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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감 같은 글쓰기
풋감은 못 먹는다. 아무리 배고파도 풋감은 못 먹는다. 그러나 죽을듯이 배고프다면 풋감조차 먹으려고 용을 쓸 텐데, 이 떫은 맛을 견디면서 배를 채울 수 있을는지 알 길이 없다.
풋감은 감물을 들일 적에 쓴다. 그리고, 감물을 들이려고 쓰는 풋감이 아니라면 감나무 둘레에 떨어져서 감나무한테 새로운 거름이 되어 준다. 풋감이 잔뜩 떨어지기에 감나무는 새롭게 기운을 내어 ‘바알간 감알’을 싱그럽고 알뜰히 맺을 수 있다.
풋감 같은 글을 쓴다면 두 가지가 된다. 먼저, 감물을 들이는 바탕이 되는 글이다. 새로운 빛깔을 입히고 새로운 풀내음을 퍼뜨리는 글이라고 할 만하다. 옷감에 감물을 들이는 글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멋스러울까. 다음으로, 떫디떫을 뿐인 글이다. 설익은 글이요, 그렇다고 해서 감나무를 살리는 거름이 되는 구실도 하지 못하는 글이다. 설익은 글일 적에는 아무한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글을 쓰는 사람 스스로 삶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글이 되지 못한다면, 이러한 글이 이웃이나 동무한테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그저 떫디떫은 글이 될 뿐이다.
똑같은 글 하나인데, 이 글은 감물을 들이는 풋감 같은 글이 되고, 이 글은 그저 떫기만 설익은 글이 된다. 어떻게 이처럼 두 갈래로 갈릴까? 바로 글을 쓰는 마음 때문이다. 어떤 마음이 되어 글을 쓰느냐에 따라 모든 글이 갈린다. 어떤 마음이 되느냐는, 스스로 어떤 삶을 바라보면서 한 걸음씩 씩씩하게 걸어가려 하느냐에 따라 갈린다. 아무튼, 풋감은 하루 빨리 나뭇가지에서 떨어지거나 썩거나, 야무지게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익어야 한다. 두 갈래 가운데 하나이다. 4348.8.4.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