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안 짓는 아버지는 무엇을 가르칠까



  밥을 안 짓는 아버지가 오늘날에도 꽤 많다. 고작 마흔이나 서른밖에 안 된 아버지조차 집에서 밥짓기를 아예 안 하기 일쑤이고, 쉰이나 예순이 된 아버지라면 참말 아예 안 한다고 할 만하다. 왜 아버지라는 사람은 집에서 밥을 안 지으려고 할까. 아버지 자리에 서서 집에서 밥을 안 짓는다면, 이녁은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회사에 다녀오느라 새벽 일찍 집을 나선 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에서 아버지라는 사람이 하는 일이란 텔레비전이나 신문이나 책을 보면서 ‘밥상이 차려지기를 기다리기’요, ‘인터넷게임’이나 ‘인터넷마실’뿐이라 한다면, 아이는 아버지한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아이는 아버지가 집 바깥에서 무엇을 하는지 하나도 모른다. 아이는 아버지가 하루 내내 집 바깥에서 무엇을 하는지 하나도 알 길이 없다. 아버지는 아이가 자라는 결을 지켜보지 못하고, 아버지는 아이가 울거나 웃거나 노래하거나 춤추는 하루를 들여다보지 못한다. 아이 손톱에 때가 끼는지 마는지, 아이가 똥을 누는지 오줌을 누는지, 아이가 어떤 밥을 맛나게 먹는지, 아이가 젓가락질을 어떻게 익히는지, 아이를 씻길 적에 얼마나 재미있는지 따위를 아버지라는 사람은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다만, 밥은 안 짓되 다른 것은 집에서 할는지 모르리라. 그러면, 아버지나 아이는 밥을 안 먹을까? 집에서 밥을 안 먹고 바깥에서 사다 먹기만 할까? 날마다 밥을 꼬박꼬박 먹는데, 밥짓기를 안 하고 다른 놀이만 살짝 한다면, 아버지 구실이란 무엇일까?


  인문책은 읽으면서 밥짓기를 안 한다면 아버지 구실을 하나도 안 하는 셈이라고 느낀다. 인문책은 읽지만 밥짓기와 집살림을 안 한다면 아버지 노릇을 조금도 못 하는 셈이라고 느낀다. 머릿속에 지식은 담더라도 삶을 바꾸지 못하면, 책은 왜 읽나? 머릿속에 지식은 채우더라도 삶을 일으켜세우지 않는다면, 인문책이란 뭣에 쓰는가? 어느 모로 본다면, 삶짓기하고 동떨어진 ‘시사상식’을 ‘인문학’이라는 허울을 씌워서 읽고 다시 읽기만 하는지 모른다. 가만히 본다면, 사랑과 꿈과 이야기하고는 동떨어진 ‘사회문제’를 ‘인문학’이라는 이름만 붙여서 읽고 또 읽기만 하는지 모른다. 4347.12.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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