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서 태어나는



  손끝에서 글이 태어난다. 손끝이 아니라면 글이 태어나지 않는다. 손끝에서 밥이 솔솔 익는다. 손끝으로 지은 밥이 따끈따끈하게 익어 맛나게 먹을 수 있다. 손끝에서 싹이 돋는다. 손끝으로 심은 씨앗이 싱그럽게 줄기와 잎을 올리면서 햇볕을 받으니 어느새 씩씩하게 자라서 아름다운 풀이 되고 나무가 되어 고운 꽃을 피워 알찬 열매로 무르익는다.


  모든 삶은 손끝에서 비롯한다. 손끝을 거치지 않고 태어나는 것은 없다. 사랑도 이야기도 노래도 춤도 모두 손끝에서 비롯한다. 하물며 글이 손끝을 거치지 않고 태어날 수 있으랴.


  손끝에 닿는 물방울을 느끼면서 빨래를 한다. 손끝에 닿는 아이들 살결을 어루만지면서 이마를 쓰다듬고 자장노래를 부른다. 손끝에 닿는 바람결을 마시면서 기쁘게 노래를 하고 들길을 걷는다. 손끝에 닿는 연필을 가만히 헤아리면서 내가 짓는 꿈이 어떤 생각으로 나타나서 마음자리에 깃드는가를 돌아보니, 어느새 글 한 줄 두 줄 석 줄 흐른다. 4348.2.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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