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441) 시간적 1


해수욕도 하려 했었는데 시간적으로 어림없다

《박세욱-자전거 전국일주》(선미디어,2005) 77쪽


시간적(時間的) : 시간에 관한


 시간적으로 어림없다

→ 시간을 따지면 어림없다

→ 시간을 보니 어림없다

→ 시간이 없었다

→ 시간이 안 되었다

→ 시간이 모자랐다

 …



  한국말사전 풀이를 따르면 “시간적으로 어림없다”는 “시간에 관한 어림없다”란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풀이를 해 놓고 보면 어딘가 엉뚱합니다. 아무래도 걸맞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시간적 배경”이나 “시간에 관한 배경” 모두 어울리지 않고 “시간 배경”이라고 할 때에 비로소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시간적 순서”나 “시간에 관한 순서” 또한 어울리지 않으며, “시간 순서”라고 적을 때가 가장 어울리는구나 싶습니다.


 시간적 여유가 없다

→ 시간 여유가 없다

→ 여유가 없다

→ 느긋하지 않다

→ 겨를이 없다

→ 틈이 안 난다

→ 짬이 없다

 시간적인 제한이 있다

→ 시간 제한이 있다

→ 시간이 빡빡하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시간 여유가 없다”라는 말마디도 어쩐지 어설픕니다. 아무래도 앞뒤가 잘 안 들어맞습니다. 한자말 ‘여유(餘裕)’를 넣어서 어설프기보다는, ‘시간이 넉넉하게 있지 않아 바쁘다’는 뜻과 느낌을 밝힐 적에 한국사람은 으레 “시간이 없다”처럼 말하기 때문입니다. 사이에 꾸밈말을 넣는다면 “시간이 얼마 없다”나 “시간이 넉넉히 없다”처럼 말합니다. “여유가 거의 없다”나 “여유가 하나도 없다”처럼 말합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얼마 없다”로 쓰면 손쉽고 수수한 말투인데, “시간 여유가 없다”로 고쳐서 쓰다가 “시간의 여유가 없다”라든지 “시간적 여유가 없다” 같은 말투가 나오는구나 싶습니다. 한자말 ‘여유’를 써서 잘못이 아니요, 한자말 ‘여유’는 안 써야 올바르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말 ‘얼마’나 ‘넉넉히’를 뒤로 젖히면서 ‘-의’하고 ‘-적’이 달라붙는 말투가 스멀스멀 나타나고 자리를 차지합니다.


  다시금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우리는 지난날에 “그럴 겨를이 없다”나 “그럴 틈이 없다”나 “그럴 새가 없다”나 “그럴 짬이 없다”처럼 이야기를 했습니다. 따로 ‘시간’이라는 낱말을 넣지 않으면서 뜻과 느낌을 알맞게 나타냈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시간’ 같은 낱말은 한자말로 여기지 않고, 이 낱말이 없다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다고 할 만큼 삶터가 달라졌습니다만, 지난날에는 이런 낱말이 없이도 우리 넋과 마음과 생각을 넉넉히 나눌 수 있었습니다. ‘때·겨를·틈·새·틈새·짬·말미’ 같은 낱말을 흐름과 자리에 따라 알맞게 넣으면서 이야기를 하면 됩니다.


 시간적으로 촉박하다

→ 시간이 빠듯하다 / 빠듯하다

→ 시간이 없다 / 겨를이 없다

→ 시간이 모자라다 / (무엇할) 틈이 없다

→ 코앞에 닥치다 / 발등에 떨어지다

 시간적으로 여의치 않은 것으로 결론났다

→ 시간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되었다

→ 시간이 모자라다고 이야기되었다

→ 시간이 없다고 마무리되었다


  찬찬히 짬을 내면서 한국말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넉넉히 말미를 나누면서 한국말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한국말을 옳게 가누는지 바르게 추스르는지 알맞게 쓰다듬는지 곱게 매만지는지를 곱씹을 수 있어야 합니다.


  틈을 내고 겨를을 내야 합니다. 차분하게 되짚을 새가 있어야 합니다. 남한테 떠맡기는 말다듬기나 글다듬기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깊이 있게 다루는 말이요 손수 갈고닦는 글이 될 때에, 바야흐로 말이 살고 글이 삽니다. 말이 살며 넋이 살고, 글이 살며 얼이 살아날 때에 삶도 꽃처럼 피어납니다. 넋과 얼이 나란히 살 때에 마음이 살고 생각이 살 수 있고, 시나브로 사랑과 믿음이 살 수 있습니다. 사랑과 믿음이 살지 않는다면 참되거나 슬기로운 삶은 뿌리내리지 못합니다. 4339.2.8.물/4343.1.8.쇠/4348.6.2.불.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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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도 들어가려 했는데 시간을 보니 어림없다


‘해수욕(海水浴)’이란 바다에서 헤엄을 치거나 노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는 “바다에도 들어가려 했는데”나 “바다에서 물놀이도 하려 했는데”나 “바다에서 헤엄치려 했는데”로 손질해 줍니다.


..


 '-적' 없애야 말 된다

 (1555) 시간적 2


《몽실언니》의 시간적 배경은 한국전쟁 전후이며, 결말 부분에서 30년을 건너뛰며

《선안나-천의 얼굴을 가진 아동문학》(청동거울,2007) 175쪽


 《몽실언니》의 시간적 배경은

→ 《몽실언니》를 쓴 시간 배경은

→ 《몽실언니》를 쓴 때는

→ 《몽실언니》가 다루는 때는

→ 《몽실언니》 이야기가 펼쳐지는 때는

→ 《몽실언니》 이야기가 흐르는 때는

 …



  논문이나 기사나 비평이라고 하는 이름이 붙는 글을 쓰는 분들은 이 보기글과 같은 짜임새에 익숙합니다. “《몽실언니》는 한국전쟁 무렵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며”나 “《몽실언니》는 한국전쟁 때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며”나 “《몽실언니》는 한국전쟁 즈음 삶자락을 보여주는 작품이며”처럼 이야기하는 짜임새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몽실언니》를 쓴 때는”이라든지 “《몽실언니》가 다루는 때”처럼 글을 쓸 수 있고, “《몽실언니》는 한국전쟁 앞뒤를 다루며”처럼 글을 써도 잘 어울립니다. 4343.1.8.쇠/4348.6.2.불.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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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언니》는 한국전쟁 앞뒤를 다루며, 마지막에서 서른 해를 건너뛰며


“한국전쟁 전후(前後)이며”는 “한국전쟁 앞뒤이며”나 “한국전쟁 즈음이며”나 “한국전쟁 무렵이며”로 손질합니다. “결말(結末) 부분(部分)에서”는 “끝에서”나 “마지막에서”로 다듬고, ‘30년(三十年)’은 ‘서른 해’로 다듬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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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713) 시간적 3


하지만 꽃의 일부가 살눈으로 변해 종피가 없어 겨울을 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싹이 정상적으로 자랄 시간적 여유가 너무 없어 보여 걱정이다

《주원섭-오늘도 숲에 있습니다》(자연과생태,2015) 68쪽


 정상적으로 자랄 시간적 여유가

→ 제대로 자랄 시간이

→ 제대로 자랄 여유가

→ 제대로 자랄 틈이

→ 제대로 자랄 겨를이

→ 제대로 자랄 수가

 …



  이 보기글에서는 ‘시간’으로만 적거나 ‘여유’로 적으면 됩니다. 또는 ‘틈’이나 ‘겨를’ 같은 낱말을 넣을 수 있고, 이 모두를 덜고 “제대로 자랄 수가”로 적어도 됩니다. 4348.6.2.불.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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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꽃 한쪽이 살눈으로 바뀌어 씨껍질이 없으니 겨울을 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싹이 제대로 자랄 틈이 너무 없어 보여 걱정이다


‘하지만’은 ‘그렇지만’이나 ‘그러나’로 손보고, “꽃의 일부(一部)가”는 “꽃 한쪽이”로 손보며, ‘변(變)해’는 ‘바뀌어’로 손봅니다. ‘종피(種皮)’는 ‘씨껍질’로 손질하고, ‘정상적(正常的)으로’는 ‘제대로’로 손질하며, ‘여유(餘裕)’는 ‘겨를’이나 ‘틈’으로 손질합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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