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의 비밀 일기 난 책읽기가 좋아
수지 모건스턴 지음, 이세진 옮김, 세브린 코르디에 그림 / 비룡소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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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읽는 삶 127



‘온누리에 오직 한 권’만 있는 책을 쓴다

― 엠마의 비밀 일기

 수지 모건스턴 글

 세브린 코르디에 그림

 이세진 옮김

 비룡소 펴냄, 2008.9.26. 6500원



  초등학교에서는 으레 일기쓰기를 시킵니다. 이러면서 일기검사를 합니다. 일기를 쓰도록 하는 까닭은 하루를 차분히 돌아보면서 기쁨과 슬픔을 되새긴다든지 새로운 하루를 내다보면서 내 삶을 아로새기는 길을 알려주려는 뜻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적잖은 학교에서 적잖은 교사는 ‘일기검사’를 숙제로 시켰고, 이 숙제를 안 하면 매질이나 얼차려를 주었습니다. 나는 1988년에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일기검사’에서 풀려난다는 대목이 대단히 기뻤습니다. 즐겁게 쓰도록 북돋우는 일기가 아닌 숙제와 매질(체벌)로 얼룩진 일기검사만 받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5년에 ‘일기검사’는 어린이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불거졌습니다. 너무 마땅한 노릇인데, ‘그냥 검사’만 하는 일로는 틀림없이 ‘사생활 침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오직 사랑으로 따스히 바라보면서 어루만지려는 마음이 아니라면 ‘일기검사’는 ‘인권침해’가 될 테지요. ‘검사’라는 말이 붙는 대목부터 ‘일기검사’는 아이를 슬기롭거나 사랑스레 돌보려는 숨결이 깃들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기장에 남겨 보렴. 이건 엠마의 비밀 일기장이야.” 미레유 아줌마의 설명을 듣고, 엠마는 속으로 생각했지요. ‘아줌마,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제 이름밖에 못 쓰는걸요…….’ (4∼5쪽)




  수지 모건스턴 님이 글을 쓰고, 세브린 코르디에 님이 그림을 그린 《엠마의 비밀 일기》(비룡소,2008)를 읽으면서 일기쓰기를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2016년부터 아홉 살이 되고, 2016년 1월 1일부터 일기를 쓰기로 하면서 일기란 무엇인가를 새롭게 돌아봅니다.


  아이는 어른하고 달라서 띄어쓰기라든지 받침이라든지 글씨쓰기가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이가 쓰는 일기를 ‘검사’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쓸 적에 어느 낱말에서 띄고, 어느 낱말은 어떻게 쓰는가를 ‘살피’기만 합니다. 잘 틀리는 대목은 따로 ‘쓰기 공책’을 마련해서 찬찬히 보기글을 들면서 알려줍니다. 이를테면 ‘자르다’라는 낱말은 ‘자른 뒤·자르니까’처럼 ‘자 + 르’ 꼴로 쓰기도 하지만, ‘잘랐다·잘라내다’처럼 ‘잘 + 라(랐)’ 꼴로 쓰기도 합니다. 이런 대목을 짚어 준다든지, 일기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 때에 스스로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일러 주려면, ‘검사’가 아닌 ‘살피기’를 해야 하고, 아이와 어버이가 함께 일기를 쓰면서 서로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하루 이야기를 새롭게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미레유 아줌마는 엠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었어요. “엠마야, 꼭 글로 쓰지 않아도 된단다. 사진이나 그림을 붙여도 되고……, 네가 그림을 그려도 되고, 나뭇잎이나 꽃을 따서 붙일 수도 있지.” (6∼7쪽)



  어린이책 《엠마의 비밀 일기》를 보면 글도 그림도 무척 곱습니다. 무엇보다 ‘일기쓰기’는 꼭 글로만 써야 하지 않는다는 대목을 잘 밝힙니다. 그림을 그려도 되고, 사진을 붙일 수 있어요. 나뭇잎이나 껌종이를 붙일 수 있어요. 마음을 담는 ‘내 빈책’이 일기장입니다. ‘빈책(공책)’을 새롭게 이야기로 채우기에 일기장입니다. 텅 비어서 아직 아무런 얘기가 안 적힌 책에 내 나름대로 살아낸 하루를 가만히 돌아보면서 차곡차곡 아로새기는 ‘온누리에 오직 한 권만 있는 책’을 쓰는 일이 일기쓰기라고 할 수 있어요. 일기를 쓰는 동안 우리는 누구나 ‘내 책을 쓴다’고 할 만하지요. 아이가 아이 나름대로 삶을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겪고 헤아린 이야기를 아이 손으로 즐겁게 빚는 일이 일기쓰기라고 할 테지요.




수요일에는, 돌아가신 자크 할아버지 사진을 붙였거요. (12쪽)



  가만히 돌아보면, 1980년대만 하더라도 국민학교는 한 교실에 쉰 아이나 일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학교는 한 반에 여든 아이가 넘기도 했어요. 한 반에 이렇게 많은 아이가 있을 적에는 ‘일기검사’가 ‘썼느냐 안 썼느냐’라든지 ‘얼마나 썼느냐’라든지 ‘어제 쓴 얘기를 똑같이 베꼈느냐 안 베꼈느냐’ 따위를 따지면서 아이들을 매질(체벌)하는 무시무시한 숙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로서도 아이를 하나하나 살뜰히 살피면서 사랑으로 어루만지기 어렵지요.


  어른(어버이나 교사)이 아이들 일기를 들여다본다고 할 적에는 아이가 제 삶을 스스로 짓는 길에 동무가 되고 이슬떨이가 되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했느니 못 했느니 따지지 않고, 즐겁게 삶을 쓰고 기쁘게 이야기를 짓도록 곁에서 도우려는 뜻으로 일기를 살피면서 도움말을 들려줄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레유 아줌마를 만난 날, 엠마는 아줌마에게 비밀 일기장을 살짝 보여줬어요. 아줌마는 일기장을 펴 보고 환하게 웃었지요. “엠마가 참 재미있게 지냈구나.” (22∼23쪽)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일기쓰기를 서로 즐겁게 할 때에 즐거운 하루가 되리라 느낍니다. 재미있게 지내는 하루를 재미나게 돌아보려고 일기를 쓴다는 뜻을 함께 살필 수 있을 때에 기쁘리라 봅니다.


  일기는 숙제가 아닙니다. 일기쓰기는 고단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섣부른 일기검사로 아이들 마음을 다치게 하거나 힘들게 한다든지, 무엇보다 아이가 제 이야기를 숨기거나 감추면서 안 쓰는 일이 생기도록 하지 말 노릇입니다. 일기는 아이가 스스로 쓰고 스스로 되읽으면서 스스로 생각을 가꾸도록 하는 멋진 글쓰기인 줄 알아차리도록 도와야지 싶습니다.


  ‘온누리에 오직 한 권’만 있는 책을 씁니다. 지구별에도 우주에도 그야말로 딱 한 권만 있는 책을 아이가 씩씩하게 씁니다. 아이가 누린 하루는 참말 이 지구별에서도 온 우주에서도 꼭 하루뿐인 삶이고, 둘도 셋도 없는 삶입니다. 이 아름답고 멋지며 사랑스러운 삶을 아이가 손수 쓸 수 있을 때에 서로서로 활짝 웃으면서 기쁜 노래가 흐를 수 있습니다. 4349.1.3.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어린이책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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