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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봐요, 호오포노포노 - 부와 건강과 행복을 부르는 하와이언들의 말 ㅣ 판미동 호오포노포노 시리즈
타이라 아이린 지음, 김남미 옮김, 이하레아카라 휴 렌 감수 / 판미동 / 2015년 4월
평점 :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10
마음을 가꾸는 네 마디 말
― 들어 봐요 호오포노포노
타이라 아이린 글
김남미 옮김
판미동 펴냄, 2015.4.23.
모든 말에는 마음이 깃듭니다. 아무 말이나 되는대로 읊는다면 아무 생각이나 아무렇게나 흩뜨리면서 아무 마음이나 되겠다는 몸짓이 되어, 아무 삶으로나 흐르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이루려는 꿈을 생각하면서 기쁘게 헤아린 말을 하나하나 읊는다면 기쁜 꿈이 깃든 마음으로 말길을 틀 테니, 언제나 나 스스로 꿈꾸는 길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노래하는 새가 들려주는 소리는 아무렇게나 내뱉는 소리가 아니라고 느낍니다. 노래가 될 수 있는 소리를 아침저녁으로 새롭게 지저귄다고 느낍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른이 되어 아이하고 나누는 말 한 마디는, 아침저녁으로 노래하는 새처럼 늘 스스로 노래하는 말 한 마디일 때에, 어른인 나부터 즐겁고 아이들은 이 말을 들으면서 기쁜 마음이 되리라 느낍니다.
.. 우리의 참된 모습이자 원래의 상태는 제로, 자유, 텅 빔, 무(無), 순수, 새로움이며, 이때의 ‘진정한 나’는 신성한 존재와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 … 정화의 방법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고마워요’, ‘미안해요’, ‘용서해 줘요’, ‘사랑해요’라는 네 마디 말을 마음속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 정화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만이 시작할 수 있다 … 내가 자유로워져야 나의 물건도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 .. (19, 22, 23, 48쪽)
타이라 아이린 님이 휴 렌 박사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찬찬히 엮은 《들어 봐요 호오포노포노》(판미동,2015)를 읽습니다. ‘호오포노포노’에서는 언제나 네 가지 말을 내가 나한테 스스로 들려주면서 마음을 씻도록 이끈다고 합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남이 나한테 아무리 훌륭하거나 멋지거나 사랑스러운 말을 들려준다고 하더라도, 내가 나한테 스스로 아무 말을 들려주지 않는다면, 내가 달라지거나 거듭날 수 없습니다.
밥을 먹어도 내가 밥을 먹습니다. 숨을 쉬어도 내가 숨을 쉽니다. 길을 걸어도 내가 걷습니다. 눈을 떠도 내가 눈을 뜹니다.
눈을 뜨고 바람을 마시면서 밥을 받아들일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네가 아닌 나입니다. 내가 눈을 뜨지 않고서야 너한테 눈뜨기를 알려줄 수 없습니다. 내가 바람을 마시면서 목숨을 건사하지 않는다면, 네가 너 스스로 목숨을 건사하도록 바람을 마시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밥을 먹고 똥을 누며 잠을 자는 사람은 언제나 바로 나입니다. 내가 스스로 내 삶을 지을 때에 비로소 내 길을 엽니다.
.. 스스로 ‘기억’인지 ‘사랑’인지 물을 때마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기억이 축적되어 있는지, 그리고 지금도 얼마나 많은 기억을 선택하고 있는지 깨달을 것이다 … 내가 호감을 느끼는 것조차 내 자유를 빼앗는다. 정말 그럴까? 나는 평소 좋아했던 것들을 되돌아봤다 … 일부러 돈을 내고 구입했으니 안 쓰면 손해라는 식으로 열심히 사용하기도 했다. 확실히 거기엔 물건의 영혼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지쳐 가고 있었다 .. (37, 43, 47쪽)
‘고마워요’, ‘미안해요’, ‘용서해 줘요’, ‘사랑해요’라고 하는 네 마디를 곰곰이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네 마디를 다시 갈무리합니다. 영어로는 ‘I love you’, ‘I'm sorry’, ‘Thank you’, ‘Please forgive me’라고 한다니까, 또 이 책 《들어 봐요 호오포노포노》를 보면 책겉에 영어로 이러한 차례로 적혔으니, 새롭게 되읽어 봅니다. “사랑해”, “잘못했어”, “고맙구나”, “부디 봐주렴(나를 봐주렴)”.
어떤 말로 네 마디를 읊어도 다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하와이섬에서 살아온 분들은 처음에는 영어가 아니라 그곳 말로 이 네 마디를 읊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이 네 마디가 영어로 새롭게 옷을 입었고, 한국에도 호오포노포노가 들어오면서 한국말로 다시 옷을 입혀서 네 마디를 읊습니다.
‘I'm sorry’를 흔히 ‘미안(未安)하다’로 옮기곤 하는데, 한자말 ‘미안하다’는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를 뜻합니다. ‘편(便)하다’는 “마음이 거북하거나 괴롭지 않다”를 뜻합니다. ‘죄송(罪悚)하다’라는 한자말은 “죄스러울 정도로 황송하다”를 뜻합니다. ‘황송(惶悚)하다’는 다시 “분에 넘쳐 고맙고도 송구하다”를 뜻한다 하고, ‘송구(悚懼)하다’는 “두려워서 거북스럽다”를 뜻한다 하는데, ‘송구하다’는 일본 한자말이기에 ‘미안하다’나 ‘죄송하다’로 고쳐써야 한다고 한국말사전에서 풀이합니다. 말뜻을 찬찬히 살피면 ‘I'm sorry’를 ‘미안하다’로 옮겨서 말할 적에는 그리 알맞지 않습니다. 영어에서 이 말을 쓰는 결을 살펴서 “잘못했습니다”나 “잘못했어”로 고쳐써야 한다고 느낍니다.
‘Please forgive me’를 ‘용서해 줘요’로 옮기지만, 한자말 ‘용서(容恕)’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을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을 뜻합니다. 그런데, 한자말 ‘용서’를 한국사람이 쓴 지는 얼마 안 됩니다. 한국사람은 이런 말을 안 쓰고 살았습니다. 하와이 겨레가 처음부터 영어를 쓰지 않았듯이, 한국사람은 처음부터 한자말이 아닌 한국말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보아주다’나 ‘봐주다’입니다. “나를 봐주셔요(보아주셔요)”나 “부디 봐주십시오(보아주십시오)”라고 말해야 올바릅니다.
..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진정한 나’를 되찾는 것이다 …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눈앞에 나타난 일을 착실히 정화할 때, 오랫동안 내려놓지 못한 무거운 기억이 제거되고 진정한 나로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 (휴 렌) 박사는 내게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대해 어떤 기대나 집착을 가지면 그 즉시 우니히피리(잠재의식)에게 빛이 차단된다고 말했다. 내게 일어나는 일도, 그때 맛보는 감정도 모두 정화의 대상이다 .. (65, 77, 135쪽)
내가 스스로 나를 따사롭게 다스리는 길에 읊는 네 마디 말 가운데 “부디 봐주렴(나를 봐주렴)”을 더 헤아려 봅니다. 한국사람은 잘못을 덮어 달라고 할 적에 “봐주셔요” 하고 말합니다. ‘보아주다’인데, 나를 ‘보아’ 달라고 하는 말입니다.
한국말 ‘보다’는 눈으로 겉모습을 알려고 하는 몸짓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생각하다’나 ‘헤아리다’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보다’는 몸(두 눈)으로 마주하면서 서로 알려고 하는 몸짓이면서, 마음(생각)으로 마주하면서 서로 알려고 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못을 덮어 달라고 할 적에 ‘보아주다(봐주다)’라고 말한 한겨레 삶을 살피면, 나를 그대로 보고 나를 그대로 헤아리면서 나를 그대로 아끼고 보살펴 달라고 하는 뜻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니까, “잘못했어” 하고 말하면서 “나를 봐주렴” 하고 덧붙일 때에 내가 내 모든 몸짓과 말과 삶을 꾸밈없이 들여다보면서 따스하게 다스리는 흐름이 되리라 느낍니다.
내가 나를 보면서 “잘못했어” 하고 말하기에, 나는 나한테 “고맙”습니다. 내가 나를 고맙게 여기면서 “보아주겠다”고 말하니,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네 마디 말은 언제나 함께 움직이면서 나 스스로 즐겁고 씩씩하게 서서 내 길을 걷도록 이끕니다.
.. 이제야 납득이 갔다. 억지로 진심을 담으려고 하면 반드시 ‘왜냐하면’이라는 말이 뒤따랐던 것이다. 정화는 각자가 가진 기억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최초의 자유로운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다 … 사랑은 원래부터 내 안에 있기 때문에 일부러 만들어 내지 않아도 된다 … 세상에는 무수한 감정들이 있다. 그러나 감정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억의 재생에 불과하다. 그것을 그대로 흔적으로 남기며, 각자가 지닌 본래의 완벽한 상태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다 .. (163, 169, 202쪽)
억지를 부리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아이들이 ‘떼’를 쓴다고 흔히 말하는데, 어른도 ‘억지’를 곧잘 부립니다. 아이들이 아무리 떼를 쓴들 이룰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어른들이 아무리 억지를 부린들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억지로 쓰는 글은 재미없고, 억지로 하는 놀이는 따분하며, 억지로 잠을 재우려면 졸립지 않습니다.
기쁘게 해야 기쁩니다. 신나게 해야 신납니다. ‘호오포노포노’는 삶을 가벼운 마음으로 바라보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삶이 기쁜 줄 스스로 ‘보’면서, 이를 고스란히 느끼자고 하는 이야기이니, 늘 가장 쉽고 홀가분하면서 보드랍습니다.
내 삶을 내가 바라보니, 잘 하거나 못 하거나 대수롭지 않습니다. 내 삶은 언제나 이 모습 그대로 사랑스럽습니다. 오늘 하루를 새롭게 열 수 있는 아침을 맞이하니 기뻐서 고맙습니다. 나도 모르게 들꽃이나 들풀을 밟았으니 잘못했다고 말합니다. 나물을 뜯으면서 고맙다고 말합니다. 바람을 마시고 빗물을 받아들이면서 기쁘게 노래합니다. 내 똥오줌을 흙한테 돌려주면서 부디 거름으로 삭혀 주오 하고 바라며 ‘봐주렴’ 하고 말합니다.
어떤 말로든 스스로 마음을 나타내고 드러낼 때에 비로소 홀가분할 수 있습니다. 아무 말로도 마음을 나타내지 않거나 드러내지 못한다면 거북하거나 답답합니다. 처음에는 가만히 마음을 나타내고, 이 마음을 곰곰이 되짚으면서 생각을 키웁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사랑 한 마디를 바람에 얹습니다. 기쁜 생각을 지어서 꿈 한 마디를 바람에 담습니다. 이 지구별에서 저마다 다른 삶자리를 가꾸면서 스스로 길어올리는 아름다운 말을 새롭게 돌아봅니다. 4348.5.9.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