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책읽기



  글을 쓰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이러구러 문화나 문학이나 예술을 한다는 이들은 으레 술을 마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술을 마셔야 문화나 문학이나 예술이 잘 될까요?


  술을 마셔야 문화나 문학이나 예술이 잘 된다면, 과자를 먹어도 문화나 문학이나 예술이 잘 됩니다. 그리고, 술을 안 먹고 과자를 안 먹어도 문화나 문학이나 예술은 잘 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어떤 마음’이고 ‘어떤 뜻으로 하루를 열고 닫으면서 삶을 지으려 하는가’를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냥 가볍게 한 잔을 하든 신나게 열 병을 마시든, 이러한 ‘마실거리’가 ‘술’이 되어서 내 길(문화이든 문학이든 예술이든, 또는 공부이든 훈련이든 연습이든)을 가로막는다면, 이는 ‘내 뜻(의지)’이 아니니, 하면 안 됩니다. ‘하고 싶다(버릇, 취향)’는 생각, 그러니까 ‘마시고 싶다’나 ‘먹고 싶다’ 같은 생각은 우리가 활활 불살라서 태울 ‘뭇느낌(경험, 감정 산물)’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여느 때에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도 저절로 바람을 마시’면서 삽니다. 그런데, ‘그냥 마시던 바람’을 깊이 생각하고 넓게 헤아리면서 마시면, 내 몸은 달라집니다. 바람 한 줄기를 기쁘게 받아들여서 온몸 구석구석을 깨끗이 씻어내어 활활 불태우면서 신나게 내뿜을 수 있다면, 우리 몸은 새롭게 깨어납니다. 언제나 ‘내 뜻(의지)’을 새롭게 살려서 숨을 쉴 수 있어야 합니다.


  숨쉬기는 버릇(습관적)처럼 할 수 없습니다. 술 한잔은 버릇처럼 마실 수 없습니다. 숨으로 바람 한 줄기를 마실 적에는 ‘버릇’처럼 마실 수 없습니다. 언제나 새롭게 마셔야 합니다. 그러니, ‘숨을 쉬는 내 삶’에서 ‘술을 함부로 마시’지 말 노릇입니다. 술이 아닌 다른 것도 이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술이든 다른 무엇이든 그냥 ‘버릇’처럼 마시거나 맞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술이냐 아니냐’를 따질 일이 아니지요. 술뿐 아니라 다른 몸짓에서도 제대로 나 스스로를 다스리거나 가눌 줄 알아야 합니다. ‘술’은 여러 가지 ‘내 몸짓’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보기일 뿐입니다. ‘글쓰기를 앞두고 한잔 했네’라든지 ‘글을 잘 쓰려고 한잔 했다’ 하고 생각했다면 글을 쓸 수 없습니다. 기쁜 몸짓이 아니라면, 어떤 몸짓이든 아예 안 하는 쪽이 훨씬 나으리라 느껴요. 기쁘게 한잔을 마시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면서 활활 태우고, 아름답게 웃고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새 숨결’로 거듭나야 한다고 느낍니다. 언제나 새롭게 깨어나서 내 삶을 새로 짓는 발걸음이 될 때에는,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우리 몸은 언제나 눈부시게 튼튼합니다. 그러니 문화이든 문학이든 예술이든, 술을 마셔야 뭔가 더 잘 된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술을 마시려 한다면, 내 몸과 마음을 새로운 피로 깨어나게 하겠다는 깊고 단단한 ‘내 뜻’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내 뜻’이 없이 마시는 모든 술은 화학약품을 벌컥벌컥 들이켜서 내 삶을 망가뜨리려 하는 몸짓하고 똑같을 뿐이라고 느낍니다. 4348.3.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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