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는 눈빛 87. 어둠이란 있을까
사진을 찍는 일을 놓고 흔히 ‘빛과 어둠’을 찍는다고 말하기도 하고, ‘빛과 그림자’를 찍는다고 말하기도 하며, ‘하양과 까망’을 찍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이러한 말이 맞다고 여길 수 있지만, 이러한 말은 조금도 맞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말은 아주 틀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낮과 밤’을 말합니다. 낮이 지나면 밤이 된다고 합니다. ‘해와 달’도 말하지요. 해가 지면 달이 뜬다고 말해요. 그러나, 달빛이란 처음부터 따로 없어요. 해가 달을 비추어 생기는 빛이기에, 달빛은 정작 달빛이 아니라 ‘햇빛’입니다. 햇빛을 달에 대고서 볼 뿐입니다.
어둠이나 그림자나 그늘이란 무엇일까요? 빛을 비추면서 생기는 ‘빛결 가운데 하나’입니다. 빛이 있기에 ‘어둠이나 그림자나 그늘’이라고 하는 ‘새로운 빛’이 생깁니다. 아니, 어둠이나 그림자나 그늘은 ‘수많은 빛결 가운데 한낱 조그마한 조각’이라고 말해야 올바릅니다.
우리는 빛과 어둠을 사진으로 찍지 않습니다. 오로지 빛만 사진으로 찍습니다. 우리는 빛과 어둠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로지 빛만 바라봅니다. 무슨 뜻일까요? 사람을 찍을 때에는 오직 사람만 봅니다. 나무를 찍을 적에는 오직 나무만 봅니다. 그저 그렇습니다. 그저 그러한 줄 알 때에, 비로소 ‘사진으로 아로새기는 빛’이 어떠한 무늬요 갈래이며 숨결인지 읽을 수 있습니다.
안셀 아담스라고 하는 분은 ‘존 시스템’이라는 이름을 짓고 ‘빛을 가르는 틀’을 세웠습니다. 이녁은 오직 빛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존 시스템’은 ‘빛 계단’이나 ‘빛틀’이나 ‘빛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빛을 크게 아우르면서 보는 한편, 빛이 드리우는 때와 곳을 찬찬히 헤아리면서 빛조각을 조그맣게 따로따로 바라본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오직 ‘사진’을 생각해야 할 뿐입니다. 다른 것을 생각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이 ‘작품이 될 만한지’ 생각할 까닭이 없고, 내가 찍은 사진이 ‘전시장에 걸어서 비싸게 팔릴 만한지’ 생각할 까닭이 없습니다. 내가 찍은 이 사진으로 ‘사진책을 엮을 만한지’ 생각할 까닭이 없고, 내가 찍은 이 사진이 ‘사회나 문화나 학계를 발칵 뒤집을 만한지’ 생각할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사진’만 생각할 뿐입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을 적에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빛’만 바라볼 뿐입니다. 한 걸음 나아가, 사진을 찍는 우리는 ‘사진’과 ‘빛’을 이루는 ‘삶’과 ‘사랑’을 바라보면서 슬기롭고 따스하게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4347.11.12.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