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목 책읽기 (섣달함박나무)



  고흥군 도화면 소재지에 있는 도화고등학교 건물 앞에 커다랗게 자란 나무가 있다. 학교 건물과 운동장 사이에 제법 우람하게 자란 나무이니, 이 학교를 다니는 아이와 어른은 이 나무를 으레 볼 만하리라 느낀다. 한여름에는 이 나무 밑으로 모여서 그늘을 누릴 수 있으리라 본다.


  나무 곁에 선다. 어떤 나무인지 궁금하다. 한겨울에 매달린 씨주머니를 본다. 씨주머니는 빨간 알을 올망졸망 담은 작은 주머니가 많이 모여서 막대 같은 꽃대 끝에 달린다. 바람이 차갑게 불어도 잎이 푸르다. 잎끝이 부드러우면서 기름하게 둥그스름한 잎은 제법 통통하다. 씨주머니를 다시 바라본다. 씨주머니가 이렇게 크다면 꽃송이는 얼마나 클까. 한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는 늘푸른나무 한 그루가 학교 건물과 운동장 사이에서 우람하게 자라 몹시 곱구나 싶다.


  그러면, 이 나무는 어떤 이름일까. 이 학교를 다니는 어른과 아이는 이 나무가 어떤 이름인지 알까. 학교를 날마다 들락거리면서 으레 나무를 한 번쯤 스칠 텐데, 나무를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여기에 나무가 있구나’ 하고 생각할까, 아니면 ‘나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채 지나치기’만 할까.


  사진을 찍어 다른 사람들한테 여쭈니 이 나무는 ‘태산목’이라는 이름이 붙는다고 한다. ‘태산목’이 무슨 뜻인지 살피니 ‘泰山木’이라 한다. 꽃이 무척 커서, ‘큰 + 메 + 나무’와 같이 한자로 이름을 지어서 붙였다고 한다.


  나무이름을 알아보고 나니 좀 싱겁다. 다른 나라에서 자라던 나무를 한국에 들여왔구나 싶은데, ‘泰山木’은 누가 붙인 이름일까? 한국사람이 나무한테 ‘-나무’가 아닌 ‘-목’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가? 아무리 다른 나라에서 자라던 나무를 들였다 하더라도 ‘-나무’ 아닌 ‘-목’을 붙여도 될까?


  무척 커다란 꽃을 매다는 나무를 보며 ‘왕(王-)’ 같은 앞가지를 붙여 ‘왕벚나무’라 하기도 하는데, 커다란 꽃이라고 하니, 나는 맨 먼저 ‘함박꽃’이 떠오른다. 가만히 보니, 태산목이라는 나무나 함박꽃이라는 꽃이나 ‘목련 갈래’라고 한다. 그러면, 이 나무를 두고 ‘함박나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함박나무’라는 이름을 받은 나무가 따로 있다고 하면 ‘큰함박나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너도밤나무’라는 나무이름을 헤아려 ‘너도함박나무’라든지 ‘나도함박나무’ 같은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너도큰함박나무’라든지 ‘나도큰함박나무’ 같은 이름을 붙일 만하다.


  우리가 곁에 두며 사랑스레 바라보면서 돌볼 나무라 한다면, 그야말로 아이와 어른 누구나 쉽게 알아듣고 알아보며 마주할 만한 이름을 붙여야 맞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자라는 나무는 ‘나무’이지 ‘木’이 아니다. 배롱나무는 ‘배롱나무’이지 ‘木백일홍’ 따위 이름을 붙일 수 없다.


  커다랗고 하얀 꽃을 맺는다는 이 나무는 섣달 그믐 언저리에 서양에서 ‘예수님나신날’을 기리는 잔치에서 집안을 꾸미면서 쓰기도 한단다. 그러면, 이러한 쓰임새를 헤아려 ‘섣달나무’라든지 ‘섣달그믐나무’처럼 이름을 새롭게 붙여도 재미있다. ‘섣달함박나무’ 같은 이름도 재미있으며, 이러한 이름을 붙이면 사람들이 이 나무와 얼마나 가까이 사귀면서 아끼는가 하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4347.1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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