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걷기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 줄 아니?



  내가 나한테 한 마디 한다. 얘, 얘, 서서 걷기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 줄 아니? 이레째 누워서 지내는 몸인 나는 ‘서서 걷기’가 무엇인가를 문득 새롭게 바라본다. 이레 만에 처음으로 뒷간으로 엉거주춤하게 걸어가서 볼일을 보았다. 마당으로 내려서는 일조차 아주 낯설다고 할 만큼 새롭다. 우리 집 마당일 뿐이지만, 이 마당이 바로 우리 집에서 숲이요 놀이터요 이야기터이다.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마신다. 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더 크게 듣고, 나비가 부추꽃이랑 고들빼기꽃에 내려앉는 모습을 바라본다.


  얼른 자리에 눕는다. 허리를 펴고 정강이와 무릎을 살살 어루만진다. 자리에 누워도 허리를 펴지만, 두 다리로 땅을 밟아도 허리를 편다. 누워서 펴는 허리와 서서 펴는 허리는 그야말로 다르다. 사람은 두 다리로 서면서 눈결이 한결 넓어졌고, 두 손은 한결 홀가분해졌으며, 두 귀는 한결 깊어진데다가, 생각은 한결 놀라워졌다. 이리하여, 허리를 하늘에 대고 세워서 바람을 마시면서 곧게 펴는 사람이 된 뒤부터, 참말 사람은 스스로 새로운 숨결이 되었다.


  나는 내가 물은 말에 대꾸를 할 때가 되었다. 얘, 얘, 그래, 네 말대로야. 서서 걷기만 해도 참으로 고맙구나. 눈물이 나도록, 웃음이 나도록 고맙구나. 모든 아름다움하고 사랑을 빚어낸 이 씩씩한 걸음걸이를 누리는 하루란 언제나 고맙고 훌륭하구나. 4348.9.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