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61) 선善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면 사람들한테서 무엇을 가장 먼저 보시리라고 당신은 생각하는가? 순수한 사랑의 광대한 선善과 아름다움과 진실일 것이다
《앤소니 드 멜로/이현주 옮김-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샨티,2012) 112쪽
광대한 선善과
→ 드넓은 착함과
→ 드넓게 착하고
…
한자를 즐기는 이들은 으레 ‘진선미(眞善美)’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낱말은 “참됨, 착함, 아름다움”을 가리켜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한국말 ‘참됨’과 ‘착함’과 ‘아름다움’을 쓰면 된다는 뜻입니다. 한국말을 굳이 한자말로 바꾸어서 써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이 보기글을 보면 ‘아름다움’은 한국말 그대로 씁니다. 그런데, ‘참됨’이나 ‘참’은 그만 한자말 ‘진실’로 적고, ‘착함’은 아예 한자로 ‘善’을 드러내어 적고 맙니다.
선을 행하다
→ 착한 일을 하다
→ 착하게 하다
“善을 行하다” 같은 말마디는 겉으로는 한글이지만, 속으로는 한국말이 아닙니다. 겉뿐 아니라 속까지 옹글게 한국말이 되도록 고쳐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이를테면, “선을 행하는 사람이 아름답다”가 아니라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름답다”나 “착한 사람이 아름답다”처럼 적으면 돼요.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존재한다
→ 온누리에는 착함과 나쁨이 있다
→ 이 땅에는 착함과 나쁨이 있다
외마디 한자말로 쓰는 ‘선’은 “선과 악” 꼴로 무척 자주 씁니다. 이 말투는 “착함과 나쁨”으로 고쳐쓰면 됩니다. 말 그대로 ‘착함’과 ‘나쁨’이니까요.
한국말사전을 보면 “선을 쌓다” 같은 보기글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말은 말짜임부터 올바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쌓다”라든지 “참을 쌓다”처럼 쓰지는 않아요. 착함이나 아름다움이나 참은 쌓지 않습니다. 아니, 쌓을 수 없을 테지요. 눈에 보이는 것(물건)이 아니니까요. 마음으로 이루고, 마음으로 나누며, 마음으로 펼치는 넋을 가리키니, 이러한 모습을 ‘쌓다’ 같은 낱말로 나타낼 수 없어요. “착한 일을 꾸준히 하다”라든지 “착한 일을 오래 하다”처럼 써야 맞고, “늘 착하다”라든지 “언제나 착하다” 같은 말마디로 이야기하면 넉넉하리라 생각해요. 4348.3.9.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예수가 이 땅에 다시 오시면 사람들한테서 무엇을 가장 먼저 보시리라고 생각하는가? 티없는 사랑으로 드넓은 착함과 아름다움과 참이리라
‘예수께서’는 그대로 둘 수 있지만, ‘예수가’나 ‘예수님이’로 다듬으면 한결 부드럽습니다. ‘당신(當身)은’은 ‘그대는’으로 손볼 수 있으나, 이 보기글에서는 덜어도 됩니다. “순수(純粹)한 사랑”은 “티없는 사랑”이나 “깨끗한 사랑”으로 다듬고, ‘광대(廣大)한’은 ‘크고 넓은’이나 ‘드넓은’이나 ‘크나큰’으로 다듬습니다. “진실(眞實)일 것이다”는 “참이리라”로 손질합니다.
선(善) :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음
- 선을 쌓다 / 선을 행하다 /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존재한다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