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면서 새로운
아파서 꼼짝 못하는 사람이 되어 사흘째 지낸다. 오늘 새벽에는 입이 궁금해서 부엌으로 기어가서 복숭아 반 조각을 먹어 본다. 사흘 만에 뭔가를 입에 넣는다. 아무 맛을 느낄 수 없고, 몸에 뭐가 들어간다는 느낌도 없다.
청소도 빨래도 밥짓기도 못하고, 그저 자리에 드러누워 몸을 이리저리 뒤집으면서 허리를 펴고 오른무릎을 주무른다. 한밤에 일어나서 오줌을 누고 허리를 펴려고 몸을 동그랗게 말면서 쪼그려앉는데, 큰아이가 엊저녁에 그린 그림이 두 점 방바닥에 있다. 아버지가 다쳐서 놀이터에 못 가니 서운한 마음을 그리고, 아버지가 튼튼하던 때에 다 함께 놀이터에 가서 즐겁게 놀던 모습을 그렸다. 참 예쁘구나.
다리를 못 써도 팔은 쓸 수 있으니, 잠자리에서 두 아이 이불깃은 여미어 준다. 책상맡에서 좀 쪼그려앉아 허리를 쉰 다음 다시 자리에 누워야겠다. 집일을 도맡아 해 주는 곁님이 더없이 고맙다. 4348.9.4.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