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63 그대는 나, 나는 그대
손이 하나일 때에는 손뼉을 못 칩니다. 우리 옛말로는 ‘손바닥(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두 손일 때에 소리가 나고, 두 손으로 소리를 내면서 모든 노래가 터져나옵니다. 손이 하나일 때에는 아무것이 없습니다. 소리도 없고 모습도 없습니다. 오직 고요하기만 합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고요한 점과 같은 숨결에서 손이 하나만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길지도 짧지도 않은 동안 ‘한 손’이었으나, 이 한 손이 어느새 ‘두 손’이 됩니다. 둘로 갈린 하나가 아니라, 새로운 하나가 ‘처음 하나’에서 태어납니다. 처음 하나에서 새로 태어난 하나는 처음과 똑같이 생깁니다. 다만, 하나는 왼손이고 다른 하나는 오른손일 뿐입니다. 서로 거울처럼 마주볼 뿐입니다.
거울처럼 마주보기 때문에 서로 짝 소리가 나게 부딪힐 수 있습니다. 거울처럼 서로 바라보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가만히 헤아리기에 서로 한몸처럼 부딪힐 수 있습니다. 짝 소리가 나도록 부딪히자면 어느 한 군데도 어긋나지 말아야 합니다. 꼭 맞닿아야 비로소 소리가 납니다. 살짝 뒤틀리기만 해도 소리가 안 나요.
이렇게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는 물결과 같은 소릿결을 피우면서 차츰 퍼집니다. 소릿결은 조금씩 커집니다. 물결이 차츰 커지듯이 소릿결은 위아래로 커지고, 왼쪽과 오른쪽을 오가면서 커집니다. 커지는 소릿결은 새로운 곳으로 자꾸 떠납니다. 한 걸음이 두 걸음으로, 두 걸음이 세 걸음으로, 세 걸음이 네 걸음으로 갑니다. 이윽고 다섯 걸음과 여섯 걸음과 일곱 걸음까지 갑니다. 일곱째 걸음에서 멈추면서 둘레를 살피다가 다시 첫 걸음으로 돌아갑니다(나아갑니다).
처음부터 하나였던 소리이기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소리를 냅니다. 처음에 하나인 소리이니, 새로운 하나가 태어나서 다시금 새로운 이야기를 빚습니다.
둘이 된 하나는, 처음에 하나였고, 새롭게 둘로 나뉘어서 온갖 이야기를 빚다가, 가만히 하나로 돌아와서 마무리를 짓습니다. 이렇게 마무리를 지으면 어느새 새삼스레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은 새롭게 온갖 이야기를 빚으며, 이내 다시금 하나로 돌아와서 마무리를 지어요.
먼저 가는 하나가 아니고, 기다리는 하나가 아닙니다. 함께 가는 하나요, 함께 움직이는 하나입니다. 이 하나에서 저 하나가 태어났으니, 이 하나가 저 하나보다 낫지 않습니다. 둘은 똑같이 사랑스러운 하나입니다. 둘이 똑같이 사랑스러운 하나이기에, 둘은 짝 소리가 나도록 부딪힐 수 있습니다. 짝 소리가 나도록 부딪힌다고 할 적에는 기쁨으로 새롭게 하나가 되는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오직 기쁨으로 새롭게 하나가 되는 사랑일 때에 이야기가 태어나듯이 새로운 목숨과 삶이 태어납니다. 짝짓기라고 할까요. 짝을 짓는다고 할까요.
‘짝짓기’란 둘이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짝짓기라는 말마디는, 둘이 새롭게 하나가 되어 사랑을 지으려는 몸짓을 가리킵니다. 짝짓기는 ‘살섞기’ 같은 놀음놀이가 아닙니다. 짝짓기는 처음부터 하나인 둘이 새롭게 하나가 되도록 돌아와서 수없고 끝없으며 가없는 이야기를 빚으려는 몸짓이요 꿈이며 사랑입니다. 온몸과 온마음이 사랑으로 어우러질 때에 꿈이 태어나고, 이 꿈이 바야흐로 삶이 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로 되면서 사랑을 속삭일 때에 생각 한 줌이 씨앗으로 자라서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 삶을 이룹니다. 마음에 심는 사랑이 곧바로 몸을 일으키는 기운이 되고, 몸을 일으키는 기운은 새로운 숨결로 거듭나서 온갖 것을 짓는 삶으로 거듭납니다.
이리하여, 그대는 나요, 나는 그대입니다. 그대는 나한테서 나오고, 나는 그대한테서 나옵니다. 그대는 나를 이루는 사랑이고, 나는 그대를 이루는 사랑입니다. 그대는 내 꿈이고, 나는 그대 꿈입니다. 그대와 나 사이에는 바람이 한 줄기 붑니다. 나와 그대 사이에는 꽃 한 송이가 피도록 햇빛 한 줄기가 드리웁니다. 우리는 꿈을 꾸는 한몸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짓는 한마음입니다. 우리는 삶을 가꾸는 한넋입니다. 4348.3.15.해.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