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래 107. 논둑에 피어나는 꽃
가을걷이를 마친 논은 빈논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바로 이 빈논에 늦가을꽃이 가만히 고개를 내밀어 꽃봉오리를 터뜨립니다. 들에서 피는 들국이기도 하고, 산에서 퍼진 산국이기도 한, 작고 노란 꽃송이는 퍽 먼 데에까지 꽃내음을 물씬 퍼뜨립니다. 이 아이들을 잘 훑어서 말린 뒤에 차로 끓여서 마시기도 하고, 차로 끓여서 마시지 않더라도 논길을 걷다가 짙은 꽃내음을 들이키면서 온몸으로 노오란 숨결을 받아들이기도 해요. 들에 피기에 들꽃이라면, 논에 피기에 논꽃이 될까요? 늦가을 논꽃은 ‘아직 꽃내음이 여기에 있어요’ 하고 넌지시 속삭입니다. 겨울 첫머리까지 눈부신 꽃송이를 퍼뜨리는 논꽃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4349.1.27.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말/사진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