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깊이 잠이 든다



  열흘에 걸친 배움마실을 마치고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배움마실을 하는 동안 나는 나한테 몇 가지 말을 걸었다. 첫째, 배운다. 둘째, 잠을 안 잔다. 셋째, 이웃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리하여, 나는 내가 나한테 말한 대로 세 가지를 늘 이룬다. 배움마실을 한창 하면서 다른 두 가지가 떠올랐다. 첫째, 잠을 하루에 네 시간 잔다. 낮에 살짝 숨을 돌리고자 1분이나 5분쯤 눈을 붙인다.


  내가 하는 일은 ‘말짓기’이다. 나는 말을 배워서 말을 짓는 일을 한다. 이를 사회에서는 ‘한국말사전 편집’이라 가리키지만, 내가 나한테 하는 말은 ‘말짓기’이다. 그러니까, 내가 무엇을 배운다고 할 적에는 ‘말’을 배운다는 뜻이다. 말을 배워서 말을 짓다 보면, 어느새 삶을 짓는다.


  그런데, 시외버스를 타고 시골로 돌아가는 길에, 태블릿을 꺼내 글을 한 꼭지 쓰는 동안 천천히 졸음이 찾아온다. 무엇일까? 나는 밤에 꿈을 꾸면서 잠들 때를 빼고는 안 자기로 했는데 왜 졸음이 오지? 아무튼 글은 마무리짓고, 태블릿은 옆으로 치운다. 이러고 나서 머리끈을 풀고 걸상에 머리를 가만히 기댄다. 바라본다. 이 졸음이 무엇인지 바라본다. 나는 어느새 잠이 든다. 그리고 코를 살짝 골기까지 한다. 코를 고는 소리를 듣고는 문득 잠에서 깬다. 이러다가 다시 잠들고, 다시 깨고, 또 잠들고, 또 깬다. 이러기를 한 시간쯤 하니, 몸이 스르르 풀린다. 무엇인가 몸에 맺힌 응어리가 하나 사라진 듯하다. 응어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무엇인가 새로운 이야기가 스며든 듯하다. 무엇일까. 아직 잘 모른다. 그리고, 아직 잘 모르기에, 나는 앞으로도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려 한다. 4348.1.2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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