는데, 신기하게도 딱 보면 누구 똥인지 알 수 있다. 이건 선우 똥, 이건 파랑이 똥, 이건 오페라 똥. 사형이 ‘개똥 줍는 스님’이라고 놀린다. 그 말이 싫지 않다. 개똥을 줍는 스님. (70쪽)



  《개.똥.승.》을 쓴 진엽 스님은 이 책에서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지 않습니다. 개 한 마리를 곁에 두고 살면서 이 개가 자라는 흐름을 살피며 새롭게 배운 이야기를 차근차근 적습니다. 처음에는 조그맣던 개가 앓기도 하고 다치기도 한 끝에 다부진 어른 개가 되고, 이윽고 새끼를 낳는 어미로 살며, 새끼랑 어미가 오붓하게 함께 지내는 모습까지 두루 지켜보는 동안 ‘목숨 하나란 얼마나 아름답고 대단한가’를 깨우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스님은 고기나 달걀을 안 먹지만, 개를 생각해서 달걀을 마련하여 먹입니다. 스님은 고기나 달걀을 입에 안 대지만, 새끼를 밴 어미 개를 헤아려서 고깃국을 끓입니다. 나중에는 고기를 쓰지 않되 개뿐 아니라 아이들한테도 몸을 살찌울 수 있을 만한 국을 끓여냅니다.



“파랑이는 친구 있어요?” 파랑이는 친구는 없고 가족이랑 같이 산다고 대답했다. “친구가 있어야지요. 파랑이는 친구가 없으니까 내가 친구 해 줄래요. 파랑이한테 꼭 전해 주세요.” 아이는 신신당부를 하고 총총걸음으로 교실로 들어갔다. (116쪽)


잘 도착하셨는지 묻는 전화 너머 어머니가 우신다. 이틀 집을 비웠더니 눈 내린 마당에 고양이 발자국이 빼곡하단다. 얼마나 당신을 기다렸겠냐고, 배도 많이 고팠을 텐데 얼른 밥을 해서 고양이들 먹인다고 전화를 급히 끊으신다. 고양이 덕분에 혼자 계신 엄마가 끼니를 꼬박꼬박 챙기고, 인적이 많지 않은 곳인데 말벗도 생겨서 참 고맙다. (176∼177쪽)



  나그네한테 밥 한 그릇 나누어 주는 사람은 길을 잃은 짐승한테도 먹이를 나누어 줄 줄 압니다. 이웃을 따스히 헤아리는 사람은 사람 곁에 있는 떠돌이 짐승도 따스히 살필 줄 압니다.


  스님을 낳은 늙은 어머니는 시골집에서 마을고양이(길고양이)한테 밥을 챙겨 주신다고 합니다. 모처럼 어머니가 시골집을 하루 비우고 스님을 만나러 마실을 했다는데, 하룻밤 집 바깥에서 지내고 시골집으로 돌아가니 눈 덮인 마당에 고양이 발자국이 빼곡했대요. 스님 어머니는 마을고양이를 먹이려고 바쁘시대요.


  아마 스님은 이녁 어머니한테서 ‘이웃사랑’을 물려받았지 싶어요. 낯을 아는 이웃만 돕는 사랑이 아니라, 낯을 모르는 이웃도 기꺼이 반가이 도울 줄 아는 사랑을 물려받았을 테지요. 따스하고 너른 사랑을 물려받은 숨결이기에 이러한 손길로 작은 짐승이며 마을 아이들한테도 포근하며 곱게 마음을 나누어 줄 만하리라 느껴요.


  작은 그릇 하나에 밥 몇 술을 덜 수 있으면 돼요. 작은 손길로 사랑을 가만히 나눌 수 있으면 돼요. 우리를 살리고 서로서로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언제나 곱고 따스하며 조그마한 사랑에서 비롯하지 싶어요. 개랑 똥이랑 스님(승)이 어우러져서 《개.똥.승.》이 태어났듯이, 우리 삶자리 어디에나 ‘이웃·사랑·살림’이 어우러질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6.12.2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숲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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