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다시 만나는



  나한테 오랜 살가운 벗님 가운데 글을 쓰는 이는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고까지 할 수 있다. 그래서 내 오랜 벗님을 다시 만나기란 무척 어렵다. 왜냐하면 다들 이녁 마을이나 보금자리 언저리에서 조용히 사니까. 나한테 오랜 살가운 벗님을 다시 만나는 길은 언제나 오직 하나이다. 이녁이 내 글을 누리그물에서 찾아서 읽거나 내 책을 사서 읽은 뒤에 이래저래 알음알음으로 먼저 연락해야 한다.


  나한테는 그리운 옛 벗님이 여럿 있다. 어릴 적 살던 마을에서 힘센 녀석들한테 얻어맞던 나를 늘 감싸고 돕던 벗님이 둘. 소꿉동무인데 일고여덟 살 즈음 그 아이가 다른 곳으로 집을 옮기면서 다시 만나지 못한 벗님이 하나. 장학퀴즈 출신자 모임에서 언제나 똑부러지면서 너른 생각을 보여주던 벗님이 하나. 아마 언젠가 이 벗님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며 고흥이라는 작은 시골에서 사는데, 이들 여러 오랜 살가운 벗님 가운데 한 사람한테서 연락이 온다.


  옛날에는 그리운 벗님이 서로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하고 헤아려 본다. 천 해나 오천 해쯤 앞서, 또는 일만 해나 오만 해쯤 앞서 살던 옛사람은 마음으로 그리는 사람을 어떻게 만나면서 서로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울 만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오늘날에는 글 한 줄이 참 여러모로 재미있다. 2016.12.1.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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